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33)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33화(133/199)
저마다의 행성에서 (7)
* * *
“조심히 다녀와라. 도착하면 연락하고.”
“아빠, 요즘 비행기 안에서도 와이파이 된대.”
“뭐? 세상이 그렇게 좋아졌냐?”
두 형제의 출국일 아침.
동작구 아파트 근처, 오픈 전인 한영주의 꽃집 앞에 가족들이 다 모였다.
박건은 작은 캐리어 하나가 다지만, 박선은 바리바리 싼 짐에 거의 파묻혀 있다.
“들어 줘?”
“어어, 괜찮아. 필요한 거 넣다 보니까 좀 많이 들어가서··· 근데 나 요즘 운동했다니까? 이두 펌핑된 거 봐.”
형에게 제 팔뚝을 자랑하는 막내를 보며, 한영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디 가지 말고 호텔에만 있어. 영화제 당일 날도 꼭 조심하고.”
“그래, 너희 엄마 말이 맞다. 뉴스 보니까 그 동네가 한동안 시끄러웠다더구나.”
올해 초,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등지의 무차별 테러 탓에 영화제 일정이 다소 밀렸다.
서유럽에서 활동하던 무장 테러리스트들 대부분이 검거됐다지만, 부모님은 영 염려를 못 놓는 기색이었다.
“괜찮아. 거기 경찰들도 많이 돌아다니고, 영화제 시즌이라 사고 안 나게 더 조심한대. 몸값 비싼 사람들 엄청 오잖아, 우리 형 포함해서.”
“그래도 조심해. 유명인이라고 총 안 맞니?”
“아유, 우리 엄마는 너무 걱정이 많아.”
어머니와 막내의 실랑이를 말리며, 아버지 박열호가 물었다.
“공항까지는 택시 타고 간다면서. 아까 부르는 것 같더니, 아직 안 잡혔냐?”
“어, 아아니, 이게 잡혔는데 취소가 됐네.”
“내가 잡아?”
“안 돼, 형! 다시 잡았다고!”
아까부터 수상하게 눈치를 보던 박선이, 어플을 켜려는 형을 극구 만류할 때였다.
새빨간 포르쉐가 달려와 멎었다. 운전석이 열리고, 차에서 내린 사람은 익숙한 단발머리였다.
“···진지유 배우?”
아들 덕분에 연예계엔 도가 튼 한영주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흰색 점프수트 차림의 진지유가 발랄하게 달려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처음 뵙겠습니다, 아버님. 진지유라고 합니다!”
“아, 예. 잘··· 열심히 보고 있었어요.”
아들네 소속사 배우라지만, 변휘승 말고 실제 동료 배우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것도 실물 깡패로 유명한 여배우 아닌가. 한영주가 얼떨떨한 와중에도 인사를 받는데, 박선이 갑자기 손뼉을 쳤다.
“아, 오늘 지유 씨가 공항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었지! 내가 깜빡했다. 그치, 형?”
“난 그런 얘기 못 들었······.”
“나는 택시 타고 갈게. 아, 벌써 올 시간이다.”
···어색한 연기톤을 보니, 짠 게 맞다. 반면 진지유 쪽은 역시 배우답게 흔들림이 없다.
붙임성 좋게 아버님, 어머님, 부르면서 손까지 한번씩 잡아 드리고는 다음 약속을 잡는다.
“두 분, 정말 뵙고 싶었거든요. 제가 조만간 따로 찾아뵐게요, 건이 오빠 귀국하면 축하 파티라도 꼭 같이 해요!”
“어··· 애들 엄마만 괜찮으면······.”
“당연히 괜찮죠. 우리 건이가 일 얘긴 잘 안 해서, 이런 미인 동료가 있는 줄도 몰랐네. 나중에 가게든 집이든 놀러 와요.”
한영주는 진지유가 마음에 쏙 든 눈치였다. 남편을 잡아끌더니, 그때껏 멀뚱하니 서 있던 큰아들을 차에 밀어넣었다.
“그럼 연락하고, 조심히 다녀오거라.”
“네, 어머님, 아버님! 오빠는 제가 안전하게 태워다 줄게요!”
“다녀오겠습니다.”
포기한 듯한 박건의 말을 마지막으로, 포르쉐는 질풍같이 사라졌다.
엔진소리가 멀어지자마자 한영주가 막내의 등짝을 철썩 때렸다.
“얘, 넌 이런 일이 있으면 미리 눈치라도 줘야지! 네 아빠 당황한 거 봐라, 응?”
“아니, 나도 몰랐어! 오늘 아침에 갑자기 연락 온 거라니까. 할 말이 좀 있으니까 형한텐 비밀로 해 줄 수 있겠냐면서.”
얼굴만 예쁜 줄 알았더니, 과감성도 불도저가 따로 없다. 진지유의 필모를 검색해 보던 한영주가 목소릴 낮춰 물었다.
“그래서, 둘이 어떤 사이니?”
*
공항으로 달리는 도중, 차 안에는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
부모님 앞에선 잘만 하더니, 둘만 있으니 입이 딱 붙은 눈치였다.
진지유는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이다가 겨우 안부 비슷한 것을 건넸다.
“···잘 지냈어요?”
“예, 그럭저럭.”
대답하며, 건은 동료의 옆모습을 쳐다보았다.
‘건강이 회복됐군. 혈색도 좋고··· 심박수는 여전히 높긴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벌써 2주가 넘었다.
국회의원을 업은 스토킹 범죄의 이슈화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타 연예인이며 인플루언서의 팬덤을 포함, 스토킹의 직접적인 피해자들이 주축이 되어 법안 개정을 밀어붙이는 중이었다.
[가족관계 스토킹, 박차 가하는 ‘홍광석법’··· 기대 모으는 실효성] [유명인이라면 한번쯤··· 공포스러운 스토킹, “지금이라도 도와주세요”]그 법안을 내게 한 원흉, 진지유의 가족들은 죗값을 치르고 있었다.
진규일이 연결해 준 비서실 1팀장은 짧은 보고를 보내 왔다.
-진행 이상 무. 판결 및 원심, 항소심까지 관망하며 필요시 개입하겠음.
“저, 음악 틀어도 되죠?”
“예.”
진지유가 블루투스를 켜자, 예전 아이돌 노래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파이브 퀸즈’ 시절 음악을 듣고서야 긴장이 풀린 것 같았다. 핸들 위 손가락을 까딱이던 진지유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인사가 늦었는데··· 고마웠어요.”
“한 것도 없는데요.”
“오빠가 해 주신 거잖아요. 아빠는 몰라도, 엄마랑 언니는 저한테 또 찾아왔을 거예요.”
건은 구태여 부정하지 않았다.
평생을 부대껴 온 가족이다. 휴먼캠프나 홍 의원의 법안이야 그렇다 쳐도, 저쪽이 잠잠한 이유를 눈치 못 챘을 리 없다.
진지유는 잠시 말을 골랐다.
“우리, 맨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요?”
“예. 은 작가님 소개로 특별출연해 주셨던.”
“사실 그전에도 알고 있었어요. 회사에 쳐들어와서 대표님이랑 담판을 벌였다길래, 어떤 사람인가 궁금했죠.”
벌써 한참 전 일이다. 와우··· 어쩌고 하는 그룹이었던 것 같은데, 동생을 직접 폭행했던 매니저를 실금시켰던 기억이 났다.
이후 재계약 불발 후 그룹이 해체됐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하필 귀환 첫날 동생을 건드린 것이 불운이라면 불운이었다.
‘손속이 조금 과하긴 했지만··· 어차피 잘 될 작자들도 아니었을 테니.’
그 덕에 은희욱 작가를 만나게 되고, 배우로까지 데뷔했으니 기막힌 우연이라 할 수 있었다.
당시를 떠올렸는지, 희미한 미소를 머금던 진지유가 차를 출발시켰다.
“전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누가 내 물건을 가져가도, 날 때려도 가만히 참고만 있고. 싫은 소릴 못하는 성격이었거든요.”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흘렀지만, 건은 묵묵히 들었다.
진지유는 그녀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을까 해요. 싫어, 안 돼. 여기까지야. 이렇게 말하지 않은 거. 조금 더 일찍 그런 얘길 꺼냈었더라면 아빠랑 엄마도······.”
뒷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동료의 자괴를 잘랐다.
“진지유 씨 때문이 아닙니다.”
“······?”
“살아오면서 느낀 게 있다면,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난다는 거였습니다. 제가 맡았던 배역, 은한섬이 회귀하고도 어머니의 죽음을 막지 못했던 것처럼. 몇 번을 다시 살아나도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아역배우 때든 아이돌 시절이든,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겁니다. 욕망과 미혹에 홀릴 이들은 언젠가 또 홀렸을 테니까.”
어느덧 공항이 보였다. 잠시 갓길로 빠진 진지유는 차를 멈추더니,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아가야죠. 여태 해 온 것처럼.”
성녀의 꿈을 꾼 탓인지, 다소 감상적인 기분이 된 것 같았다. 건은 상체를 틀어 진지유와 눈을 똑바로 맞췄다.
“잘 해낼 겁니다, 지유 씨라면.”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문득 정신이 든 듯, 시계를 본 진지유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제 얘기는 했으니, 뭐 하나만 말해 줘요.”
“말씀하십시오.”
“···여자친구, 언제부터 있었어요?”
이번엔 정말로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건은 목 아래부터 새빨개진 진지유를 보다가 대꾸했다.
“전 여자친구가 없었습니다. 입대 전부터 쭉.”
“말도 안 돼, 그럼 혹시······.”
건은 위험한 상상을 저지시켰다.
“생각하는 그런 쪽도 아니고요.”
“그런데 왜 아무랑도 안 만나요?”
“군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데, 아직 정리가 끝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언젠가는 저도 누군가와 교제할 수 있겠죠.”
귀환한 지 이제 2년차에, 철왕국의 기억도 다 찾지 못했다. 진지하게 한 소리였는데 진지유는 감정 다 깨진다는 표정이 됐다.
“사귀는 것도 아니고, 교제라니······.”
“슬슬 출발합시다. 다른 사람들이 더 빨리 도착하겠네요.”
“비행기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무슨.”
작게 투덜거린 진지유가 다시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오빠.”
“예.”
“그래서 어떤 스타일 좋아하냐고요. 전에 물어봤는데 대답도 안 해 주고.”
“···집요한 구석이 있으시군요.”
*
프랑스의 작은 도시,
니스는 칸 영화제가 가까워지면 서서히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자연 정경과 해안 풍경으로 원체 관광객이 붐비는 곳이기도 하나, 이번엔 서유럽 테러로 영화제가 몇 달간 밀린 탓이다.
[동유럽 테러··· 알고 보니 중동 아닌 남미의 무정부주의자들?] [작년은 역병, 올해는 테러··· 프랑스의 몸살 뚫고 모인 세계적 ‘별’들] [세인트 세이나 비너스, 더 위크, 오셜록 머치··· 쟁쟁한 경쟁작들 속 국내 작품은?]삼대 영화제 중에서도 가장 높이 쳐 준다는 칸이다.
한국에서도 몇 주 전, 심지어 두어 달 전부터 기사들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관심이 쏠리는 것은 두 팀, ‘흑의사제’와 ‘노을 저편에’ 팀이다.
한때 칸은 물론, OTT로 에미상까지 진출하던 한류 작품들의 인기가 주춤해진 뒤 경쟁작 부문에서는 오랜만에 일궈낸 쾌거다.
몇 작품이 비경쟁부문에 초청됐지만, 어쨌든 수상작이 나오는 것은 경쟁부문.
그 박건이 주연으로 활약한 스릴러와, 올해 초 빅히트를 친 ‘노을 저편에’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니스공항 현지.
“대표님, 빨리 좀 가요!”
“아니, 여기 기자들이 왜 이렇게 없는 거야? 우리가 온다는 소릴 못 들었나?”
“···한국에서 다 즐겨 놓고 왜 이러실까. 말했잖아요, 프랑스에선 우리가 완전 이방인이라고.”
“그래도 그렇지, 무려 박건인데! 씨빙에 패션위크에, 칸까지 왔으니 이제 월드스타 반열 든 거 아냐?”
태종범 대표와 배우 이장미가 투닥거리며 나오고, 그 뒤를 김률 감독과 박건이 따른다.
“월드스타라기엔 갈 길이 멀죠. 아직 헐리우드에도 못 갔는데요.”
“박건 씨라면 머지않았을 겁니다. 우린 여기서 뭐라도 잡을 테니까.”
확신에 찬 김률의 말 뒤로, 모자를 벗은 박건이 공항을 메운 인파를 둘러보았다.
“그랬으면 좋겠군요.”
영화제가 열릴 니스에,
‘흑의사제’ 팀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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