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34)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34화(134/199)
칸 국제영화제 (1)
* * *
알리안츠 리베이라.
프랑스 니스에 위치한 다목적 경기장으로, OGC 니스의 홈구장이기도 하다.
와아아아아ㅡ
관중들이 꽉꽉 들어찬 돔 안에서는, 홈팀과 원정 팀의 리그 경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홈팀은 검고 붉은 세로줄 유니폼의 OGC 니스,
원정팀은 흰 상의에 초록 하의의 FC 낭트다.
‘축구장엔 처음 와 보는 것 같은데, 어릴 때 아버지랑 같이 말고는.’
건은 아래쪽을 굽어보았다.
그들이 있는 곳은 관중석 가운데쯤.
저 아래, 골대 양쪽에서는 두 팀의 서포터즈들이 목이 터져라 응원한다. 4대 리그만큼은 아니지만 유서 깊은 프랑스의 리그앙(리그 1)이다.
거기다 최근 7연승을 달리는 니스 대 낭트, 인기팀들의 격전이니 구름 같은 관중들의 성원도 당연한 것이다.
“우와아아아!”
“······.”
그리고 옆에는, 누구보다 축구에 진심인 타지 팬이 한 명 있다.
건은 니스의 유니폼을 입고,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르는 동생을 멍하니 쳐다봤다.
“레츠 고우, 지장혁! 가보자고, 지장혁!”
가자는 말을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를 죄다 섞어 외쳐 댄다.
어릴 적부터 박선이 국내는 물론, 해외 리그까지 섭렵한 축구 팬임을 깜빡 잊은 결과였다.
‘···이러려고 일찍 온 거였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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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되돌아가 어제.
니스 공항에 발을 디딘 뒤, ‘흑의사제’ 팀은 리무진에 몸을 실었다.
태종범 대표가 미리 현지의 리무진택시를 섭외해 둔 덕이다.
“와, 기자들이 이렇게 반가운 적은 처음이네. 몇 명 있었죠?”
좌석에 반쯤 쓰러진 채, 이장미가 묻자 박선이 골똘히 헤아린다.
“한··· 일곱 분쯤? 형, 혹시 기억나?”
“여덟 명이었어.”
“이야, 그만하면 많이 온 거지. 이역만리 타국에서! 거기다 외신도 하나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다들 너무 실망 맙시다, 예?”
“죄송한데, 대표님이 제일 실망하신 것 같아요.”
열정적으로 분위기를 띄우던 태종범 대표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찌그러진다.
멤버는 단출하다면 단출하다.
제작사 대표 태종범, 감독 김률, 배우는 박건과 이장미, 매니저로는 박선.
이장미도 나름 소속사에서 밀어주는 배우지만, 혼자가 편하다며 매니저를 떼어 놓고 왔다고 했다.
“자, 날짜 좀 봅시다. 우리 일정이······.”
“개막은 사흘 뒤입니다. 숙소는 살짝 변두리에 잡아 둬서, 영화제 당일엔 조금 일찍 이동해야 여유가 있을 겁니다.”
이미 일정표를 외운 김률이 브리핑한다. 오랜만에 봐도 본인이 모든 일을 해결하는 솔선수범은 여전하다.
역시 김 감독! 하면서 손뼉을 치던 태종범 대표가 머리를 긁었다.
“가만, 근데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사흘이나 남았잖아?”
이장미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여기 사람들, 다 일만 하고 해외여행은 가 본 적이 없잖아요. 스케줄도 다들 비어있대서 선이 오빠랑 미리 잡았어요. 영화제까지 왔는데 머리 좀 비우고 쉬다 가라고.”
“크흐, 역시 장미 씨! 가만, 근데 숙소는? 일부러 사람 없는 데로 간 거면······.”
“아, 크루제아트(Croisette) 거리 호텔은 벌써 다 찼어요. 특히 스위트룸은 탑스타 아니면 예약도 안 된다던데. 칼튼이랑 마제스틱··· 마르티네즈까지 알아보긴 했거든요.”
그래서 더 이번 칸의 성과가 중요하다. 다들 한국에서 알아주는 배우일지언정, 아직 글로벌 스타로는 갈 길이 멀다.
숙연해진 분위기 속, 박건이 담담하게 말했다.
“점심은 어디서 먹습니까?”
“···오빤 참 한결같아서 좋아요.”
그렇게, 숙소에 짐을 푼 일행들은 다들 자기 볼일을 보러 떠났다.
이장미는 혼자 관광을 한다고 했고, 김률 감독과 태종범 대표도 프랑스에 사는 친구를 만난다며 어디론가 가 버렸다.
‘다들 열심이네.’
관광만 수십 년을 하고 온 귀환자에게, 새로운 국가나 도시는 감흥이 없다.
막 침대에 드러눕는데 캐리어를 뒤지던 박선이 외쳤다.
“좋아. 우리도 가자!”
“어딜?”
“당연히 관광이지! 먹고 놀고 축구도 보고, 나 유니폼까지 챙겨 왔다니까.”
“유니폼······?”
.
.
.
···그렇게 온종일 끌려다니다가, 해가 저물 때쯤 이 돔형 경기장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리그 일정상 지금이 초반부라고 했던가. 마침 홈팀인 니스에 진출한 해외파, 국가대표 미드필더 지장혁의 경기까지 있었다.
“우와아아아!”
190센티미터에 가까운, 동양인 선수가 그라운드에 등장하자 우레 같은 함성이 터져나왔다.
OGC 니스의 미드필더, 지장혁이다.
박선이 얘기해 준 정보에 의하면 별명은 지장보살, 짱혁, 혁치 등등.
냉혹한 프로스포츠의 세계에서도 꾸준히 성적을 내, 현재는 빅리거 중 가장 잘나가는 축구선수라고 했다.
“형, 여기 봐. 스토리 사진 하나 찍어야지.”
박선이 호들갑을 떨며 찍은 스토리를 봤는지, 여기저기서 DM이 들어왔다.
JI_YoU : [오빠 K리그도 좋아해요? 귀국하면 저랑 FC서울 홈경기 직관?]
Byeon.99 : [와 난 가이드로만 쓰고 버리더니 ㅡㅡ 지장혁 보러갔네]
예전처럼 돌아온 진지유··· 그리고 파리패션위크 시절 신세를 진 변휘승을 포함해, 동료 배우들도 아낌없는 격려를 보냈다.
그 덕분일까.
“어, 우리다! 저기 전광판!”
하프타임 때는 중계 카메라에도 잡히고,
“골, 골! 진짜 넣었어어어!”
1골 1어시스트, 지장혁의 맹활약을 앞세워 홈팀이 3:0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열기로 물들었던 경기가 끝나자 고막이 멍멍할 지경이었다. 관중석 부근에서 팬서비스 중인 니스 선수들을 구경할 때였다.
“와, 박건 형!”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팬들에게 사인해 주던 지장혁이 걸어오고 있었다.
박선은 숨이 넘어갈 듯 놀라 그를 부여잡았다.
“지금 형 부른 거 맞지? 아는 사이였어?”
“아니, 초면인데.”
건이 형, 박건 씨도 아닌 박건 형이라는 호칭은 처음이다. 거기다 목소리도 커서 사인을 받던 팬들과 구단 관계자들까지 그들을 쳐다봤다.
건은 이내 지장혁과 마주섰다. 이쪽도 평범한 배우 피지컬은 아니지만, 해외파의 현역 축구선수는 과연 더 컸다.
씩 웃은 지장혁이 스스럼없이 말을 붙였다.
“왜 온다고 말 안 했어요, 미리 얘기했으면 제일 좋은 티켓으로 빼 주는 건데.”
“모르는데 어떻게 말씀드립니까.”
“아, 내 정신 좀 봐. 우리 처음 보는 사이였죠?”
“······?”
실로 정신 나갈 것 같은 친화력이다.
듣고 있던 박선은 눈앞이 핑핑 돈다는 표정이 됐지만, 지장혁은 개의치 않고 악수를 청했다.
“아무튼 팬이에요. 이번에 칸 초청 소식은 들었는데, 경기장까지 오실 줄은 몰랐지 뭡니까.”
동생이 아니라면 올 일도 없었을 터다. 건은 적당히 좋은 말로 화답했다.
“저도 경기 잘 봤습니다. 활약이 엄청나시던데요.”
“박건 형이 와서 그랬나 보죠. 오늘은 경기 전부터 몸이 가볍더라고요.”
너스레를 떠는 지장혁 옆에, 구단 관계자로 보이는 남성이 와서 뭐라고 말했다.
아마 시간이 다 됐다는 것 같았다. 슬슬 가 봐야겠다며, 박선과도 악수한 지장혁은 손을 흔들었다.
“다음 경기도 홈이니까, 이따 디엠 보낼게요! 근처에서 밥이나 해요!”
당연히 그냥 한 소린 줄 알았지만, 한 시간도 안 돼 건의 계정으로 DM이 날아왔다.
geejangbosal : [내일 점심에 치맥 고?]
*
다음날, 지장혁은 숙소 근처에 있는 식당 좌표를 보내 왔다.
7월의 니스는 볕이 따사롭다. 무려 국가대표가 예약해 놓은 식당으로 가자 선글라스 쓴 덩치가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지 선수!”
“어, 오셨어요?”
시즌 중이긴 해도, 경기 다음날은 정해진 훈련시간 외엔 자유로운 편이라는 것 같았다.
약속 장소도 테라스가 있는 펍이었는데, 자주 오는 곳이었는지 지장혁은 알아보는 팬들에게 반갑게 인사해 주었다.
유니폼, 모자, 포스터까지 사인을 받은 박선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팬들이에요?”
“네, 두 분도 소개했죠. 곧 칸을 씹어먹을 두 형제라고.”
“아직 씹어먹을지까진······.”
건의 눈치를 보는 박선 앞에, 거대한 맥주 피처가 턱 놓였다. 이 지방의 특산물로 꼽힌다는 수제맥주인 모양이었다.
“자, 일단 먹으면서 얘기합시다. 몸 때문에 무알콜 먹는 건 이해해 줘요.”
지장혁은 소탈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경기장 안팎의 팬서비스는 물론, 골을 넣으면 추는 기괴한 댄스 세리모니로도 유명했다.
상체랑 하체가 따로 노는 춤은 K-리그 때부터 지장혁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혹시 그 춤은 왜 추시는 거냐고 박선이 조심스레 묻자, 지장혁은 숨 넘어갈 듯 박장대소했다.
“왜 하긴요, 웃기잖아요.”
“춤을 따로 배우셨어요?”
“아니, 그럴 필요가 뭐 있어요. 자고로 세리모니는 팬들이 좋아하고 상대 팀이 열 받는 게 최곱니다. 거기서 잘 추면 너무 느끼할 거 아녜요.”
아무리 현지 팬들이 있다지만, 타국에서 만나는 동향 사람은 반갑기 마련이다.
한참 이야기꽃이 피던 와중, 화제는 칸 영화제로 넘어갔다.
“어때요? 다른 경쟁작들 깨부술 수 있겠어요?”
스포츠맨답게, 승부를 묻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고민하는 동생 대신 건이 답했다.
“가능성은 있을 겁니다. 희박하긴 하지만.”
“그럼 못 먹어도 가야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1퍼센트만 있으면 충분하잖아요?”
“그것보다는 높을 것도 같고요.”
“그럼요. 거기다 박건 형 첫 영화인데, 칸이고 어디고 당연히 해 볼 만 하죠.”
“예, 그런데······.”
프랑스식 닭요리를 해체하던 지장혁이 고개를 들었다. 건은 중요한 사실을 말해 주었다.
“저보다 지 선수가 한 살 많습니다. 형이라고 하셔서요.”
“아, 그 얘기였어요? 난 또 뭐라고.”
낄낄거리던 지장혁은 갑자기 진지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축구 시작할 때 배운 건데, 잘생기고 싸움 잘 하면 형이랬어요.”
축구 잘 하는 법, 스포츠 예능 고르는 팁, 격투기 수련 노하우······.
온갖 이야기가 꽉 찬, 국가대표 겸 빅리거 스타와의 점심식사는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됐다.
지장혁은 홈 경기가 끝나면 또 비행기를 타야 한다며, 아쉽게도 영화제는 못 보지만 열심히 응원하겠다고 했다.
“제가 인스타에 아주 폭격을 할게요. 이번만큼은 칸이 우리 리그라는 생각으로, 동료들 시켜서 바짝 홍보 때리겠습니다.”
“구단에서 싫어하진 않을까요?”
“에이, 설마요.”
뒷목에 걸쳤던 선글라스를 돌려쓰면서, 지장혁은 장난스레 윙크했다.
“여기서 2년을 있었는데, 프론트에서도 손 놨어요. 저 못 말린다고.”
*
다음날 오후, 생토노라 섬.
바닷속으로 노을이 지는 절벽의 레스토랑에, 두 형제가 마주앉았다.
“또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아뇨, 괜찮습니다.”
건의 능숙한 프랑스어에, 다가왔던 종업원이 미소를 지으며 돌아간다.
유럽 중에도 프랑스 식당의 서비스가 불친절하기로 악명 높다지만, 언어와 외모는 동서고금 어딜 가든 통한다.
곧 음식들이 등장했다.
먹음직스러운 생선구이와 샐러드, 맛 좋은 지중해식 요리에 수도원에서 담근 진귀한 와인.
거기에 앤초비 퓌레를 빵에 발라 구운 프로방스식 앙쇼야드(Anchoïade)까지, 테이블이 부족할 정도의 진수성찬이다.
“다 찍었어, 얼른 먹자.”
SNS용 사진을 잽싸게 찍은 박선이 한입 뜨더니,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와, 여기 와서 먹은 것 중 제일 맛있어! 형도 먹어 봐!”
건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곤 대답했다.
“많이 먹어. 이쪽 요리는 실컷 먹어 봐서.”
“응? 형 유럽여행 안 가 봤다며?”
“유튜브에서 봤어. 대리만족.”
“에이, 그게 뭐야.”
관광지의 명물들도 맛있지만, 철왕국의 왕성에서 귀족들이 먹던 성찬과는 또 느낌이 다르다.
그도 생선 살점을 한입 떼어내 씹었다.
‘그래도··· 사흘간 알차게 쉬었군.’
첫날엔 축구경기 관람을, 둘째 날엔 선수와 식사를 했다면 셋째 날엔 쇼핑과 먹부림으로 하루를 보냈다.
공공자전거를 빌려 항구 주변을 돌고, 코코비치에서 산책도 하고, 명품거리에서 선물도 몇 개씩 사고 나니 벌써 이 시간이다.
“벌써 내일이네.”
“그러게, 형은 긴장 안 돼?”
건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긴장할 게 뭐 있어. 받으면 좋은 거고, 아니어도 초청된 데 의의가 있는 거지.”
“그래도··· 혹시나 여기서 성적이 좋으면, 형 해외 진출도 훨씬 빨라질 거 아냐. 지금도 여기저기서 오퍼가 들어오곤 있지만.”
그 말대로다. 국내보다 해외, 영화든 OTT든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해야 하는 그의 특성상, 칸만큼 눈도장을 찍기 좋은 무대가 없다.
성과가 필요하다는 말을 박선 역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이 안 되면 다음이 있으니까. 네가 매번 수고가 많아.”
박선도 어딘가 감회 어린 눈빛이 되었다.
예전이야 둘이서만 보내는 시간이 많았지만, 요즘은 형제끼리 식사할 짬 내기도 어렵다.
“나야 뭐, 좋아서 하는 건데. 이제 이쪽 일도 완전 적응해서 재밌어.”
“아희 씨랑도 잘 돼 가고?”
“어··· 어어?”
퓌레를 듬뿍 찍은 빵이 떨어졌다. 박선은 물 밖으로 나온 고기처럼 입만 뻐끔거렸다.
“무슨 소리··· 아니, 그걸 형이 어떻게······.”
“지난번에 집 앞에서 봤는데. 마스크 쓰고 주차장 산책하지 않았나?”
“아아악, 잠깐 나온 거였는데!”
“괜찮아. 나도 간신히 봤으니까,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 걸렸을 거야.”
절규하는 동생을 위로하며, 건은 웃음을 참았다.
임아희, ‘포 퀸즈’의 현 리더다. 지난번 진지유 사건으로 접점이 생겨, 몇 차례 연락을 주고받다가 친해진 모양이었다.
“그게··· 아직 별 사이는 아니고, 밥만 한 번··· 아니, 두 번 같이 먹은 거야. 아희도 곧 싱글 나오고 나도 바쁘니까······.”
“벌써 말도 놓고.”
“이건 둘이 동갑이라 그런 거고!”
“그래, 잘 해 봐. 진지유 씨도 대충 눈치챈 것 같던데.”
아무리 숨기려 해도, 측근의 눈까지 피하기는 어렵다. 박선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망했네, 진 배우님이 알면 일 년 내내 놀린다고, 절대 모르게 하랬는데.”
“오, 벌써 썸녀 걱정?”
“형까지 놀리지 믈르그······.”
로맨스는 전쟁 속에서 피어나는 법이다.
박선의 접시로 음식을 덜어 주며, 건은 태양을 집어삼킨 수평선에 시선을 보냈다.
‘이제 내일이군.’
칸 국제영화제(Cannes Film Festival).
별들의 축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