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35)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35화(135/199)
칸 국제영화제 (2)
* * *
칸 국제영화제.
관심 있는 팬들, 평론가나 기자들이 아니라면 칸의 일정이 생각보다 길다는 것을 잘 모른다.
첫 번째 이유.
칸이 상만 주고 돌려보내는 시상식이 아닌,
영화인들의 축제기 때문이다.
“장, 여기! 여기 좀 봐줘요!”
“거기 대머리 아저씨! 밀지 마요!”
“당신이나 밀지 좀 마, 지금 댁 때문에 내 폐가 쪼그라들 지경이라고!”
취재 열기는 니스의 태양보다 뜨겁다.
레드카펫을 밟는 스타들에게 연방 플래시 세례가 터지고, 한 발이라도 가까이 가려는 기자들을 경호원이 막아선다.
“줄리엔, 이번 황금종려상의 향방은 어떻게 될까요?”
기자가 턱수염을 길게 기른 미남자에게 묻는다.
배우부터 각본가, 프로듀서까지 겸하는 노르웨이 출신 감독이다.
“알 수 없습니다. 우리 심사위원장님만이 아실 일이죠.”
“그럼 줄리엔 당신이 보기엔요? 눈여겨본 작품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이번 칸의 심사위원 라인업은 여러 모로 역대급이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프랑스의 배우, 심사위원장 랭보쉬보다야 이쪽이 편하다.
배우 겸 감독은 빙긋 웃었다.
“글쎄요, 아직 다 못 본지라.”
두 번째 이유.
영화제에서 공개되는, 각국의 기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심사위원진도 못 본 작품 탓이다.
칸에서는 첫날부터 이튿날, 또 그 다음날에도 초청된 작품들이 연달아 공개된다.
[‘흑의사제’ 상영일은 몇 번째?] [경쟁작 초청 둘··· 비경쟁부문엔 하나, 평론가 황형식 “오히려 좋다”] [태극마크 붙인 두 배우··· 박건이냐 이길우냐, ‘흑의사제’와 ‘노을 저편에’ 가능성은?]유수의 감독과 배우들을 불러 놓고, 첫날 모든 것이 끝나면 얼마나 허무하겠나.
그렇기에 시상식은 모든 작품이 상영된 뒤, 폐막식인 마지막 날로 정해져 있다.
여름의 태양이 한풀 서늘해질 때. 영광스러운 황금종려상의 주인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누가 탑독이야?”
“탑독이랄 게 있나. 작년에도 데일리지 평점이랑은 아예 달랐잖아?”
“가능성 높은 건 더 위크랑 오셜록 머치. 거기에 세세비(세인트 세이나 비너스) 정도? 랭보쉬 그 양반만 알겠지.”
다음 포토월 전, 막간을 틈타 기자들 사이에서 한담이 오간다.
본래 제사보다 젯밥이 궁금한 것이 인지상정.
칸에 초청된 작품들, 특히 경쟁 부문의 20여 영화 중 누가 황금종려상을 가져갈지에 전세계 영화인들의 이목이 쏠렸다.
1929년 세계 대공황을 다룬 ‘더 위크’냐,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한 블랙코미디 ‘오셜록 머치’냐.
그도 아니면 전년도 남우주연상 배우가 또다시 열연한 ‘세인트 세이나 비너스’일 것인가?
흥분된 공기 속,
‘흑의사제’ 팀도 첫날을 맞이했다.
“콩나물 시루가 따로 없네.”
취재진에 둘러싸인 레드카펫을 벗어나, 실내로 들어온 이장미가 한가롭게 평했다.
어딜 보나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즐비하지만 별로 신경도 안 쓰인다는 태도다.
물론, 여지없이 긴장한 사람도 한 명 있다.
“어··· 긴장할 필요 없어. 여기서 형이 제일 잘생겼거든? 키는 벤 에르토가 더 크긴 한데, 일단 마스크로 이겼으니까······.”
영화 스크린으로만 봤던 월드스타들 앞이다. 한국과 달리 주눅이 들었는지, 박선은 아까부터 횡설수설하는 중이었다.
보다 못한 이장미가 한마디 했다.
“본인부터 진정해요. 여기서 매니저님이 제일 초조해 보여요.”
“헉, 진짜요? 티 많이 났어요?”
“괜찮아, 선이 씨. 나도 오금이 저리니까.”
“대표님!”
손을 맞잡는 태종범 대표와 박선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이장미가 물었다.
“오빤 어때요? 워낙 도인 같은 사람이라, 별로 신경도 안 쓸 것 같긴 한데.”
“저야 뭐.”
건은 사람으로 가득 찬 홀을 쭉 둘러보았다.
“고향에 온 기분이죠.”
“에이, 프랑스는 처음이라면서.”
이장미는 농담하지 말라는 듯 웃었지만, 이쪽은 농담이 아니었다.
철왕국의 외양은 지구로 치자면 중세 유럽. 당연히 검은머리는 거의 없었고 금발이나 적발, 심지어 은발도 더러 있었다.
‘남쪽 지방, 아르니아 해협 근처로 가서야 다른 인종들을 좀 만났었지.’
“그런데, 오빠.”
이장미가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불렀다. 쌍꺼풀 없이 큰 눈에, 희미한 적대감이 어렸다.
“여기 인간들, 우리 무시하는 것 같지 않아요?”
나머지 ‘흑의사제’ 팀원들이 옆으로 왔다. 여태 말이 없던 김률 감독도 짧게 덧붙였다.
“포토월을 나오고부터 쭉 그랬습니다.”
“그치? 김 감독도 느꼈지? 이거 뭐, 시대가 어느 땐데 동양인이라고 무시를 해?”
“인종도 있겠지만··· 아마 유명세도 한몫 하겠죠. 저들 입장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방인이니까.”
김률의 말에, 이장미의 표정도 굳어졌다.
어느 정도 느끼고 있던 사실이긴 하다.
이곳, 칸에서는 모든 것이 인기로 결정된다. 크루제아트의 호텔도, 레드카펫의 입장도, 배우들을 찍는 취재진의 열기도.
태종범 대표가 돌멩이를 씹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한국보다 더한 곳이네, 빌어먹을.”
정말 그런가? 건은 약간의 흥미를 느끼며 기감을 곤두세웠다.
‘여기나 거기나. 비슷한 것 같긴 한데······.’
지켜보니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다. 꽤 오래 한 자리에 있었지만,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다.
그들을 힐끔 쳐다본 백인 여배우가 바로 돌아서서 제 친구에게 인사한다.
“샤를!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자기들끼리는 악수니 포옹이니, 비쥬(프랑스식 볼 키스)까지 친한 척을 다 하면서 이쪽은 찬밥 대하듯 비켜 지나간다.
그도 그럴 것이, ‘백정장군’으로 글로벌 팬들에게 나선 박건을 제외하면 다들 무명에 가깝다.
김률도 이장미도, 심지어 함께 초청받은 ‘노을 저편에’의 이길우마저도 해외에선 별 활동이 없는 것이다.
“이거 원, 동향 사람들끼리라도 모여야지. 서러워서 샴페인이라도 얻어먹겠나.”
“노을 저편에 팀은 바로 나가는 것 같던데요? 이 꼴 보기 싫어서 그랬··· 아.”
주위를 둘러보던 이장미가 드레스 자락을 밟고 비틀거릴 때였다. 마침 지나가던 키 큰 배우가 그녀를 부축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흑의사제’ 팀 전원이 기본적으로 영어 회화가 가능하다. 매력적으로 웃어 보인 금발 배우는 갑자기 불어로 바꿔 말했다.
“여긴 스탭들이 오는 곳이 아닌데, 길을 잃은 겁니까? 양복까지 차려 입으시고.”
일행 중, 박건과 함께 프랑스어를 알아듣는 김률의 표정이 변했다.
“응? 왜요, 이 사람 뭐라는데?”
“우리더러 나가라는군요. 스탭들이 오는 곳이 아니라면서.”
“···뭐라고요?”
최근 PC주의가 각계로 범람했다지만, 선택적 인종차별은 여전히 만연하다.
아직 커리어 없는 무명 감독과 배우들, 거기에 동양인이니 아예 공기 취급을 해 버리는 것이다.
“이 새끼들, 조명장비로 머리가 깨져 봐야······.”
“참아요. 일부러 속만 긁는 겁니다.”
칸에 와서, 처음으로 온 외부의 인사가 조리돌림이라면 흥분할 만도 하다.
거기다 시비를 건 놈은 어딜 가지도 않고 히죽대는 중이었다. 발끈하는 이장미를 김률이 제지할 때, 중후한 영국식 억양이 들려왔다.
“흑의사제(Saint in dark)?”
돌아보니 백발의 노인이 서 있었다. 구부정한 등으로 지팡이를 짚었는데, 외알안경 속 눈이 형형하게 번득였다.
건이 대답하기도 전에 김률 감독의 눈이 커졌다.
“스콧제럴드······!”
어거스트 스콧제럴드.
데뷔 이후 현대까지, 헐리우드와 뉴욕을 넘나들며 무수한 명작들을 찍어 낸 영화계의 거장이다.
이번에 본인이 찍은 영화도 경쟁부문에 초청받았다더니, 어느새 와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 오셨습니까.”
금발 배우도 정중하게 예를 갖췄지만, 스콧제럴드는 짧게 인사만 받고 건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신이 박이로군. 잘 봤어요, 이곳을 거쳐 간 한국의 명작들에 뒤지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
순간 주변이 고요해졌다. 듣지 않는 척, 자기들끼리 속닥대며 그들 쪽을 흘끗거리던 관계자들도 입을 떡 벌렸다.
그 피츠제럴드가 아시아의 배우에게 먼저 다가가 친근감을 표한 것이다. 소리 죽인 웅성거림 속에서 건이 능숙한 영어로 답했다.
“감사합니다. 이곳에 초대받기 전, 저 역시 당신의 작품을 즐겨 보았습니다.”
“이거, 고생을 시켰군요. 워낙 많아서 보다가 잠이 왔을 텐데.”
거장의 농담에 주변에서 웃음이 일었다. 인상을 구기던 이장미도 신기한 표정으로 건과 스콧제럴드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훌륭한 영화였습니다, 김. 상영되고 난 뒤가 기대될 정도로.”
“같은 스크린에 설 수 있어 영광입니다.”
한국의 영화들, 하며 묶어서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흑의사제’를 지목했다. 시선을 의식한 립서비스가 아니라는 소리다.
김률 감독과도 인사를 나눈 스콧제럴드는 다소 책망하는 눈빛을 아까의 애송이에게 보냈다.
“앤디, 그럼 나도 나가야 하나?”
“······예?”
“감독도 스탭이야. 영화는 배우들만의 장이 아닐세, 칸은 더더욱 그렇고.”
처음 시비를 걸었던 금발 배우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와 스콧제럴드가 떠나가고 나자,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반가워요, 나도 칸은 처음이에요.”
“상영은 언제죠? 작품들이 공개되고, 보고 싶은 것도 꾹 참았지 뭡니까.”
“아까 노을 저편에 팀도 왔는데, 그쪽이랑은 안 친합니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거든요.”
세계적 거장, 스콧제럴드의 몇 마디만으로 온도가 아까와는 사뭇 달라졌다.
여전히 아니꼬운 눈빛을 보내는 이들도 있지만, 많은 배우며 연출가, 감독들이 ‘흑의사제’ 팀 주변으로 와서 인사를 주고받는다.
“헤이, 머신건! 혹시 코미디엔 흥미 없어요?”
그 중, 아시아계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유쾌하게 말을 걸었다.
건은 고개를 갸웃했다.
“기관총이요?”
“이름이 총(Gun)이던데, 보자마자 딱 소름이 끼치더라니까요. 내가 큰 코만큼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아서. 당신한테 남우주연상의 향기랑,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코미디언의 냄새가······.”
“토비, 그만 좀 해! 실례라고 했지!”
“미안합니다. 이 친구가 워낙 또라이라, 잠깐 놔두면 이렇게 튀어요.”
쫓아온 동료들에게 질질 끌려가면서도, 토비라고 불린 남자는 손을 흔들었다.
“행운을 빌어요! 우리 쇼에 꼭 초대하고 싶어서 그러니까, 생각 있으면 언제든 나오라고요!”
“···뭐 하는 사람이래요?”
배우들 틈에서 빠져나와, 옆에 선 이장미가 괴상한 표정으로 물었다.
건은 어깨를 으쓱했다.
“코미디언 헤드헌터?”
그렇게 첫날이 저물었다.
‘더 위크’가 상영됐고, 다음날엔 ‘세인트 세이나 비너스’에 이어 ‘오셜록 머치’까지 칸의 스크린을 빛내며 수많은 인파를 끌었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제 나흘째.
흑의사제가 공개된 뒤, 조용한 충격이 니스의 해변을 휩쓸었다.
-오컬트와 신앙의 절묘한 미장센.
-가장 신실하지 못한 사제의, 누구보다 성스러운 희생의 미학.
칸영화제 공식 데일리지, <스크리너 데일리>에서는 ‘흑의사제’에 무려 4점대의 평점을 매겼다.
지금껏 공개된 작품들 중 ‘오셜록 머치’와 더불어 유일한 4점대의 평점.
거기에 심사위원 스피치에서 랭보쉬 심사위원장이 한, “충격적인 결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인터뷰 역시 불길에 기름을 끼얹었다.
관객들의 평과 전문가들의 반응도 엇갈렸다. 혹자는 지나치게 장르적 색채가 진한 종교 오컬트라고 비평했고, 또 다수는 지각을 자각하는 실험적이고도 놀라운 형태라며 호평했다.
덧붙여, 이번 영화제에 참석하지 않은 명장 몇몇도 SNS에 한 마디씩 보탰다.
-Magnificent! #Saint in dark
스콧제럴드 감독이 코멘트를 남겼던 팀은, 명실상부한 경쟁작의 다크호스로 부상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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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떻게 되려나?”
숙소로 쓰는 호텔. 가장 큰 박건-박선 형제의 방에 모여 있던 태종범 대표가 손을 맞비볐다.
“어떻긴요, 따든 잃든 둘 중 하나지.”
대답한 이는 ‘노을 저편에’로 그들 팀과 함께 초청받은 주연배우 이길우다.
첫날 파티장을 빠져나갔다가 돌아와, 저 콧대 높은 놈들한테 한방 먹였다며 기뻐한 뒤로는 자주 놀러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러니까, 딸지 잃을지가 궁금하다는 거죠! 이 배우님 쪽은 분위기 어떻습니까?”
“뭐··· 나쁘지 않아요. 어차피 데일리 평점 나오고 난 다음엔 희망을 놔서, 다들 마음 비우고 뭐라도 받았으면 하고 있죠.”
‘노을 저편에’는 이틀째 상영 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반응을 얻었다.
현재까지 각종 데일리지에서 유력한 후보로 뽑는 작품은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대한민국의 오컬트였다.
일정이 적힌, 공식 팜플렛을 넘기던 박선이 커다랗게 심호흡을 했다.
“이제 몇 시간 안 남았어요. 특별상이라도 좋으니까 하나만 받았으면 소원이 없겠다.”
“특별상은 무슨! 최소 그랑프리(심사위원대상), 아니어도 박 배우 남우주연······.”
이장미가 얼른 말을 막았다.
“쉿. 그런 말 하면 부정 탄대요.”
“···장미 씨, 우리 영화 찍을 때는 그런 미신 안 믿는다며?”
“그건 그때고요.”
시간이 다가올수록, 침착하던 김률마저도 눈에 띄게 긴장한 표정이 되었다.
다름 아닌 칸이다. 꼭 황금종려상이 아니더라도, 각본상이나 특별상만 탄대도 한국 영화사에 족적을 남길 수 있다.
“느낌이 좋습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비장미라곤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부정을 탄다며 일행들을 단속하던 이장미도 멍하니 문 쪽을 쳐다봤다.
첫날 본 수트와는 전혀 다른 옷.
아르마니의 디자이너들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사제복을 닮은 새까만 벨벳 수트가 배우의 몸에 착 휘감겨 있다.
“······.”
마치 일 년 전, 영화를 찍을 때로 돌아간 듯한 기시감이 일행들을 휩쓴다.
영광을 취할 준비를 마친,
한때 사제 서요한이었던 배우가 말한다.
“가시죠, 운명을 확인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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