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36)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36화(136/199)
칸 국제영화제 (3)
* * *
조명이 거대한 무대를 내리비추고, 시상을 맡은 자들이 긴 마이크 앞에 선다.
프랑스의 영화기자, <무비러너>의 장 루이는 옆의 동료에게 속닥거렸다.
“어디가 유력해 보이나?”
“황금종려상?”
“감독상이랑 작품상도. 남우주연이야 자기들 입맛대로니 제외하고.”
동료는 덥수룩한 턱을 쓸며 생각에 잠겼다.
“모르겠군. 내 감으론 ‘더 위크’인데, 의외로 ‘흑의사제’도 복병이야. 아시아 특수로 줄 수도 있지 않겠나.”
“아시아 특수? 저 랭보쉬가?”
장 루이가 헛웃음을 삼켰다.
이번 심사위원장, 랭보쉬는 괴팍한 실력주의자다.
당장 본인부터가 프랑스와 아르헨티나가 반씩 섞인 혼혈이거니와, 혈통 때문에 소위 말하는 ‘나눠먹기’를 할 인간도 아닌 것이다.
“그래야 그림이 살지. 몇 년간 아시아 쪽 작품들, 특히 한국은 씨가 말랐었으니까.”
“그것도 편견이야. 스크리너 데일리가 준 평점을 못 봤나?”
“매체 점수는 무의미해. 작년에도 결과를 직접 본 사람이 그걸 모르면 안 되지.”
칸의 공식 데일리지인 <스크리너 데일리>는 저 무시무시한 오컬트에 4점대를 주었다.
그러나 데일리지와 심사위원들의 점수가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애초 둘의 방향이 갈리는 바, 작년처럼 2점대의 작품이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가져가는 경우도 심심찮게 나온다.
“좋아, 그 오컬트가 황금종려상을 받는다는 데에 100불 걸지.”
동료가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못 받는다가 아니라?”
“무슨 소릴, 난 처음부터 흑의사제를 생각했어. 두고 보라고, 최소한 감독상은 받을 테니까.”
“100불 벌었군, 큭큭.”
이어, 수많은 부문들의 수상이 이어졌다.
독립부문의 국제영화비평가연맹수상, 다큐멘터리상, 시민상, 칸 사운드트랙 상······.
워낙 체급이 큰 영화제다 보니, 단순히 독립부문만 해도 수상자만 서른 명이 넘어간다.
그 직후 단편영화며 황금카메라, ‘주목할 만한 시선’ 등 더욱 임팩트 있는 작품들이 호명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황금카메라상, 엘리엇 우지.”
“공로상, 닉 워태커.”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 화로의 들풀들.”
차례차례로 수상들이 이어진다.
박수갈채와 환호 속에서 수상자들이 무대로 올라서고, 무수한 플래시 세례가 빛의 섬을 만든다.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이 대상까지 끝나자 비로소 경쟁부문이다.
홀 중간쯤 앉은 귀빈석. 박건 옆에 앉은 김률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예전 기억이 납니다. 그때도 이렇게 앉아 있었죠, 대종상 한복판에서요.”
비록 그때 남우주연상은 놓쳤지만, 작품상의 영광은 김률과 흑의사제 팀 전원에게 돌아갔었다.
당시를 회상하는 걸까. 박건에게서 대답이 없자 김률이 조심스레 다시 불렀다.
“박건 씨?”
“아, 감독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이제 경쟁부문 차례인데요.”
박건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마치 긴 잠에서 방금 깨어난 사람 같았다.
“저도 잠깐··· 옛 시절이 떠올라서요.”
“대종상 때 말입니까?”
다음 시상자가 앞으로 나오고, 이번 회차에 신설된 ‘80주년 특별상’이 발표되었다.
박수소리 속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말했다.
“그것보다 더 전이요.”
그 옆에서는 박선과 이장미, 태종범 대표가 순서대로 앉아 손을 부르쥐고 있었다.
“아빠, 엄마, 우리 팀한테 힘을 주세요······.”
“천지신명이시여, 아니면 프랑스 신이시여, 뭐 하나만 받아 갈 수 있게······.”
두 명은 저마다 기도에 빠졌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이장미는 한 자리 건너 박건을 응시했다.
‘···저 오빠는 이번에도 저러네.’
눈썰미가 배우보다 형사에 가까운 그녀다. 대종상영화제 때, 김률이 상을 받기 직전을 이장미는 기억하고 있었다.
무대를 주시하던 박건의 동공이 확장됐다가, 잠시 후 초점을 잃고 허공을 떠도는 것을.
흡사··· 그에게만 보이는 어떤 환상을 본 양.
‘술을 다발로 들이부어도 눈이 안 풀리는 사람이, 유독 그때만 그랬단 말이지.’
시상 직후에도 그랬다. 눈이 벌겋게 된 김률이 꽃다발을 안고 돌아올 때까지, 박건은 앉은 채 미동도 없었다.
다들 기뻐 날뛰느라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그녀는 손등이 새하얗게 될 때까지 의자 팔걸이를 움켜쥐고 있던 동료를 보았다.
‘대종상도 그랬는데, 혹시나 칸은······.’
이장미가 고심하는 동안에도 시상식은 숨 가쁘게 진행되었다.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둥지’의 스페인 출신 배우가 눈물을 쏟은 뒤였다.
“남우주연상, Gun, Park.”
이변은 남우주연상부터 일어났다.
“······.”
처음엔 정적이 흘렀다. 생소한 이름에, 대부분의 청중들이 누군지 몰랐던 탓이다.
그리고 가운데 열에서 일어난 박건이 홀의 계단을 걸어내려올 때,
비로소 열광적인 환호가 터져나왔다.
기자석에 앉아 있던 장 루이와 동료 기자들도 감탄했다.
“배우라고? 세상에, 사제가 따로 없군. 방금 스크린을 뛰쳐나왔다고 해도 믿겠어!”
“놀라긴, 100불이나 준비해 둬.”
“무슨 말씀을. 남우주연상을 받았으니 황금종려상 확률은 더 내려간 거야.”
칸의 문이 세계로 열렸다지만, 그 근간의 보수적 계파 선호는 변하지 않는다.
오컬트 영화··· 그것도 아직 세계적인 입지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한국의 배우가 남우주연상을 거머쥐기란 더욱 어렵다.
본래였다면 이 정도 반응은 아니었겠으나, 여기 있는 모든 초청객들은 흑의사제를 관람했다.
서요한과 이장미, 스스로의 지옥과 싸우는 불신자 사제를 보았기에 저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앞쪽 열, 작년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노년의 여배우가 주름진 뺨을 매만졌다.
“검은 옷의 사제··· 정말 수단을 입고 칸에 나타났군요. 내 말 기억나나요, 카렐?”
옆의 배우가 공손히 대답했다.
“예, 눈여겨볼 배우가 등장했다고 하셨죠.”
“맞아요. 마치 퍼렐 윈즈, 흘러간 메소드의 달인을 생각나게 하는 연기였어요.”
그녀의 막역한 친우, 한때 헐리우드를 쥐락펴락하던 전설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박건이 담담히 소감을 말하는 동안, 위쪽에서는 아예 난리가 벌어졌다.
“대박, 진짜 남우주연상이에요!”
“나이스! 선이 씨! 역시 대종상 때는 그 인간들 눈깔이 삔 거였다니까.”
“대표님, 목소리가 너무 크다니까요!”
“뭔 상관이야? 어차피 여긴 프랑스인데!”
흥분이 가라앉기도 전에 각본상이 발표됐다.
‘더 위크’, 그리고 감독상은 ‘오셜록 머치’.
본래 기대란 녀석이 그렇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숨죽여 기다렸지만, 심사위원상까지도 ‘더 위크’에게 돌아갔다.
압도적인 1강 2중의 레이스.
‘흑의사제’와 ‘오셜록 머치’에게 주요 상을 하나씩 주고, 각본상과 심사위원상, 황금종려상을 ‘더 위크’가 몰아 가져갈 것이 유력해진 상황이다.
이내 시상자가 마이크 앞에 섰다.
“아름다운 밤입니다. 더 시간을 끌 필요 없겠죠? 수많은 귀빈들이 기다리실 칸의 하이라이트, 황금종려상의 주인공을 발표하겠습니다.”
봉투를 벗긴 시상자는 잠시 카드를 보다가, 슬쩍 웃으며 발표했다.
“황금종려상, 흑의사제.”
이번에야말로 해일이 홀을 휩쓸었다. 정적과 환호, 갈채와 경악이 섞인 공간을, 박건을 앞세운 ‘흑의사제’ 팀이 가로지른다.
박건, 이장미, 김률, 이내 감독과 두 주연 배우가 무대에 올랐다.
경험만큼 완벽한 스승은 없다고 했던가. 대종상 시상식보다 사뭇 침착한 표정의 김률 감독이 먼저 마이크를 쥐었다.
“이 영화는 6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완성된 작품입니다.”
겉보기엔 평온해 보이나, 목소리는 조금씩 떨리고 있다. 경청 속에서 소감이 이어졌다.
“영화는 수많은 이들의 신념으로 완성됩니다. 이 자리에 못 온 스탭들, 촉박한 시간 속에서 공통의 목표를 위해 열정을 불살랐던 모두에게 황금종려의 영광을 돌립니다.”
다음 주자는 이장미. 그녀는 짧고 간결한 영어로 소감을 말했다.
“아시아의 문화에 국한되지 않아요. 한국의 영화는 그 자체로 강합니다.”
이장미의 단언이 끝나자 다시 한번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늙은 거장, 스콧제럴드도 앞쪽 열에서 흐뭇하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박건의 차례.
감독과 여주인공이 엄청난 포텐셜을 뿜었다지만, 이 영화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누가 뭐라 해도 새카만 수단의 사제였다.
자연히 앞의 두 명보다 관심이 집중된다.
“오래 걸렸습니다.”
김률이 그랬듯, 알쏭달쏭한 말로 입을 뗀 박건은 느리게 홀을 둘러보았다.
꼭 저 어딘가에 그가 찾던 숙원이 있다는 듯.
“먼 곳을 여행하며 잊었던 것을, 먼 곳에서 다시 찾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그것이 비록 작은 파편일지라도.”
부모님과 신께, 감독이나 스탭에게 감사한다 따위의 평범한 소감이 아니다.
그러나··· 맡은 배역 때문일까. 아니면 저기 저, 몸을 휘감은 긴 수트 때문일까.
일견 기도문 같은 저 소감에도, 초청객들은 홀린 듯 귀를 기울이며 빠져들었다.
마이크에서 손을 뗐던 박건은, 돌아서려다 말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한때나마 수사였던 자로서, 좋아하는 격언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드높은 하늘 아래를 걷는 자여,
빛을 경계하라.
*
귀국 전, 떠들썩한 선상 파티가 열렸다.
밤하늘 아래 유람선이 뜨고 곳곳에서 샴페인 잔이 부딪친다.
“꼭 놀러오는 겁니다? 니스 같은 뻔한 도시 말고도 프랑스는 볼 게 많아요.”
“어허, 그게 무슨 소린가? 당연히 우리가 관광을 가야지. 한국의 음식들이 그렇게 맛있다는데······.”
박건을 둘러싼 사람들 탓에, 정작 ‘흑의사제’ 일행들은 저만치 밀려나 의도치 않은 한적함을 즐기고 있었다.
어느 외신이든 타국에서 명성을 떨치는 이에게 호기심을 가진다.
명실상부한 칸의 주인공 아닌가.
남우주연상에 황금종려상까지 받은, 거기에 패션위크로 파리와 각별한 인연까지 있는 배우 주변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또 덩치며 키는 얼마나 큰지, 둘러싼 사람 때문에 형이 보이질 않을 지경이다. 박선은 까치발을 들다 포기하고 포도주스를 홀짝였다.
‘그래도 형이 피곤해 보이진 않아서 다행인데······.’
덕분에 둘만 있을 시간은 없다시피 해, 그 수상소감이 무슨 의미였는지도 물어보지 못했다.
‘뭐, 비행기 탈 때까지만 참아야지.’
박선이 아쉬움을 삼킬 때, 눈매가 날카로운 중년 남성 한 명이 막 건과 악수하는 중이었다.
“반가워요, 레이먼이오.”
벌써 오늘 밤의 얼굴인식은 포화에 가깝다.
배우들, 감독들, 프로듀서와 작가들. 로만의 다른 연예인도 기억하기 어려운 판에, 저 모두를 기억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손님을 홀대할 수는 없는 노릇.
건은 맞잡은 손을 짧게 흔들다 놓았다.
“박건입니다.”
“축하해요. 숨 쉬는 것도 잊고 봤소. 몸을 아주 잘 쓰시더군.”
“몸이라면······.”
사내는 허공에 몇 번 손을 움직였다.
“말 그대로 액션. 어떻게 돼먹은 근육인지, 얼굴뿐 아니라 발끝까지 완벽하게 조율돼 있던데. 보다가 경탄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바다 건너, 타국의 관계자가 그의 다른 작품을 보았을 리는 없다.
거기에 흑의사제를 찍을 당시, 그는 서요한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일부러 어설픈 동작도 액션 중간중간 섞었다.
그 영화 속 몇 컷만으로 저 정도를 유추할 수 있다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액션을 수도 없이 찍었거나··· 아니면 그 자신이 몸을 쓸 줄 아는 배우거나.
“배우입니까?”
사내는 대수롭지 않게 끄덕였다.
“배우도 하고, 각본도 쓰고···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다음 작품에서, 내가 좀 큰 건을 하나 하려고 하거든요.”
“대형 블록버스터?”
“맞아요. 그러려면 현지 로케이션, 장소 섭외가 엄청나게 중요해지고. 이 영화를 찍은 감독, 김도 그런 것 같던데.”
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CG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영상미가 있죠.”
“그렇지. 거기에 그 냄새, 공기, 피부를 파고들며 카메라를 흐리는 습기! 이런 것들이 날 끊임없이 새로운 곳으로 인도합니다.”
혼자 한참을 떠들던 사내가 돌연 그를 쳐다봤다.
“아무튼, 다음 작품이 없다면 같이 합시다. 괜찮은 배우를 물색하러 온 거라.”
“영화제에서 말입니까?”
“그럼요. 상을 받은 인간들이야 몸값은 좀 높아지겠지만, 좋은 작품은 놓치지 않고 채 갈 거란 확신이 있거든. 그걸 모른다면 연기는 잘 해도 안목이 처참한 거고.”
일견 오만한 말이나, 표정에서 확고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아마도 도움이 될 것이다. 칸에서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고, 또 한 차례 계단을 올라서야 하는 귀환자에게.
‘···그 환청이, 다시 들렸었지.’
다섯은 없다. 빛을 경계하라.
아무리 기억이 탈락되었다 한들, 이 정도면 눈치를 못 채는 것이 이상하다.
저 환청들은 어느 한 곳··· 바로 드높은 천상을 겨누고 있다.
“시나리오를 보내 주십시오. 귀국하는 대로, 최대한 빨리 검토하겠습니다.”
이런 반응일 줄은 몰랐는지, 사내의 날카로운 눈매가 조금 커졌다.
건은 니스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쪽도 갈 길이 멀어서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