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38)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38화(138/199)
세계의 무대로 (1)
* * *
<골 때리는 녀석들>
KBC의 대표 예능이다.
각종 배우와 아이돌, 은퇴한 인기 스포츠 스타들을 전부 모아 찍는 축구 예능.
1기가 전국적 흥행을 불러일으키며 성황리에 끝난 뒤, 제작진은 2기 멤버를 고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즈음, 머리를 싸맨 PD들에게 천군만마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아이고, 박 배우님!”
“안녕하십니까, PD님.”
사전미팅을 위해 잡은 룸. 김남혁 PD가 희희낙락하며 배우를 반겼다.
처음, 박건에게서 연락이 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골녀석’ 제작진 전부가 귀를 의심했다.
물론 지난번 진지유의 ‘휴먼캠프’ 출연을 계기로 KBC와 로만의 관계는 부쩍 개선되었다.
직접 부탁했던 박건이 신세 한 번을 진 셈이지만, 다른 배우도 아닌 칸의 주인공 아닌가.
함부로 섭외할 수도 없는 판에, 귀하신 분께서 직접 연락해 출연 의사를 표명하니 감지덕지할 따름이다.
“정말 놀랐습니다. 박 배우님이 축구를 그렇게 좋아하실 줄은 몰랐거든요. 칸에 가서도 니스 경기를 보실 정도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초대할 걸 그랬습니다.”
“맞아요. 형이 워낙 스포츠광이라··· 보는 건 다 좋아하는데, 전역하고 나서는 아직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을 거예요. 축구 예능도 지 선수랑 친해지고 관심이 생긴 거라서요.”
박선 팀장이라고 했던가. ‘휴먼캠프’ 때 안면을 터 둔, 친동생 매니저가 형의 눈치를 보며 말을 받았다.
황금종려상 주역이 뛰시겠다는데 실력이 대수랴. 앉아 있던 다른 PD가 냉큼 쌍수를 들었다.
“오히려 좋습니다! 저희 프로그램 취지도 딱 그렇거든요. 안 그래, 김 PD?”
“그렇죠. 오히려 너무 잘하셔도 곤란합니다. 시즌 1 때 고등학교까지 선출이던 김화욱 씨가 나와서 다들 걱정했거든요.”
따라온 조연출까지 서둘러 동의하며, 미팅은 훈훈하게 흘러갔다.
제작진을 두 번째로 놀라게 한 것은 박건이 말한 ‘특별출연’ 후보의 이름이었다.
“지··· 지장혁 선수가요? 저희 프로그램에 나와 주신다고 했습니까?”
“예. 녹화 들어갈 때쯤엔 시즌 휴식기라고, 잠깐 한국에 들어오겠다고 합니다. 저랑 같이 나오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요.”
PD들은 또다시 입을 떡 벌렸다. 유유상종이라는 말답게, 이번에는 국대 에이스를 데려온단다.
이만하면 1+1이 아니라 5+5에 가깝다. 혹시나 마음이 바뀔세라, 김남혁 PD는 서둘러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자, 그럼 내친김에 간단한 오디션도 찍어 볼까요? 준비는 다 돼 있으니, 배우님 시간만 괜찮으시다면······.”
사전미팅 직후 러프한 오디션, ‘골녀석’의 컨셉 중 하나다. 신체능력과 기본적인 볼 다루는 능력을 체크하는데, 이 역시 날것의 오디션 영상처럼 편집해 인기가 많았다.
박건은 흔쾌히 끄덕였다.
“이대로 하겠습니다.”
“···예? 구두에 수트신데요?”
“괜찮습니다, 어젯밤에 연습해 와서요.”
그리고 30분 후,
제작진은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
“···어? 이번 회가 마지막이라고?”
‘골 때리는 녀석들’ 방영 당일.
오랜만에 동창들이 모였다.
접선지는 박건의 집. 배영호와 서승아가 각자 마실 걸 챙겨 오고, 배달음식도 잔뜩 시켜 본방사수 준비를 마쳤다.
친구들이 앉자마자 오늘의 주인공은 폭탄선언부터 꺼내 놓았다.
기껏 출연한 축구 예능에, 한두 편만 출연하고 분량이 사라질 것이라는.
“아니, 프로그램이 없어지는 건 아니고. 내가 나오는 회차가 마지막이야. 편집까지 감안하면 다음 주까지도 가겠네.”
건의 말에, 두 친구는 서로를 마주 봤다. 서승아가 답답해 죽겠다는 듯 캐물었다.
“아니, 대체 왜? PD랑 싸우기라도 했어?”
“보면 알아. 안 좋게 끝나진 않았어.”
배영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와, 이걸 이렇게 스포하네. 배우라고 예능 스포일러 막 뿌려도 되는 거냐?”
“뭐래, 누가 보면 영화 스포라는 줄.”
“그것보다 더 심하지! 박건 저거, 못 본 새 아주 연예인 다 됐어. 기껏 친구들 불러다가 자기 하차한다고 김이나 빼고 말이야.”
투덜대는 배영호의 옆구리를 서승아가 찔렀다.
“야, 야, 시작한다.”
세 사람은 먹고 마시며 TV에 집중했다.
‘골 때리는 녀석들’은 기본적으로 연예인 팀 대 동호회 팀의 대결구도 포맷이다.
은퇴한 인기 축구선수 오정한이 감독을 맡아, 여러 연예인들과 스포츠 스타들을 훈련시켜 하나의 팀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
지난 시즌엔 제법 팀 구색이 잘 맞아서, 동호회의 강팀들을 상대로 2~3승을 거두는 등 선전했다는 내용이 먼저 나왔다.
-감독님, 그래서 이번 시즌 목표는 뭡니까?
-뭐긴 뭐겠어요. AK리그 우승이지.
감독 오정한과 PD가 말하는 씬이 지나가고, 이어 출연자들의 오디션이 나온다.
-안녕하십니까! 개그맨 성종구입니다. 원하는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워너비 선수는 아시아의 호랑이 지장혁입니다!
박력 넘치게 포부를 밝히는 개그맨부터,
-배우 서일중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서울 DN에서 뛰었던 야구선수 조훈입니다. 단련된 주력으로 팀에 보탬이 돼 보이겠습니다.
제법 유명한 배우와 은퇴한 야구선수까지. 닭날개를 꼼꼼하게 뜯던 배영호가 중얼거렸다.
“조훈이 KBO만큼만 하면 여기서도 에이스일 텐데, 쟤가 축구도 잘했던가?”
“몸 불은 걸 봐. 저렇게 관리가 안 돼서 잘하겠니? 어차피 박건 뜬 이상 다 조연이야.”
“야, 모르는 일이지. 지금까지 쟤가 축구하는 거 본 적 있어?”
친구들의 시선이 돌아왔다. 건은 담담하게 사실관계를 밝혔다.
“중학교 때 두 번, 고등학교 때 세 번.”
“···큰일 났네, 진짜 못 하던 거였어.”
서승아가 이마를 감쌌을 때, 화면이 바뀌며 박건이 나타났다.
-이대로 하겠습니다.
-예? 구두에 수트신데요?
-괜찮습니다. 어젯밤에 연습해 와서요.
일견 무신경해 보이는 질답 후, 이어진 테스트에서부터 경악이 시작됐다.
신체능력이 좋은 것은 모두가 다 안다. 그러나 정장에 구두까지 신고, 제작진이 던져 주는 공을 완벽하게 키핑하고 트래핑하는 장면에선 스탭들의 감탄이 쏟아졌다.
배영호가 멍하니 코를 긁었다.
“그럼 그렇지, 또 속았네.”
그 후, ‘골녀석’ 2기 멤버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껏 올라가던 분위기는 특별 코치로 지장혁이 등장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니스에서 뛰고 있는 지장혁입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여러분들께 축구선수로서 뛸 수 있는 기본기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직후 진행된 훈련.
오디션을 본 사람이라면 예상했겠지만, 그때부터는 박건의 독무대였다.
100미터 스프린터를 무시무시한 주력으로 주파하고, 몇 명이 달라붙어도 탱크처럼 밀고 들어가 미니게임에서 골을 넣는다.
그전까지 에이스로 기대받던 연예인 FC 멤버들은 물론, 코치로 온 지장혁마저도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만 흘렸다.
-아니, 분명히 저 형 경력이 없댔는데······.
확실히, 발끝의 섬세함이나 슛의 각도에서는 아마추어 티가 조금씩 난다.
하지만 압도적인 무력이 있다면 아마추어 선에서 실력이란 무의미한 법.
순식간에 측면 수비를 붕괴시키는 속도와, 기본에 충실한 트래핑. 그리고 부딪치면 상대가 날아가는 몸싸움까지.
쾅!
대포알 슈팅이 그물을 가르고, 반응조차 못한 골키퍼가 멍하니 고개를 돌린다.
-이제 감이 좀 오네요. 감사합니다.
미니게임이 끝난 뒤, 지장혁에게 인사하는 박건의 모습과 다음 주 예고가 교차됐다.
‘골때쏜(@녀석) FC’와 ‘엔젤스 FC’의 대결 포스터를 보며, 건은 피자를 한 쪽 더 잘랐다.
“한 주 더 나오나 보네. 다행이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야, 배영호. 네가 뭐라고 좀 해 봐.”
“어··· 이건 나도 할 말이 없는데. 설마 저래서 잘린 거야? 너무 잘해서?”
비슷하긴 했다. 저 엔젤스 어쩌고와 경기할 때 전반에만 9골을 넣었으니까.
최종 게임 스코어는 16:3. 동호회 수준에선 막을 도리가 없는 실력이다. 그렇다고 K-리그 3군이나 대학 팀을 붙이자니 프로그램 취지와 어긋난다.
결국 그날 경기가 끝난 뒤, 김남혁 PD는 죽상이 된 채 박건에게 다가와 말했다.
“잘해서는 모르겠고, 졸업이라던데. 더 이상 우리 팀에서 배울 게 없다고.”
“푸흡, 잘해서 쫓겨난 거 맞잖아.”
서승아가 기어이 폭소를 터뜨리고, 배영호는 부지런히 인터넷 반응을 검색했다.
“박건 폼 미쳤다··· 이거야말로 특수부대의 전투축구다··· 저건 이레귤러 아니냐··· 뭐, 사람들 생각하는 거 다 똑같네.”
“괜찮아. 그래도 지 선수랑 약속은 지켰으니까, 회사 사람들도 좋아했고.”
서승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서, 이제 다른 프로그램으로 갈 거야?”
“글쎄, 어머니가 가족노래자랑 욕심을 내긴 하시던데.”
“음, 그것도 나쁘지 않지. 스타라면 점심마당이랑 가족노래자랑 아니겠냐.”
다음 화는 각자 보고 감상을 남기기로 했다. 잡담을 나누던 도중, 서승아가 물었다.
“맞아. 그 사람은? 칸에서 기억에 남았다는 감독 있잖아, 눈빛이 엄청 강렬했다던.”
“그래, 이름이 레이··· 뭐 어쩌고였다며, 초대작 하나 같이 해 보자고 들이대던 인간.”
지금껏 배운 점이라면, 찾아올 인연은 어떻게든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건은 들여다보던 스마트폰 화면을 껐다.
“연락하겠지, 볼일이 있으면.”
*
인천국제공항.
입국 수속을 마치고 쏟아져나오는 사람들 속, 키 큰 중년 백인이 선글라스를 올렸다.
“오, 여기가 한국인가?”
시꺼먼 보잉 선글라스 뒤에 가린 눈매를 본다면, 누구도 실내에서 웬 선글라스냐며 시비를 걸지 못할 것이다.
그를 따라 한국까지 날아온, 여행 내내 뒤척이던 에이전트가 불만스레 중얼거렸다.
“난 아직도 모르겠어, 레이먼. 우리까지 꼭 와야 하는 건가? 몸 잘 쓰는 배우들은 넘쳐나는데, 그냥 킬 쏜 시리즈 주연을 쓰면······.”
말하던 에이전트는 찔끔했다. 휙 돌아선 레이먼이 눈을 희번덕거린 것이다.
“우스운 소리 마. 그럼 내 작품이 아니라 그냥 킬 쏜 5탄일 뿐이야.”
“농담이야, 농담이라고! 그렇게 보지 마, 진짜 무섭단 말일세.”
인상을 쓴 레이먼이 걷기 시작하자 에이전트가 종종걸음으로 따라붙었다.
“그래, 뉴페이스가 필요한 건 알겠어. 그 친구 연기는 칸에서 확인했고. 확실히··· 자네가 구상하는 그림에 딱 맞아떨어지긴 하겠더군.”
“거기다 군인 출신이라고 했어. 전역한 지 삼 년도 안 된.”
“군인? 정말인가?”
에이전트의 바늘구멍 같은 눈이 번득인다. 올 때야 저 똥고집에 반쯤 끌려왔지만, 젊은 사제가 칸에서 펼칠 연기를 본 그가 아니던가.
제작사 겸 투자사, 잭&리버의 에이전트로서 동료 감독이 찍은 배우에게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고집불통이, 여기까지 와서 제 시나리오를 주려고 할 정도면······.’
그윈 레이먼.
유럽 쪽에서는 이미 알아주는 초신성이다.
평생을 영화와 관계없이 살아오던 배관공 출신.
예술영화로 데뷔해, 헐리우드식 상업영화와 휴머니티를 기막히게 조합한다는 평을 들으며 스멀스멀 입지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에이전트는 알고 있다. 이 감독의 진짜 괴물 같은 점은, 액션영화에서 발휘되는 미친 연출과 시퀀스 구성이라고.
기질적인 완벽주의 탓에, 아직 본인의 시리즈물을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았지만······.
“아, 맞아.”
앞서가던 레이먼이 갑자기 돌아섰다.
“그 친구 회사가 어디라고 했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일단 오라면서 자고 있는 사람을 납치했으면서.”
“그래도 알아 뒀어야지. 그렇게 방만하다간 금방 잘릴 거야.”
“무슨 악담을 숨 쉬듯이······.”
공항 입구는 오가는 사람들, 타고 내리는 택시들로 붐볐다. 치를 떨던 에이전트가 가장 중요한 사실을 지적했다.
“그런데 자네, 거절당하면 어쩌려고? 지금이 몸값이 가장 높을 때일 텐데. 우리뿐 아니라 온갖 하이에나들이 돈다발로 작품을 싸 들고 찾아오는 중일 거야.”
레이먼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한국엔 이런 속담이 있더군. 라이브 스트리밍을 들으면서 배웠어.”
“무슨 속담?”
“목마른 놈이 물을 뿌린다.”
에이전트는 눈을 깜빡였다.
“···그게 뭔 소리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