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39)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39화(139/199)
세계의 무대로 (2)
* * *
여름의 날씨는 인간에게 실망했다.
자그마치 34도.
아스팔트가 지글거리는 여름이다. 지글거리는 무더위를 피해, 한 무리의 남녀가 로만 엔터테인먼트 사옥 근처의 카페로 들어갔다.
“와, 대한민국도 이젠 찜통이네. 베트남에 온 것 같아.”
몇 초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날씨.
에어컨 잘 나오는 회사 미팅룸을 두고, 여기까지 온 이유는 모 여배우 탓이다.
“진짜 덥다, 그죠?”
캡모자를 돌려쓰며, 진지유는 땀에 젖어 들러붙는 티셔츠 가슴께를 팔락거렸다.
“이 오빠는 거의 죽어가네. 괜찮아?”
“야, 네가 회사에서만 미팅하면 냉방병 걸린다고 끌고 나왔잖아!”
유준일 실장이 손수건으로 이마를 훔치며 숨을 헉헉댔다. 공기형 팀장과 박선도 말은 안 했지만 비슷한 표정이었다.
“그나저나, 칸 남우주연상 받으면 더위도 안 타는 거예요? 구 배우가 한서불침(寒暑不侵)이랄 때는 농담인 줄 알았는데······.”
공 팀장이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 여름날 개처럼 헥헥대는 와중, 유일하게 멀쩡한 한 명은 역시나 박건이다.
박건은 눈을 조금 깜빡거리다가 설명했다.
“겨울에 태어나서 그런가 봅니다.”
“어··· 그래요? 보통 반대 아닌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한서불침이 뭐죠?”
커피를 주문하고 온 박선이 냉큼 끼어들었다.
“형, 내가 요즘 웹소설을 엄청 봤거든? 추위랑 더위가 못 들어온다는 뜻이래, 구 배우님이 쓰는 무협 용어야!”
오랜만에 옛 멤버들, 이름하야 ‘원조 박건 사단’이 카페 상층에 둘러앉았다.
로만 소속 아티스트들이나 방송 관계자들이 워낙 많이 와서, 카페 사장이나 손님도 반쯤 사옥 앞마당처럼 여긴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박건이 옆자리의 진지유에게 물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그럼요. 하니 언니가 태그 건 것도 봤어요, 디엠으로 가만 안 두겠다던데요.”
“고를 때부터 그럴 것 같았습니다. 선물을 바꾸래도 말을 안 들으니 그러죠.”
진지유는 장난스레 입술을 내밀었다.
“괜찮아요. 자기도 내심 좋아했을걸요.”
“···그 개구리를요?”
백하니의 생일파티 날, 사옥까지 행차한 진지유가 준 선물은 커다란 인형이었다고 했다.
최근 유행을 타고 있는 못난이 개구리랬던가, 풀어보고 나니 묘하게 닮아서 백하니가 비명을 질렀다는 후문이 있었다.
진지유는 짐짓 위엄 있게 끄덕였다.
“네. 귀걸이 한 세트도 같이 넣었으니까, 우리 페페 버릴 일은 없을 거예요.”
“어, 진짜? 그 안에 다른 게 있었어?”
“당연하지. 그래도 상도덕은 지킨다고.”
못 잡아먹어 으르렁거리던 사람들이, 괴상한 선물이나마 주고받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감탄한 표정의 유준일 실장이 말했다.
“그나저나··· 살아생전 진지유랑 백하니가 맞팔하는 꼴을 볼 줄이야. 박건 씨가 혁명적 대통합을 이뤄낸 거예요.”
“동감. 홍보실 전설이 하나 더 생겼다니까요, 10년 역사 진백전이 이렇게 휴전이라면서.”
킥킥대며 맞장구를 치던 공기형 팀장이 문득 두 형제를 돌아보았다.
“아, 시나리오들은 어때요? 추려서 보냈다던데, 쓸 만한 것들 좀 있나?”
형 쪽은 빵을 자르느라 바빴다. 커피로 목을 축인 박선이 형 대신 손가락을 꼽기 시작했다.
“흑의사제 때문인가, 칸 이후엔 오컬트가 엄청 많이 들어왔고··· 최원후 감독님 충무공 블록버스터, 액션 몇 작품이랑 KBC 하반기 한중합작 드라마 정도가 괜찮았어요.”
“KBC가 아주 신이 났네. 우리 쪽 배우들에 오퍼도 많이 넣더라고요, 휴먼캠프랑 골녀석으로 박건 씨가 워낙 대박을 쳐 놔서.”
진지유와 백하니, 노중만 대표까지 출동했던 ‘휴먼캠프’도 장안의 화제였으나, 얼마 전 4화가 방송된 ‘골 때리는 녀석들’과는 비할 바가 안 된다.
[박건, 골녀석 사상 최초 ‘조기졸업’··· 동호회 생태 해치는 이레귤러] [‘골녀석’ 제작진 측, 박건은 우리 리그에 품을 수 없는 그릇··· 아쉽게 생각해] [프랑스로 돌아간 지장혁 SNS··· “박건 형이 축구를 했으면 주전경쟁 했을 것”]첫 화에서 선보였던 미친 개인기와 신체능력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다음 회차, 제작진이 일부러 붙였던 대학 1동아리를 무참히 박살내며 축구식 콜드게임을 내 버리자 기사들은 불타올랐다.
오죽하면 2회만 찍고 하차했다는데도 그럴 만했다. 프로그램 존폐 위기였다는 반응이 커뮤니티 대부분을 이룰 정도였다.
유준일 실장이 입맛을 쩝 다셨다.
“너무 자비가 없었던 거 아닙니까? 좀 봐 가면서 했으면 오래 해먹었을 텐데.”
“다섯 골째 넣고, PD님이 와서 말씀하시던데요. 이렇게 된 거 그냥 초토화시키고 멋지게 퇴장하자고.”
“크, 그럼 또 인정이죠. 감 있는 양반이네.”
진지유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 골녀석 때문에 스포츠 작품들도 많이 들어오겠다. 농구나 복싱 영화는 어때요?”
“안 돼요, 진짜 큰일 나. 한국에서 그런 거 하면 실화 기반이고 뭐고 싹 망해요.”
공 팀장이 학을 떼자 유 실장도 끄덕거렸다.
“그래, 지유야. 홍길환 선수 스토리로 냈던 영화 관객이 3만 들었어. 30만도 아니고 3만.”
“피, 그거랑 이거랑 같나.”
“그런 문제가 아니라······.”
“뭣하면 나랑 같이 나가면 되지. 박건 진지유 라인업이면 로코를 찍어도 300만은 나올걸?”
안 그래요, 오빠? 하는 진지유에게, 박건은 무자비한 통계를 들이밀었다.
“제가 찍었던 작품 중 회색도시 팀장님, 로맨틱 코미디의 시청률이 가장 낮았습니다.”
“그럼 어때요. 제가 권은비 씨랑 다른데.”
시청률로 불붙은 토론은 최근 인기 장르로 흘러갔다가, 결국 별 성과 없이 끝을 맺었다.
공 팀장이 일어나면서 말했다.
“본부장님하고도 얘기한 거지만, 핸더슨 시리즈나 킬러 월··· 킬 쏜 넘버링에 나오면 장난 아닐 것 같긴 해요. 실제 특수부대원이 킬러나 액션물에 출연하는 거니까.”
“에이, 팀장님. 그 시리즈들은 스핀오프까지 끝났잖아요. 다 백인이어서 동양인이 끼기도 어렵고.”
“그러니까 새로운 걸 찾아야죠. 박 배우가 주역으로 전 세계에 각인될 수 있는.”
“맞아요. 그게 로코 아닐까요?”
진지유가 손을 들었으나 모두가 무시했다. 일어서던 박건만 남은 쿠키 하나를 내밀었다.
“하나 드시죠. 날이 덥습니다.”
*
회사로 돌아왔을 때, 분위기가 묘했다.
연습생들이 트레이닝을 받는 연습실 앞에, 아이돌 쪽 트레이너들과 A&R 직원들까지 내려와 있었던 것이다.
소속 배우들을 매일같이 보는 엔터 사람들인데, 무슨 일이 있기에 모여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뭐지? 문체부 장관이라도 행차했나?”
고개를 갸웃대던 공기형 팀장이 직원 한 명에게 물었다.
“왜 다들 모여 있어요?”
“이상한 외국인이 왔어요!”
“······예?”
직원은 문 닫힌 연습실 안쪽을 고갯짓했다.
“저기요. 불쑥 나타나서는, 데뷔조 애들 춤을 컨설팅해 준다고 저러고 있어요.”
“외국인?”
거기까지 듣자 어떤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공 팀장과 유 실장이 서로를 마주 볼 때, 건은 이미 연습실 문을 열고 있었다.
“아니지, 거기선 이 앵글을 신경쓰면서! 사람 시선이랑 카메라 화각은 다르단 말이야!”
안에서는 기막힌 광경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올 연말 데뷔를 앞둔 남돌 그룹 ‘에잇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안무를 시연하고, 그 앞에 선글라스를 낀 백인이 조교처럼 명령을 내린다.
더 웃긴 건 데뷔조의 반응이다. 영어를 잘하는 아이돌 한 명이 열성적으로 외쳤다.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야, 최시영! 이러다 우리 죽어!”
“뭔 소리야, 지금 저 특별 선생님이 꿀팁만 쏙쏙 전수해 주시잖아. 대표님 기대 망칠 거야?”
자기들끼리 뭔가를 꿍얼대더니, 다 죽어가는 얼굴이던 나머지 멤버들도 자세를 잡는다.
“빌어먹을 인간······.”
저 뒤쪽, 멍한 얼굴의 트레이너 옆에 있던 또 다른 백인이 한숨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힘찬 구령이 다시 올랐다.
“자, 다시 가 보자고. 하나, 둘,······.”
“레이먼.”
자길 부르는 소릴 듣고서야 선글라스의 동작이 멎었다.
건은 니스에서 봤던 얼굴을 향해 한 손을 내밀었다.
“다시 보는군요. 오랜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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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는 말이 있다.
딱 이 만남이 그러하지 않을까. 니스의 유람선에서 시작된 만남이 한국에서 맺어졌다.
“···그냥 계속 회사에 있었으면 편했잖아.”
“쉿, 중요한 얘기 하신다잖아.”
돌고 돌아 로만 사옥, 9층 미팅룸인 것까지도 그야말로 순리다.
유 실장과 진지유를 흥미롭게 응시하던 그윈 레이먼이 손깍지를 꼈다.
“동료들이오?”
옆의 에이전트가 통역하려는 듯 몸을 틀었지만, 건은 괜찮다는 손짓을 했다.
“같은 회사의 식구들입니다. 이쪽은 동료 배우, 여긴 동생이고요.”
박선과는 안면이 있지만 초면인 이들이 제법 많다. 인사가 한 순배 돌아간 뒤, 건이 물었다.
“아래에선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바다를 건너온 영화감독은 뻔뻔하게 받아넘겼다.
“찾는 사람이 나갔다고, 잠깐 기다리라더군. 구경하다가 조언을 좀 줬을 뿐이오. 안무 실력은 좋은데 카메라 쓰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아서.”
그 조언이 헛소리가 아니었다는 것은, 지켜보던 트레이너와 직접 가르침을 체득한 데뷔조 멤버들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최시영이라던 리더는 바지까지 잡을 기세로 그들을 따라오며 외쳤다.
‘나중에 꼭 들러 주십시오! 감독님과 함께라면 빌보드까지 뚫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건이 고개를 저을 때, 슬그머니 웃은 레이먼이 테이블을 툭 쳤다.
“그거야 잠깐의 여흥거리였고, 여기 온 목적은 칸의 사제를 만나기 위해서지. 오죽하면 저 친구도 데려왔겠소.”
“···회심의 역작을 썼는데, 그걸 스크린에 옮겨 줄 배우를 찾았다더군요. 무슨 하이재킹처럼 납치돼서 한국까지 날아왔습니다.”
“미리 연락을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깜짝 파티라더군요. 난 이해할 수 없지만.”
여전히 뚱한 표정이던 에이전트가 말했다.
보아하니 아직 동료의 안목을 믿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진지유가 미국식 악센트가 강한 영어로 물었다.
“어떤 작품에 박건 배우를 스카웃하시려는 생각이셨죠? 우린 받아 본 시나리오가 없어요.”
“당연히 액션이지. 저 킬 쏜 시리즈보다 두 배는 현실적이고 화끈한.”
최근 시리즈 4탄을 개봉한, 전설적인 액션영화의 이름이 언급되었다.
킬 쏜 시리즈.
은퇴한 전직 킬러가 딸을 살해한 갱단을 쳐부수는 이야기로, 점점 스케일이 커져 최근에는 초거대 마약 조직과도 싸운다고 했다.
유준일 실장이 미간을 좁혔다.
“다른 것도 아니고 킬 쏜··· 거기 들어간 자본들, 무기전문가들의 디렉팅만 얼마나 되는 줄 알고 하는 소립니까? 시나리오도 아직 보지 않고, 당신의 경력이야 확실하다지만······.”
“영화는 돈이 다가 아니지. 전문가야 괜찮은 작자들 두셋을 부르면 거기서 거기고.”
말을 끊은 레이먼은 선글라스를 슬쩍 내렸다.
새파란 눈동자가 미팅룸 안의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얼릴 듯이 훑었다.
“액션에 대한 감은 타고나는 거요. 내가 배관공을 하던 시절, 맨해튼 뒷골목의 더러운 상수도를 오르내릴 때 느꼈지. 이 세계의 히어로영화 대부분은 구닥다리 쓰레기라고.”
박선이 그 둘의 연관성을 묻고 싶다는 표정으로 입을 우물거렸지만, 오만한 목소리는 계속됐다.
“뭐, 무슨무슨 맨 같은 건 취향이 아니니 찍을 생각도 없었지. 그보단 더욱 실전에 가까운··· 그러면서도 서사적 층위를 놓치지 않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소.”
“킬 쏜과 다른 점은?”
좋은 질문이라는 듯, 그윈 레이먼은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눈짓했다.
에이전트가 브리프케이스를 열고 꺼낸 서류가 곧 앉은 사람들 앞으로 돌아갔다.
“킬 쏜의 주인공은 은퇴한 킬러, 내 주인공은 전직 특수요원이오.”
나름의 정성을 보이려 했는지, 대본에는 번역된 한글도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첫 장을 넘기려던 건은 표지의 제목을 보고 잠시 손을 멈췄다.
레이먼이 말했다.
“전우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살인이 불러온 PTSD에 시달리는···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옛 영웅이지.”
이전 세계의 이름이, 바다를 건너온 시나리오 위에서 되살아난다.
[고드: 분노의 파수꾼] [Gord: Sentinel of Wrath]* * *
(gord : 고대 슬라브어로 정착지를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