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40)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40화(140/199)
세계의 무대로 (3)
* * *
최근 액션의 탑이라 함은,
누가 뭐래도 ‘킬 쏜’ 시리즈다.
총과 복싱, 거기에 주짓수와 레슬링까지 섞은 인간병기 컨셉의 킬러.
이 무심한 킬러가 세월의 풍파에 찌든 표정으로 전부 죽이고 다니는 것이 ‘킬 쏜’의 아이덴티티이자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관건은 역시나 흥행 여부.
초저예산으로 제작된 1편은 북미 시장에서만 수십 배가 넘는 돈을 벌어들였고, 2편과 3편이 연타석으로 터졌다.
‘스파이 시리즈’, ‘미션 시리즈’를 거친 액션의 계보가 ‘킬 쏜’으로 넘어온 것이다.
물론, 최근 나온 액션영화라고 다 히트를 친 것은 아니다.
OTT 붐에 편승해, 몇몇 감독들이 각종 비디오게임 연출을 접목시킨 자체제작 영화를 개봉했으나 반응은 싸늘했다.
[‘데빌’ 현란한 카메라워킹 뒤, 정작 실속은?] [짜임새 없는 액션, 정신없는 눈속임에 관객들은 피로하기만··· 차라리 ‘스파이’ 1편이 낫다] [‘워머신 Z’··· 북미시장 흥행 대참패, ‘킬 쏜’의 아성은 3부 능선조차 못 넘었다]그런 면에서 볼 때, ‘킬 쏜’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한때 꽃미남으로 인기 많았던 배우와 헐리우드에서 잔뼈가 굵은 감독, 지금까지와는 궤가 다른 총격전 및 실전 액션의 고증이 들어갔으니까.
“근데 뭐, 못 잡을 정도는 아니고.”
그윈 레이먼이 느긋하게 말했지만, 미팅룸 안에는 적막이 흘렀다.
지나치게 높은 감독의 목표에 기가 차서가 아니다. 방금 전 시나리오를 다 읽고, 저마다의 충격에 빠진 탓이다.
진지유가 맨 먼저 침묵을 깼다.
“···여기 있는 것들, 다 찍을 수 있는 게 맞나요? 액션 난이도들이 너무 높은데?”
레이먼은 눈도 깜빡 안 하고 대꾸했다.
“훈련된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 정도 준비도 안 하고 들어갈 순 없지.”
저렇게 나오니 반박할 것이 없다. 할 말을 잃은 진지유 대신 유준일 실장이 신중하게 말했다.
“액션뿐만이 아닙니다. 촬영 스케일이··· 이만하면 거의 세계일주급이에요. 명소도 있는데, 허가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 박물관이랑 개선문.”
레이먼은 씩 웃었다. 집필을 시작한 지 십수 년이라더니, 질문을 받아도 곤란한 기색이 없다.
“거긴 은근 잘 나와서. 경력 없는 뜨내기면 모를까, 칸의 주역이 난리 좀 치겠다는데 야박하게 굴진 않을 거요.”
“그러니까 확실하지 않은 게······.”
“뭐, 안 되면 다른 곳으로 가도 되고. 개선문의 화려함보다 드골 광장 구석에서 치고받는 육탄전이 더 짜릿할 수도 있는 법이지.”
“일리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때껏 대본만 읽고 있던 박건이 참전했다. 속도가 그들 중 가장 빨라, 아까 끝까지 읽고는 두세 번은 더 훑는 기색이었다.
“난이도도··· 이만하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정도고요. 몇 단계 더 고난이도의 스턴트로 채워져도 큰 상관은 없습니다.”
“브라보, 역시 파리의 수사로군!”
“레이먼, 좀 조용히······.”
환호성을 옆의 에이전트가 막든 말든, 레이먼은 히죽거리며 물었다.
“그래서, 본인의 감상은? 마음에 안 든다면 이 자리에서 치워도 되는데.”
박건은 망설임 없이 즉답했다.
“하겠습니다. 고드 역할로, 카메라 테스트나 다른 오디션이 필요하다면······.”
“난 당신의 연기를 전부 봤어. 내 눈이 멀지 않았으니 그딴 건 생략하자고.”
삽시간에 계약이 결정되었다. 유준일 실장은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공기형 팀장과 진지유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형의 취향을 익히 아는 박선도 끄덕였다.
‘역시, 오디션도 필요 없을 줄 알았어.’
형은 용사와 영웅의 서사를 유독 좋아했다.
‘고드: 분노의 파수꾼’은 초반부터 그 문법에 정확히 일치한다.
우선은 배경.
‘킬 쏜’의 주인공처럼, ‘고드’의 주인공도 어두운 과거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출신의 전설적인 특수부대 요원이지만, 군에 발을 들인 이유는 놀랍게도 어린 시절의 납치 사건 때문이었다.
디트로이트의 후미진 빈민가. 이민자 가정의 가장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던 고드는, 어느 날 갱단에게 납치된다.
그 과정에서 부모를 포함한 수많은 동네 사람들이 죽고, 불과 몇 년 뒤 두목과 일당들을 모조리 살해하며 복수를 마친다.
이후 특수부대에 투신하여 온갖 파견과 임무, 내전을 거치다가 모종의 사건으로 비공식 전역.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PTSD에 시달리는 고드의 시선에서 영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대본을 밀어 놓은 박건이 말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여기서 나오는 고드가 주인공의 이름입니까?”
레이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이름이 없소. 예전, 자신을 납치한 갱단을 도살할 때 모든 것을 버렸지. 고드는 스스로가 붙인 식별코드요.”
진지유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다른 뜻이 있는 건가요?”
“군에 입대하기 전, 세상을 전부 잃은 인간이 무엇을 하고 싶을지 생각해봤어요. 작고 아늑한 자신의 마을을 지키고 싶었겠지. 그래서 고드로 지었소. 작중 설정상, 주인공의 모계에 슬라브계 핏줄이 섞여 있기도 했고.”
“제 영어 이름이 고드입니다.”
박건이 불쑥 말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레이먼이 희한하다는 듯 되물었다.
“고드? 마을(gord)?”
“아뇨, 박(gourd).”
박건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는 [GOURDGUN]이었으나, 그 뜻까지는 아무도 몰랐다.
어쩐지 신이 난 듯한 진지유만 유 실장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맞죠? 제가 박일 거라고 했었잖아요.”
“그래, 그래. 어련하겠냐.”
공기형 홍보팀장이 화제를 전환했다.
“팀은 어떻게 꾸릴 생각입니까? 박건 배우 이외에는 전부 헐리우드 쪽 사람들로?”
“굳이 그럴 필요 없어요. 어차피 작품에 들어가면 미국, 프랑스, 스페인··· 또 어디선가 쓸 만한 자들이 날아오니까. 같이 움직이고 싶은 팀이 있다면 추천은 얼마든지 받겠소.”
‘데려와라’가 아니라 ‘추천하라’고 했다. 배우의 의사는 존중하지만, 실력 없는 이들과는 팀을 구성하지 않겠다는 완곡한 표현이다.
유준일 팀장이 턱을 매만졌다.
“허, 이게 참 애매하단 말이죠. 우리나라에서 액션에 박건 씨만큼 진심인 사람이 몇 없어서··· 무술감독 몇몇이 떠오르긴 하는데, 그 양반들이 딱히 나을 것 같지도 않고.”
애당초 ‘고드: 분노의 파수꾼’도 킬 쏜과 비슷한 부류의 영화다.
매력적이고 임팩트 있는 조연들, 특수부대 시절의 옛 동료들도 나오지만 결국 작품을 끌고 가는 구심점은 주인공의 무력.
영화의 알파와 오메가가 ‘고드’인 만큼, 그의 액션을 가장 잘 받쳐 줄 무대를 구축해야 한다.
골똘히 생각하던 진지유가 말했다.
“저도 감독님들께 연락 돌려 볼게요. 건이 오빠 신작이라고 하면 연결은 어렵지 않을 거예요.”
“스턴트도 스턴트인데, 훈련이 걱정입니다. 병기전문가나 군사전문가도 초빙을 해야······.”
유 실장의 염려를 레이먼이 받았다.
“그런 인력들은 이쪽에도 많아요. 훈련할 장소도 마련되어 있고. 아까 보니 딱히 감을 찾을 필요도 없을 것 같지만.”
박건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맨몸이나 나이프 액션은 트레이닝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특수화기를 제외한 소총, 권총류도 대부분은 다룰 수 있고요.”
“충분해. 이제부턴 캐스팅 전쟁이오.”
듣고 있던 에이전트가 눈썹을 찌푸렸다.
“이봐, 어차피 주인공의 원 맨 액션이라며? 화려한 캐스팅이 필요할까?”
“러닝타임이 168분이야. 하나라도 구멍이 나면 영화 꼴이 통째로 우스워져.”
동의의 끄덕거림이 퍼져나갔다. 선글라스를 셔츠 앞섶에 걸어 둔 레이먼은 천천히 말했다.
“아버지가 아부다비 내전에서 한쪽 팔이 잘려 돌아왔을 때부터, 이 영화는 내 목표였소. 나는 이미 인생을 걸었어.”
드르륵, 의자 밀려나는 소리에 좌중의 이목이 집중됐다.
진지유는 생긋 웃으며 전화하는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먼저 연락 좀 돌릴게요. 배우 캐스팅은 아무리 서둘러도 늦더라고요.”
*
충무로에, 기이한 소문이 돌았다.
웬 외국인 에이전트가 몸을 잘 쓰는 배우나 스턴트맨을 구한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야, 됐다고 해. 아직도 동양인 카메오가 맛있어 보이나 본데, 절대 안 가지.”
“이번엔 주연이라는데?”
“주연은 무슨, 복면 씌워 놓고 엿 같은 배역으로 굴리다가 죽일 거면서.”
사실이 그렇다.
헐리우드의 역사 속, 적어도 ‘액션영화’ 속 동양인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없었다.
주연이라고 해 봐야 닌자 차림으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거나, 백의를 입은 도사풍으로 나와 칼 맞고 죽기가 십상이다.
반응은 감독의 이름이 나오고서야 조금씩 우호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윈 레이먼··· 뭐야, 이 양반이었어?”
며칠 전, 스턴트맨 구인구직 소식을 듣자마자 치를 떨던 무술감독이 중얼거렸다.
옆의 동료가 물었다.
“왜, 아는 이름이야?”
“저쪽 씬에서는 꽤 유명해. 상도 몇 개 받았고··· 아니, 근데 이 사람은 액션영화 전문이 아닐 텐데?”
“그야 모르지. 에이전트랑 같이 다니면서 몸 잘 쓰는 사람을 구한다더라고. 팀이면 더 좋댔어.”
한국에서 액션 하면 떠오르는 배우는 이제 한 명뿐이다. 무술감독은 다리를 꼬며 히죽 웃었다.
“왜, 그렇게 잘난 놈 찾으면 박건한테 오퍼부터 넣어 보라지. 자기들도 칸 남우주연상은 엄두가 안 나나?”
“어, 그러고 보니······.”
“···갑자기 왜. 진짜 박건이라도 캐스팅했대?”
돌연 동료가 말을 흐리자, 무술감독의 눈도 살짝 커졌다.
잘 알지도 못하는 감독만 있는 것과 자그마치 칸의 주인공이 함께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거기다 자국의 배우··· 다른 사람도 아닌 박건이 아닌가. 첫 영화로 600만을 뚫고 칸을 휩쓸었으니 다음 작품은 고점을 예상할 수가 없다.
“아니, 김양호가 같이 있었다는 소릴 들은 것 같아서. 그 괴짜 선배 있잖아, 감독 얼굴에 일당 던지고 작품을 때려쳤다던.”
김양호. 스턴트계의 전설로 불리는 기인(奇人)이자 괴인(怪人)이다.
몇 년 전 큰 부상을 당해 은퇴한 뒤론 현장에 발길을 끊은 인물이기도 했다.
“난 또 뭐라고. 신경 꺼, 진짜 박건이 합류한 게 아니면 시급도 안 나오니까.”
“한번 물어라도 보지 그래? 은퇴 전엔 김 선배랑 친했다며.”
배우 대신 몸을 축내고, 박봉에 자존심이 축나는 것이 스턴트맨들의 일과다.
텁텁한 얘기밖에 없는데 굳이 무엇 하러 연락을 돌리겠는가.
무술감독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좋게 끝나지도 않은 사람을 뭐하러. 잘 되면 나중에 소주라도 사겠지.”
그들은 두 가지를 몰랐다.
그 박건이 김양호와 이미 접촉했음을.
그리고, 비슷한 오퍼가 각국의 전문가들에게 은밀하게 들어가고 있음을.
팀 고드, 결성까지 초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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