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41)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41화(141/199)
세계의 무대로 (4)
* *
경기도 외곽.
연습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트레이닝 시설에서, 두 남자가 마주앉아 깡소주를 깐다.
한 명은 머리에 새치가 희끗희끗한 사십 대··· 다른 한 명은 그나마 젊지만, 두 사람 다 낯빛이 좋지 않다.
“빌어먹을 놈들, 결국은 안 한다는 거잖수.”
안주는 바싹 말린 노가리. 한쪽을 북 찢어 질겅질겅 씹던 남자가 분노한다.
마주앉아 있던 나이 많은 쪽, 새치투성이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한 김양호가 씁쓸히 대꾸한다.
“그놈들 패악질이 한두 번이냐? 스턴트맨을 무슨 부품처럼 아는 것들이야.”
“형님한테까지 연락한 건 선을 넘었지! 이복동 그 양반이 무슨 낯으로 또 일을 하자고 해, 거기다 이번엔 아예 전문 대역이라면서?”
은퇴한 스턴트맨, 김양호는 대답 대신 자작으로 따른 소주를 들이킨다.
대낮부터 노가리나 까야 하는 신세 때문일까. 목구멍을 넘는 알코올 향이 오늘따라 쓰다.
“사람이 없긴 한 모양이야. 그 꼴로 끝내 놓고 또 감아오려는 걸 보면.”
이야기는 수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은퇴 전, 김양호는 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턴트맨이자 걸어다니는 액션 뱅크였다.
본인이 몸을 잘 쓰는 것은 물론, 다방면의 무술에 대한 탁월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액션 컨설팅은 업계에서 유명했다.
오죽하면 ‘한국 액션영화는 김양호 없으면 꽃놀이패’라는 말까지 돌았겠는가.
“절대 안 돼요. 안 그래도 관절이고 뼈고 다 아작났는데, 전면에 세워서 위험한 건 다 빼먹을 거 아니우?”
“아마 그렇겠지. 주연이 정연필이라니까, 나랑 나이나 체형도 맞고.”
“지랄들을··· 됐어, 그놈들한테 자문 줄 바에 우리 애들이나 가르쳐 주쇼.”
한 잔, 두 잔 술이 들어가자 벌써 몇 병이 비었다. 불콰하게 취한 후배가 물었다.
“다른 데선 연락 안 와요? 어디냐, 전에 헐리웃 놈들한테도 러브콜 오고 했었잖아요.”
“이젠 안 와. 다 망한 놈을 찾겠냐, 대박 친 영화가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아, 그놈의 킬 쏜.”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내가 버린 로또로 이웃이 당첨되면 화병이 난다. 후배는 빈 물컵에 소주를 콸콸 따랐다.
“거기 스턴트팀 회사, 아주 돈방석에 앉았다면서요. 형님이 잘 됐으면 지금 거기 있고도 남았을 텐데.”
“우리만 하던 것도 아닌데 뭘.”
“겸손이야, 겸손. 우리가 아무리 늦어도 한국에서는 최고였을 거라니까! 말이 나와서 얘기지, 그 건짓수란 것도 형님이 하려던 거 아뇨!”
과거, 헐리우드는 타격 액션 일변도였다. 감독들이 앵글로 담기엔 지루한 실전보다는 박진감 넘치는 싸움을 선호했던 탓이다.
화려하게 합을 맞추며 핸드헬드(Hand-Held) 기법으로 적당히 흔들어 주면 관객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액션 씬이 나오니까.
그러는 와중, 김양호를 필두로 한 ‘팀 범선’은 조금 다른 부분에 집착했다.
단순함 속 화려함, 더욱 실전적인 액션으로 영화 속 무술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것에.
그러나··· 쉽지 않았다.
‘어··· 이건 좀 어렵겠는데? 김 팀장 실력은 익히 알지만 관객들이 좀······.’
‘뭐예요. 이걸 어떻게 해? 난 영화를 찍으러 왔지, 인생 갈아넣어서 훈련하러 온 거 아냐. 무술영화 만들 거면 나가서 하쇼.’
‘죄송하지만 팀장님, 양 배우님이 그 씬은 도저히 못 하겠다고 하셔서······.’
더 높은 수준을 만들려면 당연히 그만큼 노력해야 한다. 배우도 감독도 김양호의 아이디어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첫째는 밋밋하게 보이는 결과물 때문에, 둘째는 본인들에게 오는 부담 때문에.
‘그리고, 이젠 시대가 변했지.’
과장된 홍콩영화의 액션이 시간 속에 묻혔듯, 관객들은 더욱 새로운 것을 원한다.
탄창 숫자까지 계산하는 총격전에, 주짓수를 결합한 ‘킬 쏜’의 액션이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간 것도 그 탓이 아니던가?
김양호는 소주를 따랐다.
“기술이 있어도 빛을 못 보면 쓸모없어. 재능 있는 배우들을 모으는 것도 재능이야.”
사실이 그렇다. 파지법부터 총격전 고증까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맞지 않아 유튜브로 조롱당하던 것이 한국의 영화다.
저 ‘킬 쏜’의 제작진처럼 자본까지 갖춘 디테일 변태들이라면 모를까. 은퇴한 스턴트팀 헤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다.
“아아, 계십니까.”
그때, 센터 문이 열리며 인기척이 났다. 이내 몇 명의 남자들이 들어왔다.
“아이고, 김 선생님 맞으시지요? 이렇게 뵙다니 타이밍이 좋았습니다.”
계시냐고 물어본 주제에, 당당하게 문부터 밀고 들어온 정장 사내가 너스레를 떨었다.
“혹시 누구······.”
“아, 로만 엔터테인먼트의 유준일 실장입니다. 며칠 전에도 문자를 남겼는데··· 답이 없으셔서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김양호는 후배를 마주보고 눈을 깜빡거렸다. 휴대폰에 쌓인 문자, 확인 안 한 메시지만 수백 통이 넘었다.
“한국에서는 멤버들을 이렇게 한 명씩 찾아가야 하나? 효율이 영 안 나는군.”
뒤이어 들어온 백인이 영어로 투덜거렸지만 거기 쓸 신경이 없었다.
마지막 사람을 본 김양호의 눈이 커졌다.
“···박건 배우?”
“처음 뵙겠습니다, 김양호 팀장님.”
아무리 은퇴했다지만, 근 몇 년간 역사를 새로 쓰는 배우를 모를 수는 없다.
매니저와 함께 들어온 박건은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현도균 무술감독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시대를 앞서나간 스턴트계의 전설이시라고.”
“어··· 난 모르는 소린데. 그놈이 뭐, 작품 찍다가 머리라도 다쳤답니까?”
김양호가 너털웃음을 터뜨렸지만, 눈앞의 칸 수상자는 웃지 않았다.
···진심으로 한 소린가? 슬슬 당황하기 시작한 스턴트맨에게, 실로 오랜만에 듣는 말이 들려왔다.
“함께 해 보고 싶은 작품이 있습니다.”
*
“선이 씨, 오늘이랬죠?”
운전대를 잡은 유준일 실장이 물었다.
그래도 선배라고, 본인이 운전하겠다고 하다가 옆자리로 쫓겨난 박선이 대답했다.
“예. 레이먼 감독님이 오늘쯤 다 모일 거라고 했습니다. 안 온 사람들은 현지에서 조달하거나 작품 시작하면 기어올 거라고요.”
“허, 참. 그 양반 말본새도 거침이 없어서.”
유 실장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윈 레이먼 감독이 입국하여, 로만 사옥에 방문한 지 2주가 흘렀다.
그 동안 보인 행보는 생각 외로 조용했다.
무슨 은퇴한 스턴트맨··· 그것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양반을 스카웃하더니, 그 이후부터는 한국인 스탭엔 관심을 뚝 끊었다.
“본인 사단이 있진 않댔는데, 그때 김 팀장님 말고는 누굴 더 안 불렀죠?”
“네, 제가 알기로는요.”
“역시 해외파라 그런가. 한국으로 일단 죄다 소환하려는 모양이네.”
“그런 것 같아요. 저도 해외 감독 작품에 형이 들어가는 건 처음이라서······.”
감독의 행보가 그들이 알던 것과 다소 다른 것은 사실이다. 국내 제작사나 투자사 쪽으로는 아예 미팅조차 잡지 않는다.
‘어차피 냄새가 나면 다 오게 돼 있다’는 한 마디만 남긴 채, 박건과 김양호를 데리고 온종일 대여한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있다.
“선이 씨한테는 박 배우가 다른 얘기 안 했어요? 대본을 새로 쓰는 중이라거나, 뭐 이런 거?”
고개를 갸웃거리던 박선이 말했다.
“요즘 형이 집을 잘 안 들어와서··· 아, 첫날에 전화로 물건을 좀 구해달라곤 했어요.”
“물건이요? 무슨 물건?”
“BB탄이 나가는 에어건이요. 종류별로 다 부탁한대서 바로 가져갔죠.”
이번에는 유 실장의 미간이 좁아졌다.
“···진짜로 트레이닝이라도 하고 있나?”
*
서울 중심부,
단기대여한 다목적 스튜디오.
전술본부처럼 꾸며진 그곳으로, 각양각색의 국적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여, 레이먼.”
“오랜만이군, 힉스.”
“나는 안 보이나? 십 년도 더 됐다고 얼굴도 잊어버렸나 본데.”
“무슨 소리야, 잭? 더 벗겨진 자네 정수리가 안쓰러워서 모른 척한 거야.”
“고마워, 엿이나 먹으라고.”
머리가 다 벗겨진 중년 사내가 악담 같은 인사를 나누고는 껄껄 웃는다.
백인, 흑인, 히스패닉계··· 척 봐도 다양한 인종들을 맞이하는 사람은 그윈 레이먼, 이 영화의 총괄 감독이다.
물론 언어의 벽을 뛰어넘는 주연 배우도 빼놓을 수는 없다.
“반갑습니다. 박건입니다.”
“건? 기관총?”
“그냥 고드라고 부르시죠.”
어떻게 사람 이름이 총이냐는 듯, 미심쩍은 표정을 짓던 거구의 흑인이 손가락을 튕겼다.
“고드라면··· 레이먼 저 친구가 보낸 대본 이름 아닌가? 주인공 이름도 고드고.”
“맞아, 여행은 어땠나?”
박건의 옆에서, 오는 사람들을 소개해 주던 레이먼이 자연스럽게 말을 받았다.
흑인은 툴툴대는 당나귀 같은 소리를 냈다.
“이코노미는 작고 좁아. 워싱턴에서 한국까지는 더럽게 멀고. 드럼통 안에서 고문당하는 기분이었지.”
“와 줘서 고맙군. 자네도 이 친구를 알게 되면 고생을 후회하지 않을 거야.”
“아, 칸의 주인공?”
박건을 흥미롭게 보던 흑인은 기대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잠시 후, 로만 쪽 관계자들도 도착해 모인 이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렇게 많이 모일 줄은 몰랐던 듯, 박선은 사람들의 면면에 놀란 표정이었다.
“감독님, 전부 아는 분들이에요?”
레이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러면 여기까지 못 불렀지. 나랑 한 번 이상씩은 일한 스탭들이오.”
“그럼 대본도······.”
“전부 돌리고, 여기 딱 맞는 주연을 구했으니 오라고 했소. 같이 안 하게 되더라도 비행기 값은 주겠다니까 헐레벌떡들 오더군.”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하더니, 레이먼은 손등으로 탁자를 몇 번 두드렸다.
“자, 주목.”
안면 있는 이들끼리, 두서넛씩 무리를 지어 이야기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우선 이 먼 곳까지 와 줘서 고맙네. 역시 내 옛 형제들다워.”
“누가 당신 형제야? 우린 그냥 일하러 온 거라고.”
누군가 짓궂게 말하자, 스튜디오 안에 웃음소리가 번져나갔다.
레이먼은 뭐 어떻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좋은 지적이야. 그럼 바로 일 얘기부터 해도 되겠군, 어쨌든 대본은 다 봤을 테니.”
사람들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조명, 촬영, 무술, 촬영··· 인종도 나이도 다르지만, 이들 모두가 각 분야의 프로들이다.
애초에 이곳까지 달려온 것부터가 감독에 대한 신뢰··· 또는 대본의 흥미를 의미한다.
히스패닉계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촬영은 언제부터 시작입니까?”
레이먼은 즉답했다.
“대충 모였으니, 아마 이번 달 안으로? 한국에서 찍을 씬들은 다 빼고 갈 예정이오.”
“전체 일정은?”
“2년 아래, 가능하다면 1년도. 명소들만 헌팅하는 게 아니라면 충분히 할 만 해, 여기 사람들은 전부 다 프로 아닌가?”
“칭찬하지 마쇼, 또 더럽게 힘든 일 시키려는 거 다 아니까.”
아까 박건과 인사했던, 새미라는 흑인이 걸쭉한 영어로 말하자 다시 웃음이 퍼졌다.
이번에는 체구가 작은 빨강머리 백인이 물었다.
“트레이닝 기간이 필요할 텐데요. 우리 칸의 주인공도 준비된 상태입니까?”
레이먼은 묘한 표정으로 옆의 배우를 보았다. 이미 약속돼 있던 것처럼, 박건은 길쭉한 스포츠백에서 장비들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
침묵 속에서, 모형 병기들이 테이블에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에어건은 물론, 페인트탄이나 고무탄을 발포할 수 있는 훈련용 권총과 라이플과 샷건까지 딸려나오자 묘한 기대감이 장내에 흘렀다.
백문이불여일견.
백 번의 설명보다 한 번의 시연이 확실한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다.
빙긋 웃은 레이먼이 턱짓했다.
“직접 보고 판단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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