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43)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43화(143/199)
세계의 무대로 (6)
* * *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첫째는 말하다 마는 것이고, 둘째는 말해야 할 타이밍에 아무 말도 없는 것이다.
이번 박건의 신작··· 아니, 신작일지 아닌지 알 수도 없는 작품의 행보는 그 두 개에 모두 해당했다.
[박건, 감독과 접촉··· 다음 행보는 독립영화?] [그윈 레이먼, 비공식 입국··· 알고 보니 칸에도 초대? 이미 안면 있던 사이] [선댄스의 주인공, 카를로비 바리의 신 스틸러, 유럽 영화계의 스타과 칸의 주인공이 만날 이유는?]이름 없는 무명이라면 모를까. 알 만한 감독이 서울을 돌아다니며 떠들썩하게 파티를 벌이는데 제보가 안 올 리 없다.
독특한 점이라면 박건을 포함해 한국의 배우가 없었다는 점인데, 대부분 사람들은 이를 노이즈마케팅으로 생각했다.
이 역시 신비감을 올리는 전략이고, 궁금증이 충분히 커지면 공개할 것이라고.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정말로, 어떤 대응도 없다.
독립영화에 혜성같이 나타난 감독이, 비밀리에 입국해 그 해 칸의 남우주연상 수상자를 만났는데도 별다른 성과가 없다?
물론 가능하다. 각자의 팬심만 채우고 헤어질 수도 있으나, 그렇다기엔 수상할 정도로 조용한 최근 행보가 문제다.
지나가다 홍보실에 들린 A&R 팀장은 박건의 소식을 물었다가 모른다는 대답만 들었다.
“아니, 거기 직원들은 리틀 공 팀장이야. 내가 볼 땐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거라니까?”
“팀장님, 좀 진정하세요. 누가 우리 팀장님 이렇게 만든 거야?”
“나도 궁금해! 나도 여기 직원이라고!”
팬카페에 올라온 글의 제목만 봐도 보안이 얼마나 철저히 유지되었는지 짐작 가능했다.
[혹시 이번 신작 어떻게 됐나요?]진짜 모르겠다, 관계자들도 모른다고 한다, 모른 척 같은데 같이 모른 척을 해줘야 하느냐······.
어쩐지 슬픈 본문 밑으로, 비슷한 내용의 댓글이 주루룩 달리며 한탄의 장이 열리기도 했다.
그러기를 벌써 몇 주째.
소속사 오피셜은 물론이고, 배우 SNS에도 업로드는 없다.
박건의 고독방에서는 기다림에 지친 팬들이 서로의 고통을 열렬히 나눴다.
[거니거누쑹] : 뭐죠? 진짜 울배우님 출연 루머인 건가요···? [박혁건세] : 로만 관계자들이랑 같이 있는 거 봤다던데. 좀만 더 기다려보죠. [로만is신전] : 원래오피셜일케 늦게띄우는데가 아닌데 ㅜ 불안불안쓰로만의 수장, 노중만이 속칭 ‘어그로’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불사했다지만 그도 옛이야기다.
이제 소속사 삼대장을 뽑으면 DG, 조이너스, 그 바로 뒤에 로만이 올 정도다.
어엿한 중견을 넘어, 업계 최고점을 노리면서 대표 배우를 꽁꽁 숨길 회사가 어디 있겠나.
답답함과 궁금함으로 팬들이 말라 가던 중, 뜬금없는 타이밍에 현장 직찍 사진이 떴다.
제목 : 집오다가 영화촬영봄
내용 : 아니 우리동네에서 뭐 이런걸다찍냐 ㅋㅋㅋㅋ 카메라 개많았고 스탭들도 꽤 있었음 ㅇㅇ 배우는 박건? 같은데 ㄹㅇ 소음기끼운 총소리남
함께 올린 사진에는 박건으로 보이는 남자와 외국인 스탭들, 그리고 어둑한 그림자들이 몇 명 더 찍혀 있었다.
당연히 댓글창은 불타올랐다.
-진짜 뭘 찍긴 찍는구나 ㄷㄷㄷㄷ
└딱 봐도 액션 ㅋㅋㅋㅋ 드가자ㅏㅏㅏㅏ
-왜 비공개야? 왜 비공개야? 왜 비공개야?
-아니 근뎈ㅋㅋㅋ 좀 잘 보이게 찍지 진짜 대충 갈겼넼ㅋㅋㅋ
-이정도면 행인인척하는 마케터 아님?
└중마이햄 전적 고려하면 그럴수있다 ㅇㅇ
음영을 지우고 밝기를 최대로 높인 사진이 올라왔지만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다.
머리를 스포츠형으로 깎은 박건과 그윈 레이먼 감독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속보)박건 데뷔 초로 회귀
-특보)존잘은 해병돌격형 머리로 잘라도 존잘
-진짜속보)이번 영화 66월드가 투자한 특수부대물이라고 함
-설마 킬쏜 잡냐···.?
└비빌걸비벼라
범람하는 추측 속에서, 해외파가 합류한 ‘박건 사단’ 7기가 출국했다.
*
싱가포르 공화국.
GDP 세계 20위. 국토 면적은 740km2. 수도가 곧 나라인 도시국가이자 대표 관광지는 해변에 조성된 마리나 베이.
영화를 찍는 입장에서, 저런 정보들은 단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요는 단 하나,
원하는 장소에 당국의 허가가 나오느냐. 즉 현지의 공무원들이 촬영에 협조적인지의 여부다.
“빌어먹을 비행기, 자리 한번 더럽게 좁군.”
맑고 상쾌한 아침.
공항을 나온 ‘고드’ 팀이 싱가포르의 땅을 밟았다. 우르르 이동하는 스탭들 중, 거대한 어깨를 연신 풀던 새미가 말했다.
“난 괜찮았는데.”
“이봐, 너랑 나랑은 사이즈가 다르잖아. 앞으로 움직일 일도 많은데, 전용기라도 한 대 장만하지 그래?”
캐리어를 끌고 걷던 박건이 되받았다.
“낭비야. 차라리 다 함께 비즈니스를 타는 게 낫지.”
“오, 역시 사제님이야. 쓸데없는 낭비는 죄악이라는 건가.”
혼자 끄덕이는 새미를 밀어내고, 선글라스를 목에 건 레이먼이 박건 옆으로 다가왔다.
“컨디션은? 견딜 만한가?”
비행기 안에서, 멀미에 약한 스탭 하나가 토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박건은 옆의 매니저를 돌아보곤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문제없습니다.”
“좋아, 우리는 주인공이 가장 튼튼해서 안심이군. 잔병치레로 일정이 딜레이 될까 걱정했는데.”
어느 영화에서나 주연 배우는 작품의 시작과 끝이다. 귀하신 몸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레이먼의 표정에도 안도가 스친다.
“준비되는 대로 들어가셔도 됩니다. 시차에 영향을 잘 안 받는 편이라.”
“듣던 중 다행이오. 체류기간이 길어지면 또 필리핀에서 당한 꼴이 날지 모르거든. 당국 놈들 변덕이 오죽 심해야지.”
괜한 제작비도 나갔고. 입맛을 쩝 다신 레이먼이 중얼거렸다.
어느 나라든, 관광명소나 특정 지역 로케이션 허가를 받긴 생각보다 쉽다.
유명한 감독··· 또는 인기 많은 배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당국 입장에서도 가장 효과 좋은 홍보임을 알고 있으니, 최대한 제작진 입장에 맞춰 로케이션을 내준다.
‘그, 촬영 시작이 다음 날부터랬나? 우리 쪽에 문제가 생겼는데······.’
단, 이전 촬영지인 필리핀의 바세코에서 작은 잡음이 일었다.
허가도 다 나온 상태에서, 구역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돌연 말을 바꿔 촬영을 제한한 것이다.
“그래도 잘 나왔으니 된 거지, 뭘 그리 꿍얼거리고 있나? 원래 독립영화보다 상업영화가 더 찍기 엿 같은 거야.”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한 촬영감독, 오래전부터 레이먼과 합을 맞췄다던 조 에르몽이 히죽거리며 끼어들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벌써 세 번째 로케다.
한국에서 찍었고, 필리핀에서 찍었다.
마체테(정글도)와 사시미를 들고 덤비는 현지 마약상과의 전투는 뻔한 클리셰지만, 섭외한 빈민가의 현장감이 장면을 살렸다.
거기에, 동남아시아 특유의 무더운 습도를 화면으로 옮긴 듯한 무술팀의 액션까지 합쳐지자 기막힌 그림이 나왔다.
김양호와 함께 스턴트팀 헤드로 섭외된, 총기전문가 퍼시는 현지에서 합류하자마자 입을 떡 벌렸다.
‘해석력이 엄청납니다. 현지 연기자들도 놀라더군요. 테이크를 길게 잡든 짧게 잡든 그 자체로 완벽해서, 편집하지 않고 넣어도 될 정도입니다.’
제작진이 배우에게 놀라는 만큼, 배우 쪽도 나름의 신세계를 겪고 있었다.
우선 인원부터가 엄청나다.
첫 영화··· 흑의사제 때는 스탭이 다 합쳐서 오십 명도 되지 않았다.
사실상 독립영화 버금가는 인력으로, 감독 겸 편집기사인 김률과 나머지 이들을 갈아넣은 결과물이었다.
여기서는 다르다.
모든 업무가 완벽하게 분담되어 있는 것은 물론,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촬영이고 뭐고 싹 접고 휴식에 들어간다.
메가폰을 잡으면 극성맞은 완벽주의자로 변하는 레이먼 역시 마찬가지다.
‘이만 끝냅시다, 고생들 했소.’
이전까지 조연들의 동선 하나, 표정 하나하나에 디렉션을 주던 감독도 다른 사람처럼 방만해진다.
헤드 스탭들끼리 잠깐 쑥덕대더니, 그날 분의 콘티와 대본을 가지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나중에 호텔 객실로 가보니 산더미처럼 펼친 종이뭉치 속에서 룸서비스 디너를 먹고 있었다.
‘무슨 일이오? 룸서비스는 그쪽 방도 될 텐데?’
‘···아닙니다.’
처음에는 조금 생소했으나, 스탭들 입장에선 이만큼 편한 것도 없다.
살인적인 한국식 일정에 익숙한 김양호와 팀원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연신 촬영장을 배회했다.
‘이게 끝이라고? 아닐 텐데?’
‘저거 봐, 장비 빼잖아. 내일 아침까지 진짜 촬영 없는 것 같은데?’
‘야, 야, 원래 이쪽 동네 사람들은 할 일만 하고 끝내. 헐리웃이라곤 구경도 못 해본 촌놈들이 뭘 알기나 해야······’
‘얼씨구? 형님도 마지막 작품이 십 년 전이면서 무슨!’
그렇게 필리핀 촬영을 마치고 싱가포르로 온 첫날. 배우와 스탭들이 휴식을 취할 때 레이먼은 당국 관계자들과 미팅을 가졌다.
-됐어. 여긴 전보다 말이 통하는데? 장소랑 시간대만 미리 고지하고, 자기들 쪽에서 원하는 앵글만 따 주면 마음대로 찍으라는군. 단순한 시티뷰라 홍보에 목말랐나 봐.
걸려온 전화에 호텔 방에서 듣고 있던 스탭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지의 협조도 떨어졌겠다, 귀중한 시간을 흘려보낼 여유가 없다.
이튿날부터 도시의 제 1관광지. 마리나 베이의 초호화 호텔에서 촬영이 시작됐다.
*
싱가포르, 호텔 옥상.
사실상 두 번째 메인 촬영지다. 한국에서는 서울 외곽의 후미진 골목에서 찍었고, 필리핀은 야시장 옆 빈민가에서 대부분의 로케이션을 소화했다.
<고드: 분노의 파수꾼>의 첫 장면은 필리핀 빈민가에서 시작된다.
특수부대를 전역하고 폐인과도 같은 삶을 살던 고드.
더러운 골목 앞에 웅크리고 있는 그에게, 바짝 말라 눈만 반짝거리는 남매가 오렌지를 건넨다.
―······
머리를 짧게 깎은 사내, 고드로 완벽하게 변한 박건이 눈을 든다.
저주받은 짐승 같은 눈동자가 시커멓게 번득이지만, 아이들은 그저 까르륵대며 흙투성이 오렌지를 건넬 뿐이다.
―배고파?
예전, 수많은 작전지 중 한 곳이었던 나라의 언어가 아이의 입을 빌려 나온다.
―먹어, 맛있어.
고드는 오렌지를 받아들고 반으로 쪼개 아이에게 건넨다. 당장이라도 끝내려던 목숨이 유예됨을 느끼면서.
그리고 그날, 갱단의 테러에 빈민가 인구의 60%가 사망한다.
―뭐야, 이 미친 새끼야!
―네가 이 도시의 갱단 두목인가?
장면은 바뀌어, 필리핀 최대 마약조직 보스, 호세 리전이 피를 흘리며 외친다.
―그래, 내가 까를로의 아들 호세다! 감히 이 땅에서 나에게 총을 겨누다니, 네놈은 누구냐?
혈혈단신, 총 한 자루와 정글도 하나로 보스의 방까지 침투한 사내가 속삭인다.
―···드.
―뭐라고?
―고드, 단순한 복수다.
성도 이름도 사라진 지 오래.
인간성의 흔적이라곤 코드네임만 남겨진 동양인 사내에게, 이 순간 육체를 움직이는 동력은 복수뿐이다.
“자, 그럼.”
필리핀에서 찍은 편집본을 훑던 그윈 레이먼이 씩 웃었다.
헐렁한 긴팔티 차림의 박건 뒤로, 오늘 합을 맞출 스턴트맨들이 열병식에 나온 군인들처럼 둥그렇게 모여 있었다.
“싱가폴 마피아들 좀 교육해 볼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