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44)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44화(144/199)
세계의 무대로 (7)
* * *
“큭, 커헉······.”
바람이 불어치는 호텔 옥상.
한 동양인 사내에게, 정장을 입은 남자의 목이 붙들려 있다.
“이곳도 엔도의 땅인가?”
무감정한 목소리가 수수께끼 같은 내용을 묻는다. 어찌나 근력이 센지, 체구 큰 성인 남성을 한 팔로 들어 올린 채로도 흔들림이 없다.
“······.”
정장 사내의 눈빛이 요동친다. 이미 다 알고 온 놈이다.
싱가포르 최대 마약 조직 중 하나, 그들의 보스가 소속된 ‘협회’의 이름이 바로 엔도라는 것은 중간관리자 이상만이 아는 사실이기에.
“넌··· 누구······.”
“맞는 모양이군. 동공이 흔들리는 걸 보니.”
대수롭지 않게 말한 동양인은 사내를 들어 올린 채로 걸음을 옮겼다.
목표하는 곳은 난간. 무얼 하려는지 자명한 동작에, 사내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이 호텔, 우리가 충성하는 보스는 엔도의 일원이다!”
“그래서?”
“엔도는 용서하지도 잊지도 않아. 네 형제, 친구, 너와 조금이라도 연관된 이들까지 모조리 죽일 거다. 지금이라도 그만둔다면······.”
“없다.”
목깃을 잡힌 채로,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외쳐 대던 사내의 입이 닫혔다.
저 미친 동양인, 그를 납치해 이곳까지 끌고 올라온 침입자는 친절하게 다시 말했다.
“이제 내게 그런 사람은 없어.”
이 컨티넨탈 호텔은 온갖 불법이 거래되는 VVIP와 VIP의 거래처이자 아지트다.
조직의 밑바닥부터 시작해, 마침내 이 거대한 분점의 지배인을 맡게 된 사내지만 한순간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이 자식, 무슨 놈이 협회의 킬러들보다 더······.’
죽음에 가까운 인간을 본 적 있는가.
저것은 사람이 아니다. 파멸을 부르는 재해이자 재앙일 뿐.
어떤 머저리인지는 모르지만, 죽음 그 자체를 협회의 심장 깊숙이 불러들이고 만 것이다.
“···누구냐? 넌 민간인이 아냐. 예전에 없애버린 조직의 일원이냐? 그 복수를 하러 싱가포르까지 건너온 건가?”
휘잉, 휘오오오오―
매정한 바람이 귓가를 휘몰아친다. 죽음을 직감하면 인간은 체념에 닿는다.
몸에 힘을 뺀 사내의 질문에, ‘고드’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필리핀의 빈민가였다.”
“······뭐?”
“손목에 검은 뱀 문신이 있더군. 자신이 협회의 은혜를 입었다며, 죽는 순간까지 엔도를 부르짖다가 눈을 감았다.”
킬러들, 마약상들, 테러리스트들 사이에서 ‘협회’라 불리는 엔도는 남미와 유럽에 지부를 둔 초거대 범죄조직이다.
그 밑에 굵직한 조직들이 있고, 또 그 아래에 엔도의 이름만 빌려 쓰는 조무래기들이 있다.
다만··· 빈민가에서 활동하는 갱단라면 협회의 직계일 리 만무하다. 즉, 심부름꾼도 못 되는 급이 이름을 팔았다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너, 약이라도 했나?”
이만하면 여행을 와서 험한 꼴을 당했다고 그 나라에 불을 지르는 꼴이다.
지배인이 허탈하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뿐이었다.
쐐애액, 쾅!
“꺄아아악!”
“사람이 떨어졌어요!”
“구급차, 구급차 불러! 누가 신고 좀 해요!”
평화롭던 싱가포르의 밤거리는 금세 비명과 고함으로 얼룩진다.
방금 호텔 옥상에서 추락한, 사후경련으로 움찔거리는 시체의 손목에 새겨진 문신을 다가간 카메라가 잡는다.
몸통에 흰 줄이 간, 구불거리는 검은 뱀.
바로 이 순간. 금융권의 첨단에서 ‘협회’로 수액을 공급하던 나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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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인을 호텔 난간에서 떨어뜨린 뒤, 고드는 즉각 움직인다.
조용히 처리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여기까지 온 목표에 맞지 않는다.
‘협회’라는 자들과 연관된 필리핀의 갱단들을 모조리 소탕하고, 싱가포르까지 날아온 이유는 단 하나.
놈들이 공포 속에서 죽어가길 바랐기 때문이다.
-뭐야, 지배인님이 당했다!
-어떤 놈이야? 옥상부터 봉쇄해!
귓속의 이어링에서 호텔 시큐리티들의 무전이 들려온다.
무장도, 보유 중인 탄약도 조악하지만 이 인간병기에게 조건은 중요치 않다. 고드는 소음기 달린 권총을 몸에 바짝 붙이고 비상계단을 내려갔다.
“어, 너는······.”
문을 열자마자 나타난 경비 둘에게, 가차없이 총알이 쑤셔박힌다.
타탕, 타탕!
흉골 사이를 꿰뚫는 두 발. 총알이 부족하기에 더블 탭(Double tap) 드릴로 신속히 사살한다.
애초에 연사에 가까운 사격술이지만, 얼마나 빠른지 한순간 2배속으로 보일 정도다.
“······.”
숨을 거둔 경비들의 몸을 뒤져 총기와 탄창을 보충하며, 고드는 손목을 확인한다.
역시 이 호텔은 협회의 굵직한 낚시터 중 한 곳이다. 필리핀에서 처리했던 놈들은 뱀의 몸통에 흰 줄이 하나뿐이었지만, 여긴 시큐리티들조차 두 개의 줄이 가 있다.
‘이름만 빌리는 말단들은 하나, 더 올라가면 둘, 중간관리자는 셋······.’
아까 처리한 지배인의 뱀에는 흰 줄이 세 개였다. 총을 챙겨서 일어날 때, 무시무시한 청력에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고드는 마주 달려가 모퉁이를 막 도는 시큐리티 셋을 맞이했다.
푸슉, 퓻!
한 손으로는 맨 앞 적의 목울대에 총알을 박고, 다른 손으로는 두 번째 경비를 끌어당겨 피탄될 각을 막는다.
의도치 않게 팀원의 가림막이 된 놈을 던져 버리고, 세 번째 경비에게 속사를 틀어박는다.
그러고는 일어서려는 놈의 머리에 한 방 먹이자 상황 종료.
불과 5초쯤 걸렸을까. 방탄장비도 없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탄약으로 훈련받은 시큐리티 셋을 처리해 버린 것이다.
“아마추어들이군.”
또다시 적들의 품을 뒤지며, 고드는 무미건조하게 평한다.
화력이 강한 총이었다면, 또 권총이라 할지라도 동료의 몸을 관통해 적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실제로 그가 있던 작전구역, 살인과 강간이 비일비재하던 내전지의 중심에서는 한 명이라도 더 죽이려는 미치광이가 넘쳐나지 않았던가?
‘팀장님, 먼저 가쇼! 여긴 내가 맡을 테니까!’
이젠 들을 수 없는 수많은 목소리 중, 유독 굵던 누군가의 음성이 귓전을 스친다.
고드는 내려다보던 시큐리티··· 턱수염을 기른 동양인의 시신에서 눈을 떼고 일어섰다.
닮은 이들은 많고, 총을 쏘는 이들 역시 많지만 죽은 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인간의 껍데기를 뒤집어썼지만 이미 인간이 아니게 된, 자기파괴와 복수의 화신처럼.
-위층이다! 5조랑 연락이 끊어졌다!
-교전 준비를 갖추고 돌입해라, 놈이 중화기를 소지했을 확률도 높다!
또다시 도청 중인 무전이 잡혔다. 피를 뿌리는 재해는 시체를 뒤로 하고 걸음을 옮긴다.
얼굴을 가릴 필요는 없다. 같은 의미로 자신의 코드를 숨길 이유도 없다.
어차피, ‘고드’를 아는 이들은 대륙을 막론하고 차가운 주검이 될 것이기에.
*
“이건 영화사에 전무후무한 격투씬이었습니다. 내 살면서 충무로는커녕 헐리우드에서도 이 비슷한 퀄리티를 본 적이 없어요.”
함께 묵는 호텔의 빅 룸.
두 형제를 따라온 김양호가 잔뜩 흥분한 채 찬사를 늘어놓았다.
촬영이 끝나고, 너무 늦은 시간만 아니라면 한국인 스탭들과 모여 후기를 풀곤 한다.
김양호를 스카웃하러 갔을 때 봤던, 막역한 사이라는 스턴트맨 후배가 핀잔을 줬다.
“아니, 형님은 뭐 매번 리액션이 똑같수? 전엔 필리핀에서도 동남아 최고의 액션이었다면서.”
“그건 동남아고! 또 마체테 격투 위주였잖아, 이번엔 클래식한 슈팅에 주짓수가 결합됐고.”
“저, 싱가포르도 동남아시아······.”
후배를 싹 무시한 김양호가 주섬주섬 뒷주머니에서 액션 콘티를 꺼냈다.
“아무튼 끝장이었습니다. 킬 쏜 2편이랑 비슷한 느낌이 날까 걱정했는데, 우리 감독님이랑 박건 씨가 완전히 다른 작품을 창작했어요. 거기 제작진이 본대도 오마주의 오 소리도 못 꺼낼 겁니다.”
“초반부는 그게 목표라던데요.”
“예? 킬 쏜의 오마주가요?”
“아뇨, 오마주인 것처럼 비교되는 게.”
고개를 갸웃하던 김양호의 얼굴에, 천천히 이해한 기색이 떠올랐다.
“설마, 그래서 전투씬마다 컨셉을······.”
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처음은 정면승부, 그 후로는 더욱 고도화될 겁니다.”
액션영화에도 그 나름의 기법이 있다.
스릴러는 초반의 빌드업부터 후반의 전개까지 몰아치고, 블록버스터는 팀원을 모아 점점 사건을 키워 가듯, 보여줄 수 있는 액션들을 하나씩 던지는 식이 그것이다.
그 액션들을 한 영화 안에 꽉 채운 종합선물세트가 ‘킬 쏜’이었다면, ‘고드: 분노의 파수꾼’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처음에는 비슷하게 갈 거요.’
주연 배우와 촬영감독만 부른 자리에서, 그윈 레이먼은 느긋하게 말했다.
‘초반부터 지나치게 독특한 액션, 획기적인 씬들로 눈을 사로잡으면 중반과 후반의 임팩트가 약해지지. 더군다나 킬 쏜 때문에 눈높이가 올라갈 대로 올라간 게 지금의 관객들이오.’
‘하긴, 그 킬 쏜도 중반부 이후엔 졸았다는 평이 많으니까요.’
촬영감독의 말을 레이먼이 받았다.
‘왜, 한국 속담에 들어갈 때와 나갈 때가 다르다는 말이 있지 않나? 창작자로서 같은 극이라도 끝까지 서스펜스를 유지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해.’
‘어떤 방식으로······.’
‘간단해. 익숙함 속의 차별화요.’
‘여기 적힌 대로 말입니까?’
건이 액션 콘티에 적힌 ‘더 빠르게!’를 가리키자 레이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울 건 알지만, 여기 조쉬가 최대한 도와줄 거요. 롱 테이크를 찍어도 스피드한 연출이 가능한 몇 안 되는 친구니까.’
‘1.3배, 혹은 그 이상 가능합니다.’
뜬금없이 나온 숫자에, 촬영감독 조쉬와 레이먼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건은 그들의 짐작을 사실로 확인시켜 주었다.
‘킬 쏜의 가장 최근 시리즈 기준입니다. 탄창 교체, 조준사격, 속사 등 대부분의 액션에서 해당 배우보다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그 정도면 슬로우모션으로 끊어도 관객들이 못 따라가겠는데요?’
‘킬 쏜’의 주연 역시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아 완성한 액션이다. 저쪽의 실력을 아는 조쉬가 혀를 내두르고, 레이먼이 씩 웃었다.
‘그렇다고 진짜 걸면 안 돼. 우린 그 작자들이 숨도 못 쉬고 헉헉대는 게 목표니까.’
그리하여, 감독들의 디렉팅도 한 지점으로 모이게 되었다.
더 빠르게, 더 정확히.
똑같은 마체테··· 또는 건짓수 액션이지만 이 영화는 초반부터 다르다, 칸이 배출한 반짝 스타의 퍼포먼스가 ‘킬 쏜’을 능가함을 관객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는 것.
그리고 오늘, 스탭들과 스턴트맨들의 놀람 속에서 또 하나가 증명되었다.
“형, 내가 방금 봤는데 훨씬 빨라.”
촬영 직후, 스마트폰과 아이패드를 나란히 들여다보던 박선이 심각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비슷한 동작도 전혀 안 비슷해 보이고, 구도도 다른데 속도까지 빠르니까 훨씬 달라 보이는 느낌? 이대로만 가면 진짜 잡을 수도 있겠어!”
“다음엔 스타일이 또 달라질 텐데.”
“응?
건은 방의 중앙, 테이블에 수북한 액션 콘티를 흘끗 보았다.
방탄 수트며 철갑탄, 소드 레슬링, 수영장 액션에 쌍도끼와 활까지.
‘고드’의 액션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