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45)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45화(145/199)
세계의 무대로 (8)
* * *
‘열혈검사 이현이’ 촬영장.
“컷! 십 분만 쉬었다 가겠습니다!”
감독이 컷을 외치고, 긴장됐던 현장의 분위기도 잠시나마 풀린다.
새로 찍는 드라마의 평범한 컷이지만, 누구 하나 허투로 하는 이가 없다.
저 가운데 있는 그들의 주연··· 여검사 역할을 맡은 백하니가 매 회차마다 불을 뿜는 연기로 사실상 차력쇼를 벌이는 탓이다.
“고생하셨습니다, 선배님!”
“그쪽도요.”
요즘 많이 유해졌다지만,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어디 가진 않는다.
선배도 저 백하니를 어려워하는 판에, 후배 여배우는 행여 심기라도 거스를세라 숨소리 하나 제대로 못 내고 퇴장했다.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유준일 실장이 혀를 쯧쯧 찼다.
“좀 웃어라. 언제까지 그 컨셉 잡을래? 우주 씨가 기도 못 펴잖아.”
백하니는 돌아보지도 않고 물병을 땄다.
“내 알 바 아니고. 저 인간이나 치워 주죠?”
“저 인간?”
“저기, 남의 장사 방해하러 온 사람요. 아까부터 신경 쓰이게 가지도 않고.”
백하니가 신경질적으로 턱짓한 곳에서, 웬 장발의 미남이 히죽거렸다.
근처에 촬영 일정이 있어 놀러온 구신승이, 삼십 분 전부터 눌러앉아 직관 중이다.
“낭자, 그 무슨 망발이오? 난 식구의 밥줄을 끊는 취미가 없소이다.”
“또 저러네, 재미도 없는 컨셉질.”
면전에 험한 소릴 듣고도 구신승은 싱글대며 뺨을 긁었다.
요즘 사극에 들어가 수염을 길렀는데, 덕분에 말투도 조선시대로 돌아가 양 팀장이 치를 떨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보다 못한 유 실장이 말렸다.
“···그만들 해라, 좀. 신승이 너도 애 그만 괴롭히고. 추노꾼이랑 검사랑 같이 있으니까 비주얼들도 살벌하구만.”
말은 저렇게 했으나, 로만에서 박건 다음으로 두루두루 사이가 좋은 배우가 바로 구신승이다.
동료의 아래위를 훑어보던 백하니가 한쪽 눈썹을 까딱거렸다.
“추노꾼 봉명의, 그거 리메이크잖아. 오리지널 스토리 아니면 관심도 없는 사람이 웬일?”
“낭자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려, 본래 소인은 잊혀진 인물들을 되살리려 연기를 하는 거라오.”
“아, 그래서 망회돌 끝나고 푹 쉬었구나.”
“군자는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법. 강력한 적수가 조선을 떠나기까지 기다렸지.”
그 ‘강력한 적’이 누군지는 뻔했다. 백하니가 코웃음을 쳤다.
“하여간, 눈치 하난 잘 본다니까.”
구신승도 씩 웃었다.
“1년, 2년쯤 걸릴 테니까··· 들어오기 전에 최대한 많이 해먹어 놔야지 않겠소?”
2년차 소속사 동료.
발을 내밀 때마다 파문을 일으키는, 박건의 행보엔 이제 놀라기도 지칠 정도다.
“아, 박 배우? 최근에 싱가폴 스틸 컷 공개되고 해외 팬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잖아. 제작진이 배속 조절로 장난친 영상이라고, 킬 쏜 시리즈 잡으려고 별 짓을 다 한다면서.”
“망신살 좀 뻗치라지. 백정장군도 안 본 인간들이 뭘 알겠어.”
박건을 잘 아는 셋 사이에서 의미심장한 끄덕거림이 퍼져나갔다.
그들이 지켜본 바, 이 배우는 노이즈마케팅을 잔뜩 부풀려 터뜨리는 데 재능이 있었다.
당장 영화 초창기만 해도 그랬다. 감독만 유럽의 신예로 추정될 뿐, 자세한 시나리오며 투자사도 공개되지 않아 말들이 많았으니까.
[칸의 아들 박건, 돌연 비밀리에 출국··· 이해하기 어려운 신작 행보?] [강평화 감독, “아직 헐리우드는 동양인의 도전에 관대하지 못해] [독립영화 감독과 액션영화 촬영, ‘최고점의 패기’ 또는 ‘무모한 도전’]박건이 위험한 선택을 했다, 시나리오 제작은 물론 투자에도 참여했다, 그 밖의 잡스러운 루머들은 며칠 만에 싹 날아갔다.
메인 투자사는 42픽쳐스, 배급사는 워너마운트, 제작사는 잭&리버··· 헐리우드의 내로라하는 라인업이 발표된 것이다.
“박 형이 질 싸움은 안 한단 말이지. 사자의 용맹함과 뱀의 교활함을 함께 지닌 사내요.”
구신승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하자, 유 실장은 대답 대신 손가락을 딱 튕겼다.
“맞다. 그 얘기 들었냐? 저 촬영이 끝날 때쯤 우리 쪽도 재밌는 일이 생길 거라던데.”
“누가, 주상 전하가 그러셨소? 아니면 영의정님 파발이오?”
주상 전하란 당연히 노중만 대표, 영의정은 이성철 본부장을 의미한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유 실장 대신 백하니가 대꾸했다.
“당연히 본부장님이지. 대표님이 그런 얘기 실장들한테 하는 거 봤어?”
“그건 그렇소. 재밌는 일이라면······.”
“DG에 똥물이라도 끼얹으려나 봐. 헬기로 들통 몇 개 실어다가.”
올 여름, 박건의 출국을 기점으로 로만과 DG의 아티스트들은 또다시 승부에 나선다.
분야는 드라마와 영화.
방송국 라인업도 KBC, MBS, JNBC에 YTS까지 골고루 분포됐다.
다만 대놓고 DG와 조이너스의 연합이었던 지난번과 달리, 이번엔 굵직한 기획사의 배우들이 로만 쪽에도 많이 붙었다.
“박 배우 없이도 할 만 하다는 거지. DG의 위상이 계속 떨어지기도 했고.”
백하니가 원톱인 ‘열혈검사 이현이’는 아직 3화인데도 시청률 8%, 구신승이 나오는 ‘추노꾼 봉명의’는 11%를 넘겼다.
‘서울의 개’부터 ‘백정과 장군’, ‘망나니 회귀자가 돌아왔다’ 같은 규격 외 흥행은 아니지만 충분히 쾌조의 출발이다.
“다 떨어져서 콱 망해버렸으면 좋겠네. 걔들이 하던 짓 생각하면······.”
백하니가 험악하게 중얼거릴 때, 조연출의 촬영 재개 사인이 들려왔다.
시계도 없는 손목을 흘끗 본 구신승도 일어설 채비를 했다.
“간다. 촬영 잘 하고.”
“···요즘 컨셉질에 성의가 좀 없어졌네?”
에엣취! 재채기를 한 구신승은 코끝을 쓱 문질렀다.
“수염 때문에 코가 간지러워서. 그나저나 실장님, 쟤 카메오나 한번 나오게 해 주세요. 지유랑 박건 씨 보니까 효과가 좋던데.”
“나쁘지 않지. 아마 서 PD님이나 남 PD님도 좋아하실 거야.”
유 실장과 구신승이 주고받는 말을 들으며, 백하니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자기들끼리 장구에 꽹과리까지 치네.”
“하니야, 그러지 말고 이 참에 정하자. 네가 신승이 쪽에 나갈래? 아니면 신승이를 이리 부를까?”
“···됐고, 각자 일이나 잘 하죠.”
*
영화가 제작되어 개봉하는 순간까지, 작품이 받는 기대는 가지각색이다.
개봉을 기다리는 팬들, 현장의 스탭들, 매일같이 연기 중인 배우들.
그들만큼이나 기대를 거는 부류라면, 바로 자기 돈을 넣은 이들일 것이다.
“신기하군. 암만 봐도 우리랑 같은 인간이 아닌 것 같아.”
한국은 물론, 싱가포르와도 한참이나 떨어진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드높은 빌딩들이 즐비한 콘크리트 숲 한가운데, 첨탑의 고층에서 두 남자가 차를 마신다.
찻잔을 내려놓은 빨강머리 사내가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는 상대에게 웃었다.
“자네가 그럴 만도 해. 나도 처음 봤을 때는 프레임이 조작된 줄 알았으니까.”
“아직까지 페이크 필름 논란이 있던데, 우리 입장에선 나쁠 게 없지. 그윈 그 친구도 입이 찢어져라 좋아하는 중일걸.”
“젠장, 그 꼴은 꿈에 나올까 겁나는데.”
껄껄대는 웃음소리가 사무실을 채운다. 이곳은 ‘고드: 분노의 파수꾼’의 투자사 중 가장 큰 규모의 42픽쳐스 사옥.
이야기 중인 두 사내는 한때 월가의 늑대로 불리던 쟝과 로뎅, 투자신화를 쌓아올린 전설적인 투자사의 공동 사장들이다.
쟝이 중얼거렸다.
“레이먼이 처음 찾아왔을 때가 기억나는군. 다짜고짜 영화를 찍겠다면서 사장실 문을 걷어차고 들어왔었지.”
“그래, 심지어 맨 처음은 전화였어. 받으니까 첫 마디가 뭐였는 줄 아나?”
“잘 잤냐고?”
“아니, 돈 좀 있냐고.”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듣고 있던 쟝 르노는 웃음을 터뜨렸다.
로뎅 무즈켈이 말을 이었다.
“미친놈인 줄 알았지. 그게 어딜 봐서 선댄스 수상자의 체통이냐고.”
“그런데 진짜 미친 자식은 따로 있었어. 동양인은 반세기마다 괴물이 나오는 모양이야.”
그윈 레이먼이 반강제로 시나리오와 캐스팅보드를 들이밀고 제작비를 타낸 이후, 42픽쳐스의 두 거물은 다소 황당했다.
첫째로는 제작비라고 가져간 돈이 평범한 헐리우드 상업영화의 절반도 안 되는 금액이었고,
둘째로는 2년 안에 ‘킬 쏜’을 잡겠다는 시나리오의 주인공이 웬 동양인이었던 것이다.
‘이봐, 자네 미쳤나? 칸의 수상자를 쓴다고 완성된 시리즈의 아성을 잡지는 못해.’
‘알 게 뭐요, 그냥 당신들은 돈이 불어나는 것만 지켜보면 돼. 42픽쳐스의 명성은 또 한 번 점프하게 될 거요.’
흡사 미치광이 같은 확신에 타오르던 그 감독은, 이제 생성한 공식 트위터로 제 영화의 프리뷰를 톡톡히 홍보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자도 동양인이었지. 한국인지 중국인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쟝의 말에, 로뎅도 고개를 끄덕였다. 전설의 스턴트맨 출신 배우··· 조니 류가 헐리우드에 큰 족적을 남긴 것이 40년 전이다.
홍콩영화의 액션 스타가 헐리우드에서 성공한 처음이자 마지막 사례.
그가 은퇴하고서 수많은 동양의 영화와 배우들이 밀려들었지만, 적어도 액션 장르에서만큼은 그의 아성을 넘은 자가 없었다.
다만 이번 작품, ‘고드’라고 했던가? 그 쓸데없이 부제가 긴 그 영화의 주연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는 듯, 다시 스마트폰 영상을 재생한 쟝 르노가 물었다.
“맞아, 자넨 그윈에게서 꼬박꼬박 보고를 받잖나. 지금은 뭘 하고 있다던가?”
“글쎄. 싱가포르 씬을 전부 소화했으니··· 아마 지금쯤 비행기를 탔을 거야. 촬영 일정이 빨랐으면 벌써 내렸을지도 모르겠군.”
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뻔한 곳은 싫다더니, 특히 프랑스는 근처도 안 온다면서?”
“그렇지. 그래서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으로 다음 로케이션을 잡은 모양이야. 문화적 흥행이 뭔지 보여준다던데.”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이라면, 누구나 떠올릴 나라가 하나 있다.
쟝의 눈에도 알겠다는 빛이 떠올랐다.
“튀르키예로군.”
*
튀르키예, 예전 국호(國號)는 터키.
이스탄불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 앙카라의 거대한 세트장에서 김양호가 중얼거렸다.
“저, 이게 맞습니까?”
“또 뭐 말이오?”
그들의 감독, 어느 새 스턴트맨들에게 ‘망할 이태리 놈’으로 불리는 그윈 레이먼이 뚱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김양호는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 아무리 그래도, 연습도 없이 소드 레슬링은 부상의 위험이 있지 않겠습니까. 병기류나 격투술은 배우가 특수부대 출신이니 그렇다고 하지만······.”
이 선량한 스턴트맨 헤드, 팀의 주역을 맡는 사내가 걱정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박건은 보호구 하나 없이 무게만 1.8kg에 달하는 롱소드를 붕붕 휘둘러 보고 있었다.
이번 튀르키예 로케이션의 가장 큰 목표이자 하이라이트, ‘고드’가 무기 전시장의 냉병기를 뽑아 적들을 물리치는 씬이다.
반면 뒤쪽의 스턴트맨들은 방검복에 헬멧, 심지어 총기류까지 완벽하게 무장을 갖췄다.
뒤쪽을 흘끗 본 레이먼이 시큰둥하게 손을 내저었다.
“그냥 한번 보시오.”
“······예?”
“한국의 특수부대는 나이프가 아니라 롱소드 검술을 가르치는 것 같던데. 배우 본인이 넣은 액션이니까 걱정할 것 없소.”
김양호는 눈을 끔뻑였다. 그러고 보니, 형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자다가도 부리나케 달려올 매니저가 하품을 하고 있었다.
‘···선이 씨랑도 얘기가 된 거였나?’
벌써 세트장 작업은 막바지다.
그들이 대화하는 사이, 장난처럼 팔을 휘두르던 박건이 돌연 허공에 검을 뿌렸다.
쏜살같이 뻗어나가는 빛살을 바라보며, 레이먼은 한 마디 덧붙였다.
“한국어로는··· 그래, 경력자라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