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46)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46화(146/199)
위험천만한 로케이션 (1)
* * *
연기의 경이는 한정된다.
수십 자리 숫자를 틀리지 않고 외우거나, 가느다란 성냥개비에 정교한 수공예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을 생각해 보라.
놀랍게도··· 딱히 놀랍지는 않다.
경탄이란 자주 볼수록 무뎌지며, 인간은 언제나 더욱 새로운 자극을 찾기 때문이다.
소위 ‘대배우’라고 말하는 연기자들과 함께 일하는 스탭들이 웬만한 연기엔 감흥을 못 느끼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메소드 연기요? 아유, 이제 지겨워요. 매일 보는 게 명연기인데 감탄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나중엔 그러려니 하게 된다니까요.”
놀랍게도 위 인터뷰는 6년차 조연출에게서 나온 이야기다.
반면 마술은 어떠한가?
위대한 마술사, 데이비드 롬렛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관객이 알고서도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놀라 자빠지는 것이 마술이다. 우리는 마법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박건의 액션은, 그래서 특별하다.
*
챙, 태앵!
“잠시만요, 감독님.”
“어어, 예.”
쉬는 시간, 촬영감독 조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들고 다가왔다.
스턴트맨들 사이, 롱소드를 든 박건은 작은 콘티에 펜으로 동선들을 표기해 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이 각도에서 롱 테이크로 잡히면, 구도 귀퉁이가 무너질 확률이 높습니다. 뒤쪽으로 도는 스턴트맨들이 잘 나오지도 않고요.”
“맞는 말입니다. 우리도 몰랐는데, 이런 냉병기 액션은 확실히 그럴 것 같아요.”
열심히 설명을 듣던 베테랑 스턴트맨 한 명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나머지 사람들도 웅성대며 동의를 표했다.
“그죠, 마스터 박의 의견은 틀린 적이 없었으니까.”
“마스터 박이라면 믿을 수 있지. 조쉬, 우리 보스가 그렇다니까 잘 의논해 봐요. 난 저 말을 듣는 걸 추천하지만.”
마스터 박.
튀르키예 촬영을 들어오면서 박건에게 붙은, 일견 우스운 별칭이다.
미스터가 아닌 마스터의 뜻은 간단하다. 무기··· 액션··· 그 모든 것의 달인이라는 소리다.
그때,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그윈 레이먼이 대본을 손바닥에 탁탁 쳤다.
“뭘 고민들 하나? 시퀀스 안의 디테일은 저 친구의 말을 맹신, 아니지. 신봉해도 돼. 달인이 아니라 무술의 신이라고.”
“그 정도는 아닙니다만.”
박건이 건조하게 반론했지만, 레이먼은 씨알도 안 먹힌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평범한 사람이 킥복싱에 주짓수에, CQB(Close Quarter Battle)는 전문가 뺨치는 수준이고 냉병기까지 다 다룰 리가. 어디서 용병으로 한평생 이름 날리다 왔다고 해도 믿겠는데.”
“무기술이 취미였습니다. 평소 관심이 많아 군대에서 익혔죠.”
박건의 대답에, 레이먼이 아닌 뒤쪽의 스턴트맨들이 감탄했다.
“역시··· 전쟁 중인 나라는 달라. 한국은 징병제라지 않았나?”
“그렇지. 그럼 저렇게 인간병기가 된 것도 이해가 돼. 킬 쏜이 끽해야 트레이닝 몇 년 받은 배우라면, 이쪽은 산전수전 다 겪은 진짜니까.”
듣고 있던 레이먼이 헛웃음을 흘린다. 이만하면 마스터 박이 아닌 홀리 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한국에서 있었던 박건의 활약상을 모른다.
저 칸의 주인공이 연기 속 흡인력 이전에 액션의 임팩트만으로 촬영현장부터 안방극장까지 잠재웠다는 사실도.
“···한국 특수부대는 나이프 파이팅도 아니고 롱소드 검술을 배우나?”
이곳, 튀르키예로 넘어와 박건이 다룬 무기는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롱소드, 다른 하나는 철퇴,
마지막은 전투용 토마호크 한 쌍.
액션 씬의 컨셉은 방탄조끼 한 장 없는 ‘고드’가, 무기가 가득 전시된 박물관에서 엔도의 킬러들을 쓰러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박건은, 본토에서도 수련하는 이가 많지 않다던 독일 장검술··· 리히테나워류 검술을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탕, 타앙!
숙련된 파이터가 헤드무빙으로 주먹을 흘리듯, 총알은 미리 움직인다면 피할 수 있다.
쏜 총알을 고개만 까딱여 피하고, 바람같이 달려든 고드가 롱소드를 휘두르자 갈라진 가슴에서 피가 뿜어져나온다.
“커, 크허······.”
허물어지는 적을 넘어 다음 상대. 미처 총이 발사되기도 전에 희뿌연 칼끝이 목젖을 긋는다.
“쏴! 죽여!”
“무슨 칼 하나로······.”
롱소드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는 최대 160센티미터에 달하는 날의 길이다.
순식간에 몇 명이 쓰러지고 나서야 새로 온 지원군이 권총을 겨눴다. 미리 맞춰 놓은, 소위 ‘주인공 뽕’을 채워 주는 방어 연출을 위해서다.
탕, 팅!
고드가 얼굴 옆에 롱소드를 눕혀 들자마자, 날아든 총알이 검신을 스쳐지나간다.
제대로 맞았다면 날이 깨지거나 박혔을 수도 있다. 그 짧은 사이 적의 탄도를 계산하여 총알을 튕겨낸 것이다.
“······.”
믿을 수 없는 신기(神技)에, 짧은 찰나 침묵이 흐른다.
이내 다시 사격을 개시하려는 복면인들에게 고드가 달려든다.
퍽, 푹!
적들 역시 나이프를 뽑아들거나 근거리 사격으로 대응하지만, 애당초 리히테나워류에는 접근한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소드 레슬링’이 있다.
검의 양날로 간격 안의 상대를 프로펠러처럼 연달아 베고, 밀접한 적은 가드로 팔목을 붙잡아 꺾어 버린다.
이내 메치기와 잡기, 꺾기와 후리기 등 각종 유술이 쉼없이 펼쳐지며 카메라 안에 담겼다.
“컷, 오케이!”
한바탕 휘몰아친 롱소드 액션이 끝난 뒤, 몰입감에 사로잡혔던 현장의 사람들에게서 한숨 같은 탄성이 흘러나온다.
그 후에도 촬영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김양호와 다른 무기 전문가가 뭔가를 더할 것도 없다. 아예 중세 무기술의 정수를 보여 주려는 듯, 박건은 철퇴와 토마호크에 카타나까지 다루며 적들을 도륙했다.
“저게 한국검술입니까?”
“글쎄요, 검도와 조선검술이 섞인 것 같긴 한데······.”
한쪽에서 지켜보는 전문가들이 넋을 잃을 만큼 화려한 칼질 쇼는, 다음 촬영지로 옮기며 또 컨셉이 확 바뀌었다.
이번에는 냉병기가 아닌, 개조된 화염방사기와 위력을 축소한 백린탄이다.
화르륵, 퍼버버벙!
방탄수트에 고화력 무기들로 완전무장한 박건의 위를, 드론 카메라가 날며 탑 뷰(탑 다운) 앵글을 잡아낸다.
‘전무후무한 액션 연출’을 원하는 레이먼의 요구사항에 맞춰, 촬영감독 조쉬는 온갖 종류 카메라 워킹을 선보였다.
현장감이 필요한 액션, 예의 대검을 휘두르는 씬에서는 고드와 적들의 시점이 번갈아 가면서 속도감을 끌어올렸다.
반면 보다 볼거리가 풍부한, 이번 화염방사기 씬에서는 흡사 종스크롤 슈팅 게임처럼 탑 뷰로 배우들을 찍어낸다.
그 밖에도 클래식한 롱 테이크(Long take), 배우 곁에서 바짝 붙은 핸드 헬드(Hand-Held) 등 기존의 촬영 기법도 활용되었다.
현재까지의 스토리는 중반부 직전.
이스탄불의 거대한 목욕탕, 흡사 ‘서울의 개’를 연상시키는 배경에서 고드가 협회 간부를 사살하는 지점까지 도착해 있다.
총 러닝타임 중 튀르키예의 비중은 30여 분, 그 안을 채울 촬영분이 차곡차곡 쌓였다.
*
마지막 날 밤.
튀르키예의 도시, 콘야(Iconium)의 숙소에서 짧은 전략회의가 열렸다.
늘 그렇듯 장소는 감독의 방이다. 호텔 근처에서 제각기 저녁식사를 마친 이들이 하나둘씩 들어와 아무렇게나 둘러앉는다.
“다 온 건가?”
“거의. 조쉬는 화장실만 다녀온다는군.”
“그 친구는 카메라를 잡으면 안 됐어. 평소엔 어떻게 참는 건가? 막 그··· 중요한 촬영을 할 때 신호가 오면 말이야.”
촬영감독 조쉬는 평소 장이 안 좋기로 유명했다. 조명팀의 헤드, 마르케스의 농담에 가벼운 웃음이 퍼져나간 뒤였다.
웃음기를 지운 레이먼이 말했다.
“다들 고생했어. 튀르키예의 돌바람도 이겨내고 떠나게 됐으니 말이야.”
싱가포르부터 합류했던 조연 배우, ‘고드’를 뒤쫓는 협회의 킬러를 맡은 안톤이 장난스레 코를 찡긋했다.
“뭐, 우리가 한 게 있나? 나는 저 친구 꽁무니만 따라가고, 나머지는 스턴트맨들이랑 우리 주연이 다 해 먹었는데.”
“어허, 그게 얼마나 어려운 줄 알아요?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을 쫓아가느라 촬영팀은 손목이 빠질 지경이라고.”
그 사이 문을 열고 들어온 촬영감독 조쉬가 끼어들었다.
스턴트팀 대표로 끼어 앉은 김양호도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이쪽은 불만 없습니다.”
“당연히 그러시겠죠. 촬영 일정이 얼마나 당겨졌는지 알면 놀랄 겁니다. 이렇게 NG가 없는 현장은 난생 처음이에요.”
같은 영화라도, 한 번의 NG가 치명적인 쪽은 단연 블록버스터&액션이다.
애초에 들어가는 품이 다를 뿐더러, CG가 아닌 실제 폭약을 사용할 경우 하루에 촬영 가능한 숫자가 정해져 있다.
블록버스터까지는 아니지만 액션도 마찬가지.
영화 초중반부터 스턴트맨들이 줄부상을 달고 다니는 이 판에서, 배우가 주도해 NG를 손에 꼽게 줄이는 것은 엄청난 능력이다.
“난 아직도 그 칼질이 눈에 선해요. 알고 보니 동양인이 아니라 옛 소드마스터들의 현신 아닙니까?”
“무슨 소리야? 롱소드만 잘 다루는 게 아니던데. 카타나로 무슨 사무라이처럼 날뛰는 걸 못 봤나?”
“사무라이는 무슨··· 비유를 해도 꼭 그런 머저리 집단에 대는군.”
“좋아, 해 보자 이거지.”
자문을 위해 온 무기전문가와, 나름 검술의 조예를 자신하는 조연출이 다투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도 카타나가 우월하네, 그 따위 한손검보다 롱소드가 범용성이 좋네 하는 논쟁을 들으며, 건은 생각했다.
‘너무 신을 냈어. 오랜만에 쥔 검이라고.’
그도 그럴 것이, 현대로 귀환한 뒤 처음 쥐어 보는 서양식 장검이다.
철왕국에서 쓰던 성검은 검신이 크고 앞날과 뒷날이 있는, 롱소드와 바스타드 소드의 중간쯤 되는 생김새였다.
그 덕에 기분이 좋아진 게 문제다. 조연 배우들과 스탭들 앞에서 검술 시연을 하다가, 에어건 총알을 쳐내는 잡기까지 꺼내고 말았으니까.
‘그 정도로 할 생각은 없었는데······.’
건이 고심하는 사이, 나머지 사람들이 두 검술 덕후를 떼어 놓았다.
지도를 편 레이먼이 손뼉을 두 번 쳤다.
“자, 집중들 해. 이제 우린 절반쯤 온 거야.”
“오, 벌써 절반?”
누군가 추임새를 넣었지만, 레이먼은 냉정하게 딱 잘랐다.
“존, 당신 때문은 아냐. 배우가 혼자 다 만들고 우린 포크만 휘둘렀지.”
“거, 이탈리아 촌놈들은 역시 과격하군. 포크 휘두르는 게 얼마나 힘든데······.”
“큼, 크흠!”
형의 옆에 붙어 있던 박선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였다.
한쪽 눈썹을 치켜올린 레이먼이 붉은 펜으로 지도 몇 군데에 동그라미를 쳤다.
“포크도 못 드는 멍청이는 내버려두고. 일정상으로는 기존의 계획보다 훨씬 당겨졌어. 거의 예상했던 시간의 1/3은 절약했지.”
둘러앉아 있던 이들의 고개가 오르내렸다. 촬영 전, 처음 브리핑에서 말했던 시일보다 지금이 훨씬 빠르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다.
올 봄··· 늦으면 여름, 그 이후까지도 걸릴 줄 알았던 튀르키예의 씬이 해를 넘기지 않고 마무리됐으니 실로 어마어마한 속도다.
“그럼 좀 쉴 거요? 일찍 가면 현지 당국의 협조를 못 받을 수도 있을 텐데.”
무기전문가가 말했지만, 딱히 쉬고픈 마음이 있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차피 이곳에 여행이나 하려고 온 사람은 없다. 한번 작품을 시작했으면 끝을 내고 쉬는 편이 훨씬 좋다.
레이먼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연락은 넣어 놨어. 아무 때나 와도 상관없다더군.”
“그건 다행이지만··· 잠깐, 튀르키예 다음이면 거기 아니었나?”
말하던 무기전문가와, 나머지 스탭들의 시선이 레이먼의 손으로 모여들었다.
감독이 쥔 붉은 펜이 지도 위 한 점을 찍는다.
“그래, 콜롬비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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