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47)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47화(147/199)
위험천만한 로케이션 (2)
* * *
가장 치안이 위험한 국가는 어디인가.
길거리 설문조사를 실시한다면, 누군가는 한때 악명이 높았던 중동 내전지를 고를 것이다.
또 누군가는 유럽을 고를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언제 적 중동이야. 이젠 거기보다 남미 마약카르텔이 더 무서운 거 몰라? 자기들 사업 방해 말라고 다른 나라 테러까지 시작했다고.”
사실이 그렇다.
이라크와 시리아 등지에서 활동하던 극단주의 이슬람 테러조직, IS(Islamic state)는 이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여전히 일부 수니파 생존자들이 북아프리카를 떠돌지만, 과거 자자하던 악명은 한풀 꺾였다.
[IS, 뿔뿔이 분열··· 결국 속부터 곪아들어간 극단주의자들의 최후] [우지디족, NDG, 알 조에르··· 난립하는 테러조직들, 국제정세의 새로운 위기는?]차지했던 주요 유전지대를 잃으며, IS는 몇 차례의 분열을 거쳐 흩어졌지만 지구상의 테러리스트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중동이 잠잠해지자 유럽, 그리고 멕시코와 콜롬비아 권역을 중심으로 진화된 마약 카르텔이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것이다.
“실장님, 건이 오빠 괜찮을까요? 요즘 콜롬비아가 그렇게 난리라던데··· 지금이라도 한국으로 데려와야 할까 봐요.”
“어······.”
심각하게 묻는 진지유를 쳐다보며, 유준일 실장은 잠깐 고심했다.
‘얘들, 다 사내연애 중인 거 아냐?’
아무리 여길 가도 박건, 저길 가도 박건이라지만 회사 내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백하니에 구신승, 진지유까지 소속사 동료 얘기를 하니 사이가 좋다 못해 신기할 지경이다.
‘콜롬비아로 떠났다는 기사가 엊그제 떴는데, 이틀간 저 얘기만 스무 번을 하면······.’
유 실장이 말이 없자 진지유는 스마트폰을 뽑아들었다.
“안 되겠어요. 아무래도 대표님한테 연락해야겠어요, 거기 마약상들한테 촬영팀이 납치라도 당하면 우리 회사 기둥 뽑힌다고.”
“야, 야, 지유야! 오 분 뒤에 스탠바이야!”
백하니와 구신승이 저마다 드라마에서 분투한다면, 진지유는 대놓고 DG와 정면으로 붙었다.
같은 주말드라마에, 방영부터 종영 시기까지 일치한다. 중반을 넘어선 지금까지 시청률은 거의 호각··· 홍보팀을 비롯해, 회사 전체가 여기만큼은 질 수 없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유 실장의 만류에 휴대폰을 집어넣은 진지유가 입술을 부루퉁히 내밀었다.
“그럼 어떡해요. 걱정돼서 미치겠는데.”
“별일 없을 거라니까. 너도 해외 로케 돌아봐서 알잖아. 위험한 데로 가질 않아요, 감독이 머리에 총이라도 맞은 게 아니고서야······.”
말하던 유 실장의 목소리가 점차 줄어들었다. 저 촬영현장의 보스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임이 떠오른 탓이다.
그윈 레이먼, 그 작자의 행보는 전성기 적 노중만 대표와도 흡사했다.
단, 페퍼론치노를 잔뜩 뿌려 다섯 배쯤 매워진 맛으로.
-킬 쏜? 뭐··· 나쁘지 않아. 역대급으로 실전적인 액션임은 맞지만, 동시에 서글프지. 이전의 영화들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반증하는 거나 똑같으니까.
<고드: 분노의 파수꾼>의 제목이 발표된 이후, 독일의 유명 영화지에서 한 인터뷰는 전 세계 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독립영화, 예술영화에선 인정을 받았다지만 상업··· 그것도 장르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시리즈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레이먼, 당신이 선댄스를 제패한 다크호스임은 모두가 알아요. 하지만 다짜고짜 킬 쏜이라니, 그 동양인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거는 거 아닙니까? 칸의 엄정함이 사라졌다는 말도 있는데요.
칸에서 인정받았다 한들, 인종차별의 벽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의 총본산, 헐리우드보다 베를린 영화제를 위시한 독일의 보수 칼럼들은 자격 논란을 지속적으로 생산해 냈다.
질문한 기자를 빤히 쳐다보던 그윈 레이먼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 동양인이라, 말 잘했군.
-그게 무슨······.
-영화가 공개된 뒤, 제이미 로드리도 당신을 기억할 거요. 괜한 소리로 명예로운 패배를 욕되게 만들었다고.
그 비슷한 인터뷰를, 출연한 유튜브며 잡지마다 해 대니 싸움닭이 따로 없다.
진지유는 턱을 치켜올렸다.
“그렇게 작품에 미친 사람인데, 어디 보통 영화로 만족하겠어요? 배우를 불구덩이로 던져서라도 원하는 씬을 건지려고 하지.”
결국 유 실장은 두 손을 들었다.
“그래, 대표님을 찾아가든 레이먼 트위터에 DM을 보내든 마음대로 해. 대신 내가 울며불며 말렸다고만 꼭 덧붙여 줘라.”
“DM은 보내 봤자··· 어, 어어?”
공식 트위터로 접속했는지, 스크롤을 내리던 진지유가 짧게 외쳤다. 덩달아 가슴이 철렁한 유 실장도 고개를 쭉 뺐다.
“왜, 또 뭔 일인데?”
“현장 사진들 올라왔어요. 지금 보고타에 내렸나 봐요!”
*
“와, 남미를 다 와보네······.”
엘도라도 국제공항.
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뒤, 신기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박선이 눈을 반짝였다.
“여기? 흔히 여행 오는 곳이 아니긴 하지요. 멀고 덥고 ”
벌써 몇 달째 함께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절대 말을 안 놓는 김양호가 말을 받았다.
이 중년 스턴트맨은 액션의 스타일과 성격이 희한하도록 흡사하다.
고전적이고 보수적이되, 동료든 후배든 상대를 존중할 줄 안다는 면에서.
“남미는 여행으로도 오지 말랬는데. 길거리에 광견병 걸린 들개들이 돌아다니고, 아차 하면 갱단이 납치해서 목을 자른대.”
“뭔 소리야, 자기 전에 영화라도 봤냐?”
“아니, 유튜브! 무슨 갱단들 구역인가, 거기 가니까 진짜 총을 갖고 다니는 거야. 걔들이 다 갱단 아니면 부하들이래.”
콜롬비아로 오면서 촬영 인원이 다소 줄었다지만 한국인 스턴트맨들은 아직 남았다.
뒤쪽에서 걷던 두 명이 다투는 것을, 담담한 목소리가 제지했다.
“별일 없을 겁니다. 위험한 구획으로 들어가지만 않으면.”
“어, 그래요? 박 배우님이 그렇게 말하면 또 안심이 되는데······.”
박건의 말에, 방금 전까지 불안하게 중얼거리던 스탭이 바로 납득한다. 동료가 한심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휴, 박건 배우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겠네.”
“그럴 만하니까 믿지. 지금까지 우리 배우님 덕 안 본 사람이 촬영팀에 있나?”
“아무도 없긴 해, 크크.”
정작 이야기를 듣는 장본인, 박건은 자기 생수를 꺼내서 동생에게 건넨다.
배우가 해 줄 일이 연기 잘 하고 NG 안 내는 것 말고 뭐가 있겠냐만, 해외 촬영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건네받은 물로 목을 축이며, 박선은 한층 늘어난 형의 업적들을 떠올렸다.
‘확실히··· 한국에 있을 때랑은 비교가 안 돼.’
우선 필리핀 로케이션.
빈민가를 지나 민다나오 섬, 울창한 정글 속 씬을 촬영하다가 스탭 한 명이 뱀에 물리고 말았다.
하필 메디컬 팀과는 떨어져 있던 터. 일분일초가 급한 위기였으나, 박건은 능숙하게 응급처치를 해 현지 병원까지 이송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무거운 촬영 장비들을 불쑥불쑥 들어 옮기는 주연 배우에, 한국인 스탭들은 무수한 질문을 받아야 했다.
‘이봐, 한국에서는 원래 배우가 저런 일을 도맡아 하나?’
‘그게, 일반적이지는 않은데······.’
스탭들을 생각하고, 팀워크를 맞추려는 배우들은 국적과 인종을 막론하고 현장에서 사랑받는다.
촬영 한 달여가 지났을 때, 박건은 ‘고드’의 모든 식구에게 신뢰받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자네가 무진장 센 건 알아. 그래도 친구, 너무 긴장은 풀지 말라고.”
친근하게 다가온 거구의 흑인, 새미가 박건 형제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한쪽은 크고 다른 한쪽은 작아서 어깨동무를 하니 우스운 모습이 되었다.
“올해 초였나? 파리랑 맨체스터에서 기관총을 쏴재낀 미친놈들이 여기 출신이라잖아. 메데인을 전복시키려던 마약상 테러리스트들.”
칸 영화제 개막을 늦추고, 유럽에 테러의 먹구름을 퍼뜨렸던 이들 중 일부가 특명을 받은 콜롬비아 마약조직원이라는 것.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뉴스다.
국제정세의 관심이 남미로 쏠리자 잠잠해지긴 했으나, 당국과의 갈등으로 대륙 반대편을 테러했던 자들은 아직 이 땅에 있다.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새미는 이를 드러내며 벌쭉 웃었다.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상한 짓만 안 하면 큰일이야 없겠지만······.”
공항 근처에는 현지에서 미리 대절해 둔 25인승 버스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붉고 파랗게 칠한 겉면이 다 벗겨져 오히려 을씨년스러워 보이는 몰골이었다.
“조심은 하자고. 이 나라를 뜰 때까지.”
*
재난 전엔, 어떤 식으로든 신호가 온다.
태풍 전 일렁이는 공기라거나 수상한 바람의 흐름, 산불의 타는 냄새 같은 것들 말이다.
불길한 조짐은 촬영 나흘째··· 보고타에서 한참 먼 다른 도시에서, 스탭 한 명이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시작됐다.
“야, 내 폰 봤어?”
“뭔 소리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아니, 분명히 밥 먹을 때 옆에다 뒀는데······.”
울상이 된 스탭이 단체로 밥을 먹은 식당에 다시 돌아갔지만, 이 먼 타국에서 CCTV도 없이 휴대폰을 찾을 리 없다.
결국 그는 투덜거리며 돌아왔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빌어먹을 나라.”
들어 보니 옆에 웬 남자들이 앉았고, 아마 그 사람들이 훔쳐갔을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25인승 버스의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그윈 레이먼이 주의를 주었다.
“알아서들 조심해. 해외 촬영에선 더 정신 챙기라고, 긴장 풀지 말고.”
무언가 일어날 조짐을 느낀 걸까. 같은 버스에 탄 스탭들의 표정도 영 좋지 않다.
프랑스 출신의 조명팀 스탭과 네덜란드 동료가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전에 여행 왔을 때랑은 분위기가 딴판이야. 보고타를 떠나서 그런가?”
“거긴 수도잖아. 내 고향만 가도 양들이 뛰어놀아, 이 순박한 친구야.”
아시아와 유럽을 거쳐, 머나먼 남미까지 날아온 총원은 육십 명가량.
본래는 백 명도 넘었지만, 현지 촬영장소의 특성상 스탭들을 최소한으로 추렸다.
콜롬비아에서 찍기로 한 로케이션이 그리 많지 않은 탓이다.
수도인 보고타에서 씬 하나, 그리고 미리 섭외한 몇 군데의 도시에서 또 한두 개씩.
최근 실추된 이미지 탓인지, 당국의 협조를 얻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단···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고 했지. 위험한 곳에는 알아서 가지 말라고.’
울퉁불퉁한 도로를 느끼며, 레이먼은 버스 팔걸이를 톡톡 두드렸다.
한때 게릴라가 콜롬비아 정부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던, 우일라(Huila)며 카우카(Cauca) 등 시골 지역은 애초 갈 생각도 없었다.
‘전부 다 도시 지역이긴 한데······.’
영화는 어디까지나 현실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법. ‘고드’의 가장 중요한 과거가 밝혀지는 곳이 남미인 만큼, 이 분위기를 가장 잘 낼 수 있는 도시만큼은 사수해야 한다.
현지에서 고용한 경호원들 역시 자신 있는 기색이었다.
“걱정 마십쇼, 보스. 잡범이나 조무래기들은 이거 하나면 충분하니까.”
보고타에서 메데인으로 가는 길.
총 4인으로 구성된 콜롬비아 사내들은 저마다 가진 무장을 보여주었다.
고무탄을 발사하는 권총과 가스총, 전기침을 쏘는 테이저건 등 수준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사실 이 정도 인원이면 우리가 뭘 할 필요도 없어요. 그놈들이 있는 지역에 제 발로 들어가는 게 아닌 이상.”
“그놈들?”
“예. 오하지오 카르텔이 붕괴된 뒤로, 클랜 몇 개가 이권을 놓고 싸우고 있거든요. 우리가 가는 히라르도타는 작은 도시니 놈들이 눈독을 들일 일도 없을 겁니다.”
확신에 찬 말에, 레이먼을 포함한 헤드 스탭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메데인에서도 북동쪽으로 13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소도시 아닌가.
오후쯤 도착할 테니, 숙소에 짐을 풀고 밤샘촬영을 한 뒤 다음 일정지로 가면 될 일이다.
그리고 그날 밤,
히라르도타의 거리에 기관총 소리가 울려퍼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