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49)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49화(149/199)
위험천만한 로케이션 (4)
* * *
마약 카르텔들은 어째서 싸우는가.
실로 다양한 이유가 있다.
이전에는 거대한 조직 하나가 유통망을 손에 넣고, 정계와 물망 아래로 협상하며 막대한 암흑 화폐를 벌어들였다.
그 서열 꼭대기, 에밋 로의 머리가 날아간 지금은 다르다.
그야말로 마약의 춘추전국시대. 그마저도 웬만한 곳들은 다 정리됐고, 남은 무리 중 세력 큰 놈들이 스스로를 ‘클랜’이라 칭하며 싸우고 있다.
이들의 싸움은 일종의 팩션(Faction)이다. 절반은 실제 싸움이지만 절반쯤은 당국에 전하는 시위에 가깝다.
우리 일에 끼어들지 마라. 싸움을 말리고 싶다면 그에 맞는 보상을 제시해라.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총격전 뒤에는 저러한 메시지가 숨어 있는 것이다.
‘죽어가는 건 민중들이지. 늘 그랬듯이.’
녹슨 양철 지붕의 그림자 밑에서, 건은 옛 추억을 떠올렸다.
군 시절의 기억은 아니다.
바다 위 삼합회에 가까운 중국 어부들을 제압하고, 소말리아 해적을 소탕하는 등 다양한 임무를 맡았지만 지금 같은 총격전은 잦지 않았다.
-용사님, 잘 오셨습니다.
-···밖은 어떻게 된 겁니까?
세 번째 악마, 발몬의 군단이 남하한다는 소식을 듣고 북상했을 때였다.
북서부의 귀족이라던 늙은 백작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이 한 일을 떠벌렸다.
-악마들은 사람이 많은 곳부터 쳐들어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놈들이 당도하기 전 지레르 남작과 영지전을 벌였지요. 과연 놈들은 우리 쪽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전능하신 아스루엘에게 영광과 축복 있기를!
어느 순간부터 무정물처럼 탁색된, 용사의 눈동자가 성벽 아래로 움직인다.
발몬의 군대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수많은 병사들이 평원에 쓰러져 있지만, 악마의 사체는 어디에도 없다.
오로지 인간의 붉은 피··· 인간이 인간을 죽인 흔적뿐이다.
-이렇게, 몇 명의 죽음을 더······.
자신이 세계를 구해내지 못하면 어차피 죽을 이들임은 안다.
반복되는 회귀 속, 몇 번쯤은 그가 직접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런 순간에는 퍼뜩퍼뜩 멍해진다.
이 지옥 속에서, 용사 고드는 누구를 위하여 싸우고 있는가?
“이젠 알지.”
부욱, 입고 있던 셔츠 자락을 찢어내 코에 두르자 복면이 되었다.
영화 속 ‘고드’와는 다르다. 특수부대원이든 킬러든, 임무를 수행할 때는 신분의 은폐가 필수적이다.
건은 걸어가다가 야트막한 담벼락을 밟고 훌쩍 뛰어올랐다.
화약 냄새가 자욱한 대로. 발 아래쪽에서는 거친 고함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제기랄 놈들, 일단 물러나!”
“마저 쏘고 빠져! 뒤로 가서 민가에서 전열을 정비한다!”
“기관총, 저 빌어먹을 것만 아니었으면 죄다 가죽을 벗겨 버리는데······!”
격렬한 스페인어 억양이 청각에 잡힌다. 예상대로, 두 쪽 중 밀리는 녀석들은 시가지에서 물러나 가옥을 점거하려 하고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60명의 대인원이 발각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럴 순 없지.”
건은 총신을 잘라낸 기관단총의 손잡이를 쥐었다. 실로 오랜만에 쥐는 싸늘하고 묵직한 감촉이 손 전체로 퍼져나갔다.
동생이 폭행을 당했을 때, 업계의 악인이 주변 사람들까지 노릴 때, 동료의 머리 위로 나무토막이 떨어질 때······.
귀환 후, 자잘한 위기는 많았지만 ‘진짜’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처음이다.
타앙!
격발된 총신의 반동을 강철 같은 근육이 제어하고, 날아간 탄환은 막 사격 중이던 조직원의 오른팔을 관통한다.
“아아악!”
고통에 찬 비명소리를 들으며, 건은 곧바로 다음 과녁을 조준했다.
지나친 총격은 피의 보복을 낳는다. 여기서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생명에 지장이 없는 상박과 하박 사이를 사격하는 게 옳다.
‘다시 총은 쥐지 못할 정도로만.’
기동력을 빼앗지는 않는다.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쉽지만, 느지막이 출동한 경찰과 사생결단이라도 내면 괜한 희생자만 늘어난다.
“새로운 놈이다! 측면에서 온다!”
네 번째 놈에게서 총을 빼앗았을 때, 눈치 빠른 놈 하나가 외쳤다.
금방 이쪽으로 총알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건은 공포에 질린 조직원의 뒷목을 쳐 기절시키고 전장을 이탈했다.
피슝, 핑! 총알이 부순 파편들이 여기저기 날았지만, 저런 것은 위협이 되지 못한다.
카메라와 합기?
이 역시도 필요치 않다. 손에서 타오르는 붉은 권능은 같은 인간이 아닌 악마를 상대하기 위한 용사의 힘이므로.
지금이 다큐멘터리 촬영이고, 어디선가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더라면 좀더 빨랐겠지만······.
‘지금 몸 상태면 충분해. 중화기도 없고, 훈련받은 요원들도 아니다.’
건은 희미한 아쉬움을 지웠다. 상대는 고작 카르텔 조직원일 뿐이다.
동료들의 원수도 아니고, 손짓 한 번으로 병사를 쓸어버리던 대악마도 아닌.
퍽!
또 한 명이 쓰러졌다. 그는 허물어지는 사내를 지나쳐 달려갔다.
다음 목표는, 거리를 초토화시키는 기관총 사수들이다.
*
지미 존, 닉스 클랜의 3인자는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또는 전날 피운 마리화나 때문에 전투 중 환상을 보는 거라고.
‘아니··· 사실 죽어서 지옥에 온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 만큼,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비현실적이었다.
웬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놈이 나타나더니,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부하들의 팔목을 작살냈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관총 탄막을 뚫으려는 시도조차 안 하고, 저 지붕 꼭대기에서 뛰어내렸을 때는 무슨 전설 속 암살자인가 싶었다.
“지원군이 왔다! 보스가 킬러를 고용했다!”
신이 나서 떠들던 카야 클랜의 얼간이들도 같은 신세를 피할 순 없었다.
어이가 없도록 공평한 것이, 저 미친놈은 이쪽 전장과 저쪽 전장을 옮겨 가며 양쪽 조직원들을 공평하게 눕혔다.
클랜 전체가 움직였다면 병력이 많았겠지만, 그럼 진짜 전쟁이 된다.
따라서 이곳에 온 인원은 이십 명 미만. 그 중 벌써 삼분지 이가 저놈에게 총을 빼앗기고 기절해 드러누웠다.
“척! 어딨어!”
“미친놈아, 앞이나 봐! 그 새낀 아까 갔어!”
이내 서로에게 총질을 하던 두 조직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소강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부하들 둘과 주춤거리는 존의 앞에, 드디어 놈이 나타났다.
터벅, 탁.
시끄럽게 울리던 총성과 폭음은 이제 없다. 더 이상은 위협조차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걸까.
달빛 속, 흙투성이 거리를 걸어온 복면은 눈앞에서 권총의 탄창을 떨어뜨렸다.
“······.”
쏘려면 쏠 수 있는 거리건만, 일순간 압도당한 조직원들은 멍하니 적을 쳐다보았다.
그들과 같은 검은머리··· 평범한 여행객의 복장이었으나, 앞섶과 등에는 온갖 총기류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존은 금방 알아보았다. 저 총들은 저놈이 가져온 게 아니라, 여기서 싸우던 두 조직에게 빼앗은 노획품들이다.
“이 새끼, 쏴!”
“죽여 버려!”
부하들이 눈이 뒤집혀 총을 발사했지만, 놈은 이미 거기에 없었다.
빡, 퍽! 이쪽 지방을 종종 휩쓸던 돌개바람처럼, 순식간에 셋을 눕힌 복면 사내는 그의 뒤통수에 총구를 갖다 댔다. 존이 채 놈에게 총을 겨누기도 전이었다.
‘안 된다. 몇 명이 있어도 안 돼, 당국이 어떻게 이런 인간병기를······.’
존이 절망할 때, 놀랍게도 스페인어가 들렸다.
“이 인원이 전부인가?”
태어나 쭉 보고타에서 살아온, 저 수도의 모범생이 쓸 법한 딱딱하고 억양 없는 발음이었다.
존은 이를 악문 채 답했다.
“지원이 곧 올 거다. 우리 클랜원 전부가 움직이면······.”
“허세는 이롭지 않아. 지금 정도의 무장이라면 몇 명이 더 와도 희생자만 늘 뿐이다.”
담담하게 말한 복면 사내는 정적이 내리깔린 거리를 굽어보았다.
폭풍이 휩쓸고 간 듯, 엉망이 된 대로변에는 조직원들이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놈은 팔만 명중시켰다지만 그 전까지 벌어지던 것은 실제 총격전이다.
큰 부상을 입거나 사망한 자들도 더러 있어, 여기저기서 신음이 들려오는 중이었다.
“돌아가. 그리고 총질은 너희끼리 해라, 괜한 사람들한테 피해 끼치지 말고.”
“···여기가 우리 구역······.”
“서른다섯 명.”
말을 자른 복면은 총구를 내렸다. 마치 존 정도는 언제라도 제압할 수 있다는 듯이.
“그 중 셋이 죽었고, 둘이 크게 다쳤다. 내가 마음을 먹었다면 나머지 모두가 사망했겠지.”
“······.”
존은 입을 다물었다. 그가 데려온 조직원이 열아홉 명, 나머지는 카야 클랜의 머릿수일 것이다.
이쪽은 전부 권총과 소총으로 무장··· 심지어 양측에 기관총이 한 대 이상씩 있었는데도 모조리 제압당했다.
밤이고 전투 중 기습을 감안하더라도 괴기스러운 활약이 아닐 수 없다.
“너는··· 넌 누구냐? 당국이 키워낸 새로운 개인가?”
“그럴 수도 있고.”
긍정도 부정도 아닌 답을 던지더니, 복면은 문득 존의 눈동자를 똑바로 들여다봤다.
“삶은 짧아.”
“뭐라고?”
“짧은 삶을 고통으로 물들이지 마라. 모두가 그 굴레 속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어.”
수수께끼 같은 소리에 이어, 손바닥이 내밀어졌다. 존은 어리둥절해져서 손과 놈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뭐, 어쩌라고?”
“무기를 내놔. 네가 마지막이었다.”
방심한 것 같은데, 지금이라면 혹시······.
클랜의 3인자다운 호승심이 뇌리를 스쳤으나, 본능적 직감이 존을 막아섰다.
‘그러다 죽어, 병신아.’
결국 그는 제 손으로 무장을 탈탈 털어 저 강도 놈에게 건넸다.
이미 총을 잔뜩 찼으면서, 존의 권총을 또 허리춤에 쑤셔 넣은 복면은 마지막까지 속을 긁었다.
“총기들 상태가 다 나쁘군. 돌아가면 총질 전에 관리부터 하라고 해.”
“······.”
*
박건이 돌연 사라진 뒤, ‘고드’ 팀 스탭들은 두려움에 떨며 기다려야 했다.
시가지에서 들려오던 총소리가 격해지다가 잠잠해지고, 이윽고 완전히 사라졌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박건이 돌아왔을 때,
“혀어엉!”
마음을 졸이던 박선이 눈물범벅이 되어 형을 맞았다.
아무리 그 박건일지라도 상대는 진짜 총, 거기다 악명 높은 남미의 마약상들이다.
혹시나 형이 스친 총알에 맞는 건 아닐까, 자기도 달려가려는 박선을 김양호와 한국인 스턴트맨들이 겨우 잡고 있었던 것이다.
“괜찮아. 다 끝났어.”
동생을 다독이는 박건에게, 안색이 창백해진 레이먼이 다가와 물었다.
“어떻게 됐소? 총소리가 멈췄던데.”
“싸움을 끝냈습니다.”
박건이 담담하게 대답하자 술렁거림이 퍼져나갔다. 촬영 내내 믿을 수 없는 움직임을 보였다지만, 그래 봐야 배우가 아닌가.
더군다나 혼자, 정말로 마약 카르텔 조직원들을 전부 제압했다는 말인가?
“이거 풀어, 찢어 죽일 놈들아! 너희들, 다 봐 놨어. 우리 클랜이 가죽을 산 채로 벗겨 전깃줄에 매달아 놓을 거다!”
눈이 가려진 채, 저만치서 말린 굴비 꼴로 묶여 있던 조직원이 외쳐 댔다.
그 꼴을 보던 레이먼이 이마를 짚었다.
“···어떻게, 아니. 물어도 의미가 없겠군. 이제 우린 뭘 하면 되나?”
박건은 어슴푸레한 하늘을 흘끗 올려다봤다.
“머잖아 경찰들이 도착할 겁니다. 거기서 이자를 인계하고 이동하시죠.”
“이동이라면 어디로······.”
“숙소로요. 내일까지는 안전할 겁니다, 전부 부상을 입은 데다 총기까지 빼앗아서.”
박건이 그때껏 메고 있던 소총과 권총, 몇 정의 리볼버를 꺼내자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저 무기들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던 탓이다.
“···이거, 사실 정반대였잖아. 영화 속 배역이 배우를 연기하던 거였나?”
스탭 중 누군가가 중얼거리자 또 다른 스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진짜 고드가 여기 있었어.”
현지 시각 새벽 05시 32분,
총격전이 끝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