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5)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5화(15/199)
안방 데뷔전 (4)
* * *
모처럼 낮 촬영이 없는 날이다.
카체이싱 장면과 폭파 장면을 찍는 한밤중 로케라, 나종모 PD는 푹 쉬다가 밤에 오라고 했다.
동생 박선은 어디로 전화를 건다, 누구랑 약속을 잡는다 아침부터 분주했다.
“연락 온 소속사 몇 군데 만나보고 올게. 촬영 없을 때 빨리빨리 쳐내 버리게.”
“내가 같이 안 가도 돼?”
“원래 1차는 매니저만 나가서 간 보는 거야. 추려지면 그때 형이랑 같이 보면 돼.”
건은 백팩에 책들을 챙겼다. 대출한 책들을 반납하기 전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 요량이었는데, 갑자기 박선이 불렀다.
“형, 선글라스 없어? 아니면 모자나.”
“왜?”
“가려야지! 사람들이 알아볼 거 아냐.”
“몇 화 방송도 안 했는데 뭐. 화면이랑도 달라서 괜찮을 거야.”
박선은 고개를 젓다가 씩 웃었다.
“···아니다, 그냥 한번 나갔다 와 봐. 더 인기 많아지기 전에 순한 맛으로 적응부터 해야지.”
동생이 왠지 음흉하게 웃으며 한 말의 뜻은 금방 알게 되었다.
“저, 혹시··· 그 최승 씨?”
카페에서 커피를 시킬 때였다. 주문을 받다 말고 그를 빤히 쳐다보던 여자 알바생이 배역 이름을 불렀다.
“예. 최승 역 맡은 박건입니다.”
“어머, 무슨 일이야. 저 1화부터 쭉 본방사수하고 있어요! 어제 SNS도 만드셔서 팔로우도 눌렀는데······!”
알바생은 자기 폰을 켜더니 팔로우 중인 그의 SNS까지 보여줬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미 너무 열일 중이신데요. 혹시 사인 하나만 부탁드려도······.”
“물론입니다.”
사인을 해 주고는 자리에 앉아 책을 펴자 본격적인 수난이 시작됐다.
알바생이 꺅꺅대는 것을 저만치서 관심 깊게 지켜보던 여성 무리가 다가온 것이다.
“저기, 서울의 개 나오신 배우님······?”
“맞습니다.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감사하죠! 와, 근데 실물이 훨씬 잘생기셨어요.”
“대박, 화면보다 얼굴 크기가 더 작으셔. 이래야 연예인 하는구나.”
덕분에 때 아닌 팬사인회가 열렸다. 마지막은 여자친구가 팬이라며 사진을 부탁한 커플이었다.
“와, 자기 진짜 못생겼다.”
“오징어 된 건 너도 똑같거든? 그럴까봐 옆에 가지 말자니까.”
셀카를 확인한 커플이 투닥거리며 돌아간 뒤, 그제야 건은 커피를 들었다.
아메리카노 컵홀더에 귀여운 글씨체로 응원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서울의 개 화이팅! 배우님 힘내세요!]‘힘들 일도 안 했는데.’
이 배우란 직업은, 생각보다 용사와 닮은 점이 많았다.
첫째는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점에서,
둘째는 꽤 맹목적인 호감을 보인다는 점에서.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다. 악마와 인간을 잔뜩 죽이고 돌아와, 여기서도 누군가를 죽이는 배역을 맡고 있다.
‘그걸 좋아해 주는 건 더 신기하고.’
직업적 복지는 이쪽 세상이 더 낫다.
여긴 인간 백정 역할에 육십만 원씩 주지만, 중세에서 배신자들의 목을 날릴 때 군중은 환호하면서도 두려움에 떨었다.
ㅡ용사님, 그냥 다른 애들 시켜요.
ㅡ뭘요?
ㅡ사람 잘 못 죽이잖아요. 한스나 코펜이나, 뇌에 좆 박은 머저리들한테 시키라고요. 그렇게 세상 죄 다 짊어진 표정 하지 말고.
한 명만 빼고.
건은 고개를 흔들었다.
대악마와의 전투는커녕, 이상한 기억만 떠오르는 걸 보니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저, 혹시 드라마 나오신 분······.”
“예. 맞습니다.”
“팬이에요! 사진 한 장만요!”
카페 손님들이 연예인이 있다며 지인들을 부르는 바람에, 건은 몇 번이나 더 사진을 찍었다.
‘왜 모자가 필요하다는 줄 알겠네.’
결국 책은 얼마 읽지도 못했다. 가방을 메고 나오는데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따라왔다.
“이 배우님, 이름이 박건이라고 하지 않았나? 왜 고드라고 적었지?”
“영어 이름이 그건가 보지. 그나저나 사인 필기체 개쩐다.”
*
도서관에서도 건을 알아본 몇 명이 사인을 부탁하는 소동이 있었다.
로비로 나와, 2차 팬 사인회를 마칠 즈음 박선의 메시지가 들어왔다.
-형, 잘 하고 있어! 지금 도서관에 최승 나타났다고 인증샷 올라오거든? 나간 김에 어그로나 실컷 끌고 다녀!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잘 하고 있다니 다행이었다. 건은 사진을 마저 찍어 주곤 답장을 보냈다.
-한번 노력해 볼게.
동생의 당부대로, 돌아오는 길엔 오락실도 잠시 들렀다.
“와, 손님은 연예인 해도 되겠어요. 제가 여기서 장사만 십오 년째 하는데, 여태 본 남자들 중 제일 잘생기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저게 사격 상품인가요?”
“열 개, 스무 개, 서른 개마다 달라집니다! 아, 동영상도 찍어 드릴까요?”
텐션 높던 오락실 사장은 그가 서른 개를 곧바로 맞추자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진짜 잘 쏘시네··· 설마 사격 선수는 아니시죠? 죄송하지만 전공자한텐 상품 증정이······.”
“제대한 지 얼마 안 됐습니다.”
결국 사장은 울상이 되어 상품인 거대 인형들을 포장해 주었다.
‘차에 놓고 베면 좋겠네.’
생각하면서 나가려던 그의 눈에, 가게 입구의 펀치머신이 들어왔다. 주먹으로 쳐서 기록을 갱신하는 평범한 오락기였다.
“저, 저건 기록 세우셔도 뭐 없어요!”
“알겠습니다. 이것도 좀 찍어 주실 수 있나요?”
“예··· 뭐, 해 드리죠.”
휴대폰을 든 사장이 왠지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건은 펀치기계로 걸어갔다.
이십 분 후.
허겁지겁 미팅을 끝내고 달려온 박선이 오락실 문을 열어젖혔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게 무슨 일이래, 다들 어디 다친 곳은··· 예, 당연히 변상해 드려야죠. 그런데 영상을 찍으셨다고요?”
*
다음날, 촬영장에 도착하자마자 나종모 PD가 희희낙락하며 팔을 펼쳤다.
“우리 최승 씨, 또 한 건 했네.”
“예?”
“펀치머신 모가지 꺾어 버렸잖아요. 우리 스탭들도 한번씩 돌아가면서 다 봤어요.”
SNS의 반응은 오면서 박선이 보여 줬지만, 여기까지 소문이 퍼졌을 줄은 몰랐다.
김정남 촬영감독이 거들었다.
“배우가 이슈를 만들어 주면 우린 고맙죠. 컨텐츠도 배역이랑 잘 맞았고.”
“아니, 난 멀쩡한 기계를 때려 부순 게 더 신기해. 그게 어떻게 되지?”
“운이 좋았습니다.”
건이 겸손하게 대답하자 또 스탭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그게 어떻게 운이 좋아! 노리고 부순 거지!”
“나도 소싯적 좀 쳐 봤는데 절대 못 부숴요. 이건 박건 씨니까 가능한 거야!”
어젯밤, 유튜브에 쇼츠 하나가 올라왔다.
제목은 ‘흔한 배우의 펀치머신 파괴’.
평범한 동네 오락실. 띠리링, 음악이 나오고 남자가 주먹을 휘두르자 펀치머신의 머리가 우지직 소리와 함께 꺾인다.
촬영하던 사람이 사장이었는지, 앵글이 우뚝 멈추며 정적이 흐르는 것이 감상 포인트.
영상은 웃긴 ‘짤줍’ 페이지로 퍼져나가며 드라마를 안 보던 머글들을 끌어모았다.
-뭐야 이거…?
-주작이네주작이네주작이네주작이네
-이사람 누구임?
-서울의 개 신인 배우임.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최근에 뜨는 중.
-우리 인간병기 킹갓제네럴충무공최승님께 존칭 안 붙였냐 지금?
-주작은 무슨 ㅋㅋㅋㅋ 서울의 개 검색해서 격투씬들 보고 오셈 ㅇㅇ 개지릴거임
-액션이 아니라 얼굴이 지리는데요 선생님
그 밑에는 또 ‘서울의 개’ 고정 시청자들이 자랑스럽게 프로필을 읊는다.
원래 나만 아는 걸 가르쳐 줄 때가 뿌듯한 법이다. 의기양양해진 박선이 묻지도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었다.
“CCTV도 아니고 폰 동영상으로 찍었다는데, 딱 홍보용으로 좋겠다 싶더라고요. 백오십만 원 물어주고 그 펀치머신 집으로 가져왔어요.”
“와, 홍보비치곤 세다. 우리가 열심히 찍어서 건이 씨 지출 메꿔야겠네.”
“박 배우님 손은? 다친 데 없어요?”
“예. 쿠션이 있어서 멀쩡합니다.”
말하면서 건은 오른손을 내보였다. 굴곡진 주먹 관절은 흉터 하나 없이 매끈했다.
물론, 그놈의 기계를 부순 건 실수가 맞았다. 그래도 펀치머신이라 힘조절을 안 했는데 설마 목이 꺾일 줄은 몰랐다.
‘앞으론 좀 조심해야겠어.’
어느 새 옆으로 온 현도균 무술감독까지 합류해 수다를 떨어 댔다.
“나 피디님, 이거 진짜 대단한 겁니다. 나는 처음 박 배우 봤을 때부터 고수의 아우라를 딱 느꼈어요. 아시죠?”
“알죠. 우리 현 감독님, 박건 씨 덕분에 아무것도 안 하고 놀다 가시는 거. 요즘은 아예 디렉팅 다 맡기고 조기퇴근하신다면서?”
“그게, 어젠 둘째가 여름감기를······.”
현도균이 진땀을 흘리며 변명하는 사이, 조연출이 현황을 중계했다.
“시청률도 갈수록 올라가요. 드라마 각본이랑 배우들 SNS가 나란히 쌍끌이를 해서, 막화도 좀 남았는데 25%가 목전이라니까요.”
“쌍끌이 좋죠. 저도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마주 웃은 건은 시선을 옮겼다. 죄라도 진 사람마냥, 저만치서 이쪽을 흘끔대던 황보준이 히익! 숨을 들이키며 도망쳤다.
나 PD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보준 씨는 왜 저래? 뭘 잘못 먹었나?”
촬영용 의자에 용준상과 나란히 앉아 있던 서희도가 꼴좋다는 듯 히죽댔다.
“냅두세요, 피디님. 찔리는 게 있나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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