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51)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51화(151/199)
여름의 수확제 (1)
* * *
시간은 흐른다.
눈발 흩날리는 겨울이 지나고, 거리의 가로수들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DG, 또다시 로만에 완패··· 연기력과 시청률 모두 싸늘] [추노꾼, 여검사, 일타강사까지··· <구백진> 트리오의 안방극장 접수, 지금은 “로만 전성시대”] [최필립 주연 ‘퀵서비스’ 개봉 3일 만에 OTT 순위 2위 껑충··· 흥행 돌풍 초읽기]안방극장은 그간 로만의 생계를 책임졌던, 원조 ‘빅4’가 점령했다.
일타강사 역할의 진지유, 여검사 배역의 백하니 등 여배우들의 약진이 특히 도드라졌다.
특히 같은 로코로 진지유와 맞붙은 기은서는, 시청률은 물론이고 온갖 굴욕 짤을 남기며 마스크에서도 참패했다는 혹평을 받았다.
싸움에는 기세란 것이 있다.
그 기세를 이끌던 선두, 박건의 존재가 없음에도 국지전에서 이긴다는 것은······.
“갈 놈은 가야지. 차인혁이가 나가고 변동근 대표도 예전만 못하다는 소문이 돌아.”
로만 사옥 앞 카페, 요즘 부쩍 붐비는 그 한쪽 자리에서 헤드헌터들이 모였다.
한창 DG의 횡포가 판을 칠 때, 차인혁에게 모욕당했던 헤드헌터가 꼴 좋다는 듯 히죽거렸다.
“몇 년을 해먹었는데, 그럴 만도 하지. 말이 나와 말이지만 차인혁 뒤에서 물어오는 꿀만 빨았었잖아?”
“조이너스도 영 힘을 못 쓰는 건 의외네. 딱히 타격도 안 받은 것 같은데.”
“어허, 거긴 이거잖아.”
주변을 쓱 둘러본 헤드헌터 한 명이 코를 킁킁대는 제스처를 해 보였다.
몇 달 전부터, 꾸준히 불거지는 조이너스 아티스트들의 마약 문제를 꼬집는 것이다.
“대마, 프로포폴, 코카인, 케타민··· 어째 하나를 안 한 놈들이 없어. 한쪽은 감이 없고 다른 한쪽은 약국이니, 노 대표만 노났지.”
“그러게. 노중만이는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르겠어, 아주.”
“스캔들 안 나, 사고 안 쳐, 작품들은 또 기가 막히게 골라··· 살판 제대로 났지.”
헤드헌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끄덕거렸다.
요즘 가장 잘나가는 기획사를 뽑으라면, 전문가 열 명 중 아홉이 로만을 찍을 것이다.
박건의 합류 전··· DG와 조이너스가 압도적 2강 체제를 유지할 때, 로만의 위치는 건실한 중견 기획사였다.
걸출한 라이징스타를 배출하고, 정면대결에서 강적들을 몇 번이나 찍어누른 지금은 다르다. 오죽하면 ‘로조디’라는 이름이 붙겠는가.
“근데 그건 어떻게 된 걸까? 콜롬비아 마피아 총격전 말야.”
“그냥 운 좋게 비켜간 거 아니겠어? 박건이 위험감지센서로 유명하잖아.”
몇 달 전, 남미 로케를 소화하던 ‘고드’ 촬영 팀이 총격전에 휩쓸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콜롬비아의 무슨 도시였던가, 하필 찍으러 간 날 그 도시에서 마약상 클랜원들끼리 세력다툼을 벌였다는 것이었다.
“글쎄··· 내가 아는 사람은 박건이 다 쓸어버린 거라던데. 스탭들한테 피해가 안 가게.”
듣던 헤드헌터가 웃음을 터뜨렸다.
“허이고, 그건 좀 멀리 갔다. 배우가 무장한 마피아들을 어떻게 때려잡아?”
“그러니까. 그것도 뒤에 군식구를 수십이나 달고, 말이 안 되는 소리지.”
“혹시 모르는 거야. 진짜 특수부대 요원이었다잖아, 백정장군 노 와이어 액션을 생각해 봐.”
금세 자리가 시끄러워졌다. 그들도 헤드헌터이기 전에 한 명의 사람이자 팬이다.
불가사의한 박건의 무력이 마피아한테 통했을까, 그렇지 못할까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한참이나 이어지던 논쟁을 10년차 팀장 하나가 종결지었다.
“···어린애들이 따로 없군. 정 궁금하면 나중에 직접 물어봐.”
“그건 좀··· 한 대 맞을 것 같은데요.”
“박건이? 그 양반은 관계자고 팬이고 서비스는 확실해. 언제 귀국할지 몰라서 그렇지.”
“어, 그러고 보니 슬슬 끝날 때 아니에요? 크랭크인 들어간 게 작년 여름이면.”
헤드헌터 팀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더 찍는다던데, 내용이 늘어났다고.”
그 말대로다.
로만 소속 아티스트들이 승승장구하는 것과 별개로, 얼마 안 가 크랭크업 할 거라던 변휘승의 예언은 절반만 맞아떨어졌다.
촬영 일정들이 예정보다 빠르게 소화된 것은 사실이었지만, 중간에 대본이 수정된 탓이었다.
“야, 이게 말이 돼? 이럴 줄 알았으면 내기도 안 걸었지!”
“죄송하지만 형님, 봄까지 안 끝났죠? 얼른 오만 원 주십쇼.”
생돈을 뜯긴 변휘승이 열을 내든 말든, 영화 촬영은 계속되었다.
미국에서의 로케이션을 끝내고 다시금 스페인으로. 또 거기서 캄보디아로.
긴 기다림에 지친 팬들의 마음을 달래듯, ‘고드’ 제작진은 공식 계정에 짧은 영상을 업로드하며 소식을 전했다.
그중에서도 네 시간의 촬영허가를 받아내 찍은 앙코르와트 사원 씬이 하이라이트였다.
[고드, 앙코르와트를 오르다]앙코르와트의 회백색 하늘 아래. 경사가 무려 70도나 되는 사원 계단을, 평지처럼 뛰어올라가며 적들을 쏘아 쓰러뜨린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처럼, 엄숙한 비장미까지 곁들여진 영상은 순식간에 리트윗 1만 회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외에도 롱소드로 펼치는 소드 레슬링, 백린탄과 화염방사기를 쓰는 탑 앵글 씬 등 다양한 쇼츠가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그리고 돌아온 6월,
드디어, 크랭크 업 오피셜이 떴다.
*
박건의 귀국일.
공항은 몰려든 팬들과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마침내 도어가 열리며 배우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비명에 가까운 환호가 터져나왔다.
“박건! 박건!”
“건이 오빠, 여기 좀 봐주세요!”
“장하다, 멋지다, 박건!”
흰 티에 청바지. 캐리어 두 대를 끌며 나타난 박건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인파를 휘둘러보았다.
오랜 해외 촬영 때문일까. 하얗던 얼굴은 살짝 그을려 있다. 일 년 사이 제법 자란 머리카락도 눈썹에 닿을 듯 흔들린다.
그것만 빼면 이질감이라곤 없다. 긴 로케이션이 분명 고됐을 텐데, 마치 잠시 해외여행을 즐기고 온 느낌이다.
“크랭크업 축하드립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랜 비행이셨을 텐데요. 지금 피곤하진 않으십니까?”
미리 배치된 경호원들이 막고는 있지만, 저 인파를 완전히 저지할 수는 없다.
휴대폰을 들이대며 외치는 기자 한 명을 향해, 문득 돌아본 박건이 답했다.
“괜찮습니다.”
그것이 신호나 다름없었다. 단 한 마디에 정적이 깔리고 작은 인터뷰장이 열렸다.
박건을 쫓던 팬들은 물론, 뒤쪽의 박선이나 김양호를 따라가던 기자들도 하던 것을 멈추고 멍하니 귀를 기울인다.
“어··· 영화 촬영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얼결에 대표를 맡게 된 기자가, 꿀꺽 침을 삼키곤 다시 질문했다.
“즐거웠습니다. 좋은 기회로, 해 보지 못했던 경험들을 쌓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크랭크업이 끝났는데, 개봉은 언제로 예상하고 계십니까?
“아마 늦지 않을 겁니다. 흑의사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이제 대배우가 된 이의 입에서 데뷔작 제목이 나오자 술렁거림이 퍼져나갔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끝났음을 직감하는 순간이 온다. 기자는 아쉬움 속에서 물었다.
“수많은 팬들이 박건 배우의 귀국만을 기다렸는데요. 팬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나오는 답이 즉발이었다면, 이번에는 의외로 텀이 있었다.
박건은 정적 속에서 그를 에워싼 인파의 무리를 둘러보았다.
긴 꿈에서 막 깬 듯, 얼떨떨하던 눈동자 속에 웃음이 번져 갔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칸을 휩쓸었던 사제가,
본업을 찾아 귀향했다.
*
로만 엔터테인먼트 대표실.
사람과 세상이 변하듯, 머무는 공간도 변한다. 대표실로 들어온 박건은 흥미롭다는 듯 내부를 둘러보았다.
“자네가 없는 동안 좀 달라졌지. 새 인테리어가 마음에 드나?”
지하주차장에서부터 만나, 함께 올라온 노중만 대표가 옅게 웃으며 물었다.
박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구들이 많이 변했군요.”
대표 배우들의 사진, 출연작의 스냅샷들이 걸려 있던 벽은 그대로다.
단 액자 안 사진들이 전부 바뀌었다. 퍼핑돌즈와 퀸텀의 음방 1위 사진, ‘백정장군’의 백하니, ‘망회돌’ 시절의 세 남자 배우······.
그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배우는 박건 자신이다. 입구 쪽 액자엔 칸에서 수상소감을 하는 사진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변했다고 해야 하나? 나간 사람은 없어서 다행이지. 어지간한 기획사들도 연예인들을 못 잡아서 곡소리가 난다는데.”
“나가 있어서 몰랐습니다.”
“한국에 있어도 몰랐을 거 알아. 박 배우 관심사가 여간 적어야지.”
이내 둘은 대표실 소파에 앉았다. 대표도 배우도, 꽤나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지만 양쪽 다 어색함은 없다.
탁자 위 찻잔에서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한 모금 마신 노중만이 먼저 입을 뗐다.
“첫 해외촬영은 어땠나?”
박건도 찻잔을 들었다. 간단한 동작으로도 반팔 소매 밑의 근육이 꿈틀거린다.
“좋았습니다. 예전 생각도 났고요.”
“예전 생각?”
“군에 있을 때, 작전을 수행하러 해외로 자주 나갔으니까요. 이번에도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콜롬비아에서는 좀 위험해 보였는데.”
국내 언론은 물론, 당국에서도 클랜끼리의 총격전을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
공식 트위터나 관계자 오피셜도 뜨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운 좋게 그 자리에 없었다’로 이해하고 넘어간 상태였다.
“가장 큰 조직이 해체된 뒤, 두 클랜이 세력다툼을 벌이던 중이었습니다. 스탭들까지 위험해지기 전에 그들을 무력화시켰습니다.”
담담한 말투에, 그렇지 못한 내용이 아무렇지 않게 흘러나왔다.
마피아들을 물리치는 영화배우··· 일견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으나, 노중만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어. 다친 곳은······.”
“없습니다. 제작진도 모두 무사하고요.”
몸값이 천정부지로 뛴 지금, 본인의 신변보다 동료들부터 챙기는 습관도 여전하다.
함께 작업했던 감독과 작가, 스탭들이 괜히 ‘박건의 신작’ 얘기만 나오면 열일 제쳐놓고 달려간다고 하겠는가.
“그래. 원하던 것은 얻어서 돌아왔나?”
박건은 대답 대신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배우든 가수든 목을 아껴야 한다는 대표의 지론답게, 대표실에서는 사시사철 차가운 음료가 아닌 뜨거운 음료가 나왔다.
“맨 처음, 제가 여기 왔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대부분은.”
“그때 말씀드렸었죠. 찾고 있는 게 있어서, 연기를 통해 목표한 바를 이루려 한다고.”
“그랬었지. 나는 계약조건을 다 맞춰 주겠다며 자네한테 매달렸고.”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대표실에 퍼져나갔다. 마주 미소 짓던 박건이 말했다.
“끝이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노중만의 표정에서도 웃음기가 지워졌다.
혜성은 나타나는 것만큼 빠르게 사라진다. 저 끝이 어떤 의미냐에 따라, 한국의 연예계는 걸출한 배우 하나를 잃을지도 모른다.
“이번 작품으로?”
“전부는 아니지만요. 제가 하려던 일들··· 잊고 있던 기억들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저 히라르도타와 앙코르와트를 거치면서.”
그걸 찾고 나면, 다시 떠날 생각인가? 노중만은 목 끝까지 올라온 질문을 밀어넣었다.
기획사의 대표이자 저 청년을 이 바닥에 데려온 장본인으로서, 그는 소속 배우가 원하는 것을 하게 해 줄 의무가 있다.
“개봉이 기대되는군. 대표가 아닌 팬으로서도.”
“저도 그렇습니다.”
“당분간은 좀 쉬지, 여독도 쌓였을 텐데.”
노중만의 말에, 박건은 고개를 저었다.
“아마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음 달쯤 다시 출국해야 해서요.”
“응? 또 왜?”
“쇼가 잡혔거든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