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52)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52화(152/199)
여름의 수확제 (2)
* * *
대한민국의 예능은 어떤 의미인가.
작게는 아이돌 및 신인들의 등용문이자, 크게는 작품 개봉을 앞둔 배우들이 홍보를 위해 돌아다니는 회전문이다.
그중에서도 몸집 큰 예능들의 파급력은 콧대 높은 아티스트라도 무시하기 힘들 정도.
지상파가 송출된 이래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방영되고 또 종영되었다.
MBS의 ‘저녁밥’, YTS의 ‘러닝크루’, KBC의 ‘어촌일지’ 등등이 현존하는 예능 중 가장 장수하는 인기 프로그램에 속한다.
보통 저 예능쯤 되면 출연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지만··· 물론 예외도 있다.
논외의 탑스타.
잘 나가는 것을 넘어선, 블루칩이 아니라 블랙칩 정도 되는 연예인의 얘기다.
“와, 이걸 까이네.”
YTS 사옥, 구내식당.
‘러닝크루’의 기획총괄을 담당한 박수한 PD가 머리를 움켜잡았다.
옆에서 밥을 먹던 음방 PD가 낄낄댔다.
“우리 박프로, 섭외율 100% 어쩌고 하더니 아주 콧대가 부서졌는데? 종우야, 쟤 성형외과 좀 데려가서 수술시켜 줘라.”
“아니, 들어 봐. 열심히 할 수 없어서 못 나온다는 게 말이 되냐고.”
“뭐, 박건이 그랬대?”
박수한 PD는 절망적으로 중얼거렸다.
“어. 지난번에 골녀석, 그 축구 예능에서 혼자 깽판치고 조기졸업했었잖아. 우리 프로도 그럴까봐 안 되겠다는 거야, 관심은 있는데 분량을 못 뽑을 것 같아서 죄송하다더라.”
“허, 참. 피지컬이 너무 좋다 보니까 그런 걱정도 있나 보네.”
“다른 사람이면 신박하게 깐다, 싶겠는데 그 박건이 저런다니까 신빙성이 있어.”
둘러앉아 있던 PD들이 한 마디씩 보탠다.
그도 그럴 것이, YTS의 ‘러닝크루’는 말 그대로 달리는 예능이다. 다양한 게임을 하면서, 결국에는 출연자들끼리 서로의 허리에 찬 꼬리를 빼앗아야 게임이 끝난다.
만약 거기 박건이 나온다면? 에이스고 뭐고 몇 분 만에 다 평정해 게임을 끝낼 것이다.
“근데 뭐, 좀 천천히 뛰면 되지 않아요? 그냥 하기 싫어서 깐 거 같기도 하고······.”
조연출 하나가 의견을 내놓자, 한때 박건을 스카웃하려 애썼던 이성운 PD가 잘랐다.
“네가 몰라서 그래. 박 배우 팬클럽 이름이 열혈건이야, 왜 그렇겠냐?”
“···저야 모르죠.”
“사람이 열혈이라 그런 거야. 절대 빈말 안 하고 자기가 한 말은 꼭 지켜서.”
납득의 끄덕거림이 퍼져나간다. 방송가의 소문에 가장 민감한 곳이 여기 아닌가.
예능국이고 드라마국이고, 시청률에 눈이 뒤집힌 PD들일지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한다.
이제 데뷔 3년차.
박건이란 배우는, 이 바닥에서 찾아보기 힘들 만큼 솔직한 인간이다.
“야, 박수한이. 너 JNBC 나종모랑 친하잖아. 그쪽에 부탁해서 컨택 좀 찔러 보라고 해.”
그때껏 침묵을 지키던 CP, 이용수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박수한 PD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벌써 연락해 봤죠. 안 된대요.”
“왜? 박건, 그 양반이 자기 사람들은 끔찍하게 챙긴다더만.”
“그래서 안 된대요. 내 드라마에도 아직 못 나왔는데 다른 방송국에 밀어줄 때냐면서.”
“에라이, 그놈은 글렀다.”
MBS 사람들이라면 이용수 CP의 포기 빠른 성품을 다 안다. PD들이 웃음을 참는 도중, 박수한이 못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신다.
“근데 진짜, 나오기만 하면 대박인데······.”
안타까울 만도 하다. 유독 MBS와 인연이 없던 박건 아닌가.
다른 방송국에선 드라마를 하나씩, 심지어 날을 세우던 KBC에서도 예능을 찍었는데 이쪽에 안 와주면 섭섭한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어디로 가겠대? 저녁밥, 아니면 어촌일지? 해외에서 찍은 영화라도 국내부터 홍보는 돌아야 될 거 아냐.”
“안 나간대요.”
“뭐?”
“다 안 나간다더라고요. 섭외 까이고 굵직한 예능잡이들 싹 전화 돌려서 확인했거든요, 배 아픈 김에 시비나 걸까 하고.”
“인마, 너는 왜 성질머리가······.”
이용수 CP가 혀를 차는 사이, 나머지 PD들 사이에선 갑론을박이 시작됐다.
“올 노쇼? 미쳤네. 자신감이 그만큼 있다는 건가.”
“다른 배우들은 많이 나오던데. 진지유, 구신승, 백하니까지 작품 들어가기 전에 예능 돌았잖아.”
“에이, 암만 박건이어도 국내 홍보를 다 포기할까. 제일 입맛 맞는 거 하나 고르려고 기다리는 중이겠지.”
결국 ‘칸의 아들’의 행보는 파악하지 못하고 점심시간이 끝났다.
다음 일정들을 위해 일어나는데, 감 좋기로 소문한 막내 PD가 혼잣말처럼 중얼댔다.
“진짜 해외 예능 잡혔는지도 모르죠. 제시 매킨토니 쇼나 SNL, 막 이런 것들요.”
“설마. 벌써 거기까지 섭외됐을까.”
.
.
.
그리고 바다 건너 저 멀리,
뉴욕의 대형 스튜디오에서는 실제로 저 동양인 배우의 이름이 나오고 있었다.
“뭐, 다음 호스트가 누구라고?”
“머신건! 무려 이름이 총인 배우라니까요, 국장님. 일 년밖에 안 됐는데 벌써 잊어버리셨어요?”
현재 NBS의 국장, 릭 오윈은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앞의 검은머리 사내를 노려보았다.
토비 리. 현재 SNL의 제작자이자 총괄 프로듀서인, 이 괴짜 천재가 칸에 다녀온 것이 벌써 일 년이 더 지났다.
‘국장님, 드디어 발견했어요! 새로운 마스크, 터프한 코미디언! 이거야말로 고여서 썩은 우리 쇼에 붉은 피를 수혈할 인재예요!’
그 당시 남우주연상인가, 작품상인가 받았다던 동양인 배우를 보고 난리를 쳤었다.
언젠가 꼭 섭외를 하겠다더니, 드디어 접촉이 된 모양이었다.
릭 오윈은 팔짱을 꼈다.
“그런데, 동양인이라고?”
선데이 나이트 라이브(Sunday Night Live), 속칭 SNL은 미국의 인기 코미디 쇼다.
시즌에 따라, 혹은 매주 바뀌는 호스트들마다 차이는 있지만, 현재 정치판 및 문화를 패러디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출연진 섭외며 프로그램 기획의 전권은 토비에게 있지만, 어쨌든 송출하는 대형 방송국의 국장으로서 신경을 안 쓸 수는 없다.
토비는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예, 말씀드렸잖아요.”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중국인인가?”
“한국인이요.”
“또 혹시나 해서 묻는······.”
“북한이 아니고 남한이니까, 그 뒷말은 안 물어보셔도 돼요. 지금은 10년 전이 아니라고요.”
하려던 말을 읽힌 릭 오윈은 헛기침을 했다.
“크흠, 흠. 아무튼··· 어차피 내가 뭐라고 해도 자네 마음대로 할 거잖나. 매번 그랬으면서 뭘 새삼스럽게 보고를 해.”
한국처럼 국장이 CP에게, CP가 PD들에게 강력한 전권을 행사하는 구도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국장의 입감은 강력하다.
토비는 이상한 소릴 들었다는 듯 귀를 후볐다.
“말이 다르신데요. 왜, 지난 시즌에 로잘리아가 나왔을 때는 왜 미리 말 안 했냐고 버럭버럭 화를 내셨잖아요. 당장 3주 전··· 존 유잉 회차엔 일정을 바꿨다고 잔소릴 하셨고, 지난주엔······.”
“···사소한 문제는 넘어가자고. 그나저나 그 배우한테는 왜 꽂힌 거야?”
SNL의 프로듀서는 시사, 잡학, 미술, 뭘 물어도 3초 안에 답이 나와 자타공인 ‘인간대백과사전’으로 불리곤 했다.
본인의 별명에 어울리지 않게, 토비는 잠시 뜸을 들였다. 릭 오윈이 장난기 어린 어조로 물었다.
“우리 천재 기획자께서 말문이 막혔군. 그쪽 영화 뒷배가 제법 빵빵하던데. 설마 42픽쳐스에서 뭐라도 받았나, 응?”
“받긴 뭘 받아요! 그냥 딱 봤을 때부터 감이 왔단 말이에요.”
“감? 무슨 감?”
“브로드웨이고 헐리우드고, 예술계 전반에 만연한 빌어먹을 인종차별. 여기다 정면으로 엿을 먹일 인재라고요.”
이젠 릭 오윈 쪽에서 말문이 막힐 차례였다.
SNL이 아무리 대통령까지 놀려먹는 프로그램이라지만, 저 괴짜가 저런 표정을 지을 때는 항상 강력한 훅이 기다리고 있었다.
필시 이번에도 맵다 못해 눈물이 쏙 빠지는 대본을 준비해 뒀을 것이다. 같은 아시아계로 당했을 경험까지 꾹꾹 눌러 담아.
“방영되는 주에 얘기해 주게. 전화를 좀 꺼 놓고 있어야겠으니까.”
“왜요? 잘 봤다는 연락은 받으셔야죠. 역대급 쇼가 될 텐데.”
“···아냐, 난 괜찮네.”
*
“SNL이라고요?!”
로만 엔터테인먼트 사옥 라운지.
커피를 마시던 홍보팀 여직원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자 공기형 팀장이 진정시켰다.
“쉿, 아직 오피셜은 아니니 흘리면 안 돼.”
“그래서 들어오는 예능들을 다 안 받았구나. 어쩐지, 일정을 조절하는 것 같더라니······.”
“아직 모른다니까. 선이 씨랑 본부장님이 오늘 최종조율 들어간다더라, 원격 미팅으로.”
늦은 오후. 저만치서 이야기를 나누는 A&R팀 직원 두엇을 빼면 라운지는 한산하다.
이번에는 남직원이 물었다.
“어디까지 얘기가 된 거래요? 도장만 찍으면 될 수준이려나?”
공 팀장은 팔짱을 꼈다.
“총괄 프로듀서가 먼저 컨택을 한 거라니까, 90% 이상은 확정이라고 봐야지.”
“에이, 그럼 사실상 오케이네요. 또 모른 척하다가 아슬아슬하게 흘리는 식으로.”
“박 배우님이 해외 프로덕션이랑 엮이고 나서부턴 뭘 하기가 어렵단 말이죠. 이게 월클의 불편함인가 싶기도 하고.”
부하 직원들의 한탄에, 공 팀장도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쩔 수 없는 이야기다. 이제 박건은 회사 안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큰, 홍보활동 하나조차 함부로 던질 수 없는 배우가 되었다.
예전이야 타임어택 여론전에 명운을 걸 때도 있었지만··· 칸을 기점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그렇게 투덜대지들 마. 언제까지 나만 아는 배우로 남을 거야, 세계로 뻗어나가면 더 응원해 줘야지.”
“어, 박건 씨는 데뷔 시즌부터 유명해졌는데.”
눈치 없는 남직원의 말을, 공 팀장이 매몰차게 가로챘다.
“됐고. 이번 달은 죽었다고 생각하자고. 박 배우 해외 일정이 하나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
“아······.”
“제발 살려주세요··· 지난주에도 닷새를 집에 못 들어갔는데······.”
홍보팀 최고권력자의 선언에 앓는 소리들이 새어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요 몇 달은 로만의 황금기라 불릴 만큼 소속 아티스트들의 활동이 많았다.
하필 대표 배우들이 우르르 작품을 들어가고, 거기다 아이돌들의 여름시즌 컴백까지 겹친 탓에 홍보팀은 퇴근을 반납하고 불살라야 했다.
낯빛이 거무죽죽해진 여직원이 물었다.
“우리 아티스트들, 무슨 경쟁이라도 한대요? 꼭 이렇게 한꺼번에 해야 했나?”
“경쟁이긴 했지. 박 배우 없을 때 한 건씩은 해 놔야 마음이 편하니까.”
그 결과, 로만은 DG와 조이너스를 위협하는 위치로 올라섰고 직원들은 더 바빠졌다.
올해는 홍보팀부터 로드, 트레이너, A&R팀 등 내부 직원들도 대대적으로 채용한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다.
“어쨌든, 박 배우님 홍보실 들르시면 사인 몇 장만 부탁드려야겠어요. 나중 되면 한국에도 잘 없으실 텐데.”
“타이밍 잘 잡아 봐. 요즘 매일같이 회식하느라 바쁘다더라.”
사인을 부탁하겠다던 남직원이 눈을 끔뻑였다.
“회식이요? 누구랑?”
“글쎄··· 지금까지 고마웠던 사람들이라던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