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53)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53화(153/199)
여름의 수확제 (3)
* * *
백제호텔 83층, 루프탑 라운지.
때아닌 바비큐 파티가 벌어졌다. 모이기로 한 사람들 중, 가장 늦게 도착한 최필립이 코를 킁킁대며 감탄했다.
“와, 이게 다 뭔 냄새야?”
오늘의 멤버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구신승과 진지유, 백하니 등 먼저 와 있던 로만 배우들이 저마다 인사를 건넸다.
“왔느냐, 막내야?”
“또 지각이네. 하여간 매니저만 없으면 저렇다니까.”
“역시 언니랑 닮은 점이 많아요.”
“······뭐?”
슬그머니 한마디 보태던 진지유가 딴청을 피웠다. 최필립은 휘적휘적 걸어와 앉다가 구신승을 보고 흠칫했다.
“뭐야, 이 양반은 왜 아직도 수염이 이래? 작품 끝난 지가 언젠데.”
“또 영화 들어간다잖아. 이번엔 왕 역할이라고, 사극 이미지 그대로 살린다면서 저 주접이야.”
그도 그럴 것이, 추노꾼 배역 내내 길렀던 수염은 벌써 텁수룩해졌다.
백하니가 질색하는 표정으로 구신승을 흘겨본 뒤, 바비큐 그릴 앞에 있던 주인공이 돌아섰다.
“저도 놀랐습니다. 감독님보다 더 풍성하게 나셔서요.”
“오, 우리 월드스타.”
“호강이라니까요. 월드스타가 구워주는 고기도 먹어 보고.”
조리모를 쓴 박건은 다 구워진 꼬치를 테이블로 올렸다.
“아직 아닙니다.”
오늘의 모임 컨셉은 ‘빅 5’, 배우 라인을 책임지는 기둥들을 다 데려왔다.
드라마가 다 끝난 진지유와 백하니, 영화 촬영이 지연되는 최필립, 새로운 사극에 들어가는 구신승까지 불러 모은 것이다.
“신기하긴 하네. 매니저도 없이 이 조합이 모인 건 처음 아냐?”
최필립이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봤다. 빈 잔들에 와인을 따라 주던 진지유도 동의했다.
“매니저 있을 때도 우리끼리만은 안 봤죠. 회사 송년회 때나 얼굴 비췄지.”
“그러니까. 얘네가 올 줄 알았으면 난 빠졌을 텐데, 어떤 사람한테 속아서······.”
백하니가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휴먼캠프’ 이후 진지유와는 비교적 관계가 호전됐다지만, 원조 앙숙이 한 명 더 있다.
최필립이 느긋하게 잔을 들었다.
“야, 나도 박건 씨 아니었으면 안 왔어.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여길 오냐?”
“같은 파티 동료니까요.”
뭐라고 대꾸하려던 백하니도 옆을 보았다. 박건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정정했다.
“아, 파티가 아니라 회사군요. 입국한 지 얼마 안 돼서 헷갈렸습니다.”
“···박건 씨 들어온 지 2주쯤 되지 않았나?”
최필립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지만,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사실 맞는 소리다. ‘망회돌’을 찍으며 친해진 은씨 집안 삼형제라면 모를까, 진지유와 백하니는 로만의 남배우들과 사적 접점이 없다.
이 모임을 가능케 한 것은 계약 3년 차, 신흥 에이스의 친화력인 것이다.
“그런 의미로, 전부터 이런 자리를 한번쯤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와 작품을 찍어 보기도 했고요.”
박건의 말에, 옆을 꿰차고 앉아 눈을 초롱초롱 빛내던 진지유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다들 건이 오빠랑 연기 한 번씩 해 봤잖아요?”
“그러네. 나랑 저 형은 망회돌 때, 진지유는 서울의 개랑 백정장군 때 특별출연으로.”
“야, 왜 나는 빼는데?”
졸지에 공기가 된 ‘백정장군’의 여주인공이 소리쳤지만, 박건은 침착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이 제 동료라는 것에.”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흘러나오는 희미한 음악소리와 숯이 타닥대며 타는 소리, 여름밤의 백색소음들만 공기 중을 떠돌았다.
옆머리를 긁은 최필립이 헛기침을 했다.
“크흠, 뭐··· 처음 오자마자 대표님 턱을 돌렸다잖아요. 나도 그렇게 될까 봐 맞춰 준 거지, 신입한테 발리면 망신이니까.”
“전 그런 적이 없습니다.”
“에이, 그 팀장은 지려서 실려갔다면서요.”
“오귀준 씨도 손끝 하나 안 댔는데요.”
박건의 해명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구신승이 텁수룩한 수염을 쓸며 말했다.
“그 치의 이름도 오랜만에 듣는군. 그러고는 깜짝아이도 나가지 않았던가?”
“깜짝아이? 그건 또 누구야?”
“하니 언니는 저 오빠 말투 잘 모르는구나. 와우키즈잖아요.”
“···와, 억지 미쳤네.”
박건의 개회사 아닌 개회사로 분위기는 금방 좋아졌다.
친하지 않아서 따로 안 봤다지만, 어쨌든 같은 회사에 같은 직종이다. 거기다 업계 위치까지 비슷하니 이야기도 쉴 틈 없이 이어진다.
“야, 너 요즘 회당 얼마냐? 본부장님이 이제 이거까지 준다던데?”
손가락 하나를 펴 보이는 최필립에게,
“뭐래, 그건 너 약 오르라고 한 소리고. 안 그래도 방송사들 허리띠 졸라매는데 어떻게 그만큼 받아?”
“맞다. 저 청의 자본이 들어오지 않으면 어렵지. 최 선배가 회당 2억 제시했다고 뒷말이 많았다 들었노라.”
퉁명스럽게나마 백하니가 대꾸를 해 주고,
“근데 오빤 왕이야, 추노꾼이야? 한잔하니까 또 컨셉 흔들리네.”
“광대 출신 왕이다. 폭군과 쌍둥이처럼 닮아 왕 노릇을 하지.”
구신승과 진지유가 새 영화의 배역부터 출연진에 대한 사담을 나눈다.
매번 좀 친하게 지내라며 잔소릴 하는 이성철 본부장이 봤다면 눈물을 흘렸을 광경이다.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는 박건의 팔을, 긴 손가락이 톡 건드렸다.
“왜 그렇게 아련하게 보고 있어요?”
박건은 고개를 돌렸다. 그 사이 몇 잔을 더 마셨는지, 뺨이 발그레해진 진지유가 옆자리로 와 있었다.
“아닙니다. 예전 생각이 나서요.”
“피, 또 예전이래. 이렇게만 얘기하고 나머진 말도 안 해줄 거죠? 정리할 것이 다 끝나면··· 어쩌고 하면서.”
진지유는 목소리를 잔뜩 깔고 그를 흉내냈지만, 엄숙한 표정 때문에 하나도 똑같지가 않았다.
동료의 개인기를 보다가, 박건은 빈 잔에 맥주를 따라 건넸다.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응? 뭐라고 했어요?”
“아닙니다. 어떻게 지냈습니까?”
구신승이 1인 3역 개인기를 선보인 바람에 앞의 말은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진지유는 가득 채운 맥주를 절반이나 들이키곤 입가를 닦았다.
“저야 뭐, 오빠 없는 사이 더 바빴죠. 새 작품도 무사히 끝냈고··· 아, 선이 씨한테 들었겠지만 우리 라인업이 DG 배우들 다 박살냈어요. 완전 산산이, 가루도 안 남을 만큼.”
“노 대표님은?”
“잘 계시죠. 이제 하반기 작품들, 남은 음방들에서 완전 쪼개 버리실 작정 같아요.”
해맑게 웃으며 박살이니, 쪼갠다느니 하는 걸 보니 예전에 보던 동료가 맞았다. 박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바빠지겠군요.”
“저는 한가해요. 백하··· 하니 언니랑 신승이 오빠는 바로 작품 들어간댔는데, 잠깐 쉬면서 혼자 여행이나 다녀올까 했거든요.”
“여행 말입니까?”
“네. 예전에 오빠 칸 초청 때, 못 따라갔던 게 아직도 아쉬워서. 생각난 김에 니스부터 지중해 쪽으로 쭉 돌고 오려고요.”
드물게도, 박건은 대답 대신 스마트폰을 켜서 무언가를 찾는 기색이었다.
잠시 후에 나온 말은 더욱 뜬금이 없었다.
“뉴욕은 어떻습니까?”
“네? 여행지로요?”
“예, 특출 때 두 번이나 신세를 졌잖습니까. 지유 씨만 괜찮다면 해외여행으로 갚고 싶은데요.”
잔뜩 커졌던 진지유의 눈동자에, 문득 의심스러운 빛이 서렸다.
“잠깐만요, 선이 매니저님도 같이 가죠?”
“예. 혹시 불편하면 다른 팀장님을······.”
“···됐어요. 기대한 내가 바보지.”
*
뉴욕, NBS 전속 스튜디오.
수많은 사람들이 바삐 오가는 이곳의 로비에, 동양인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어디서 본 얼굴인데?”
“바보야, 칸이잖아! 작년에 그, 그, 사제의 어둠······.”
“사제의 어둠은 무슨, 흑의사제겠지! 이번에 무슨 액션영화를 찍었다던데.”
“뒤에 있는 사람들도 배우인가?
글로벌 팬들에게도 칸의 눈도장은 유효하다. 1년 사이 <고드: 분노의 파수꾼> 바이럴이 세계 곳곳에 퍼진 지금은 더욱 그렇다.
서울에서 1만 킬로미터가 넘게 떨어진 뉴욕의 한복판이지만, 오가는 직원들 중 손님을 알아보고 탄성을 올리는 이들이 많았다.
“잠깐, 근데 여긴 뉴욕이잖아.”
평소 영화광을 자처하는, 인포의 직원 중 한 명이 동료에게 속닥거렸다.
“···NBS 스튜디오엔 무슨 일로 온 거지?”
역시 헐리우드의 본고장인 것일까.
공항에 내려, 이곳에 올 때까지 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제법 많이 인사를 건넸다.
건은 옆의 동행에게 말했다.
“한국 스튜디오들이랑은 또 다르네요. 규모부터 훨씬 큽니다.”
“그럼 뭐 해요. 어차피 촬영하러 왔는데.”
야구 모자를 눌러쓴 진지유가 뾰족하게 대꾸했다. SNL 촬영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입이 댓 발은 나오더니,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뾰로통해 있었다.
모처럼의 해외여행이 실은 스케줄이었다는 데 대실망한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짐은 잔뜩 챙겨왔던데.’
그렇다고 일을 안 할 순 없다. 눈치를 보던 박선이 슬그머니 스마트폰을 꺼냈다.
“어··· 토비가 어디 있지? 아까 전에 로비로 내려오고 있댔는데······.”
“이봐요, 고드!”
그때, 우렁찬 목소리가 나선형 계단 위에서 들려왔다. 올려다보니 칸에서 봤던 키 작은 프로듀서가 열렬히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게 얼마 만입니까. 잘 지냈나요? 해외촬영은? 내가 당신에게 팬레터를 쓰고 싶었는데, 한국어가 너무 어려워서 쓰지 못했어요. 하지만 마음만큼은 항상 니스의 여름밤에······.”
이내 앞에 선 SNL의 총괄 프로듀서는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정작 시선을 끄는 사람은 토비 리의 옆에 서 있는 사내였다. 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여기 계십니까?”
그윈 레이먼. 지금쯤 마무리 편집에 들어가 있어야 할 ‘고드’의 감독은 뻔뻔스레 턱을 긁었다.
“잠깐 구경 왔소. 내 영화의 주연이 남의 쇼에 나온다고 해서.”
오히려 경악한 것은 건의 일행들이었다. 박선은 입만 빠끔거렸고, 조금 더 정신이 있었던 진지유는 능숙한 이태리어로 물었다.
“···아직 영화가 크랭크업된 게 아니지 않나요?”
“오랜만이오, 진. 그새 내가 편한 언어가 뭔지 알아봤나 보군.”
“그게 문제가 아니라······.”
촬영이 끝나고, 한 달도 안 돼 뉴욕의 한복판에서 만날 줄은 몰랐던 터였다. 그윈 레이먼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난 뉴욕에도 집이 있어요. 한창 편집 막바지기도 하고, 근처에서 프로그램을 찍는다기에 응원 겸 들러 봤지. 오늘치 집중력은 아까 전에 다 소모됐다, 이 말이야.”
관자놀이를 툭툭 치는 레이먼을, 토비 리가 한심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미안합니다, 고드. 당신이 우리 쇼에 나온다니까 이 친구가 전화를 열 통씩 하지 뭐예요. 인종차별의 온상에서 지켜야 한다느니, 또 뭐라고 난리를 치는 통에······.”
“맞잖아! 리사, 머리에 똥이랑 폭죽다발이 섞인 그 바보가 또 무슨 대본을 줄지 모른다고. 우리 주연이 여기서 망가지는 꼴은 못 봐.”
“역시 영화쟁이는 안 되겠어. 이만 꺼져.”
“브로드웨이 놈들이란··· 이래서 너희 국장 머리카락이 다 빠지는 거야.”
악담을 덕담처럼 주고받는 두 사람을 앞에 두고, 한국의 여행객 셋은 머리를 맞댔다.
“선이 씨, 우리 일정이 어떻게 되죠?”
“어··· 일단은 도착하자마자 미팅··· 대본이랑 대략적인 컨셉을 확인하는 대로 리허설, 거기서 문제가 없으면 일요일에 바로 생방송을 들어갈 거예요.”
박선이 스케줄을 쭉 읊자, 눈을 굴리던 진지유가 물었다.
“···오빠, 괜찮은 거 맞겠죠? 저 감독님은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는데.”
“일은 잘 합니다.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지만.”
간단히 축약한 건은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서부터, 뿔테안경을 쓴 금발머리 여자가 그들에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미리 출연진과 제작진, 세션 밴드까지 공부해 둔 박선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형, 저기! 저분이 토비 씨랑 같이 쇼의 대본을 맡은······.”
“리사 에이블이에요.”
일행 앞으로 온 금발 여자가 말했다. 얼마나 키가 큰지, 일행 중 최장신인 건과도 눈높이가 맞을 정도였다.
새파란 눈동자를 마주보며, 건은 그녀가 내민 대본 뭉치를 받아들었다.
“고드입니다.”
“실물이 훨씬 낫네요. 발음도 좋고.”
펜을 잡는 이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걸까.
한국의 뭇 작가들처럼, 흥미로운 시선으로 일행들을 한 명씩 뜯어보던 리사가 안경코를 밀어올렸다.
“죽여주는 쇼를 만들어 보자고요, 여기 촌뜨기들 넋이 다 나갈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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