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55)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55화(155/199)
여름의 수확제 (5)
* * *
“맙소사, 제대로 칼을 갈았네.”
뉴욕의 아파트.
쇼가 시작된 지, 몇 분도 안 돼 벨라는 신선한 충격에 빠져야 했다.
-난 중국인이 아닙니다.
쇼가 시작되자마자, 걸어나온 박건이 다짜고짜 던진 말부터 뜬금없이 터졌다.
작년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고 했나. 크루들을 쓱 둘러보면서 덧붙인다.
-대기실에서부터 그렇게 말씀하시던데, 동양인이 무조건 중국인이라는 건 편견입니다.
-아니, 우리가 언제요?
-까맣게 몰랐네. 그럼 일본인인가? 우리가 잘 몰라서··· 안 그래, 켄?
-그러니까. 저 중국 밑에 로켓맨은 아는데 말이지, 푸흐흡.
카메라가 크루석 쪽으로 옮겨가자, 연기력 하면 빠지지 않는 SNL의 터줏대감들이 놀란 표정으로 한 마디씩 보탠다.
단, 호스트의 뻔뻔스러움이 한 수 위다.
-켄. 그러고 보니 브라질 출신이었죠? 작년에 월드컵 8강에서 붙었던 나라, 대한민국이 내 모국입니다.
-무슨 소리요? 난 파라과이······.
-아, 실례. 다 비슷비슷하게 보여서.
시작부터 잽을 던지던 남미 출신 코미디언이 입을 떡 벌리고, 패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진다.
영미권은 물론, 남미에서도 횡행하는 인종차별 상황극을 오프닝 때부터 맞춘 것이다.
나비넥타이를 고친 박건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다.
-아무튼 반가워요. 잘들 해봅시다.
그 뒤, 본격적으로 ‘매운맛’ 에피소드들이 몰아쳤다.
여태까지 SNL에 출연한 동양인 배우는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그래서일까, 쇼의 제작진들은 아주 작정한 듯이 대본 속에서 칼춤을 춰 댔다.
-내가 시상을 맡지 않았더라면 이곳에 올 일도 없었을 겁니다. 다들 알겠지만 여긴 백인들의 잔치니까.
한때 유색인종의 벽으로 군림하던 아카데미 시상식, 현지에서는 오스카(Oscars)로 불리는 가장 유명한 어워드다.
사회자를 맡은 흑인 크루원이 진중하게 멘트를 읊더니, 수상자 이름이 적힌 진행 카드를 보고 눈을 비빈다.
-올해 오스카의 남우주연상은··· 박건? 뭐야, 이 이상한 이름은?
인종차별의 피해자가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인종을 차별하는 상황.
실제로 흑인이나 라틴 계통의 인종들이 유색인종을 멸시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다만 그 대상이 흔한 피지컬이 아니라면 얘기는 다르다.
-오오오······.
칸에서 그러했듯, 사제복을 입은 박건이 걸어나오자 권위 있는 심사위원들로 분장한 크루석에서 감탄이 흘러나온다.
처음 등장했던 오프닝 때와는 또 다르다. 의상까지 차려입고 배역을 맡은, 본격적인 배우의 연기가 시작된 것이다.
-반갑습니다. 사는 지역이 달라 못 올 줄 알았는데, 축제에 참석할 수 있게 돼서 영광입니다.
그들만의 지역 축제, 오스카가 매번 듣는 쓴소리이자 바뀌지 않는 관행을 꼬집는 얘기다.
-그건 맞지. 나도 못 올 뻔했으니까.
동양인인 걸 보고 표정을 구기던 사회자가 맞장구를 치자 웃음이 터진다.
수상 트로피를 받아든 박건이 스탠딩 마이크로 고개를 숙인다.
-모든 계층의 차별에 저항하는 의미로, 새로운 영화를 찍었습니다. 제목은······.
박건이 뒤쪽을 돌아보자, 스크린이 켜지며 실제 영화 예고편 포스터가 떠오른다.
<고드: 분노의 한국인>
‘파수꾼’만 ‘한국인’으로 바꾼 포스터는 그야말로 진화한 메타버스다.
뒤이어 미리 찍어 둔 다음 에피소드가 나온다.
-이봐, 머신 건 씨.
-제 이름은 박건입니다. 어려우면 고드라고 부르라고 했는데요.
영화촬영장처럼 꾸며 놓은 옆쪽 스튜디오.
익숙한 얼굴이 박건과 마주앉아 사담을 주고받는다. 특별출연을 자처해, 영화감독인 자신을 연기하는 그윈 레이먼이다.
-박건이나 머신 건이나··· 아무튼 이 영화, 잘 할 수 있겠소? ‘킬 쏜’을 잡으려면 평범한 걸론 안 돼. 벌써 그쪽 팬들이 우리 목을 달아매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단 말이야.
-알고 있습니다.
-스턴트 대역이 꽤 많이 필요할 텐데··· 예산이 부족해. 알다시피, 내 출신이 출신이다 보니 투자금을 많이 못 끌어왔거든.
펜을 귀에 낀 그윈 레이먼이 말하자, 박건이 무슨 소리냐는 듯 대꾸한다.
-그런 건 필요 없는데요.
-뭐?
-대역을 왜 씁니까, 제가 하면 되는데.
이어, 스턴트맨으로 분장한 크루와 박건의 총격전 액션이 펼쳐진다.
탕, 탕탕!
수트를 입은 박건이 페인트탄을 발사하며 전장을 헤쳐나간다. 보나마나 상황극이겠거니, 예상하던 시청자들을 경악시킬 퀄리티였다.
매튜와 벨라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미친, 배우라면서?”
“난 코미디언인 줄 알았지, 무슨 CG나 특수장치가 있는 거 아냐?”
당연히 아니다. SNL 제작진을 촬영장에서 기겁시킨, 실제 ‘고드’ 영화에서 사용했던 시퀀스가 짧지만 간결하게 펼쳐진다.
혼자만 빨리감기한 것 같은 주연 배우의 활약이 끝나고, 박건이 레이먼에게 다가간다.
-어떻습니까?
이 콤비는 콩트 연기도 수준급이다. 어느덧 펜을 뽑아, 손바닥에 뭔가 잔뜩 적어내려가던 그윈 레이먼이 버럭 소리쳤다.
-어쩌긴 뭘 어째, 당장 42픽쳐스에 연락해야지!
그 밖에도, 방송시간이 끝날 때까지 쇼는 알찬 라이브로 이어졌다.
영화판의 인종차별, 중국의 로케이션 개입, 현지의 정치문화적 이슈까지.
박건은 때론 무뚝뚝하게, 때로는 능글맞게 리얼리티 배역을 수행했다.
모르는 이가 봤더라면 본래부터 코미디에도 조예가 있는 배우로 알았을 정도였다.
“와, 장난 아니다. 시간이 꽉 찼네.”
방송 내내 배를 잡고 웃던 벨라가 말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옆에 앉은 남자친구를 돌아보았다.
“매튜?”
저건 좀 웃겼다더니, 이건 새롭다더니, 연신 쇼를 평하던 매튜는 중반부터 말이 없었다.
오래 못 본 친구라도 나온 듯, 뚫어져라 TV를 주시하던 매튜의 입에서 감격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야 내 쇼가 돌아왔어······.”
“···자기, 어디 아픈 거 아니지?”
*
라이브 송출이 끝난 뒤, 현지 매스컴의 반응은 활활 타올랐다.
그중 상당수는 저 SNL의 오랜 팬, 매튜 딜리너이와 같은 반응이었다.
-드디어 돌아왔구나, SNL!
└나만 느낀 거 아니지?
└그럼, 친구. 보면서 내 망할 동생놈과 환호를 질렀다고!
-토비가 제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군. 이름만 같은 쓰레기를 만드는 줄 알았는데.
└세상에, Suck negative live가 전성기로 부활할 줄 누가 알았겠어?
└└이봐,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지난 회차를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샘 벤은 거대한 오물덩어리였어!
-아무튼, 매번 몸만 사리는 겁쟁이들만 나오다가 진짜 남자가 나오니 터지는군.
└머신건에게 동양인이라고 인종차별하는 놈은 가만 두지 않아.
└└그 영화는 뭐지? 정말로 개봉하는 건가?
└└└
미국 최대 규모 커뮤니티, 리드 잇(Read it)에는 본방을 사수한 수많은 시청자들이 감상평을 교환했다.
문화권에 따라 유머 코드도 달라진다. 더군다나 최근의 SNL은 예전보다 폼이 떨어졌다며 원년 팬들에게 혹평을 받던 차.
그 와중 등장한 동양인 배우가 현지권의 포인트들을 맛깔나게 살리니, 반응이 나쁘려야 나쁠 수가 없는 것이다.
“시청률, 그래서 시청률은 몇 퍼센트야?”
NBS 국장실. 전화통을 붙잡고 있던 릭 오윈의 표정에 득의만만한 미소가 스친다.
“좋아, 토비. 아주 잘했어! 리사랑··· 그 누구냐, 머신 건 친구한테도 전해 달라고!”
이번 쇼의 최고시청률은 5%.
지난 시즌 전직 대통령이 나왔을 때 간신히 7%를 넘긴 걸 감안하면, 화제성에 비해 충분히 괜찮은 수치다.
거기에 후폭풍도 제대로 불었다.
[SNL, 헐리우드와 아카데미의 민낯을 드러내다] [칸의 주인공, 라이브 쇼에 출연··· 폭풍 같았던 93분]애초 미국의 시청률은 한국과 다르다.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40%, 30%를 넘기는 것은 매커니즘상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각종 커뮤니티들의 2차, 3차 파급력이 중요한 터.
박건이 출연한 일요일 밤부터 다음날까지,
예능의 블루칩을 잡기 위한 섭외가 쏟아졌다.
*
SNL 방영 닷새 뒤, 금요일마다 방영되는 제시 매킨토니 쇼는 새로운 손님을 맞았다.
“어렵게 데려왔습니다. 빌어먹을, 저 친구 비행기가 못 뜨게 하기 위해 케네디 국제공항을 폐쇄시켰다고요.”
유명 코미디언이자 쇼의 진행자, 제시 매킨토니가 방청객들에게 너스레를 떤다.
소파 옆자리, MC보다 더 MC처럼 앉아있던 박건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어쩐지, 그래서 공항이 막혀 있던 거군요. 지금 알았습니다.”
방청객들 사이에 웃음이 퍼져나간다. 낄낄대던 제시 매킨토니가 물었다.
“이거 미안합니다. 얼른 가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 괜찮습니다. 스케줄이 많아진 김에 비행기표를 다 취소했거든요.”
제시 매킨토니는 짓궂은 표정으로 게스트를 응시했다.
“여기가 SNL이었다면 할 말이 많았을 텐데··· 아쉽지만 내 쇼라 참아야겠어요.”
“잘 생각하신 겁니다, 제시. 나도 당신의 스캔들을 밤새 공부하고 왔으니까.”
덤덤하게 던지는 농담에,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큰 웃음이 번졌다.
유머란 본디 호흡과 표정이다. 같은 말을 해도 어떻게 섞느냐가 중요한데, 이 배우는 미국식 농담에 제스처까지 능숙하다.
방청석 한쪽, 덩달아 귀국을 연기하고 쇼를 관람 중이던 진지유는 소리 없이 감탄했다.
“···누가 배우 아니랄까 봐. 진짜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네.”
모국어와 외국어를 나눠 쓸 때, 말투가 변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그런데 평소에는 딱딱한 영국식 억양이다가, 저런 쇼에 나가자 발음부터 달라진다.
옆에 앉은 박선도 바뀐 점을 알아차렸는지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진 배우님, 우리 형 뭔가 느낌이 달라지지 않았어요? 영화 찍을 때는 이런 억양이 아니었는데.”
“맞아요. 뉴욕이라 그런가, 완전 동부식 억양으로 말하고 있어요.”
SNL에서는 뻔뻔한 연기가 일품이었다면, 매킨토니 쇼에서는 여유로운 농담과 배우로서의 애티튜드가 주를 이룬다.
후반부엔 작품적인 이야기도 오갔는데, 한참 편집이 막바지인 그윈 레이먼 대신 촬영감독 조쉬가 나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조쉬, 영화 촬영 내내 대역을 단 한 차례도 쓰지 않았다는데, 정말입니까?”
조쉬는 거의 콧방귀를 뀌면서 대꾸했다.
“대역이요? 당연하죠. 거기다 이 배우의 진가는 그깟 액션이 아닙니다. 우리가 촬영 때 겪은 일을 다 공개하면······.”
“1억 달러.”
뭔가 비밀이 있어 보이는 조쉬의 말을, 적절한 타이밍에 박건이 가로챘다.
“저희 감독님이 그러시더군요. 월드와이드 수익 1억 달러를 넘기면 메이킹필름을 풀겠다고.”
제시 매킨토니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1억 달러요? 제가 알기로는 고드의 제작비가 2천만 달러 밑일 텐데요. 5배를 벌어들일 자신이 있다는 말입니까?”
“글쎄요. 사실 수익은 1순위가 아닙니다.”
“그렇다면요? 정말로 상업영화의 오스카 수상을 노리는 건가요?”
스튜디오의 모든 카메라가 박건에게 향한다.
자신을 잡은 십여 대의 앵글을 쭉 둘러보다가, 배우의 입이 열렸다.
“한 명이라도 많은 팬들이 봐 주신다면, 그걸로 충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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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가 끝나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
제시 매킨토니와 쇼의 관계자들까지 사인이며 촬영을 요청한 탓에, 벌써 밖은 어두웠다.
커다란 카메라를 목에 건 진지유는 못내 아쉬운 기색이었다.
“더 많이 찍었어야 하는데! 찍을 때마다 소리가 이렇게 클 줄 몰라서··· 하, 좀 알아보고 살걸.”
“···그거 대포카메라 아니에요? 아이돌 덕질하는 홈마들이 들고 다니는 거.”
“맞아요. 뉴욕에도 중고시장이 있더라고요.”
뿌듯한 표정으로 동생과 대화하는 진지유에게, 조수석의 건이 고개를 돌렸다.
“스케줄은 괜찮습니까? 저희 때문에 너무 오래 체류하신 것 같은데.”
“에이, 저도 재밌었는데요. 덕분에 해외 파파라치들한테도 찍혀 보고.”
나흘 전, 맨해튼의 펍에서 그들이 함께 있는 사진이 자그마한 연예지에 올라온 적이 있었다.
스캔들도 아닌 해프닝 수준이었지만, 진지유 본인은 매우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다행입니다. 내일이면 귀국이군요.”
“그러게요, 감독님이 20일이라고 하셨으니까··· 이제 며칠 안 남은 거 맞죠?”
건은 손목시계를 흘끗 봤다.
“예. 곧 개봉입니다.”
<고드: 분노의 파수꾼>,
전 세계 동시개봉까지 D-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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