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57)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57화(157/199)
용사의 기억 (1)
* * *
김률.
과거에는 충무로의 실패라고 불렸으나, 현재는 충무로뿐 아니라 세계가 주목하는 젊은 신예.
‘흑의사제’의 감독이자 그 ‘박건’의 영화 데뷔작을 찍은 사내는, 장면 하나라도 놓칠세라 스크린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네놈, 원하는 게 뭐냐? 리우 놈들도 아니고 해밀턴 패거리도 아니면, 대체 어디서 온 누구냔 말이다!
얼굴에 피칠갑을 한 필리핀의 갱단 보스가 처절하게 외쳐 댄다.
인기 배우를 안 썼다 뿐, 엑스트라 오디션에 감독이 직접 공을 들인 탓일까.
등장하자마자 죽어나가는 역할인데도 피와 땀으로 번들거리는 얼굴에 살기가 진동한다.
그러나 앞에 선 방문객, 누더기 차림의 사내는 그 박력을 단번에 집어삼킨다.
―나는 고드.
―뭐라고?
―단순한 복수다.
촤아악!
동시에, 마체테가 휘둘러지고 동강 난 목이 공처럼 허공을 난다.
관객들이 숨을 죽이는 그때, 고드―박건은 바지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손에 들린 것은 피 묻은 감자 한 알. 어젯밤 죄 없이 희생당한 남매가 주고 간, 두 알의 식량 중 남은 하나였다.
―엔도라고, 했나.
낮은 음성이 흐르며, 건물을 뒤덮은 화마가 전직 특수부대원의 눈동자 속에서 타오른다.
그의 적들··· 어쩌면 세상까지 파멸시킬지도 모를, 업화의 불길이다.
“······휴.”
화면이 바뀌자 앞자리의 누군가가 한숨을 내쉬었다. 말라붙는 눈을 깜빡이며, 김률은 아까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박건 씨, 당신이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시간은 아까로 돌아가, 시사회가 시작되기 15분 전.
영화관 측에서 내준 상영관 뒤쪽 대기실에서, ‘흑의사제’의 주역들이 조우했다.
‘오빠, 왜 이렇게 오랜만이에요. 너무 보기 힘든 거 아니에요?’
‘해외에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요즘에는 이장미 씨가 더 바쁘지 않습니까? 작품을 동시에 세 개나 들어갔던데요.’
‘···이 오빠는 진짜, 뉴욕에 있던 사람이 저런 건 어떻게 다 아는 거야?’
‘장미 씨는 아직도 몰라? 우리 박 배우는 몸이 열두 개라고, 와하하하핫!’
‘대표님. 여기서 그러다가 쫓겨나세요.’
뒤늦게 도착한 태종범 대표와 이장미, 함께 있던 뭇 연예인들이 인사를 주고받는다.
여기저기서 정다운 환담이 오가는 도중, 김률은 박건에게 꽂다발을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시작이군요.’
오늘 주인공의 수트 색상은 짙푸른 바닷빛이다. 이미 꽃다발을 잔뜩 안고 있던 박건이 희미하게 웃었다.
‘감독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흑의사제 때는 개봉이 가을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여름이군요. 해외 로케이션에서 영감은 많이 얻으셨습니까?’
김률 역시 박건의 작품 선정 기준을 안다. 흑의사제는 소재부터가 악마, 거기 맞서는 불신자의 싸움이었기에 선택했었다는 사실도.
한 명의 감독으로서, 절친한 배우의 행보에 흥미가 가는 건 당연한 것이다.
‘아니, 그러니까 진짜 가능성이 있어요. 요즘은 또 상대적 저예산 영화가 대세라니까? 두 분 정도 되는 배우 분들이 투탑으로다가 무게를 딱 잡아 주시면······.’
저쪽에서는 태 대표가 최필립과 서희도를 붙들고 신작 투자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쪽을 바라보던 박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꽤 많은 소득이 있었습니다.’
‘그럴 것 같았습니다. 역시 특수부대원의 서사여서일까요?’
박건이 특수부대 전역자임은 모두가 아는 사실 아닌가. 본인에게도 의미 있는 배역을 맡을 때, 배우들은 알을 깨고 나온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달랐다.
‘아뇨, 딱히 그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 때문에······.’
묻던 김률은 잠시 멈칫했다. 감정이 최고조로 몰입된 순간 ‘흑의사제’의 촬영장에서, 그리고 대종상과 칸의 시상대에서 봤던, 그가 알지만 알지 못하는 동료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가장 많이 죽였으니까요. 극 속에서.’
특수부대 시절, 임무에서 그렇게 많은 이들을 해쳤던 걸까? 아니면 또 다른 의미가 있나?
뜻을 묻고 싶었지만, 새로운 손님들이 들어오는 바람에 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이윽고 배우들과 제작진, 시사회에 초청받은 내빈들의 시사회가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누가 저 필리핀 촌뜨기들을 박살냈다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모르겠습니다!
―뭐라고?
―저··· 전부 죽어서··· 한 명도 적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고드의 적, 거대 킬러조직의 지부장이 스크린 속에서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김률도 무의식 중 미간을 좁혔다. 박건이 남긴 알쏭달쏭한 말이 영화를 감상하는 감독의 집중력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다섯은 없었고, 빛을 경계했으니, 이 다음은 무엇일지 기대된다고······?”
*
영화는 계속된다.
필리핀의 빈민가, 거기서 ‘고드’에게 감자 두 알을 건넸던 어린 남매.
그들은 그날 밤, 정부와의 대립으로 빈민가를 불태운 갱단에게 목숨을 잃는다.
―너희는 누구냐.
―우린··· 엔도. 기필코 네놈을 쫓아서, 형제의 형제까지 전부 죽일··· 크헉!
해당 갱단은 물론, 거기 엮인 필리핀의 범죄조직 전원을 소탕해 버린 고드는 ‘엔도’라는 거대 단체를 쫓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가제, 분노의 파수꾼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행보를 보이며.
다음 씬은 한국이다.
익숙한 서울 풍광이 펼쳐지는 와중, 고드는 친부의 나라에서 조력자를 찾는다.
―뭐야, 대장이 왜 여길······.
머리를 박박 깎은 금발머리 총포상, 전직 군인으로 보이는 백인이 놀란 얼굴로 말한다.
―장비가 필요해. 최대한 많이.
―야단났군. 어떤 겁 없는 놈이야, 이 인간병기를 건드린 머저리들이?
백인 사내는 한국말이 능숙하고, 정작 고드는 서투르다는 것도 색다른 볼거리다.
고드, 박건은 지퍼로 포장한 사람의 손목을 책상에 툭 던진다.
―엔도. 그렇게 말하더군.
손목에 새겨진 뱀 문신, 거기 간 흰 줄을 본 옛 전우의 눈동자가 커진다.
―미친, 거기랑은 왜 또 엮인 거야?
―감자 두 알의 복수다.
―······?
고드를 미친 사람 보듯 쳐다보면서도, 금발 사내는 창고에서 장비들을 가져온다.
글록 34, 19, 17. 그에 맞는 소음기와 탄창과 옷 안에 입는 방검복.
거기에 노멕스와 케블라 원단을 특수처리해 만든, ‘킬 쏜’의 흥행 이후 하나의 공식처럼 자리잡은 방탄 수트까지.
―이건 됐어. 걸리적거려서.
―무슨 소리야, 총 맞아 죽고 싶어?
방탄 수트를 거절하는 고드에게, 사내는 억지로 둘둘 만 짐을 한가득 떠안긴다.
―엔도는 우리가 쏴 죽이던 시리아의 미치광이들과 달라. 놈들은 명확한 목표도, 웬만한 당국만큼의 자본력까지 있다고. 대장이 저걸 챙겨도 철갑탄 한 방이면 배가 뚫리고도 남아.
―왜 맞을 생각을 하지? 피하면 되는데.
―···그래, 댁 잘났수.
마침내 장비를 다 챙겨 나온 고드.
한국까지 따라붙은 엔도의 킬러 몇몇이 습격하지만, 총알 세 방으로 간단하게 제압한다.
고드는 쓰러진 킬러들의 품을 뒤져 여권을 꺼내 든다. 싱가포르의 붉은 여권은, 주인이 흘린 피로 더욱 검붉게 물들어 있다.
―다음은··· 싱가포르인가.
그 뒤는 액션, 미친 액션들의 향연이다.
싱가포르의 마천루에서는 그야말로 정석과도 같은 CQB(Close Quarter Battle) 액션이, 튀르키예의 박물관에서는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 법한 냉병기 액션이 폭발한다.
탕, 타다다당!
스크린 속 박건이 기어를 올림에 따라, 앞줄에 앉아 있던 관계자들의 입도 약속한 듯 벌어졌다.
‘···이게 사람 몸으로 가능하다고?’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서울의 개’, ‘흑의사제’, ‘백정과 장군’··· 전작들에서 본 박건의 액션은 결코 저 정도가 아니었다.
물론 동종업계에서 상대가 없긴 했지만, 저건 숫제 혼자서만 다른 시간을 사는 수준 아닌가.
카캉, 팅―!
고개를 젖혀 칼을 피하더니, 날이 넓은 대검을 비스듬히 들어 총알을 튕겨낸다.
그러고는 쏜살같이 거리를 좁혀 두 명의 팔다리를 허공으로 날려 버린다.
―죽여, 쏴 버려!
질려 버린 킬러들이 총알을 퍼붓지만, 튀르키예의 전통 갑옷을 입은 고드는 피하거나 몸으로 막으며 칼로 튕겨낸다.
액션의 실전성을 극대화시킨 ‘킬 쏜’에서 아쉬운 부분은 바로 속도감.
과장 없는 건푸(Gun-fu) 위주인 데다 현란한 카메라 워킹까지 없다 보니, 긴 러닝타임 동안 졸음을 호소하는 관객들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고드는 그 딜레마를 깨부순다. 진검에 갑옷, 투구까지 걸친 채 카메라 앵글마저 벗어나는 미친 속도감으로.
―······.
튀르키예에서 암약하던 킬러들, 오십 명도 넘을 인원들이 모두 죽어 넘어졌다.
그야말로 시산혈해(屍山血海)가 된 박물관의 한복판. 오스만식 투구를 벗어던진 고드가 엔도의 간부에게 칼끝을 겨눈다.
―너는, 몇 번째냐?
*
고드가 검을 겨눌 때, 건 역시 배우석에 앉아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주변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고 화면에는 피가 낭자했지만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어느 마경의 새벽을 떠올리고 있었다.
ㅡ오랜만이군. 왜 돌아온 거지?
ㅡ돌아온 것이 아니다. 너희가 나를 불렀지.
조직 ‘엔도’의 간부와 나누는 영화 속 대사는 옛 기억을 불러왔다.
첫 번째 대악마, 오만의 고르존은 그의 검이 떨어져내리기 전에 물었다.
-내가 몇 번째지?
두 번째 대악마, 불화의 모데움은 성력에 재가 되어 흩어지면서 광소했다.
-기억하라, 용사여. 이 내가 진실이다!
그리고 세 번째 대악마, 분노의 발몬은 소멸하는 순간까지 무감정하게 그를 응시했다.
놀랍게도 인간의 그것과 흡사한 눈동자로··· 깨진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
첫 환청이 들렸던 대종상, 두 번째 환청이 찾아왔던 칸에 이어, 전보다 더욱 격렬한 기억의 급류가 그를 덮쳤다.
-용사시여! 이 세계를 구원해 주십시오!
-나는 위대한 아스루엘이다. 드높은 천상의 일좌(一座)에 있지.
-어서 가요, 더 늦기 전에!
철왕국의 귀족들, 대천사의 명령, 전투와 죽음과 또 다른 죽음. 건은 눈앞을 스치는 장면들을 보려 애썼다.
흡사 그윈 레이먼이 영화 오프닝에 넣었던 연출과도 같다. 다만 스크린 속 책장이 한 장씩 넘어갔다면, 지금 쏟아지는 기억 속 파편은 확인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끝없이 밀려드는 악마군을 베어넘기고, 마경 깊숙한 곳의 대악마들을 참수하고, 다시 죽어 철왕국의 신전으로 회귀하고······.
흘러가던 기억이 지금껏 인지하지 못한 어떤 시점에 멈췄다.
‘여덟 번째로군.’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지금은 분노의 발몬을 여덟 번째로 참살한 직후, 놈이 있던 대수림 가장 깊은 곳에 들어왔을 때다.
이번 회차에서 성녀와 동료들은 우연히 따로 떨어지게 되었다. 용사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불현듯 무언가를 깨닫는다.
발몬이 있던 석실의 아래층.
이 동굴을 뒤덮은 거무튀튀한 덩굴들은, 어떤 글자를 그리며 꿈틀대고 있었다.
이내 고드ㅡ박건의 입이 열린다.
“성녀는 알고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