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60)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60화(160/199)
용사의 기억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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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방송 음방 무대.
출연자들이 모여들고, 마찬가지로 아이돌인 남녀 MC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큐카드를 꺼내든다.
앞의 스크린에서 집계 결과가 모두에게 중계되고 있지만, 또 순위 발표는 이런 맛을 빼놓을 수 없는 법이다.
“생방송 뮤직하우스, 대망의 1위는··· 퍼핑돌즈! 축하드립니다!”
폭죽이 터지고 꽃가루가 내려오는 중, 이번 주 1위 후보였던 두 팀이 서로를 격려한다.
로만의 ‘퍼핑돌즈’ vs PML의 ‘포 퀸즈’.
여태까지의 전적은 포 퀸즈의 근소한 우세였지만, 오늘 뮤직하우스에서는 퍼핑돌즈가 분발하며 밸런스를 맞췄다.
“축하드려요! 진짜 엄청 예쁘세요!”
“아니에요, 감사합니다아!”
희비가 교차해야 할 순간이지만, 패자와 승자는 서로 얼싸안고 진심으로 축하해 준다.
이유는 당연히 진지유의 존재다. 한쪽은 진지유가 리더로 있던 팀, 다른 한쪽은 데뷔조 시절부터 진지유에게 도움을 받았던 팀이니만큼, 같은 회사 아이돌보다도 사이가 좋은 것이다.
이내 마이크가 돌아오고, 퍼핑돌즈의 리더 신채이가 코를 훌쩍이며 수상소감을 말한다.
“···저희를 이 자리에 있게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예, 그럼 퍼핑돌즈의 앵콜 공연을 끝으로 저희 뮤직하우스는 다음 주에······.”
“아, 잠깐만요!”
돌아서려던 신채이가 황급히 MC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박건 선배님, 로만의 임직원 및 아티스트 일동이 쾌차를 기원합니다.”
이윽고 나머지 그룹들이 내려가고 앵콜 무대가 시작되었다.
뮤직하우스 87회차. 아이돌 리더가 했다기엔 실로 묘한 이 1위 소감은, 의외로 별 화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말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
박건의 사람은 누구인가.
방송국 관계자에게 묻는다면, 아마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꾸할 것이다.
“박건 배우요? 한두 사람이 아닐 텐데요. 서울의 개랑 흑의사제랑··· 그 다음에 뭐 했더라? 아, 회도팀! 회색도시 팀장님도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임팩트가 부족했지, 절대 흥행을 못한 게 아니거든요. 그리고 또······.”
실로 부지런한 배우다. 그것도 최소 중박 이상의 작품들만 찍은 탓에, 필모그래프를 다 읊는 데만 몇 분이 걸릴 지경이다.
그렇게 따지면 더 많은 작품을 한 배우들이 숱하지 않느냐, 물으면 인터뷰이는 벌컥 화를 낼지도 모른다.
“그냥 배우들이랑 박건 배우님이 같아요? 함께 작품 들어가 본 스탭들은 다 알걸요. 연예인이라고 목에 힘 빡 주고 카메라 켜질 때만 착한 척하는 게 아니라, 그냥 솔선수범의 화신이라고요. 촬영 30분 전에 도착해서 장비 나르고, 빡센 시간대는 자기가 다 찍고, 종방 때 작감이 아니라 스탭들한테도 선물을 돌리는 배우가 어디 있겠냐고요.”
놀라운 점은, 저런 투머치 토크가 박건을 아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나온다는 점이다.
현장의 ‘해결사’로 불리는 헌신적인 활약.
촬영 내내 NG 한 번을 보기 힘든 압도적인 연기력과 무대장악능력.
조명팀 막내와 엑스트라 단역을 구분하지 않고 깍듯한 예의 및 품행.
거기에 맡는 작품마다 사비를 털어 밥차에 커피차, 패딩 등 비품까지 제작진에게 돌리니 누군들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나.
그렇기에 박건이 아프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격렬했다.
“예? 건이 형이 아프다고요? 말도 안 돼, 누가 독을 탄 게 분명해요! 남극에 던져 놔도 감기 하나 안 걸릴 사람한테······!”
당장 경찰에 신고하려던 서희도는 주변 사람들에게 제압당했고,
“어디냐? DG야, 아니면 조이너스? 그 개자식들이 이번엔 또 무슨 수를 쓴 거래?”
왕년의 사고뭉치. 변휘승은 눈을 살벌하게 뜨고 매니저를 재촉했으며,
“거짓말 마요, 실장님. 요즘 회사 유튜브에 올릴 콘텐츠가 없어서 시작한 거죠? 이런 건 백하니 같은 바보도 안 속아.”
“인정하는 부분이야, 형.”
“징그럽게 형 소리 좀 하지 말라니까! ···잠깐만, 진짜로 박건 씨가 아프다고요? 여기 어디 카메라 숨겨 둔 게 아니라?”
학원폭력물의 주인공을 맡은 구신승과 최필립은 유준일 실장의 말을 의심했다.
허나, 놀랍게도 사실이었다.
시사회가 끝나고··· 예정되어 있던 팬미팅 및 간단한 플랫폼 라이브방송들이 끝난 뒤, 박건은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칩거에 들어갔다.
[박건, 급작스러운 활동 중단··· 이유는 건강 악화로 추정] [로만 측 입장은 ‘아티스트의 결정’, 전미 박스오피스 1위 배우의 번아웃?] [관게자 오피셜, 지속적인 작품 및 해외 촬영으로 배우가 많이 지친 상태··· 곧 회복할 것]배우들의 일정이라는 것이 그렇다.
영화 하나를 개봉할라치면 촬영 전, 촬영 종료 후, 개봉 직전부터 상영관에 걸릴 때까지 뻔질나게 방송에 나간다.
여기서 배우의 급이 높을수록, 영화의 흥행이 잘 될수록 부르는 곳이 많아진다.
헌데 지금처럼 세계적으로 빵 터졌다? 이쯤 되면 출연료를 얼마나 부르더라도 방송국 쪽에서 못 모셔서 몸이 달게 된다.
그것들을 전부 고사하고 틀어박혔으니, 팬들은 심대한 걱정의 늪에 빠졌다.
-하… 우리 배우 괜찮은 걸까…
-그 와중 팬미팅이랑 W라이브는 하고 감… 팬 챙기는 거 미쳤냐고 ㅠㅠㅠㅠㅠ
-프로의식.. 아니지.. 그냥 천성이 착한 우리 용사님…
-우리가 할수잇는게 없나? 매니저나 부매가 총대메고 약이라도 사가야되는거 아냐?
-지인들이 챙기고 있겠지 ㅠ 우리 배우가 그래도 인복은 많잖아
팬카페의 댓글들이 박스오피스 관객 수만큼 쌓이고 있을 때, 청담의 모 스튜디오에 연예인 밴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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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었네요. 내가 마지막인가요?”
스튜디오의 직원은 눈을 크게 떴다.
마지막으로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 저 잠자리 안경에 큼지막한 로고 귀걸이를 낀 여자가 누구인지 알아본 것이다.
커피를 쪽쪽 빨아마시던 윤발25가 여진주 작가에게 아는 척을 했다.
“일찍 좀 다니시지, 다들 아까부터 모여 있었다고요. 출발 시간은··· 어, 30분 뒤긴 한데······.” “그럼 됐네요. 짐을 좀 가져오느라.”
쌀쌀맞게 말한 여진주의 뒤로, 개인 비서로 보이는 수행원들이 큼지막한 박스를 내렸다.
얼핏 보고도 인삼이니 홍삼이니, 값비싼 건강식품이 잔뜩 들어 있는 특제 선물 세트다.
오늘 이 대형 ‘병문안’을 기획한 지휘관, 태종범 대표가 흡족하게 회의실을 둘러보았다.
“이거, 오신 분들이 다들 귀빈이라 두 손도 무겁군요. 집을 꽉 채워 주면 박 배우도 좋아할 겁니다.”
“그런 분이 꽃다발만 챙겨요?”
“안에 선물도 있다니까, 장미 씨!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 하지 말랬지!”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곳에는 무지막지한 라인업이 만들어져 있었다.
작가는 은희욱과 윤발25, 영도은에 여진주. 배우는 최필립과 진지유, 그 외엔 아예 작품마다 팀을 꾸려 병문안 멤버에 합류했다.
이쪽은 ‘서울의 개’ 서희도와 용준상, 저쪽은 ‘회색 도시 팀장님’의 변휘승과 권유리, 반대쪽 끝에는 ‘백정과 장군’의 조현아와 이동수가 자기 드라마의 작가들과 함께 앉아 있다.
김률 등 스케줄이 있는 이들은 다음 날짜를 잡고, 시간이 되는 사람들만 연락을 돌려 추렸는데도 이 인원이 나온 것이다.
‘아마 형도 반가워할 거예요. 요즘은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만 누워 있거든요. 정말··· 이렇게까지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박선과의 통화를 떠올리며, 태종범 대표는 입맛을 쩝 다셨다.
“그나저나··· 걱정이네.”
옆에서 손 소독 스프레이를 열심히 뿌리던 서희도가 물었다.
“뭐가요?”
“박건 씨 말이야. 하필 노 저을 시기에 몸이 안 좋아질 게 뭐람. 내가 본인이었으면 옷을 벗고 청담 거리를 뛰어다니래도··· 아니, 진짜 그렇다는 게 아니라요.”
진지유가 도끼눈을 뜨고 쏘아보자 태 대표는 찔끔 움츠러들었다.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찬 변휘승이 말했다.
“대표 아저씨, 원래 최고점에서 오는 우울이 더 견디기 힘들어요.”
“대표 아저씨가 누구······.”
“그쪽 말입니다. 성과가 크면 클수록, 다음 작품으로 어제의 나를 뛰어넘어야 하니까. 매번 스스로와 싸운다는 게 강박이나 부담도 클 거고.”
박건과 맨 처음 호흡을 맞췄던 ‘서울의 개’의 주연 형사, 용준상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럴 만도 하지. 거기다 박건 씨는 데뷔작 때부터 주목받았잖아요. 여태 쉬지도 않았으니, 몸이 아니라 정신이 지칠 만도 해.”
‘회도팀’에서 로맨틱 코미디를 찍었던 권유리나, 오늘도 첫 번째로 도착한 진지유는 측은하다 못해 비 맞은 강아지 같은 표정이었다.
데뷔할 당시부터 불가사의한 연기력과 체력, 설명할 수 없는 집중력으로 엑스트라마저 주연화시킨 박건이다.
티를 내지 않아서 그렇지, 현장에서 다른 스탭이며 상대 배우들··· 심지어 작가와 감독마저 케어하던 본인의 부담은 얼마나 컸겠는가.
이동수와 조현아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건이 형님이 워낙 과묵하시니까요. 자기 얘길 잘 말하는 사람도 아니고······.”
“맞아. 그러면서도 남들은 무슨 한 맺힌 사람처럼 챙기는데, 이 중에 박건 씨한테 도움 한 번 안 받은 사람이 없을걸요.”
그러니까 이렇게들 온 거고. 조현아의 말을 끝으로, 회의실은 침묵에 잠겼다.
그 말대로다. 크고 작은 차이야 있겠지만, 작품 촬영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영향도 받지 않았던 이는 없다.
인지도가 됐든, 개인사가 됐든, 저 박건에게 어떤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다들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정적이 이어지던 중, 최필립이 일어섰다.
“슬슬 갑시다. 차 막히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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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구, 모 아파트.
차례로 병문안을 왔던 손님들이 다 빠져나가자, 본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다.
거실과 두 형제의 방, 부모님이 쓰시는 안방까지 온갖 건강식품과 병문안 선물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놓여 있는 것만 달랐다.
길게 한숨을 내쉰 박선이 중얼거렸다.
“다들 진짜로 와 줬네.”
“그러게. 고마운 사람들이야.”
침대에 반쯤 기대 있던 건은 몸을 일으켰다. <고드>의 시사회가 끝난 직후, 돌아온 기억 탓에 한동안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대로는 활동에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아 아프다고 했는데, 이렇게 난리가 날 줄은 몰랐었다.
‘내가 아픈 게 그렇게 이상한가?’
고민해 봤지만, 미처 물어보기도 전에 방문한 사람들은 알아서 빠져나갔다.
그렇다고 진짜 해산한 것도 아니다. 휴대폰 자판을 두드리던 박선이 이마를 짚었다.
“···미치겠네, 이 사람들 다 회사로 갔대. 형이 그렇게 멀쩡한 안색으로 아플 리가 없다고, 외계에서 온 바이러스는 조기에 치료해야 된다면서.”
“난 외계 바이러스에 안 걸렸는데.”
“그렇지?”
“전생 바이러스라면 모를까, 어쨌든 다른 차원이었긴 하니까.”
맞장구를 치던 박선은 입을 뻐끔거렸다. 아직 사건의 전말을 말한 적이 없다 보니,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안 간다는 눈치였다.
“다른 세계? 혹시··· 그 소설 얘기야? 형이 팬카페에 연재하는, 용사의 모험?”
“응. 기억이 안 난다고 했던.”
박선은 무언가를 깨달은 모양이었다. 전역 이후 실로 일관성 있게 악마니 용사니 노래를 불러 댄 형이 아닌가.
갑자기 달라진 그의 모습이나, 촬영장에서 보여 준 믿지 못한 퍼포먼스를 생각해 보면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법도 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말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꼭 완벽한 진실이 아니더라도.’
건은 잠시 기다렸다. 숙여졌던 박선의 고개가 올라오고, 설명을 원하는 눈빛이 그를 볼 때까지.
짧은 침묵 끝에, 입이 열렸다.
“전역식 날, 긴 꿈을 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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