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66)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66화(166/199)
미완의 원고 (4)
* * *
강영일이 약속을 잡은 장소는 집 앞의 카페였다.
회사와는 조금 떨어진 위치였는데, 연예인 무리를 집으로 데려오면 가족들이 놀랄 것을 걱정한 모양이었다.
“자, 그래서 여러분. 작전 있어요?”
카페 정문 앞, 넥타이를 고쳐 맨 유준일 실장이 물었다. 저고리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용류백이 대답했다.
“그간 살아온 이야기부터 들어봐야지요. 그 친구도 할 말이 있어서 부른 걸 테니, 반응이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그건 그런데, 우리 쪽 홍보팀장님이 계속 걱정을 하셔서··· 작가님들도 아시잖습니까. 예술 하는 사람들 종잡기 힘든 거.”
“설마 불러 놓고 돌려보내겠어요. 작품 미팅인 걸 뻔히 알 텐데.”
전화를 받고, 가장 마지막으로 원정대에 합류한 은희욱 작가가 거들었다.
이쪽은 방송 쪽을 모르는 강영일이 망설일 때, 조언을 줄 시나리오 작가 포지션이었다.
박선 옆에 서 있던 건이 간략히 정리했다.
“그럼, 가시죠.”
오늘의 목표물은 카페로 들어서자마자 보였다.
손님 없는 테이블 한구석에, 초췌한 정장 사내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앞에는 서류가방과 열린 노트북, 그리고 묵직한 종이뭉치가 오렌지주스와 함께 놓여 있었다.
“강영일 작가님?”
걸어간 건이 말을 걸자 사내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기사로 사진은 봤는지, 얼굴을 확인하고서야 희미한 반가움이 스쳤다.
“아, 예. 안녕하십······.”
인사하던 강영일의 말이 딱 멎었다. 뒤쪽에서 걸어오는 다른 일행들을 본 것이다.
용류백이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다, 영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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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와 다르게, 강영일은 곧바로 자리를 뜨거나 불쾌해하지는 않았다.
십여 년이 지난 선배이자 지인에게, 차마 볼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잘 지내셨냐고 물었을 뿐이었다.
“나야 그럭저럭 살고 있지. 태식이랑 현명이도 다들 제 밥벌이 열심히 하는 중이다. 수희는 오 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두 사람만 알고 있을, 한때 같은 목표를 가졌던 동아리 선후배들의 이름이 나왔다.
“수희가 마지막까지 널 찾았어. 출국 전에 얼굴 한 번 봤으면 좋겠다고. 전화 온 적 없었냐?”
“···예. 형님 말고는 동문들한테 연락처를 아예 안 알려줘서······.”
용류백은 안타깝다는 듯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 실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그럼 작가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셨습니까? 작품 활동 같은 것들이요.”
“그냥··· 글은 한동안 접었었습니다. 용 형님께 보내드렸던 시나리오가 마지막 작업이었어요.”
“혹시 그, 주신의 서도 아직 결말이······.”
“예. 더 쓸 수 없으니 마무리도 못 냈죠.”
긴 한숨과 함께, 입을 연 강영일은 누구에게랄 것 없이 그간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신의 서’는 아직도 미완성된 상태였다.
출판사와 수년간의 싸움 끝에 저작권을 되찾아 올 수 있었지만, 그간 법정 공방으로 갈려나간 체력과 정신력이 문제였다.
“몸무게가 오십 킬로그램 대까지 내려갔었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워져서 정신과를 갔더니, 공황장애에 우울증까지 있다더군요. 친한 형처럼 생각했던 대표가 그럴 줄은 몰랐으니까······.”
“그 몹쓸 놈, 결국 작가들 몇 명 더 등쳐먹다가 감옥에 들어갔어. 망치려면 자기 인생만 망칠 것이지.”
용류백이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이런 사연에 약한 박선은 벌써 눈가가 그렁그렁했다.
뺨이 움푹 들어간 강영일이 말을 이었다.
“몸이 좀 회복된 뒤, 하던 이야기는 끝내야겠다는 생각으로 펜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쓸 수가 없었어요. 다시 출판사를 찾고 미팅을 하고, 누군가와 또 제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혔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소리도 들리지 않더군요. 쓰게 웃으며 말하는 강영일을, 건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나의 이야기··· 한 인간의 서사를 완결짓기란 이토록 어려운 것이다. 배우로서 성공한 철왕국의 용사가 아직도 전장을 떠돌고 있듯이.
-그럼 뭐, 세상 구하는 게 쉬울 줄 알았어요? 다른 놈들도 아니고 다섯 대악마라고요!
매번 툭 쏘아붙이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다가 사라졌다. 이제 소설가의 추억여행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지금은 결혼도 했고, 아이도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을 찾아와 주셔서 정말 감사하지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아니, 무슨 소리십니까.”
혹시나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까, 눈에 불을 켜고 주시하던 유 실장이 냉큼 끼어들었다.
“저, 작가님. 저희가 절대 재촉하거나 부담을 드리지 않습니다.”
“어차피 원작을 시나리오화 시키는 데엔 시간이 소요되니까요. 필요하시다면 다른 각색작가의 도움도 드릴 수 있으니, 소설부터 완결한 뒤 천천히 생각하셔도 됩니다.”
은희욱 작가까지 지원사격에 나섰지만 강영일의 답은 한결같았다.
“이미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어요. 저는 작가가 아닌 아이 아빠이자 가장일 뿐입니다. 다시 쓸 자신도 없고, 쓴다 한들 만족하시는 작품이 나오지 않을 겁니다.”
듣고 있던 용류백이 복사된 ‘주신의 서’ 원고를 꺼냈다.
“이걸 보내온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네 재능은 조금도 무뎌지지 않았어. 잠시 덮었다고 책장 속 이야기가 사라질 리가······.”
“선배님, 저는 저를 압니다.”
“강 작가!”
“십구 년간 독자들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작가로서 말 한마디 전하지 않으면서, 꼴에 포기는 하기 싫었는지 각본화시켜 선배님께 보냈죠. 더는 책임질 수 없는 일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말을 마친 강영일은 입을 조개처럼 닫아 버렸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도 완강한 거절이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군.’
유 실장과 은희욱 작가가 곤란한 시선을 교환하고, 지켜보던 건이 입을 열려 했을 때였다.
“여보······?”
설득하려는 이들과 거절하는 이의 시선이 한꺼번에 옆으로 돌아갔다.
사십 대쯤 됐을까. 카페 카운터에는 여자아이의 손을 잡은 여자가 놀란 얼굴로 서 있었다.
*
강영일의 부인은 체구가 작고 생활력 강해 보이는 여자였다.
웬 처음 보는 이들에게 둘러싸인 남편에 놀란 것도 잠시. 자초지종을 듣더니, 대뜸 박건 일행을 집으로 데려와 과일을 내왔다.
“편하게들 드세요. 참외가 달아요.”
얼떨결에 일행의 리더 격이 된, 최연장자 용류백이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저희야말로 시간을 너무 빼앗는 것 같아서······.”
“괜찮아요. 저이가 또 고집을 피웠겠죠, 한번 옳다고 생각하면 절대 안 꺾거든요.”
슬쩍 웃은 그녀는 아이 방에서 딸과 놀아주는 남편 쪽을 잠깐 돌아보았다.
“글을 썼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
“강 작가님 말씀이십니까?”
“예. 자기 서재에, 보물처럼 보관하는 책이랑 원고들이 있거든요. 결혼하고 나서야 말해 주더라고요, 대학생 때 자기가 쓴 것들이라고.”
남편의 작품을 말하는 목소리에, 숨길 수 없는 안타까움과 애정이 묻어난다.
유 실장이 신중하게 설득했다.
“저희는 강 작가님의 작품이 필요합니다. 여기 이쪽, 박건 배우가 그 시나리오를 보고 꼭 작업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찾아왔어요.”
“배우님이, 저희 남편 책을······?”
박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영일 작가님의 작품을 우연히 본 이후, 이 작품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인 팬심으로도 완결이 보고 싶은 책이었고.”
“강 작가, 저 친구는 충분히 하고도 남을 놈입니다. 아직 포기하기엔 너무 젊어요.”
“박 배우가 언급한 작품이라는 것만으로 세간의 이목이 끌리고 있습니다. 영화든 드라마든, 어떤 시장에서든 시나리오며 판권을 사가겠다는 투자자들이 줄을 설 거예요.”
뒤이어 용류백과 유 실장이 본격적인 어필을 시작했다.
은희욱까지 끼어들어 최근 OTT 시장과 ‘주신의 서’의 가능성, 촉박하지 않은 일정을 설명하고 나서 나온 답은 단호했다.
“저는, 남편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뉘앙스상, 이렇게 되면 영락없는 실패다. 유 실장이 다시 입을 여는데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야기는 끝을 맺어야 합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목소리는 크지 않음에도 확실한 파장을 지니고 퍼져나갔다.
박건은 여상스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
“그게 작가의 것이든, 작품의 것이든··· 또는 배우의 것이든요. 강영일 작가님도 한동안 그걸 원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느덧 옆으로 온 강영일도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배우의 입술은 다시 움직인다.
“저는 아직 못 끝낸 과업이 있고, 두렵지만 나아가 진실을 보려 합니다.”
“······.”
“그래서 작가님을 찾아왔습니다. 어떤 세계에서도 유예는 구원이 될 수 없기에.”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저 말 속에 무엇이 담겼는지는 그 자리의 모두가 어렴풋하게나마 느꼈다.
남편을 바라보던 강영일의 부인이 빙그레 웃었다.
“네, 알고 있어요. 저도 그래서 이 사람이 여러분과 함께 갔으면 좋겠어요.”
“서현아!”
강영일이 놀란 눈을 크게 떴지만, 부인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외출해서도 서점들, 책이 있는 곳만 가면 표정이 달라지는 거 알아. 그러곤 서재에서 밤새 원고만 보다가 한숨도 안 자고 출근하는 거, 몇 년을 같이 살았는데 모를 줄 알았어?”
“···서현아.”
“강요는 안 해. 그런데 평생 내려놓지 못할 짐이라면, 아예 함께 들고 가는 것도 괜찮잖아. 내가 당신이랑 그랬던 것처럼.”
자기혐오의 늪은 칼날을 부러뜨리고 펜촉의 날카로움을 앗아간다.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도망쳐 온, 한때는 젊었던 소설가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나는······.”
*
“그래서요? 어떻게 됐어요?”
“어떻게 되다뇨?”
다음날 오후, 로만 엔터테인먼트.
새로 증축된 스카이라운지의 VIP 미팅 룸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거의 일어날 기세로, 자기 커피 잔을 치워 버린 진지유가 다시 물었다.
“강영일이라는 작가님이요! 같이 작품 하시겠다고 한 거 맞죠?”
“아, 강 작가님 얘기 말입니까.”
“갑자기 모른 척은, 방금까지 말해 놓고 무슨······!”
처음 로만에 왔을 때의 박건이 말 붙이기 힘들 만큼 진지했다면, 지금은 친한 사람들에게 장난도 곧잘 친다.
옆에서 히죽대며 구경하던 유 실장이 선심 쓰듯 말해 주었다.
“그래, 하기로 했다.”
“다행이다··· 혹시나 했잖아요.”
진지유는 가슴을 커다랗게 쓸어내리다가 박건을 흘겨봤다.
“됐죠? 알면서도 속아 줬으니까, 어떻게 된 건지 얘기나 들려줘요.”
“들은 그대로인데요.”
“그냥 한다고 하고, 그렇게 끝?”
“예. 용류백 작가님과 아내분의 역할이 컸죠. 마지막엔 선이도 도왔고.”
그날, 마지막 방아쇠를 당긴 것은 박선이 보여 준 커뮤니티 반응이었다.
캡처된 화면을 모아 온 자료에는, ‘주신의 서’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올드 팬들의 반응과 환호가 가감 없이 적혀 있었다.
본인을 향한 원망과 질타 속, 복귀를 바라는 수십 년의 기다림들을 말없이 읽던 강영일은 긴 침묵 끝에 말했다.
‘해 보겠습니다. 졸작으로 끝마치더라도.’
이야기를 듣던 진지유는 고개를 저었다.
“설마. 졸작은 절대 안 될 거예요. 저도 기사 뜨자마자 읽었는데, 영미권 판타지에 비해서 하나도 안 밀리던데요?”
유 실장이 대꾸했다.
“대신 시간이 문제지. 작가들한텐 필속도 중요하잖아. 그 양반도 오래 쉬었으니, 운 나쁘면 감 찾는 데만 몇 년······.”
그때, 직원 한 명이 부리나케 뛰어들어왔다.
“배우님들, 유 실장님! 그 작가님한테 방금 연락이 왔어요!”
“뭐야, 왜! 혹시 과로라도······.”
“그런 건 아니고요. 최대한 빨리 전달드릴 게 있다고, 와이프 편으로 뭘 보냈다더라고요.”
엉겁결에 일어섰던 유준일 실장이 뒷목을 잡으며 도로 앉았다.
“···그럼 그렇게 말해야지. 난 뭐, 갑자기 쓰러지시기라도 한 줄 알았잖아. 오랜만에 원고 쓰다가 너무 무리해서.”
간신히 집필을 시작하게 만든 귀하신 몸이다. 이제 막 치고 나가야 할 판에, 초장부터 작가가 쓰러지면 답이 없다.
그런데 직원의 표정이 이상했다.
“무리하신 건 맞는 것 같은데··· 완성을 하셨다더라고요.”
“···뭘, 설마 시나리오를?”
“예. 연차 내고 지금까지, 쭉 달려서 방금 전에 소설 버전으로 먼저 완결내셨대요.”
“······.”
충격적인 정적이 흘렀다. 박건만 그럴 수도 있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커피로 손을 가져갔다.
주변을 돌아본 유준일 실장이 중얼거렸다.
“거, 우리 주변엔 천재들밖에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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