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7)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7화(17/199)
안방 데뷔전 (6)
* * *
촬영장의 둥글고 딱딱한 의자에 앉은 채, 진지유는 생각했다.
‘안 아프네.’
뺨을 만져봤지만 통증은 없다. 어떻게 때린 건지, 몸이 날려 갈 만큼 맞았는데 입술 하나 안 터진 건 신기할 정도다.
그녀가 볼을 혀로 굴려 보는 사이 저쪽에서는 대본 디렉팅이 한창이다.
“여기서는 레일이 뒤로 들어가면 더 그림이 살 것 같습니다. 용준상 선배님이 정면으로 오시니까, 보조출연자 분들 동선도 안 겹치고요.”
“오, 괜찮네. 이 구도면 두 번 안 찍고도 딱 맞출 수 있겠어요.”
“난 가끔 박건 씨 정체가 궁금해. 막 뭐, 인간 3D 프린터 이런 거 아냐?”
마대휘가 청부업자들에게 쫓겨 둔덕을 구르는 씬인데, 촬영감독부터 주연 배우들까지 무명 조연에게 디렉팅을 받고 있다.
다들 박건의 말이 나올 때마다 끄덕거리며 맞네, 맞아, 찬동한다. 누가 보면 수십 년간 구른 액션감독처럼 보일 지경이다.
‘지유 씨, 혹시 서울의 개 봤어?’
‘아, 용준상 선배랑 서희도 씨 나오는······.’
‘아니, 아냐. 그 둘 말고, 진짜가 한 명 나왔다니까. 비주얼 신선하지, 마스크 유니크하지, 액션 쥐꼬리만큼이라도 있는 영화면 난 무조건 그 배우 들어앉힐 거야.’
지난 주, 미팅 때문에 모 영화감독과 만난 자리에서 귀에 딱지가 얹게 들어 알고는 있다.
요즘 핫한 무명 배우.
얼굴만 반반한 신인이 아니라, 진짜로 어디 뒷세계에서 뛰쳐나온 것 같은 청부업자.
-특별출연 콜? 페이는 맞춰 드릴게.
-갑자기 웬 특출이야, 배역이 뭔데?
-우리 작품 보고 있는지 모르겠네. 최승한테 납치당하는 경찰청장 딸.
그래서 친분이 있던 은희욱의 문자에도 곧바로 OK를 했다. 회사에 찾아왔다던 작자가 대체 어떤 인간일까 해서.
직접 보니 유니크한 마스크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납득이 간다.
얼굴 하나로만 쳐도 남자 배우들 중 최상위권은 된다. 고양잇과 맹수 같은 인상에, 한쪽만 있는 외꺼풀의 분위기도 묘하다.
‘지금은 저렇게 입혀 놔서 그렇지, 쫙 빼 입히고 멀쩡한 역 맡기면······.’
액션배우가 아니라 정극에 어울릴 얼굴이 아닌가. 여팬은 당연하고 남팬까지 쓸어모을 상이다.
“어때? 물건이지?”
어느 새 옆으로 온 은희욱 작가가 팬심 그득한 표정으로 박건을 쳐다보았다.
“공석에서는 존댓말 부탁드립니다.”
“아, 예, 진지유 배우님. 오늘 촬영 어떠셨는지 소감 들으러 왔습니다.”
“분위기 좋네. 다들 에너지도 넘치고.”
“그게 다야? 아까 박건 씨랑 합 한번 맞췄다면서, 뭐 다른 거 없었어?”
‘있었지, 엄청나게.’
진지유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까를 생각하자 절로 뺨이 찌릿찌릿했다. 슛이 들어가자마자 공기가 바뀌는 경험이 얼마 만이던가?
배우는 역할에 몰입할 시간, 혹은 루틴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방금은 집중할 틈도 없이 상대의 에너지에 휩쓸리듯 빨려들어갔다.
꼭 이곳이 처음 타는 아반떼 안이고, 진짜 그녀를 납치한 스토커에게 폭행당하는 것처럼.
대사 한 마디 없었지만 분위기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절로 진심이 되고 말았다.
‘연기 좀 한다는 원로랑 붙어도 이런 느낌은 잘 안 나는데.’
꿈틀거리는 입꼬리를 누르며, 그녀는 다 본 대본을 아무렇지 않게 내밀었다.
“특별출연한테 뭘 바라. 듣고 싶으면 다음 작품 가져와서 정식으로 캐스팅하세요.”
“야, 너도 알잖아. 이번엔 진짜 여주인공 들어갈 데가 없었어!”
“됐어. 대표님이 오빠 자꾸 그럴 거면 회사 놀러오지 말래. 작품도 안 주면서 배우들 마음만 싱숭생숭하게 만든다고.”
“안 되지. 너랑 백하니가 물어뜯는 거 보려면 꼭 가야지, 그게 리얼 실전액션인데.”
히죽대던 은희욱이 분위기를 바꿔 물었다.
“아무튼 고맙다. 부탁할 거 있으면 말해. 캐스팅 내정 말고 다 들어 줄게.”
“작가님, 나 마지막 작품이 봉상백 감독님 영화였거든요? 뛰고 구르는 덴 딱 질려서, 당분간 느와르 시놉은 관심 없고.”
저만치서 최승··· 아니, 박건이 방패만 한 책을 꺼내 읽는 게 보였다.
화장기 하나 없어도 쭉 뻗은 눈초리가 초승달처럼 휘었다.
“종방연 가도 되지? 나도 출연 배우니까.”
*
진지유의 SNS에 촬영장 사진이 올라왔다.
친분 루머를 의식해서인지, 대본만 들고 있는 독사진이었다.
셀럽들의 인스타를 주시하던 연예부 기자들이 바삐 기사를 쏟아냈다.
<진지유, 촬영장 포착··· 대본 들고 매혹적인 눈빛 발산>
<드라마 ‘서울의 개’ 진지유 특별출연 확정! 라이징스타들과 호흡 맞추나>
<‘국민여전사’ 진지유, 웰메이드 느와르 ‘서울의 개’ 특별출연>
특별출연이긴 했지만 탑급 여배우의 합류에, 커뮤니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아니 갑자기 진지유라고?ㅋㅋㅋㅋㅋ
진 ㅡ 멘
진지유 성공했네 서울개에도 출연하고
ㄴ양심 ㅇㄷ
다된밥에 여배우뿌리기.. 아이돌출신이면 연기력 뻔하구만.. 작가랑 친한가…
ㄴ아재요 진지유가 누군지 알긴 함?
ㄴㄹㅇㅋㅋ 돌판 씹어먹다 넘어와서 연기력 하나로 청룡영화제 탑 찍은 게 진지윤디
솔직히 연기력 원툴은 아님; 얼굴로도 백하니 송별이랑 20대 여배우 삼대장임
ㄴ우리 건이도 얼굴천재
그래서 무슨 역할임? 특출이면 한두 화짜리 엑스트라일 건데 ㅇㅇ 로맨스는 아니겠고
배역 궁금해지네 ㅋㅋㅋㅋ 주연들 옆에서 여경이나 간호사로 나오려나
성지예약) 최승이랑 붙일 수도 있음
ㄴ줘팸좌랑 찍으면 진지유도 ”줘팸“당한다…
*
마지막 회 촬영을 며칠 앞둔 날,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시간이 될 때 조촐하게 축하 파티나 하자는 것이었다. 때마침 다음날까지 촬영도 없어, 건은 캡모자만 눌러쓰고 약속 장소로 갔다.
“안녕하세요, 예약하셨나요?”
“2층에요. 일행들이 먼저 와 있습니다.”
이자카야 발코니로 올라가자 이미 한 상이 거하게 차려져 있었다.
벌써 얼굴이 불그죽죽해진 배영호가 소주병을 흔들었다.
“오, 모자. 연예인 티 팍팍 나는구만.”
“그런 거 아냐. 펀치머신 부수고 난 뒤로 선이가 쓰고 다니래서 샀다.”
오락실 해프닝은 진작 단톡방에 공유돼서 친구들의 웃음거리를 산 뒤였다.
폭소하던 서승아가 손을 휘휘 저었다.
“야, 야, 이제 벗어. 원래 적당히 알아볼 정도는 노출해 주는 게 중요해.”
“쟤를 왜 노출시켜?”
“아직 건이가 업계 탑급은 아니란 말야. 초창기에 이런 데서 자연스럽게 찍혀야 커뮤니티 글 하나라도 더 뜨면서 새 팬들 유입되지. 막방 시청률도 올라가고.”
배영호가 감탄했다.
“오. 역시 연봉 1억 변호사, 와꾸 짜는 솜씨부터 달라.”
“당연하지. 벌써 선이랑도 다 의논해 놨거든? 그리고 세후론 1억 안 된다고.”
집을 나올 때 어쩐지 혼자 다녀오라고 하더니, 미리 얘기가 된 모양이었다.
이야기는 당연히 박건의 근황, 그 중에도 ‘서울의 개’ 히트로 흘러갔다.
배영호는 몹시 미안해하며 2화 이후로는 못 봤다고 털어놓았다.
“퇴근을 못 해서··· 미안하다. 어제도 부장이랑 부부장한테 연타로 까이다 지검에서 잤어.”
“누군 한가해서 보냐? 뱅호 저건 항상 핑계야.”
서승아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기 백팩에서 아이패드를 꺼냈다.
“와, 무슨 팬클럽 회장인 줄. 가서 선이한테 코디 시켜 달래라.”
이죽거리던 배영호도 최승의 씬 모음집이 나오자 입을 다물고 집중했다.
특히 거구의 외국인과 벌인 격투 씬에서는 잘 뽑혔다며 혀를 내둘렀다.
“박력 죽이네. 참고인 조사 때 험한 짓한 애들도 많이 오는데, 최승이랑 친구라고 겁 한번 주면 바로 쫄겠다.”
“그치? 요즘 드라마판에서 제일 핫해. 그러니까 진지유도 나오지.”
“뭐라고!”
배영호가 갑자기 소리를 치는 바람에 주변 시선이 쏠렸다.
“진지유가 나온다고? 건이 드라마에?”
“속고만 살았나. 직접 확인하셔.”
기사를 검색해서 본 배영호는 손까지 모아 쥐고 캐묻기 시작했다.
“진지유 어땠어? 예쁘디? 실물도 막, 영화에서처럼 후광이 번쩍번쩍하고 그러냐?”
후광은 모르겠고··· 예쁘긴 했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이쪽만 계속 관찰하던데, 좀 부담스러웠지만 모니터링이겠거니 넘어갔었다.
건은 무난하게 대답했다.
“예쁘긴 하더라. 키도 크고.”
“미친, 이건 좀 부럽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보다 좋아하던 연예인이 진지윤데. 로스쿨 준비할 때 브로마이드도 샀단 말야, 방 벽에 붙여 놓고 힘들 때마다 보려고.”
“나중에 사인 받아 줄게. 종방연 때 온다더라.”
“진짜? 와, 이게 박건 의리지. 역시 내가 친구는 잘 뒀다.”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찬 서승아가 물었다.
“너 전에 갔던 데가 로만이랬지?”
“어, 선이 일하던 회사.”
“내가 볼 땐 거기 대표가 뭐 있어. 너한테 꽂힌 것 같으니까 간 잘 봐.”
“그건 그냥 작가님이랑 친해서던데. 특별출연 해 달라고 부탁했던 모양이더라고.”
꿈결에 빠진 표정이던 배영호가 문득 말했다.
“맞네, 진지유 소속사가 로만이잖아.”
“그러니까. 은희욱 발 넓은 거 유명하긴 한데, 그래도 지원사격이 너무 빵빵하잖아. 거기 팀장인지 뭔지가 선이한테 미팅 잡자고도 했다며.”
“아직 안 했어. 같이 일하는 배우들이 드라마 끝나고 잡으래서.”
서승아가 물었다.
“그래서, 본인은 어디로 가고 싶은데?”
“소속사?”
건은 잠시 고민했다. 부대나 소속사나 거기서 거기 아닌가?
사실 매니저를 동생이 맡고, 사적인 영역까지 건드리지만 않으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그때, 아까부터 흘끔거리던 뒤쪽 테이블 여자들이 쭈뼛쭈뼛 다가왔다.
“저, 박건 배우님 맞으시죠? 실례인 건 아는데 진짜 팬이라서······.”
건은 흔쾌히 사인해 주었다. 여자들이 몇 번이고 고맙다고 하면서 간 뒤, 사인하는 사진을 찍던 서승아가 보란 듯 으쓱댔다.
“봤지? 알아봐야 된다니까.”
“어우, 그래. 근데 사진은 뭐 하게?”
“나중에 선이 보내주려고. 신인 배우의 자연스러운 초창기 사인 컷.”
“···너 진짜 쟤 코디로 취직해라.”
단, 그들은 ‘최승’의 인기를 간과했다. 저쪽에서 숨넘어가는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몇 분 만에 사람이 몰려들었다.
급기야 술집 사장까지 사인을 받아가자 배영호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박건 인기 장난 없네. 쟤 왜 저렇게 떴냐?”
“야, 이제 시작이야. 좀 있으면 같이 이런 데도 못 다닐걸, 팬들 몰려서 무조건 프라이빗 룸으로 잡아야 돼.”
한두 병을 더 비우자 슬슬 일어날 시간이 됐다.
건이 카드를 긁는데 웬 해골바가지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저기, 혹시······.”
일일 매니저를 자청한 서승아가 프로모터처럼 건을 소개했다.
“예, 서울의 개 그놈 맞습니다. 편하게 사인 받고 사진 찍으세요.”
“아뇨, 그쪽한테 볼일이 있어서··· 혹시 남자친구 있으세요?”
“······예?”
마지막은 서승아한테 들어온 헌팅이었다. 배영호가 배를 잡고 웃는 사이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남자친구가 있다고 거절했다.
“남자친구도 있었어?”
“···있겠냐. 일하기도 바빠. 박건 너도 여자 조심해라, 지금처럼 물 들어올 때 스캔들 뜨면 새싹 밟으려는 안티들 우르르 양성돼.”
배영호가 끼어들었다.
“야, 건이를 그렇게 보고도 몰라? 얘는 돌하르방 아니면 고자야. 군대 가기 전에도 여자 만나는 꼬락서니를 못 봤다.”
그놈의 여자는 질릴 정도로 만난 터였다. 철왕국으로 전이된 뒤, 온 왕국의 미녀들이 매일 밤마다 용사의 숙소로 들어왔다.
3회차인가, 4회차 이후부터는 그마저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대악마를 찢어 죽이던 용사의 동료들 중 여자는 한 명뿐이었다.
“아리아 리버롯.”
“그게 누구야? 새로 데뷔한 여돌 멤번가?”
“아마 모를걸.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딱 기다려. 꽁꽁 숨긴 데뷔조만 아니면 바로 찾아준다.”
서승아가 발끈해서 스마트폰을 뒤지는 사이, 배영호가 은밀히 귓속말했다.
“크흠, 건아. 연예인 생활 힘들어도 게임에 너무 빠지진 마라.”
“게임?”
“요즘 성주의 탑, 천신전기, 이런 거 잘 나가잖아. 딱 그런 풍 이름인데? 나도 틈 날 때마다 사무실에서 모바일게임 돌리거든.”
어째 묘하게 정답과 가까웠다. 건은 잘 썰린 와규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날것으로 뜯던 악마견 고기보다 훨씬 부드러운 살점이 씹혔다.
“게임은 안 해. 직접 가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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