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70)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70화(170/199)
가자, 뉴질랜드로 (3)
* * *
‘주신의 서’의 원작, 초반부는 철저하게 주인공 이도의 행적을 따라 움직인다.
‘마수사냥꾼’, ‘제후시해범’, ‘이세계의 방랑자’··· 책장이 넘어가며 서서히 내력이 밝혀지나, 그전까지는 딱히 흘리는 정보도 없다.
그가 정말 다른 세계의 사람인지, 머리색이 검은 이유는 무엇인지, 왜 악에 준하는 모든 존재를 학살하며 신을 능멸하는지도.
알 수 있는 사실은 단 하나,
이 방랑객이 모종의 목적으로 제국령을 떠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각본화된 초반부 스토리만 본 몇몇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21세기의 판타지 드라마에서, 칼질만 해대는 주인공이 매력이 있는가?
그리고 그보다 많은 관계자들이, 짧은 영상을 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있다.
그 주인공이 무진장 강하고, 사연이 있고, 결정적으로 비주얼까지 끝내주는 스타일리쉬한 캐릭터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처음, 남섬의 촬영장에 온 배우들이 감탄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와, 게임에서 튀어나온 줄 알았네.”
“여긴 아예 다른 세상인데요? 내가 알던 뉴질랜드가 아닌 것 같아요.”
“중세로 돌아온 느낌이군. 아직 피터 숀의 감이 여전하다더니, 오히려 전작들 촬영지보다 끝내주는 곳을 잡았어.”
차에서 내린 배우들이 촬영장을 둘러본 뒤 저마다 감상평을 내놓는다.
고지에 세워진 황제의 거처, ‘순백의 성’ 카타람을 보고 혀를 내두르던 그들은 촬영 중인 동료 주연들을 보고 흠칫 놀랐다.
“처음 뵙겠습니다. 박건입니다.”
애초에 야지에서 활동하고 촬영하는 씬이 많다 보니, 박건은 아예 먹고 잘 때에도 방랑자 ‘이도’의 복장이다.
시커먼 피풍의에 대검을 비껴 멘 장신이 악수를 청하자 여기저기서 감탄이 솟았다.
“나는 릭이에요. 근데 동양인 맞습니까? 아무리 봐도 혼혈 같은데?”
“맞습니다.”
황제의 군단사령관, 게일 역할을 맡은 릭 미하엘은 감탄한 눈빛으로 박건에게 악수를 청했다.
이도를 도와 제국과 맞서는 반군의 수장, 니케르트 역할의 제임슨 오버베는 홀쭉한 뺨을 우물거리며 혀를 찼다.
“이 친구야, 그건 인종차별이야. 나이를 먹어도 옛날 버릇을 못 버려?”
“거 참··· 살을 빼더니 불편한 것만 많아졌어. 가서 오트밀이나 먹으라고.”
피터 숀이 마리 언질을 준 대로, 저 두 배우는 헐리우드에서도 유명한 죽마고우다.
서로의 역할이 반대라 릭은 몸을 키우고 제임슨은 살을 뺐다더니, 그걸 가지고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이 제법 친해 보였다.
“그만들 해. 여기가 뉴질랜드인지, 브로드웨이 단칸방인지 모르겠군.”
“맥! 뭐야, 언제 왔어요?”
마지막으로 합류한 폭군 황제.
할리우드의 전설이자 3대 영화제의 왕, 맥클레인 자바스런티가 걸어오자 릭 미하엘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자네들 차 바로 뒤에 붙어서. 못 봤나?”
“전 다이어트 때문에 어지러워서······.”
“그 핑계를 언제까지 댈 생각인지, 자고로 스타라면 적정 체중을 유지할 줄도 알아야지.
“적정 체중은 무슨, 난 제작진 등살에 십 킬로그램을 넘게 뺐다고! 이러다 반군 사령관이 아니라 미라인 줄 알겠어.”
그러고 보니, 2팀으로 도착한 주연들은 대부분 헐리우드 출신이다.
릭 미하엘과 제임슨 오버베는 탑 스타 반열에 든 배우들이며, 사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맥클레인 자바스런티도 환갑에 가까운 베테랑인 것이다.
“레이웬 배역의 진지유입니다. 잘 부탁해요.”
촬영 중이던 진지유까지 소식을 듣고 오자 작품의 주요 인물들이 다 모였다.
인사며 사담을 주고받는 ‘주신의 서’ 주축들을 멀찍이서 바라보며, 한국에서 온 배우 일행들 사이에서도 이야기꽃이 폈다.
“와, 맥클레인이다······.”
“진짜 저 사람들이 다 왔네. 영화로 볼 때는 평생 만날 일 없을 줄 알았는데.”
“형, 나한테 고마워해. 내가 배역 못 땄으면 맥클레인 구경이 아니라 뉴질랜드도 못 왔어.”
뻔뻔스럽게 자랑을 늘어놓은 서희도 옆에서, 카타나를 짚고 서 있던 중견배우 홍창국이 끼어들었다.
“생각보다 화기애애해서 다행이야. 분위기가 이대로만 흘러갔으면 좋겠는데······.”
“음? 왜요? 여기 사람들도 막 기싸움 같은 걸 하나?”
소싯적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헐리우드의 문턱을 넘어 봤던 홍창국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더 심한 걸 하지. 급이 안 맞으면 사람 취급을 안 해, 동양인은 더더욱 그렇고.”
“괜찮아요! 선이 형을 보면 딱 알거든요. 뭔가 일이 터질 것 같으면 귀신같이 아는데, 이번 작품은 오는 내내 평화로웠어요.”
홍창국, 이제 젊은이보다 노인 쪽에 가까워지는 이 친절한 배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뉴질랜드까지의 여정은 멀다.
본래도 촬영현장에서 후배들을 잘 챙기는 편이지만, 오는 동안 일행 최고참으로서 행여 모를 불상사를 예방하겠다는 책임감에 불타던 그였다.
‘너무 걱정 마요, 형님. 나도 석 선배한테 얘길 좀 들었는데, 그렇게 걱정할 애들이 아냐. 우리 때랑은 똑 부러지는 것부터가 다르다우.’
출발 전, 절친한 후배에게 염려 말란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도 믿지 못했다.
수십 년 전··· 처음 헐리우드로 진출했을 때 인종차별에 얼마나 시달렸던가. 뿌리 깊은 악습에 후배들이 고통받을까 걱정했건만······.
“오, 캄보디아에서도 촬영을 했었다고요? 거기 현장에서 열 좀 받았을 텐데.”
“환경은 괜찮았습니다. 당국도 협조적이어서, 금방 찍고 비행기를 탔었네요.”
“미안하지만 릭, 이 친구의 인내심은 우리랑 급이 달라. 그 정신 나간 남미에서 마약상들과 총격전을 벌이고도 스탭 전원을 생환시켰다고. 사실상 전쟁 용사랑 같은 급이라니까.”
“그건 제가 아닌데요.”
딱 하루 하고 반나절.
콧대 높은 헐리우드 스타들이 박건과 합을 맞추고, 그 유명한 ‘실전 액션’에 경악하고, 이 무뚝뚝한 동양인과 친해지는 데 걸린 시간이다.
전형적인 금발의 쾌남, 미녀 스타들과 염문을 뿌리던 릭 미하엘이 오지 촬영에 흥미를 보이면 제임슨 오버베가 핀잔을 놓는다.
이번 작품 최고참. 고가의 선글라스를 낀 채, 매니저들이 설치한 디스크용 의자에 앉아 있던 맥클레인 자바스런티도 한 마디 거들었다.
“아니라는데 뭘 그리 캐묻나. 제임슨, 자네도 작년에 베니스에서 쿠바 장관의 손녀랑 요트를 타다가 걸렸었잖아. 모른 척도 좀 해 주게.”
제임슨 오버베는 시큰둥하게 절친 쪽을 턱짓했다.
“그건 제가 아니라 릭입니다. 속옷도 안 입고 그 난리를 치다가 쿠바에서 영구 입국금지를 당할 뻔했었죠.”
“아, 그랬나? 자네들이 같이 다닌 게 너무 오래라··· 가물가물하단 말이지.”
“전 결혼도 했잖습니까. 그러고 보니 박, 유부남이라고 했죠?”
“미혼입니다.”
역시 헐리우드 스타들의 스캔들은 전국구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다.
누가 듣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쿨하게 으쓱거리던 릭 미하엘이 말했다.
“아무튼, 이런 괴물일 줄은 미처 몰랐네. 사실 영화를 보면서도 좀 의심했었거든요. 요즘 CG랑 패스트모션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해서, 빨리감기를 좀 썼을 거라고 생각했죠.”
박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꾸했다.
“그건 굳이 안 썼습니다. 감독님이 제작비를 아껴야 한다고 해서.”
“···어, 이건 자랑 같은데. 맞죠, 맥?”
“오늘 호흡을 맞춰 보고도 모르겠나? 저 친구한테는 일상이니까, 촬영장 뒤에서 얻어맞기 싫으면 알아서 조심하도록 해.”
신인 시절, 릭 미하엘이 텃세를 부리던 다른 배우와 주먹다짐을 벌였던 일을 말한 것이다.
원로배우의 농담에, 둘러서 있던 이들에게서 왁자지껄한 웃음이 터진다. 릭 미하엘은 뒤통수를 긁으며 중얼거렸다.
“거 참, 나도 상대 봐 가면서 덤빈다니까.”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한국 배우들, 특히 홍창국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걱정한 게 무색하구만.’
물론, 주연이 평범한 동양인 배우였다면 저들이 합류하는 일조차 없었을 것이다.
금세 친해져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헐리우드야말로 능력과 인종 등 배경을 한국보다 더욱 따지는 세계다.
-나는 바다 건너, 먼 곳에서 왔소.
-이 대륙에는 사라져야 할 것이 있지. 그 중 하나는 나고, 다른 하난 너희겠군.
-마수보다 추악한 인간이 이토록 많다니···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모양이야.
도착하자마자 눈앞에서 보여 준 박건의 연기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이만큼 빨리 서로를 인정하고 협조적으로 굴지도 않았으리라.
‘고드’가 전세계적 유명세를 얻고, 박스오피스 1위를 몇 주나 차지했다지만··· 저들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수많은 성공을 거둔 베테랑 아닌가.
“혹시 사인 좀 부탁해도 됩니까?”
“나는 사진도요. 칸에 올라갔을 때부터 당신의 팬이었습니다! 릭이 같이 작품을 한다고 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고맙습니다.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몸값이 제일 비싼 이들이 빠졌으니, 나머지 스탭들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다.
박건은 쉬는 시간마다 배우들을 따라온 매니저, 코디, 영양사 및 트레이너에게 둘러써야 사인과 사인 요청을 한몸에 받았다.
“어, 제너미럴!”
그리고, 의외의 인기를 얻는 사람도 있다.
“예? 그거 우리 팀인데······.”
갑자기 자신의 그룹명을 불려 어리둥절하는 서희도에게, 불타는 듯한 붉은머리 배우가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
“제일 좋아하는 K-팝 스타예요! 일본에 여행 갔을 때는 콘서트도 봤고··· 저도 제니라고요!”
미쳐버린 황제 옆에서 제국을 도탄에 빠뜨리는 악녀, 황후 배역의 알리샤 료는 알고 보니 서희도네 그룹의 열성팬이었다.
팬덤 이름까지 꺼내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두 사람을 보며, 진지유가 씁쓸하게 말했다.
“괜히 섭섭하네. 이럴 줄 알았으면 좀만 더 활동하는 건데, 요즘 애들도 한국에 통 들어오질 않으니까 더 적적해요.”
진지유의 전 그룹, ‘포 퀸즈’는 최근 해외투어를 6개월이 넘게 도는 중이었다.
진지유와는 다른 이유로 우울해져 있던 박선도 구슬프게 중얼거렸다.
“한국엔 안 들어와도 되니까, 해외에서라도 투어 일정이 겹쳐서 만났으면 좋겠어요. 아희랑 영상통화도 못한 지가 몇 달인지······.”
“아, 잘하면 시드니에서 연말콘서트가 잡힐 수도 있다던데요? 그때 잠깐이라도 보면 되죠.”
“어어, 시드니면 바로 옆이잖아요!”
썸을 탄 것도 몇 달째. 아이돌 멤버와의 비밀연애 아닌 비밀연애는 늘 힘든 법이다.
잠깐 눈을 크게 뜬 박선이 다시 축 늘어졌다.
“근데 뭐, 그것도 촬영이 먼저죠. 감독님 회의에 잠깐 껴서 들었는데, 여름 내로 남섬 일정이 다 마무리될지도 미지수랬어요.”
“아유, 싸인 오케이! 그냥 한국에 한번 놀러와요! 우리 그룹 티켓 VIP로 초청할 테니까!”
때마침 들린 서희도의 목소리에, 둘 모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금발로 염색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진지유는 자신감 넘치게 선언했다.
“글쎄요. 지금 속도면 해 볼 만할 걸요?”
*
남섬의 광활한 자연 속에서, 촬영은 신속하면서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지난 3개월간 제작진이 쌓아올린 세트는 황제가 거주하는 ‘순백의 성’뿐만이 아니다.
허가를 받은 산중턱과 평원 곳곳, 기이한 형태의 석회암이 흩어진 원시림의 한복판에도 무너진 망루와 시커먼 요새가 세워졌다.
“와, 이걸 다 했네. 아시바 세우고 동물들 접근을 아예 막은 건가?”
“그런 것 같아. 비계(飛階)를 엄청 높이 쌓았던 모양인데.”
드라마나 영화 현장을 잘 아는 국내 스탭들은 감탄했고, 현실감에 압도당한 배우들은 더더욱 연기에 몰입해 씬을 소화했다.
“서둘러, 해가 떨어지기 전에!”
“이번 큐가 마지막이야, 십 분 뒤면 이쪽 자연광이 싹 걷힐 거야!”
아무리 CG를 덧칠하고 소품을 올려도, 세트장 안에서의 연기와 저 자연 속에서 펼치는 연기가 같을 수는 없다.
배우들의 땀방울과 부딪치는 쇳소리, 어떤 조명보다 이글거리는 뉴질랜드의 태양과 함께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렇게 남섬의 여름 촬영이 끝나갈 무렵,
돌연 날씨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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