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73)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73화(173/199)
가자, 뉴질랜드로 (6)
* * *
주신의 서, 4회의 컷신.
소설의 원작자는 스토리 분배에 능숙하다.
이도의 이야기가 가장 흥미진진해질 무렵 황녀의 시점으로 전환되고, 또 몇 명의 주조연 주인공들이 휙휙 나온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요해 보이던 등장인물을 거침없이 죽이는가 하면, 제국 내부의 암투와 이도의 행보를 그물처럼 엮는다.
‘에라, 또 여기서 끊어!’
‘뭐 이딴 소설이 다 있어? 어떻게 따라가라는 거야?’
‘모르겠고 더럽게 재밌긴 하네, 누가 죽을지 몰라도 일단 보고 만다!’
극도로 불친절한 전개. 그러나 유려한 문장과 매력적인 세계관에 매료된 독자들은 아우성을 터뜨리면서도 책장을 넘긴다.
욕망에 찬 군단사령관과 이 세계의 비밀을 아는 황제··· 폭군을 시해하기 위한 사형집행수의 아들은 저마다 다른 목적을 지닌 채 주인공과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피터 숀은, 그 대하서사를 가장 ‘영상물’에 걸맞게 버무려낸다.
이도 : 넌 누구냐? 인간은 아닌 것 같은데.
묵빛 대검이 겨눠진 목에서, 흰 피가 조금씩 날을 타고 흘러내린다.
이대로 긋거나 찌른다면 절명할 터. 그러나 검을 들이미는데도 귀가 뾰족한 요정족 사내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말한다.
제린 : 당신을 돕기 위해 왔어요, 방랑자시여. 우리 종족의 대표로 힘을 얹겠습니다.
수없는 마물과 제국군의 시체를 넘으며, 이도는 몇몇 조력자와 만난다.
그중에는 서희도가 연기하는 요정족의 왕자 제린과, 홍창국이 연기하는 옛 제국의 검술교관 헥탄도 있다.
헥탄 : (외눈을 가늘게 뜨며) 자네, 이곳 사람이 아니군?
이도 : 당신도 산 자가 아니군.
헥탄 : (허허로이 웃는다) 지금의 제국에서, 숨이 붙어 있다고 살아간다 할 수 있겠나. 영혼이 불타 버린 자에겐 하루하루가 지옥일 뿐이거늘.
이도 : 원하는 게 뭐지?
헥탄 : 제국으로 가고 있겠지. 저 뒤는 요정족의 귀하신 몸 같고··· 노리는 건 황제의 목인가?
이도는 긍정도 부정도 않고 뒤쪽을 본다.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요정 제린이 고개를 끄덕인다.
제린 : 거짓은 없어요. 이자는 이도님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헥탄 : (껄껄 웃으며) 고귀한 핏줄이시여, 내 마음을 멋대로 들여다보시는구려. 하지만 조심하시오. 당신네 종족들은 좋은 귀와 마음을 읽는 심안, 그리고 인간을 안다고 생각하는 그 오만 때문에 일곱 대륙의 번성을 잃었으니.
제린 : 말을 조심해라, 인간 아이야. 나는 네가 산 세월의 네 배는 더 살아왔다.
서희도의 연기는 더 이상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아이돌 시절이 아니다.
제 씨족을 살리려 이도를 돕지만, 본성은 인간을 증오하는 요정족의 왕자가 순식간에 포악한 이빨을 들이댄다.
중견배우 홍창국도 밀리지 않기론 마찬가지다.
헥탄 : 이백 년도 전에 수많은 요정족이 죽었고, 백 년 전에는 더 많이 죽었지. 왕자까지 내 검에 목숨을 잃는다면 너희의 왕이 슬퍼하겠어.
일촉즉발의 둘 사이로, 돌연 시커먼 충격파가 터지며 공간을 갈라놓는다.
몇 걸음씩 물러난 헥탄과 제린을 향해, 벌써 저만치 걸어가는 이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도 : 안 갈 건가?
*
전투는 계속된다.
테아나우와 마나포우리 사이로 흐르는 거친 강, 와이아우강의 기슭을 타고 ‘주신의 서’ 촬영팀은 이동한다.
그 과정에서 수없는 명장면들이 탄생한다.
직접 만든 나룻배 한 척에 몸을 의지한 이도 일행들,
제국의 심장이라 불리는 ‘거친너울 강’의 밑바닥에 도사린 수중생물의 위협,
거기에 배를 버리고 뭍으로 올라, 강을 둘러싸고 있는 준봉들에서 맞닥뜨리는 마수들.
촬영장비 또한 간단하지만 효과 좋은 녀석들이 동원되었다.
와이어를 촬영 동선에 따라 높게 설치하고, 원격으로 조종되는 카메라를 움직여 배우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따라붙는다.
.
.
.
와삭, 타다닷!
흩어지는 나뭇가지, 짓밟히는 풀잎.
망토를 늘어뜨린 방랑자, 이도가 밀림처럼 잎들이 우거진 숲속을 달린다.
한때 이 준봉들은 옛사람들에게 ‘위대한 숲’이라 불리던 산맥들이었다.
그러나 마수가 나타나고 요정들이 떠나며 푸르던 녹음은 자취를 잃고, 검게 변한 잎사귀들과 미친 괴물들만 남고 말았다.
“······.”
일행의 선두를 맡아 달리며, 이도는 감각을 끌어올려 충돌에 대비한다.
제린과 헥탄은 삼각형을 그리며 좌측과 우측에서 따라붙고 있을 터. 동료들이 나서기 전에 그가 처리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크와아아아앙!
그때, 지축을 흔드는 포효와 함께 거대한 호랑이처럼 생긴 마수가 튀어나온다.
당연히 이 역시 센서 수트를 입은 베테랑 스턴트맨이다. 뒤쪽에도 네다섯 명이 더 나타나 서희도와 홍창국을 노려본다.
“킬리언입니다! 털빛이 검고 눈동자가 백색인 걸 보니, 어딘가에서 조종하고 있어요!”
요정족의 신비로운 기예, 먼 곳에 있음에도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청명한 목소리가 전달된다.
제린의 경고를 듣자마자 이도는 튀어나가며 대검을 휘둘렀다.
휙, 촤아악!
놀라운 일검(一劍), 무의 극한에 이른 발도술이 또다시 펼쳐졌다.
달려들던 마물은 시커먼 피를 뿜으며 절반이 깔끔하게 잘려 나뒹군다.
피와 내장이 쏟아지지만 이도는 이미 그곳에 없다. 다음 녀석, 또 그 다음 녀석까지 처치한 방랑자는 불현듯 어딘가를 본다.
“젠장, 놈이 어떻게······!”
거리가 제법 떨어진 나무 사이, 신기하게도 주변과 색이 비슷한 옷을 입은 사내가 화들짝 놀라며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감지 타입은 아니라더니, 게오르그의 말을 들었어야 했나.”
일어서서 도망치려 했지만, 상대는 그야말로 번갯불처럼 거리를 좁혀 온다.
변용술과 위장술도 소용없다는 것이 판명난 상황. 이를 악문 사내는 품속에서 수정구슬을 꺼내 힘을 불어넣었다.
라흐넬의 구슬, 마법사들의 통신 수단이자 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보물이다.
“어서, 빨리······!”
임무는 실패. 그렇다면 적어도 확인한 정보라도 그의 주인에게 전해야 한다.
불과 몇 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사내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구슬 안의 안개가 흩어지며 무언가 나타나는 순간, 흑색 칼날이 날았다.
콰악!
이도의 쾌검은 얼핏 베기 위주인 듯 보이나, 그 바탕엔 섬전 같은 찌르기가 존재한다.
뒤통수가 구슬과 함께 꿰뚫린 마법사는 그 자리에서 절명했고 모여들던 마력은 푸른 안개로 화해 사라졌다.
“···전령이로군.”
뒤늦게 도착한 헥탄이 검을 지팡이처럼 짚으며 말했다.
요정족의 왕자, 제린도 쓰러진 사내와 구슬의 잔해를 살피더니 덧붙인다.
“황제의 직속은 아닌 것 같군요. 제국에는 수많은 눈과 귀가 있어서, 이자의 주인이 누군지 한 번에 알아보긴 어렵습니다.”
“요정 왕자 나으리, 여기서 보낸 연락이 상대방에게 닿았겠는가?”
요정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인간과 말을 섞지 않는다. 헥탄의 질문에, 제린은 그에게 대답하는 대신 이도를 보며 말했다.
“술자의 마력에 따라 다르지만, 이 정도면 일개 전령으로 쓰기엔 꽤 숙련된 자예요. 사념 일부는 구슬로 흘러 들어갔을지도 모른답니다.”
“허, 참. 인간 늙은이는 나이 대우도 안 해주는 건가?”
헥탄의 한탄을 귓등으로 들어넘기며, 이도는 주변을 둘러본다.
처음 마수가 습격한 마을을 구했을 때부터, 지금껏 숱한 민가와 고원을 지나쳤다.
그리고 마수에게 제물을 바치는 이들, 인간을 먹는 인간들, 제국의 추악한 실상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았다.
황제의 병사들은 인간을 약탈했고··· 촌락의 주민들은 악마에게 제를 올리고 있었다.
“상관없다.”
“이보게, 방랑자 선생. 우리의 진로가 다 읽혔을 걸세. 이젠 저 마수들뿐 아니라 황제의 개들까지 찾아올 거란 말이야.”
“그것들도 다 죽이면 끝이지. 경로는 이대로 유지한다.”
헥탄이 충고하지만 이도는 단호하다. 보다 못한 제린까지 거들고 나섰다.
“만약 전령의 주인이 황제에게 고한다면, 아무리 당신이라도 정면돌파는 어려워요. 수많은 병사와 전사들, 사술들, 황실에서 부리는 강력한 동물들이 일곱 낮 일곱 밤이 바뀌도록 당신을 상대할 겁니다. 거기에 황제에겐 보검이 있죠.”
“보검?”
“군단사령관 게일, 그는 교활한 지략가인 동시에 황제에 버금가는 전사입니다. 황실 수호기사들의 차륜전은 요정목의 마지막 방어선을 무너뜨렸으니까요.”
수치스러운 과거까지 꺼내 봤지만, 그들의 리더는 번복하지 않는다.
등을 돌린 채 험준한 산지를 걸어갈 뿐이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처럼.
요정족 왕자를 돌아본 늙은 검수가 어깨를 으쓱한다.
“원래 인간들은 성깔이 더럽소.”
.
.
.
그 시간··· 저 먼 곳, 순백의 성 카타람에서 흰 손가락이 수정구슬의 덮개를 벗긴다.
숲 위의 모든 것을 안다는 요정족 왕자였지만, 죽은 전령의 주인은 그들이 상상하지도 못할 사람이었다.
“술레이 경, 그대의 희생은 잊지 않을 거예요.”
마법사가 최후로 쏘아보낸 사념, 제국에 나타난 폭풍의 정체는 아이라스의 심장부로 전해졌다.
무시무시한 쾌검의 방랑자,
요정족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
한때 제국의 검이었을 노인 검수.
번쩍, 꽈르릉!
내리꽂힌 번갯불이 온 세상을 희게 불태운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창가에서, 백금발의 황녀―레이웬 아이라스는 턱을 괴었다.
“아버님에게, 오고 있다고······.”
*
“한국은 어때요? 영화 같은 걸 찍으면 며칠씩 밤도 새고 그런다던데?”
점심식사 시간, 밥을 먹는 배우들 사이에서 간단한 사담이 오간다.
의외로 촬영장의 분위기메이커인 릭 미하엘, 곧 이도와 결전을 치를 군단사령관은 한국의 현장을 늘 궁금해했다.
형 옆에 있던 박선이 조심스레 대답했다.
“그··· 때에 따라 다른데, 아무래도 일정이 급할 때는 몰아서 소화하는 편입니다. 헐리우드랑은 작업방식에서 약간씩 차이가 있죠.”
“그런가? 하긴, 그 정도 일정을 버텼으니 우리 주연이 이런 철인이 된 거겠지.”
딱딱한 빵을 우물거리며 릭 미하엘이 말했다. 말 그대로 산과 들을 오가는 강행군 속, 배우며 스탭이며 지치게 하는 것은 식사다.
밥차는 고사하고 도시락도 힘들다. 저 많은 인원들이 다 먹을 식사를 챙기기 어려우니, 간단히 먹을 빵이나 전투식량까지 등장했다.
벌써 두 개째를 까서 먹고 있던 건이 말했다.
“잘 먹으면 됩니다.”
“음? 뭘 잘 먹어요, 이 맛없는 빵조각?”
“예. 평소 잘 먹고 열심히 운동하고, 깊이 잠들면 체력은 저절로 좋아지죠.”
“어휴, 우리 마누라 같은 소릴 하시네. 난 빵이 아니라 샴페인이 필요한 놈이라고.”
옆에서 눈을 깜빡거리던 서희도가 물었다.
“릭, 결혼했어요?”
“두 번. 이혼도 두 번 했으니 지금은 솔로요.”
“세상에, 우린 그룹 활동이 흑자로 전환될 때까지 폰도 못 받았는데······!”
“뭐가 전환된다고요?”
“그, 제가 사실 가수 출신이거든요.”
데뷔 시절을 이야기하는 한국 아이돌과, 상대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헐리우드 배우는 그 나름대로 진풍경이다.
설탕을 잔뜩 넣은 오트밀을 마시며, 건은 피터 숀이 주고 간 일정표를 펼쳤다.
내일 일정까지 마무리되면 이도 일행은 순백의 성에 입성하고, 본격적인 중후반부 분량 촬영에 들어가게 된다.
“아무튼, 이젠 좀 재밌겠네. 나랑 붙는 씬들도 잘 부탁합니다. 맥클레인 영감님도 기대를 잔뜩 하는 모양이더군요.”
릭 미하엘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촬영 종료일’이라고 적힌 마지막 장을 보다가, 건은 마주 웃었다.
“저야말로요.”
용사의 일대기가 끝을 향해 달려간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