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75)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75화(175/199)
가자, 뉴질랜드로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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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장.
카메라를 잡은 촬영감독들의 관자놀이에 땀방울이 맺힌다.
밖은 선선한 가을이건만, 세트장 안은 몇 없는 조명으로도 후텁지근하다.
“······.”
등에 배어나는 땀은 조명 때문만이 아니다. 큰 홀 안에 꽉 들어찬 스탭들의 열기, 그리고 저기서 열연 중인 배우들의 에너지 탓이다.
감독, 피터 숀은 한 손에 든 대본이 미끄러지는 것도 모른 채 집중한다.
이도 : 네 신을 죽이러 왔다.
거침없는 대사 이후, 컷 신호는 없다. 하이라이트 몇 마디에 체력을 다 빼앗기는 초보 배우라면 모를까.
모인 이들 모두가 베테랑 중 베테랑인데, 기껏 잡은 감정선을 놓게 하는 것은 바보짓 중의 바보짓이다.
그 증거로, 모든 스탭과 극 속의 배우들이 박건··· 그리고 맥클레인의 입만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지 않은가.
“흐음.”
긴 정적 끝에, 미친 폭군의 입이 열린다. 황제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아래쪽에 도열한 자신의 수족들을 한 차례씩 본다.
“···어떻게, 저런 불경한 말을······!”
“그것도 아이리스 가, 태양 자체이신 황제 폐하의 앞에서! 저자들이 정녕 미친 겐가?”
여기저기서 소리 죽인 웅성거림이 퍼져나가고 있다. 제국에서 태양신이란 유일한 종교이자 전 제국민의 신앙이나 마찬가지.
신을 섬기며 군림하는 아이리스 가 앞에서 신을 죽이겠다니, 황제 참칭이나 반란 모의보다도 더 큰 대역죄인 것이다.
“재미있군. 어떻게 할 테냐?”
“······폐하!”
그리고 황제의 다음 말에, 장내는 경악에 빠진다. 칼드윈 아이라스는 웬 호들갑들이냐는 듯 황좌에 등을 기댔다.
“왜들 그러느냐, 황제를 죽이겠다는 것들이 숱한 시대다. 이 성 안에서도 은밀한 모략들이 거행됨을 내 익히 아는 터. 검은 용족을 죽인 방랑자가 신을 모독하는 것도 놀랍지 않군.”
본래, 원작에서도 미친 황제는 마지막까지 속을 알 수 없는 인물로 나온다.
수상하리만치 늙지 않는 아이라스의 피, 강력한 마법적 친화력엔 그 이유가 있지만··· 아직 이 시점에선 풀리지 않은 배경이다.
그때, 듣고 있던 이도가 들고 있던 무언가를 황좌 앞으로 던졌다.
“여비 대신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따로 나누고 싶은데, 그걸로 부족한가?”
사람들의 시선이 빙글빙글 돌며 날아온 시커먼 물체에 모여든다.
흑단처럼 매끄럽게 빛나는 돌멩이를 본, 황제 옆의 궁중마법사 단장이 헛바람을 삼켰다.
“저건, 용족의 영단······?”
방금 전, 성 밑에서 날뛰던 마수를 처치하고 얻은 영단이다.
일신의 무(武)를 우선시하는 제국, 그 중 핵심 인물들이 모인 자리니만큼 가치를 모르는 이는 없다. 강력한 마수의 영단을 취한다면 외공과 내공 모두 한 차원 강해지게 될 터.
사람들의 눈빛에 욕망이 스친 순간, 황제의 허락이 떨어졌다.
“배짱 하난 좋군.”
“······.”
황제가 자신들의 신을 모독한 이방인을 바로 참수하지 않건만, 대신과 기사들은 감히 이의를 표하지 않는다.
이 자리에서만큼은 신보다 위에 있는 절대자, 칼드윈 아이라스에게 복종을 표하는 것이다.
마물의 영단을 향해, 흘끗 턱짓한 황제는 거대한 황좌에서 일어섰다.
“여기서 네놈의 목을 쳐도 좋겠지만, 불의 기일이 닷새 후이니라. 그때껏 네 광대놀음에 잠깐 어울려도 좋겠지. 신을 죽인다는, 광오하기 짝이 없는 말의 진위도 판가름할 겸.”
“폐하, 하지만 저들은······!”
끼어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군단사령관 게일이 난색을 표하지만 허례허식에 불과하다.
황제 역시 신경 쓰지 않고 말한다.
“저들을 데려와라. 내가 직접 묻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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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은 시각.
횃불만 밝혀 둔 작은 홀에서, 작품의 두 대적자가 마주앉는다.
‘순백의 성’ 카타람의 콘셉트는 밝은 외양과 대비되는 내부다.
높고 아름다운 연회장, 요정의 마법과 난쟁이의 기술력으로 한밤중에도 휘황찬란하던 안쪽 불빛들은 황명 아래 모두 꺼졌다.
한때 태평성대를 이루며 대륙을 호령했으나 지금은 속부터 곪아 들어가는 거대한 짐승, 아이라스 가의 제국처럼.
“그래, 어디서 왔다고?”
“먼 곳에서.”
“대륙 밖에는 너희 같은 흑발의 야만인들이 살고 있다던데. 바다를 건넜느냐?”
“너희 제국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지 마라.”
문답이 진행될수록, 주변 인물들의 낯빛이 바뀐다. 황녀의 자격으로 동석한 레이웬 아이라스, 1군단부터 8군단까지의 명령권을 지닌 게일 프롬, 궁중마법사 단장 라우 경은 저마다 다른 눈빛으로 황제와 마주앉은 방랑자를 응시한다.
‘라우 경, 막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게일 경이 나서시는 편이······.’
‘황녀님이 말씀해 보시지요. 미천한 저로서는 폐하의 진노를 감당키 어렵습니다.’
‘···됐어요, 그냥 지켜보는 게 낫겠군요.’
평소라면 눈짓 하나만 마음에 안 들어도 베어버리던 폭군, 칼드윈 아이라스는 웬일인지 방랑자의 무례를 느긋하게 받아넘긴다.
“재미있도다, 참으로 재미있어. 하긴, 배짱이 그쯤 되어야 이 순백의 성에서 태양신을 능멸할 수 있겠지.”
“능멸이 아니라 사실이다. 이 땅은 타락했어. 너희 마법사들의 무분별한 실험과 연구로.”
“뭣이?!”
듣고 있던 궁중마법사 단장이 수염을 떨며 일어섰지만, 미동도 않는 황제를 보고 주춤주춤 다시 앉는다.
아까부터 방랑자 일행을 뚫어져라 주시하던, 찬란한 백금발의 황녀가 입을 연다.
“그렇다면 방랑자, 당신은 왜 이곳까지 온 것이죠? 당신의 말대로 위험천만한데다 고향조차 아닌 곳인데 말입니다.”
일정대로라면 6화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될, 원작에서는 ‘어두운 연회’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긴장감 넘치는 씬이다.
릭 미하엘이나 진지유 또한 대사 한 마디, 호흡 하나까지 최고조로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
그리고 시선을 받는 주인공, 작품 안에서는 황제를 겨누고 작품 밖에서는 이 모든 사람들을 끌어모은 장본인은 한 템포를 쉰다.
‘이 구도도 익숙한데.’
석재 테이블의 끝에 앉아, 건은 생각했다.
환청이나 환영이 아니다. 피터 숀과 미술팀은 흥미롭게도 매우 흡사한 구도를 연출했다.
전이 후, 철왕국의 원탁에서도 이와 비슷한 자리가 있었다.
저 황제의 자리엔 철왕국의 국왕이, 군단사령관과 궁중마법사의 자리엔 왕성 내 막료들이··· 황녀가 앉은 국왕 옆엔 성녀가.
“달리 선택할 수 없었지.”
-다른 선택지는 없소.
분명 ‘주신의 서’의 대사건만, 소름 돋는 기시감이 몸을 감싼다.
수십··· 아니, 수백 번의 죽음 끝에 네 번째 대악마의 목전까지 갔을 때였을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회귀하자마자, 그는 모든 대소 신료들과 성녀를 왕성 연회장으로 불러모았다.
그리고 선언했다.
“이 땅을 여행하며 많은 것을 느꼈다. 역병이 창궐하고 마수가 날뛰는 지옥도··· 그 모든 원인은 너희가 모시는 태양신, 힘을 빼앗겨 신성마저 잃은 호른의 영향이었지.”
-드높은 천상에 도움을 청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적대를 표하시오. 더 이상 대천사들이 우리의 싸움을 구경만 하지 못하게.
그 말이 끝나자마자 소란이 벌어진다. 성녀는 입술을 깨물고, 국왕은 당황하며, 모여든 가신들은 분개해 목청을 높인다.
-그 무슨 망발이오!
-용사라고 데려왔더니, 감히 천상의 대천사님들을 모독해?
-역시 틀렸어! 용사를 잘못 고른 거요!
-저 성녀부터 불안했어. 어디서 굴러먹다 온지도 모르는 길거리 출신이 아닌가······!
이도와 고드, 제국과 왕국의 두 칼잡이는 눈을 감은 채 목소리를 듣는다.
현실이 작품보다 잔인하다고 했던가. 소설 속 제국보다 더더욱 썩어들어간 곳이 이곳, 그가 용사로 싸워 온 철왕국이었다.
무능하며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국왕,
악마군이 턱 밑까지 쳐들어오는데도 마지막 향락만을 짜내는 대신들,
성녀와 용사를 한데 묶어 희생시키려 하는 아첨꾼과 간신배들······.
“당신을 보니 확신이 드는군. 나는 북부로 떠나겠다. 서리 거인들과 얼음의 여왕을 쓰러뜨리고, 이 땅의 황폐화가 멈추는지 확인해야겠어.”
-그렇지 않다면, 나 역시 마경이 아닌 천상으로 향할 거요. 당신들의 지원은 필요 없어. 발몬의 발끝에도 닿지 못할 머저리들.
수없는 죽음을 반복해 온 용사를, 더 이상 가로막을 것은 없다.
챙, 채앵! 흘러나온 폭언에 여기저기서 병장기 소리가 울린다.
그 중 가장 먼저 달려든 이는 과거, 용사의 골통을 무자비하게 부쉈던 거구의 사내다.
-이방인이여, 무례한 혀만큼 실력이 있는가!
사슬이 둘둘 감긴 해머가 머리로 날아들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는 합기조차 쓰지 못했던 초보 용사가 아니다.
푸화악!
달려들던 거구가, 말 그대로 피보라가 되어 터져나간다. 2회차와 3회차, 4회차··· 한때 동료였던 ‘괴력의 빌’은 세상에서 지워졌다.
한 손을 내민 용사의 팔에서 이글거리는 것은 검붉은 기운이다.
-합기, 합기가······!
-성검조차 없이, 어찌 저런 권능을?
-무기를 넣어라! 그··· 극성에 달한 합기다!
눈이 튀어나오도록 놀란 국왕과, 차마 못 보겠다는 듯 외면하는 성녀가 대조된다.
금세 전의를 잃은 한 나라의 수뇌부를 경멸스레 내려다보며, 고드―박건은 낮게 뇌까렸다.
-천상으로 오르는 길을 준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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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주신의 서’ 속.
이도 일행이 떠나고, 손 안의 영단을 내려다보는 황제에게 궁중마법사 단장이 다가온다.
“폐하,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저들을 그냥 보내도 괜찮겠사옵니까?”
“저 세 명 말이더냐?”
툭 던지는 되물음에, 늙은 단장은 더욱 조심스럽게 허리를 낮춘다.
“예. 세계수의 밀림으로 숨어든 요정족, 그 후손과 늙은 검객은 물론이거니와, 저 이도라는 자는 위험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물러간다 한들, 분명 제국의 앞날에 해를······.”
“그것이 제국의 앞날인가, 아니면 단장의 은퇴 후 안위인가?”
“폐, 폐하······!”
손 안의 검은 돌을 가지고 놀던 황제의 눈동자가 뱀처럼 움직여 꽂힌다.
“최근 경의 제자들에게 전선을 넘기고 물러나는 중이라지? 분명 내 눈엔 제국 최고의 마법사인데, 건강이 안 좋아졌다는 소식이 황궁까지 들려. 꼭 더는 내게 봉사할 수 없다는 것처럼.”
“그, 그것이 아니오라······.”
이제 마법사는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최근 강력한 마수의 출현이 잦아진 차, 슬그머니 일선에서 물러나려던 그였다.
매일같이 황궁 깊숙한 곳에 처박혀, 무얼 하는지도 모를 황제가 어느 새 계획을 파악하고 있었단 말인가?
“경거망동하지 말도록, 라우 경. 경의 몸은 경만의 것이 아니야.”
여상스러운 목소리지만, 마수의 영단엔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칼드윈 아이라스의 왕위 계승··· 아니, 찬탈에 대해서는 제국민 모두가 안다.
태양신을 섬기는 축제 전날. 당시 불과 열여섯 살이던 칼드윈은, 아들을 끔찍이도 사랑하던 아비의 등에 비수를 꽂았다.
수많은 목숨이 스러진 후, 선대 황제와 황후는 이 세상에 없다. 무려 백여 년이 넘는 철권통치와 폭정에 삼켜진 제국만이 남았을 뿐.
“죄, 죄송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사색이 된 마법사가 도망치듯 나간 뒤, 군단사령관 게일도 한가로이 그 뒤를 따른다.
“그럼 아버지, 소녀도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
“뜻대로 하라.”
인사를 올린 황녀가 나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황제는 마수의 영단을 입에 넣는다.
우드득, 까드드득··· 부서져 흡수되는 영단의 기운 속, 금빛 안광이 번득인다.
“네가 바라는 것이, 정녕 죽음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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