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80)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80화(180/199)
천상의 끝에서 (5)
* * *
뉴질랜드, 북섬.
막바지로 달려가는 촬영 중, 모처럼 파티가 열렸다.
“오늘 일정은 끝난 거 맞지? 감독님이 진짜로 쉰다고 했잖아, 응?”
“아마 그럴걸. 설마 이러고 지난번처럼 새벽에 또 부르겠어?”
“좋아! 마셔, 먹고 죽자!”
“어이, 근데 그거 무알콜이잖아. 촬영 접을 때까지는 공식 금주라고.”
지적당한 스탭은 무안한 기색도 없이 맥주병을 쳐들었다.
“이런 낙이라도 있어야지! 오늘은 맥주가 아니라 물을 먹어도 취할 거야!”
나머지 스탭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음료 잔을 부딪쳤다.
한국에는 밥차 문화가 있다. 흔히 알듯, 배우나 소속사나 그 팬덤이 따뜻한 밥이나 커피 트럭을 보내는 것이다.
헐리우드에도 비슷한 게 존재한다. 한국식 뷔페 트럭은 아니고 주연 배우들이 밥을 사는 정도인데, 북섬은 식당이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벌써 촬영기간만 1년이 지난 터. 당연히 웬만한 식당엔 십수 번씩 들러서 끼니를 때웠으니 질릴 만도 하다.
그래서 ‘주신의 서’의 배우들은, 가장 현지스러운 한턱을 택했다.
야외 바베큐 파티를 열어 버리는 것으로.
“와, 고기 뜯은 지가 얼마만이냐?”
“고기는 도시락으로 많이 먹었잖아. 감독님이 밥을 잘 먹어야 힘이 난대서.”
“어우··· 식당 샌드위치도 한두 번이어야지, 나중엔 전투식량이 더 맛있을 지경이었다니까.”
바베큐는 본디 추울 때 해야 제격이다. 달이 보이는 하늘 아래, 무쇠 그릴에서 온갖 부위의 고기들이 지글지글 익어간다.
오늘은 가장 고참, 맥클레인 자바스런티가 이 모든 비용을 댔다.
밖에서 요리사와 장비를 빌리고 양에 소에 돼지까지 공수해, 모처럼 쉬는 날 저녁을 거하게 먹기로 한 것이다.
거의 눈물을 흘릴 기세로 고기를 뜯던 스턴트팀 팀장이 양 뒷다리를 치켜올렸다.
“아무튼, 이제 진짜 끝이 보인다!”
“대박은 확정이야! 마무리만 잘들 하자고!”
기름이 지글거리며 떨어지고 장작의 연기가 하늘로 퍼져나간다.
스탭들은 물론, 배우들도 고기를 한 짝씩 들고 뜯으며 웃음꽃을 피운다.
피터 숀이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에 제작비를 아끼지 않는다지만 헬기로 호텔을 공수할 수야 없는 노릇이다.
작품 특성상 세트장 안보다 야외 촬영이 주를 이뤘고, 열악한 환경에 질린 스탭들에게 바베큐 파티는 가뭄의 단비다.
“저기, 왜 배우가 아니라 각본가라고 말 안 했어요?”
저만치, 주연 배우들의 테이블. 눈 밑이 퀭해진 릭 미하엘이 박건을 붙잡고 진상을 부린다.
“전 배우입니다.”
“아니, 홈페이지에 시나리오까지 쓴다면서요. 내가 그거, 번역된 걸 보느라 잠을 못 잤어요. 어젯밤을 통째로 샜다고.”
“철왕국 이야기 말하는 거죠?”
서희도가 관심을 보였다. 뿌듯함 반, 걱정 반 섞인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던 박선이 대답했다.
“네. 팬들 중에 독일에서 출판사를 하시는 분이 계셔서, 번역본을 정식으로 올리거든요. 형이 쓰면 거의 하루 만에 번역이 돼요.”
“언제 올라오는데요?”
“글쎄요··· 그때그때 다른데, 형이 생각날 때마다 폰으로 써서요. 어젯밤에도 두 편인가 업로드됐을 거예요.”
서희도는 잠깐 눈을 깜빡였다. 배우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은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다.
그런데 주연으로, 그것도 이역만리 타국에서 작품을 찍는 도중 소설을 썼다고?
앞에 빈 접시를 산더미처럼 쌓은 채, 박건은 아무렇지 않게 끄덕거렸다.
“작품을 촬영하면서 영감을 좀 받았습니다. 지금 찍는 주신의 서와 비슷한 부분도 있고요.”
“아, 맞아! 이도만큼 고드도 매력적인 캐릭터던데, 둘 다 다른 차원에서 오지 않았나?”
“그렇지. 나도 그 용사 일대기가 흥미로웠어요. 전형적인 판타지 같으면서 정통파 클리셰를 살짝 비틀었다는 게.”
릭 미하엘의 말을, 함께 식사를 하던 제임슨 오버베가 받는다.
반군의 수장··· 극중에서 분노에 찬 사상가이자 전사였던 니케르트는, 지난 촬영을 마지막으로 사망해 퇴장했다.
‘난 뭐··· 끝날 때까진 남죠. 어차피 이제 얼마 안 남기도 했고, 기다리다 보면 우리 감독님이 한 컷이라도 더 쓸지 모르니까.’
하지만 어차피 다른 일정도 없고, 구경이나 하다 가겠다며 촬영지에 눌러앉았다.
덕분에 지금은 배역을 위해 뺐던 살이 다시 쪄, 피터 숀이 ‘저래서는 회상에도 못 쓰겠다’며 혀를 차는 중이었다.
“오빠, 솔직히 경험담이죠.”
“뭐가 말입니까?”
“철왕국 이야기요. 전생 체험, 이런 거 몰래 하고 와서 쓰는 거 아니에요?”
“유튜브 못 봤습니까? 거기서 아무것도 안 나왔는데요.”
잠시 후, 눈이 반쯤 풀린 진지유도 박건 전생론자설에 동참했다.
촬영이 막바지라는 소식에, 특별히 날아온 유준일 실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무알콜 맥주라며? 쟤는 뭘 먹고 취한 거야?”
“아까 따로 와인을 챙기던데······.”
진지유의 매니저가 이마를 감쌌지만, 진지유는 뻔뻔스레 대꾸했다.
“괜찮아요. 헛개차 먹으면 돼.”
“···그게 뉴질랜드에도 있었나?”
“비슷한 거라도 있겠지. 근데 뭐, 지금 그게 중요해요?”
발딱 일어난 진지유가 손에 쥔 잔을 흔들어 댔다.
“우리 주인공이 마지막 싸움을 앞뒀는데. 그리고 그 천사들, 처음부터 전 대천사란 것들이 수상했다고요. 결말도 이미 정해졌죠, 오빠?”
박건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정해 두고 쓰는 게 아니라.”
“그럼 꼭 참교육으로 부탁드려요. 우리 작품도 결말이 찜찜한데, 오빠 각본이라도 주인공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요.”
“지유야, 너 그거 스포일러 아냐?”
“스포일러라뇨. 실장님도 결말 촬영분 궁금해서 보러 오셨으면서.”
“야, 난 일로 온 거야!”
유준일과 날아온 손님은 몇 명 더 있다. 의외로 추위를 타는지, 비니를 귀까지 눌러쓴 김률 감독은 모두의 환호를 받았다.
“세상에, 미스터 김! 흑의사제의 그 천재를 만나게 되다니!”
“사인 좀 해 줘요, 사진도!”
“감사합니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능숙한 영어로 인사를 나눈 김률은 박건과도 포옹을 나눴다.
“많이 수척해지셨군요.”
“감독님은 더 좋아지셨습니다.”
“아, 이건······.”
김률은 멋쩍게 웃다가 비니를 벗었다.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가 반짝 빛났다.
“어쩌다 보니 약혼자가 생겨서요. 이번에 쓰는 각본만 끝나면 식을 올릴 것 같습니다.”
“와, 감독님!”
“누구예요, 누구! 감독님도 결국 여배우랑 썸씽이었어! 주례는 또 태 대표님이죠?”
“그냥 소꿉친구인데, 우연히······.”
금세 김률은 한국의 동료들에게 에워싸였다. 처음 만날 때까지도 상상하기 힘들었을 광경을 보며, 형제는 나란히 물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마지막 손님도 모습을 드러냈다.
“대표님!”
로만 엔터테인먼트의 수장은 여기까지 오면서도 깔끔한 암회색 정장 차림이었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두 형제 쪽으로 온 노중만 대표는 모처럼의 소식들을 주고받았다.
“중반기부터 오려고 했는데 너무 늦었군. 박선 씨는 알겠지만, 요즘 회사가 좀 바빠야지.”
“한국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회사의 기둥 배우들은 세상 돌아가는 데 신경을 안 쓰는 법이다.
형에게 설명해 주려는 박선을 막고, 노중만은 간략히 이야기했다.
“가지가 대폭 확장됐어. MCM 계열 사람들도 대대적으로 모집하고, 기존의 배우와 아이돌 체제에 변화를 꾀했지. 여기 김 감독님도 일단은 한솥밥이야.”
김률과 능력 있는 감독, 작가 몇몇이 합류한 것보다 더 빅 뉴스가 있었다.
바로, 몇 달간 국내연예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로만-DG의 전면전이다.
“DG의 인수라고요?”
노중만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아무도 말을 안 했나 본데. 박 배우가 그런 쪽에 관심을 가질 사람도 아니고.”
“예. 혹시 회사가 위험한 거라면······.”
“아니. 이번엔 우리 쪽이 공격이야.”
그들이 뉴질랜드로 떠나고 난 뒤, 거의 직후에 역대급 스캔들이 터졌다.
바로 DG의 전 신인개발본부장, 차인혁과 현 대표 변동근에 대한 폭로였다.
신원미상의 제보자는 DG 대표 변동근이 그간 해 왔던 악행과 악성계약, 데뷔조 및 신인들에 대한 불공정 처우 및 스폰서 연결까지 일목요연한 자료로 기사를 터뜨렸다.
박건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단속이 철저해 보였는데··· 내부고발자가 있었습니까?”
“오래된 선물을 받아서. 타이밍을 보다가 이번에 풀었지, 기은서 자살 소동도 있었고.”
이야기는 대폭 간추렸는데도 복잡했다.
DG 대표 배우, 기은서의 자살 소동 이후 로만 쪽에서 가지고 있던 무기를 터뜨렸고, 한껏 곪은 DG의 지배 구조를 대형 주주들이 문제 삼기 시작했다는 모양이었다.
결국 경찰 조사를 받기 시작한 변동근은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온갖 하이에나들이 보유 지분을 노리고 덤벼드는 중이다.
“어떻게 될지는 몰라. 워낙 몸집이 큰 곳이다 보니, 변동근과 그 일당만 쳐낸 채 정상화될 수도 있고··· LC랑 케이피트도 공개 매수를 시작해서. 우리가 인수하긴 어렵지.”
거기까지 이야기한 노중만은 김률과 똑같은 소릴 했다.
“그나저나, 얼굴이 많이 상했는데.”
“괜찮습니다. 장기 촬영이 다 그렇죠.”
“지금까지 박 배우 지친 걸 본 적이 없어. 물이라도 안 맞나 싶었군.”
“밥은 잘 먹는데요.”
실장님, 저도 좀 데려가요! 이제 소속사 계약도 얼마 안 남았단 말이에요!
저만치서, 서희도로 추정되는 외침이 들려왔다. 바베큐 익어가는 소리도 들리고, 진지유와 유준일 실장의 목소리도 섞였다.
박선이 눈치껏 빠져나가서, 지금 두 사람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흘끗 저쪽을 본 노중만이 물었다.
“더 할 수 있겠나,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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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할 수 있겠나, 연기?”
또 그 얘기로군. 생각하며, 건은 희미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그의 회사 대표도 ‘철왕국 이야기’의 구독자인 것 같았다.
“말씀드렸을 텐데요. 은퇴는 안 합니다.”
“촬영은 얼마나 남았고?”
“거의 끝입니다. 감독님은 열흘 안에 모든 일정이 종료된다고 하셨습니다.”
철왕국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동안에도 ‘주신의 서’ 전개는 이어진다.
싸움이 거듭됐고, 끝은 가깝다.
-니케르트!
-빠져나와야 돼, 더 늦으면 우리도 당해!
황제는 힘을 숨기고 있었다. 아니, 마지막에 태양신의 권능을 온전히 받아들인 걸까.
이도가 뚫은 길로 반군의 정예 용사들이 달려나갔을 때, 눈부신 섬광이 폭사되며 피아 구분 없이 모두를 녹여버렸다.
-가라··· 그리고 꼭, 자유를······.
온몸에 화상을 입은 반군의 수장은 죽어가며 유언을 남겼고, 이도와 제린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결국 격돌한 황제와 이도.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쳤지만, 군단사령관의 난입으로 이도는 깊은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뿔뿔이 흩어져 도망친 반군··· 어느 오두막에 몸을 숨긴 이도 앞에, 칼드윈 아이라스의 딸 레이웬 아이라스가 나타난다.
-가라, 베기 전에.
-잠깐! 꼭 드려야 할 말씀이 있어요.
한 손에 제국의 신물을 들고, 백금발에 맺힌 피와 땀을 닦으며.
-제 아버지를 죽여주세요.
건은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단련된 육체는 일반인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이깟 촬영쯤, 수십 번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직 용사는 무엇 때문에 자신의 심력이 소모되는지 안다.
‘···잃었던 걸 되찾을 때, 대가를 치르지.’
이쪽 세계의 연기, 그리고 저쪽 세계의 기억이 돌아오며 맞춰지는 오차 탓이다.
아무리 강대한 전사라도 내부의 균열은 치명적인 법이다. 누가 어떠한 이유로 지웠던, 기억을 완전히 되찾은 순간에는······.
떠오른 생각들은 금방 밀려났다. 건은 담담히 입을 열었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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