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81)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81화(181/199)
천상의 끝에서 (6)
* * *
노중만 대표.
로만 엔터테인먼트의 수장이자 DG 인수전의 주인공, 매니저 출신으로 맨손 성공신화를 이뤄낸 전설적 인물.
그는 지금껏 많은 것을 봐 왔다.
혈혈단신으로 연예계에 뛰어든 이래,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나.
-뭐라는 거야, 이 새낀?
-이 바닥 허투루 알고 들어온 놈, 아주 혼쭐을 내 줘!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일단 쥐어패고 다시 얘기하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초창기, 그가 젊을 때만 해도 연예계는 폭행과 조폭들이 판을 쳤었다.
악덕 사장들의 불공정계약에 목소리를 내면 주먹부터 날아들었고, 몇 대 맞다가 못 참고 사무실을 엎어 버리면 뻔뻔한 핑계가 나왔다.
-노중만. 야, 이 상도덕도 없는 새끼야. 여긴 원래 그런 거야!
-그렇게 해서 갈 곳이 있을 것 같냐? 연예인이고 연습생이고, 뜨기 전에 조져야 우리가 먹고 사는 거라니까.
-쟤들 인권을 생각해? 형이 진지하게 충고하는데, 그렇게 가다간 네가 먼저 죽는다. 물건은 물건으로 봐야 돼. 장터에 묶인 소를 기분 생각하면서 팔아치우는 놈이 어딨어?
실제로 그랬다.
말도 안 되는 악성계약에 묶인 아티스트들을 풀어내려면 법률적 자문보다 공갈과 협박··· 폭력이 주효했다.
사채를 끌어 쓰게 해서 도장을 찍는 팀장들, 연예기획사라기보다 깡패 소굴에 가까운 자들과 드잡이질하다 보면 정신이 아득해졌다.
심지어 1인 기획사를 차리고 악성계약을 풀어내려 동분서주할 무렵, 앙심을 품은 소속사 사장이 사람을 보낸 적도 있었다.
‘칼로 위협했던가··· 쇠파이프를 휘둘렀던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아마도 둘 다였던 것 같았다. 지금도 그의 암회색 양복 안에는 오래된 흉터 몇 개가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이 바닥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지금은 세상에 없는 조카 때문이었다.
‘엄마, 아빠, 삼촌, 모두들 미안해. 근데 난 여기까지인가 봐. 다음 생에선 속 안 썩일게.’
흔한 신파다. 아이돌을 꿈꾸던 조카가 소속사에 들어가고··· 악성계약에 묶여, 연습생 신분으로 해외만 전전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조카의 유서 마지막 문장을 본 뒤, 대기업의 평범한 직원은 울분을 숨긴 로드매니저가 되었다.
그렇게 이십여 년.
수많은 생사고락을 넘어 어느 정도 마음속 약속을 지켰다고 생각할 때쯤, 노중만의 앞에 듣도 보도 못한 괴물이 나타났다.
‘아예 처음 보는 타입이었지. 나름대로 오래 굴렀다고 생각하는데도.’
그간 거쳐 온, 또는 엮여 온 아티스트가 얼마나 많았던가.
연기에 능하거나 노래를 잘 하거나, 스스로의 생명령을 불꽃처럼 태우며 재능을 발화시키는 이들도 충분히 본 그다.
그런 자들은 주로 화려하게 타올랐다가 스러지거나, 스스로의 빛에 잡아먹혀 제 발로 어둠에 들어서곤 했었다.
그러나 박건은 누구와도 달랐다.
철인.
배우는 결코 둔감할 수 없다. 특히나 메소드가 의심될 정도로 배역에 깊이 빠지는 이라면, 씌인 역할에서 벗어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저 미친 연기력을 스위치로 껐다 켜듯 몰입부터 탈피가 자유롭다?
거기에 외모와 액션까지 완벽한 무술감독급 인재가, 심지어 연기를 한 번도 안 해 본 군인 출신의 일반인이라면?
“아무도 못 믿었을 거야. 나조차 그랬고.”
덤덤히 중얼거리며, 노중만은 숙소 창문으로 시선을 보냈다.
아직 바베큐 파티가 한창인 듯, 밖에서는 떠들썩한 소음이 계속 들려오는 중이었다.
“위하여!”
“내일 촬영도 잘 해 보자고!”
방금 전 대화를 통해, 뉴질랜드로 날아오면서 어렴풋이 들었던 생각이 구체화되었다.
박건은, 임계점을 넘었다.
“······.”
인간은 철인이 아니다.
모든 것을 해결하고 아무렇지 않은 영웅은 전설 속의 용사일 뿐.
완벽한 연기력, 탈인간급 체력, 흠 없이 건강한 정신력이 가당키나 하던가.
심지어 데뷔하는 순간부터, 박건은 연기 외적인 부분에서도 동료들의 짐을 짊어졌었다.
“연기력 논란이 있는 아이돌, 한때 스캔들이 있었던 배우, 충무로의 문제아 감독, 가족에게 시달려 온 소속사 동료······.”
전부 다, 박건의 영향으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핏 보면 마냥 멋질 수도 있다. 과연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멘탈부터 체력까지 완벽한 인간이 있을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그러나······.
너무 큰 짐을 진 이는, 고장이 나고 만다.
-연기를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대표님께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몇 분 전··· 그가 숙소로 들어오기 전, 바베큐장 한복판에서 박건은 말했다.
-돌아오긴 했지만, 아직 완벽하게 돌아온 건 아니었으니까요. 아마 그 매니저··· 와우키즈의 일이 없었다면 한참을 방황했을 겁니다.
와우키즈라면 박선이 로드 시절, 갑질과 폭행을 묵인했던 아이돌이었다.
그런데 웬 방황? 노중만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에도 말이 계속됐다.
-작품을 들어가게 되고, 연기에 몰입하면서 적응할 수 있었죠. 실제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족들, 주위 사람들이 행복해졌다는 점이 신기하면서도 기뻤습니다.
박건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한동안은, 그랬던 적이 없었으니까.
특수부대 시절 이야기인가 보군. 그가 나름의 결론을 내렸을 때, 박건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이번 작품은 성공할 겁니다.
-그래야지, 박 배우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거기다 지금껏 실패한 적도 없고.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있더군요. 수백 번을 실패만 거듭하다가, 정작 돌아온 뒤에는 덕분에 승승장구하는 삶이란.
-무슨 소린가?
박건은 대답 대신 눈을 감았다. 다시 떴을 때는 수척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마지막까지 지켜봐 주시죠.
저편에서 진지유와 서희도가 매니저들과 함께 다가왔기에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협탁 앞의 의자에 앉아, 노중만은 습관처럼 다리를 꼬았다.
-은퇴는 없을 겁니다. 제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은.
헤어지기 전, 박건이 다시 한 번 강조한 말이 뇌리에 깊게 남았다.
그가 아는 박건은 은퇴할 배우가 아니다. 동시에 이유 없는 말을 꺼낼 사람도 아니다.
그런 배우가 신변을 언급했다는 건······.
“유 실장이라도 남겨야겠군. 인수전만 아니었다면 마지막까지 자릴 지켰을 텐데.”
무언가 일이 벌어질 것이다.
업계에서만 이십 년을 훌쩍 넘긴, 엔터 대표의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한국, 로만 엔터테인먼트 사옥.
직원들이 드문드문 있는 라운지에, 오늘은 또 모시기 힘든 분들이 자리했다.
“안녕하세요, 필립 씨!”
“예. 백하니는요?”
“아··· 저기, 아까 오셔서 앉아 계시는데······.”
“그럴 줄 알았어요. 옛날부터 때려죽여도 시간약속은 지켰거든.”
고마워요. 말해 준 직원에게 고개를 슬쩍 숙인 최필립은 라운지 저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거기엔 선글라스를 쓴 백하니가 매니저와 앉아 있었다.
백하니의 매니저에게 눈인사를 건네며, 최필립은 고개도 안 돌리는 동료에게 씩 웃어 보였다.
“어이고, 우리 대배우님. 어째 전보다 콧대가 더 높아지셨어.”
최근, 로만의 대표 배우들 중 가장 주가가 높은 사람은 단연 백하니다.
로만 엔터테인먼트의 아티스트들 중 상한가 아닌 이가 없다지만, 최근 들어간 작품이 중국에서 아예 초대박을 친 탓이다.
‘망나니 회귀자가 돌아왔다’의 작가, 윤발25가 발표한 신작은 완결 이후에도 아시아를 휩쓸며 제 2의 한류열풍을 이끄는 중이었다.
“뭐라는 건지.”
코웃음처럼 나온 말에, 옆자릴 차지하고 앉은 최필립이 팔짱을 꼈다.
“그래도 백하니 성질 많이 죽었다. 원래 같았으면 히트 몇 개 치자마자 해외 나가서 들어오지도 않았을 텐데, 이런 인터뷰도 같이 하고. 본부장님이 어떻게 구워삶았지?”
“나갈 거야. 이 망할 스케줄만 끝내면.”
두 사람의 매니저들은 눈치를 보면서도 당장 일어나진 않는다.
대신 살짝 염려를 담은 눈빛만 허공에서 얽힌다.
‘···괜찮겠죠?’
‘예. 요즘은 만나자마자 싸우진 않았으니까··· 구 배우님 올 때까지만 기다려 봅시다.’
백하니와 최필립이 누군가.
자타공인 로만의 앙숙이자 견원지간. 실장급이 있어도, 심지어 이상철 본부장 앞에서까지 저희끼리 치고받던 인간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요즘은 무슨 바람이 불었나, 비교적 평화적인 독설만 주고받는다.
사이가 완화됐다는 증거로, 작품 완결 기념으로 대표 배우들이 총출동한 회사 자체 인터뷰까지 승인하지 않았나?
스마트폰을 흘끗 본 최필립이 물었다.
“형, 시작이 다섯 시부터랬죠?”
“응. 이제 좀 있으면 촬영 팀이랑 나머지 스탭들도 다 올 거야. 딱히 인원 통제는 없고··· 라운지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컨셉으로. 맞죠, 강 팀장님?”
“예. 길이 막혀서 조금 늦는댔으니까, 아마 거의 도착했을 겁니다.”
회사의 에이스들에게 로드만 붙일 수는 없는 노릇. 최필립과 함께 온 팀장이 묻자, 백하니 쪽을 케어하던 팀장도 냉큼 받는다.
기지개를 켠 최필립이 중얼거렸다.
“그래서 더 신기하단 말이지. 예전에는 스탭이고 배우고 자기보다 늦으면 오만 지랄을 떨었는데. 그 사이 철이라도 든······.”
그때, 라운지 입구 쪽에서 부산한 발소리가 들리며 몇 사람이 더 나타났다.
비행사 모자에 고글, 새빨간 조종사용 머플러까지 묶은 구신승이 도착한 것이다.
“···또 뭐야, 저건?”
백하니까지 질린 표정을 짓는 가운데, 구신승은 뒤꿈치를 모으고 경례부터 붙였다.
“탑 에어, 마이 네임 이즈 조종사 필립.”
“조종사 필립은 어느 나라 언어······.”
“이번에 들어가는 영화, 주인공이 재미교포더라고. 아버지는 한국인이고 어머니가 미국인이야.”
물어보지도 않은 정보를 줄줄 읊으며, 구신승이 한 자리를 차지하자 양 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늦어서 미안해요. 상화교차로 알죠? 하필 거기서 접촉사고가 나서, 중간부턴 그냥 내려서 걸어왔다니까요.”
“괜찮아요. 어차피 촬영팀도 늦는댔거든.”
이로써 로만의 빅3, 구-최-백으로 이어지는 트리오가 모두 모였다.
‘주신의 서’ 촬영 때문에 해외로 나가 있는 박건과 진지유를 제외하면 회사의 기둥들이 함께 자리한 셈.
고글을 이마로 올린 구신승이 물었다.
“그런데 오늘은 왜 모인 거야? 비행기 다큐라도 찍는댔나?”
“···이봐요, 구 배우님. 오는 내내 오늘 콘셉트를 그렇게 설명했는데······.”
“아, 이것 때문에 못 들었네. 조종사는 이어쉴드가 필수라.”
양수연 팀장이 치를 떠는데도 구신승은 태연하게 귀마개를 뽑았다.
최필립이 좌중을 훑어보며 상황을 정리했다.
“됐고, 피차 피곤하니까 빨리 끝냅시다. 그놈의 인수전 때문에 대표님이 부탁하신 거 아냐, 이미지 쇄신 겸 힘을 좀 실어달라고.”
“그래 놓곤 뉴질랜드로 날라?”
그때껏 말이 없던 백하니가 뾰족하게 말했다. 최필립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이해들 해요. 자기도 가고 싶댔는데 중국 일정 때문에 못 떠서 저래.”
“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준일이 형한테 연락했다며, 경유해서 촬영장 쳐들어갈 거니까 표 좀 구해 놓으라면서.”
“난 그런 적······.”
“자, 촬영팀 도착했답니다! 그만 싸우고 시작해요!”
서울 한복판,
로만의 안방에서도 또 다른 촬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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