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82)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82화(182/199)
천상의 끝에서 (7)
* * *
뉴질랜드, 북섬.
촬영팀의 숙소로 쓰는 민박집은 아침부터 분주하다.
“오늘은 진짜 죽었다. 감독님이 우리 쓰러질 때까지 안 보내 주겠지?”
“뭔 소리야, 누가 쓰러질 때까지 촬영을 해?”
“형이 몰라서 그래! 마지막 촬영인 배우들도 컷을 수십 번씩 먹었다고. 릭도 자기 차례에 밤샐 각오 하고 있대.”
공용 공간, 주방이자 거실쯤으로 쓰는 공간에 서희도와 매니저가 나온 덕이다.
요즘은 거의 24시간, 잘 때도 웬만한 분장은 지우지 않는 서희도가 투덜대다 손을 흔든다.
“어, 지유 누나! 일찍 일어났네요?”
앞에 시리얼과 우유를 놓고, 앉아 있던 진지유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네. 희도 씨도 잘 잤어요?”
연예인들 사이에서, 진지유는 어지간히 친해져도 말을 쉽게 안 놓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 년이 넘게 붙어 있었는데도 그녀가 오빠라고 부르는 사람은 매니저와 박건뿐이지만, 친화력 좋은 후배는 쓱 다가와 말을 걸었다.
“맛있겠다. 형, 우리도 시리얼··· 어라, 뭐 보는 거예요?”
“유튜브요. 회사에서 새 영상을 올려서.”
“오오, 공식 채널인가? 저도 우리 회산 거르고 로만 구독했는데!”
옆에 앉은 서희도가 고개를 쭉 빼고 스마트폰 화면을 넘겨다봤다.
바로 몇 시간 전 업로드된, 로만 엔터테인먼트의 오피셜 계정엔 소속사 대표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여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희 에이스들이 없네요. 촬영 끝날 때가 된 걸로 아는데, 혹시 백하니 배우님은 아시는 게 있나요?
-···제가 어떻게 알아요.
일일 MC 역할을 맡은 구신승이 백하니에게 질문을 던진다.
로만 엔터테인먼트는 이전부터 계정에 배우들의 소소한 일상이나 소속사 깜짝 팬미팅, 이벤트 등등을 올리곤 했다.
옆에서 실실 웃던 최필립도 한 팔 거든다.
-왜요, 소속사 최대 라이벌이 나가 있어서 신경쓰일 텐데. 어제도 피터 숀한테 트위터로 물어봤다는 얘기가 있어요.
-최필립 배우님, 질문지에 있는 얘기만 하시죠.
-어어, 우린 그런 대본 없이 가는데요?
본래도 진지유와 백하니, 이 둘은 팬덤끼리 라이벌구도를 만들어 왔다.
최필립이 옆에서 살살 놀리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다가 결국 발끈하는 백하니를 보던 서희도가 웃음을 터뜨렸다.
“꼭 우리 형근이랑 민종이 보는 것 같네. 누나, 이분들 실제로도 이래요?”
진지유는 미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실제론 조금 더해요.”
“와, 사이가 엄청 좋구나!”
“좋은 건 아닌 것 같은데······.”
마침 한국에 있는 구신승과 최필립, 백하니가 들어간 작품들이 모두 끝난 시기다.
더군다나 구신승은 독특한 컨셉··· 과몰입 연기가 없이도 입담이 좋기로 소문난 배우. 나머지 둘도 한솥밥을 먹은 지 워낙 오래라 그냥 붙여만 놔도 십오 분이 훌쩍 지나간다.
최근 작품을 마친 소감, 신작을 준비하는 근황 뒤 화제는 ‘주신의 서’로 넘어갔다.
-피디님, 이거 업로드 몇 시예요? 오늘 밤에 올리면 저쪽도 볼 수 있나?
-최필립 배우님, 시차란 걸 생각하셔야죠.
-나도 알아요. 한국이랑은 3시간, 그리니치 표준시보다 12시간이 빠르다고.
피터 숀은 소위 ‘어그로’를 썩 달갑게 여기지 않는 성향의 감독이다.
당연히 <고드 : 분노의 파수꾼> 때처럼 공식 트위터에 메이킹필름이 쏟아지지도 않고, 촬영 스탭들의 단속도 철저하다.
그래서 이따금씩 팬들이 찍은 현장 사진만 유출돼, 한국은 물론 전세계의 팬들이 제발 떡밥 좀 달라며 아우성치는 상황이었다.
최근 뜬 박건의 영상을 함께 보며, 최필립이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래서 그런가, 기대가 더 되더라고. 여러분도 알잖아요? 입소문이 저절로 나는 집이 진짜 맛집이라는 거.
-그렇죠, 필립 씨. 마치 우리 회사처럼··· 아니, 피디님. 아무리 대본이라도 이건 좀 심한 거 아닙니까? 요새 이런 바이럴은 욕 먹어요!
토크는 한층 여유로워진 최필립과 진행에 물이 오른 구신승이 끌고 간다.
카메라 밖에서 스탭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제가 언제 그랬어요!’ 하는 PD의 항변 뒤에 최필립이 슬며시 공격한다.
-그나저나. 우리 백 배우님은 중국에서 너무 피곤하셨나? 갈수록 안색이······.
-이런, 그만 끊자고 하네요. 요즘 유튜브도 너무 길면 시청률이 안 붙거든요.
둘이 또 붙을 기미가 보이자, 능숙하게 자른 구신승이 마무리 멘트를 친다.
-회사의 모든 아티스트들, 그리고 지금 뉴질랜드에서 불철주야 작품 촬영에 열을 올리는 진 배우랑 박 배우! 항상 존경하고 응원합니다. 들어오면 다 같이 축하 파티나 갑시다.
-···갑자기?
백하니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묻지만, 구신승은 뻔뻔스레 슬레이트를 쳐 버린다.
-그럼 하늘에서 봅시다. 다들 건강하세요.
-형, 그렇게 말하니까 이상하잖아!
-하나, 둘, 셋, 박건 화이팅. 진지유 화이팅. 주신의 서 대박을 기원합니다.
어디서 주워왔는지, 진짜 조종모에 비행용 고글까지 낀 톱 배우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영상이 뚝 끊긴다.
검은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던 서희도가 말했다.
“부럽다. 우린 아직 중소라, 애들 앉혀 놓고 컨텐츠 뽑아도 포스가 안 나오는데······.”
“에이, 희도 씨 회사가 어떻게 중소예요. 웬만한 대형들하고 붙어도 안 밀리면서.”
뒤늦게 들어와, 반쯤 감긴 눈으로 시리얼에 우유를 붓던 유준일 실장이 끼어들었다.
노중만은 DG의 인수전 때문에, 김률은 영화제 심사위원 일로 귀국했지만, 유 실장 본인은 배우 케어를 위해 남았다는 것 같았다.
“사람이 없잖아요, 사람이. 실장님네 회사는 탑 배우만 다섯에··· 퍼핑돌즈랑 퀸덤, 그 친구들도 대박이던데. 이번에 새로 데뷔한 3인조.”
“아, 유닛츠요?”
“맞아요. 최필립 배우님 사촌동생분이 있다는 그룹, 퍼포먼스고 가창력이고 장난 아니더라고요.”
“대표님이 신경 많이 쓴 친구들이에요. 데뷔곡 받는 데만 2년 가까이 잡아먹었죠.”
자기 폰을 켜며, 서희도가 입맛을 다셨다.
“가요계는 모르겠고, 이거 건이 형이 보면 뭐라고 할지나 궁금하네. 막 좋아하려나?”
그리고 삼십 분 뒤.
느지막이 들어온 박건은, 감동적인 소속사의 대화합에 짧게 평했다.
“이런 얘긴 톡으로 해도 되는데.”
하니랑 필립이의 투샷이라니! 영상을 다시 보면서 감탄하던 유준일 실장은 입을 뻐끔거렸다.
“예··· 예?”
“백하니 씨는 엊그제까지 연락했습니다. 구신승 씨와 최필립 씨도 사흘 전에, 그 SNS······.”
박건이 미간을 좁히자, 함께 내려온 박선이 얼른 형의 말을 통역했다.
“디엠, 다이렉트 메시지.”
“아, 디엠을 보냈고요. 평소에도 촬영 얘기나 이런저런 잡담을 하는 편이라서.”
그렇다면야 별 감흥이 없을 수도 있다. 유 실장이 턱을 긁적거렸다.
“다시 봐도 신기하단 말이죠. 구 배우랑 필립이야 전부터 친했다 쳐도, 나머지 사람들은 철천지원수 아니면 소 닭 보는 사이였는데. 이게 박건 매직인가?”
“박건 매직이요?”
“왜, 공 팀장님이 맨날 그러잖아. 박 배우는 전쟁터에 보내도 대화합을 이뤄낼 것 같다고. 선이 씨한테도 말한 적 있지 않았나?”
“맞아요. 특수부대인 게 안 믿긴다면서요.”
듣고 있던 박건은 어깨를 으쓱했다.
“팀워크는 군인의 필수 덕목입니다.”
“그래요, 그래.”
유 실장이 대충 맞장구를 치는 와중, 진지유가 발표하듯 손을 들었다.
“잠깐 소신발언. 저는 원래도 모두랑 친했는데요?”
“그래, 대신 백하니 속을 기막히게 긁어서 본부장님 명패를 세 개나 작살냈지.”
“그게 왜 제 탓이에요? 그 언니가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았나 보죠.”
“그런 씨알도 안 먹힐 소릴······.”
화목하던 담화는 피터 숀이 들어와 멈췄다.
좀비처럼 비척비척 걸어온, 작품의 총사령관이자 헐리우드의 명감독은 쉰 목소리로 선언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최후의 결전이다.”
*
마지막.
촬영의 막바지로 접어들수록, 스탭은 지치고 배우는 힘을 얻는다는 말이 있다.
당연하지만 배우들 쪽에서 원성이 나오는 촬영장의 속설이다. 연기나 현장 일이나 힘든 건 매한가진데 그게 무슨 소리냐는 것.
직업군에 따라 해석의 여지는 다소 분분하겠으나, 오늘 ‘주신의 서’ 현장은 배우고 스탭이고 기묘한 열기에 휩싸였다.
“오늘이······.”
“진짜, 이 지긋지긋한 섬도 끝이야······.”
“마지막이구만. 뉴질랜드 쪽으로는 여행 계획도 안 잡을 거야.”
감회 어린 눈빛으로, 현장을 올려다보던 조명팀 스탭들이 한 마디씩 던진다.
아래에서는 그야말로 대대적인 촬영 준비가 막바지에 달하고 있었다.
“거기, 그쪽 좀 당겨!”
“이쪽 방면이 다 무너진다고 했잖아, 굳이 다시 세워야 되나?”
“그건 세트장으로 대신한대. 전체적인 부감에 예쁘게 잡히려면 고쳐 둬야 돼!”
순백의 성, 카타람에 수많은 스탭들이 붙어서 마지막 준비가 한창이다.
왕성― 황제의 몰락.
실질적인 이유와 감정선을 살린다는 이유 둘 다로, 피터 숀은 이 초대형 세트장의 붕괴를 마지막 날로 잡았다.
―폐, 폐하!
이전 장면, 이동마법진으로 에녹 요새에서 텔레포트해 온 마법사는 무릎을 꿇는다.
황제의 옆에 있던 궁정마법사 라우가 수척해진 얼굴로 꾸짖는다.
―폐하의 앞이다. 의관을 갖춰서 정중히······.
―마수, 마수들이!
까마득한 후배가 말을 잘랐지만, 한쪽 팔을 잃은 궁정마법사 단장은 입술을 깨문다.
언령, 주문조차 내지 못하는 사이 팔을 날려 버린 묵빛 검을 기억하는 탓이다.
이내 마법사가 피를 토하듯 말을 잇는다.
―···왕성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천지를 뒤덮는 숫자입니다. 거인형과 비행형, 초거대종도 섞여 있는 것으로 관측됐습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지난날,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천지를 우롱하고 순리를 거스르는, 황제의 비술은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주신의 권능을 사용··· 마수들을 조종하는 데 성공해, 이도가 날뛰는 반군에게 궤멸적인 타격을 입힌 순간.
군단사령관 게일이 배신했다.
―고맙군, 방랑자. 덕분에 우리 황제 폐하의 뒤통수를 칠 짬이 생겼어, 크하하하!
결국 반군, 게일군, 제국군으로 갈라진 세 집단은 엄청난 사상자를 남기고 흩어졌다.
게일이 제법 많은 세력을 가지고 이탈했지만 황제에게는 마수를 지배하는 권능이 있는 상황.
그런데 놈들이 왕성으로 온다니, 대체 왜?
―배신자가 있군.
궁정마법사가 흰 수염을 푸들거리는 사이, 스산한 음성이 홀을 울린다.
황제의 모습은 몇 달 전과 달라졌다. 피부는 한층 창백해져 백짓장처럼 변했고, 눈부시던 백금발은 타락을 상징하듯 회색으로 물들었다.
―······.
텔레포트한 마법사도, 단장 라우도 한순간 숨을 멈춘 채 황제를 올려다본다.
감겨 있던 눈꺼풀이 올라가고··· 한때 금빛이었던 새빨간 눈동자가 안광을 발한다.
―황녀는 어디 있지?
―오늘 아침 외출하셨사옵니다. 급히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저희도 물리치시고서······.
불려온 시녀장이 황망히 허리를 굽혔을 때.
―그랬군.
푸슈욱!
별안간 피분수가 폭발하며 시녀장의 몸이 대리석 바닥에 쓰러졌다.
아직 펄떡거리는 심장을 한 손에 쥔 채, 황제는 평소와 같은 어조로 지시한다.
―레이웬을 데려와라.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딸을 바쳐, 평생의 숙원을 이루기 위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