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83)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83화(183/199)
밝혀지는 비밀 (1)
* * *
마지막 촬영 두 시간 전.
피터 숀이 주연 배우 둘을 불렀다.
감독이 쓰는 별채의 숙소로 가며, 진지유는 이상하다는 듯 갸웃거렸다.
“오빠, 지금까지 따로 연락 받은 적이 있었어요? 전 감독님한텐 처음이라······.”
건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도 첫 미팅 이후엔 없었습니다.”
“그럼 역시 마지막 촬영이라 그런가 봐요. 아까 다른 배우들도 사무실로 가는 것 같던데.”
“아마 그렇겠죠.”
대답하면서, 건은 기억을 되짚었다.
‘다른 주연들이 간 게··· 아까 전이었나.’
맥클레인과 릭, 두 배우가 피터 숀의 숙소에 다녀간 것이 삼십 분쯤 전이었다.
미친 폭군과 배신한 군단사령관은 앞선 차례로 디렉팅을 마친 것 같았다.
“근데 뭔가, 설레지 않아요? 드라마 찍을 때는 은근 많이 불려갔었거든요. 나 PD님은 특출들한테도 디렉을 많이 주시니까.”
“지유 씨는 호출이 잘 안 왔을 텐데요. 워낙 잘 하잖습니까.”
진지유는 눈을 흘겼다.
“또, 또 빈말. 그렇게 영혼 없이 칭찬하면 민망하다고 했죠?”
“충분히 담아 드린 겁니다.”
처음 가졌던 컨셉 회의 및 배역 미팅 이후, 지금껏 피터 숀은 따로 배우들을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농담조로 몇 마디 던진 것이 전부다.
-알아서들 합시다. 캐릭터 해석은 배우 몫이고, 엇나가지만 않게 잡는 게 내가 할 일이니까. 디렉팅을 원하면··· 그래, NG를 무진장 내면 되겠군. 그럼 누군가는 끼어들 거야.
감독의 성향상 연기 디렉팅은 대체로 배우에게 맡기는 데다, 잘하는 연기를 굳이 건드려 봐야 감정만 상할 뿐이다.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촬영이다 보니 표면적인 회의라도 하려는 모양이었다.
“회의? 그런 걸 왜 하지?”
그래서 숙소로 들어갔을 때, 두 배우는 어리둥절해져서 눈을 깜빡였다.
책상 위엔 대본 뭉치 대신 웬 케이크며 샴페인 병이 잔뜩 놓여 있었다.
피터 숀은 대수롭지 않게 손짓했다.
“뭔가 착오가 있었나 본데, 그냥 잘 부탁한다고 부른 거요. 일 년 동안 너무 굴려서 미안하기도 하고.”
“···보통 이런 건 촬영 끝나고 하지 않아요?”
“헐리우드 스타일이 원래 이래서.”
“아닌 것 같은데······.”
진지유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이, 피터 숀은 샴페인을 한 잔씩 따라 건넸다.
“도수가 거의 없어. 목만 축이고 가지.”
건은 투명한 기포가 올라오는 잔을 들여다봤다.
“축포를 일찍 터뜨리는군요.”
“그럴 만하지 않나? 가편집본은 매번 보잖아.”
어젯밤, 작은 상영회가 열렸다.
가편집된 회차별 영상들을 보며, 주조연 배우들과 촬영감독들은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았다.
명작.
이대로만 플랫폼에 공개하더라도 십수 년은 회자될 작품이 탄생했노라고.
서사는 탄탄하고, 캐릭터는 살아 숨쉬며, 세계를 구성하는 배경부터 소품의 디테일까지 어디 하나 완벽하지 않은 것이 없다.
거기에 피터 숀이 고심 끝에 고른 뉴질랜드의 로케이션은 실제 ‘주신의 서’ 대륙 속 모습과 어마어마한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백여 명의 인원들이 어떤 험지든 한 몸처럼 움직이며 힘을 모은 결과인 것이다.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신 진지유가 슬쩍 말했다.
“다 감독님 덕분이죠. 골라 주신 로케이션은 정말 죽을 맛이긴 했지만······.”
피터 숀이 제작한 ‘난쟁이들’ 3부작의 대성공 이후, 관객들의 눈은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
덕분에 배우들은 그야말로 개고생을 해야만 했다. 모험의 주축이 되는 박건 일행은 물론, 황녀 역할의 진지유도 후반부터는 온갖 기상천외한 자연 속을 뛰고 구르고 헤엄쳐야 했다.
“CG도 CG 나름이지. 아무리 기술이 좋아졌어도 통째로 입히는 거랑 현지 로케이션이 같을 수가 있나.”
대꾸한 피터 숀은 두 배우를 찬찬히 쳐다보다가 씩 웃었다.
“아무튼··· 고생들 많았어. 출국 전에 제대로 한턱 내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에, 피터 숀과 진지유가 의아한 표정으로 이쪽을 돌아봤다.
건은 입도 대지 않은 샴페인을 도로 놓았다.
“긴장을 풀어선 안 됩니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
‘주신의 서’, 마지막 촬영이자 최후의 무대는 처음 세웠던 흰 성에서 치뤄진다.
순백의 성, 카타람.
옛 왕들의 거처이자 불굴의 요새. 영광스러운 종족 동맹의 상징이었던 곳.
그 역사적 산물이, 지금은 화마와 연기에 타들어가고 있었다.
부웅, 콰과광!
투석기로 쏘기도 어려울 만큼 거대한 바위가 첨탑들을 부수며 떨어진다.
돌조각과 육편이 피구름에 섞여 날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들은 망연히 망루 밑을 본다.
“······.”
들판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밀려오는 마물들의 군세 너머, 저 멀리··· 원숭이를 닮은 괴물이 다음 바위를 집어들고 있다.
“기름을 더 가져와! 부관은 어디 있나!”
“화살을 퍼부어라! 놈들이 성벽을 기어오른다!”
“사수해, 절대 함락되게 두지 마라!”
한편, 성문과 가까운 성곽 위에서는 처절한 고함들이 울려퍼진다.
이쪽은 날아오는 바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물밀듯이 밀려온 마물들이 흰 성곽을 타고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키엑, 키에에엑!
발 여덟 개가 달린, 거미형 마물들이 끓는 기름을 뒤집어쓰고 떨어진다.
성곽 위에서 쏘아붙이는 화살에 수십 마리가 쓸려나가지만, 죽은 것보다 더 많은 마물들이 더 빠르게 자리를 메운다.
어림잡아 수천··· 아니, 수만이 넘을까. 반군과의 싸움과 군단사령관의 배신, 이도의 활약으로 이탈한 제국군으로서는 끔찍한 숫자다.
돌연 모여든 마물의 군세가 성을 공략하기 시작한 지 벌써 닷새째.
순백의 성은 그 끝을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었다.
“비행형이다! 놈들이 위에서 내려온다!”
“하늘이다, 하늘!”
그때, 찢어질 듯한 고함이 터져나온다.
비행형 마물. 거대한 날개를 치며 날아내려온 저 작은 용들은 이제 인간의 악몽이 되었다.
석궁도 박히지 않는 방어력과 긴 목, 흉포한 이빨은 성곽 위의 병사들을 가장 많이 희생시킨 주범이다.
“빛이여, 적을 참하소서!”
마법사들이 공격마법을 뿌리지만, 놈들의 두꺼운 피막은 그 자체로 일부 마법을 반사한다.
날아들던 빛의 광선들이 튕겨나가고, 강하해 온 새카만 마물이 꼬리를 휘두르자 전투마법사 여섯 명이 사라졌다.
“온다! 공성추다!”
마물 일부가 성곽을 오르고, 또 일부가 하늘에서 병사들의 혼을 빼앗는다면 진짜 돌격대는 지상에서 전진한다.
쿵, 쿵··· 지축을 울리는 발소리와 함께, 거대한 쇳덩어리를 짊어진 거인형 마물들이 철판 갑옷을 입은 채 전진해 온다.
상처투성이가 된 성문 앞에 병사들이 들러붙지만, 공성추가 문을 때릴 때마다 성벽 전체가 무너질 듯 진동한다.
함락은, 실로 가까워졌다.
“아아······.”
병사 하나가 망연한 얼굴로 둘러본다. 망루 여기저기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박살난 첨탑들을.
그리고 무너져내리는 제국 그 자체를.
“신이 노하신 거야. 황제의 폭정과 인간의 타락 때문에, 모두를 세상에서 지워 버리시려고······.”
한때 태양신의 은총이 가호하던 대륙은 인간들의 욕망으로 얼룩졌다.
제국. 절대권력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지독한 수탈과 학살이 일어났던가.
그 지옥을 만든 것도 인간이었고, 고통받던 이도 인간이었으며, 마침내 모두가 같은 죄악을 뒤집어쓴 채 추락하게 된 것이다.
“주신이시여.”
결국 병사는 신성을 빼앗긴 신을 부르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순간,
펄럭ㅡ
날개 치는 소리가 들리며, 거대한 용의 머리가 병사를 수십 조각으로 으깨 버렸다.
“푸흐흐, 우스운 꼴이군.”
한편 조금 떨어진 고지.
황제가 발동시킨 금단의 주술을 역으로 돌려, 마물들을 순백의 성으로 보낸 군단사령관은 부관들과 축배를 드는 중이다.
“제가 부리려던 칼에 찔려 죽는 꼴이라니. 실로 하찮지 않나? 인간의 격을 벗어던졌다고 자부하고 있었을 텐데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리 황제가 태양신의 권능을 손에 넣었다 해도, 저 마물들을 뚫고 나올 수는 없을 겁니다.”
“위치 표식 마법은? 제대로 작동하겠지?
부관이 냉큼 지도를 내밀었다. 양피지에는 붉은 점이 황궁 깊숙한 곳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예. 칼드윈 아이라스, 황제는 여전히 자신의 처소에 눌러앉아 있습니다.”
“좋아, 그럼 우린 쭉 구경이나 하자고. 순백의 성이 완전히 불탔을 때, 슬슬 들어가서······.”
음흉하게 웃던 군단사령관, 게일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
쉭, 싸악!
동시에 부관들의 목이 분리되며 튀어올랐다. 검에 강한 장력을 불어넣는 검법, 지겹도록 얽힌 악연이기에 알아보지 못할 수 없다.
어느 새 뽑아든 검으로 다음 일격을 막으며, 게일은 이를 갈았다.
“미친 늙은이가······!”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노검사, 헥탄은 주름진 입매를 사납게 일그러뜨렸다.
“오랜만이구나, 조카야.”
파챙, 챙, 파카캉!
몇 합의 검격이 오가지만, 승부는 쉽게 나지 않는다. 삼촌을 밀쳐낸 게일은 저린 손아귀를 쥐었다 펴면서 으르렁댔다.
“어떻게 더 강해졌지? 그 방랑자에게 금단의 비술이라도 배웠나?”
“조카야, 넌 늘 같구나. 눈앞의 황금에 취해 더 큰 것을 보지 못해. 그 욕망들이 널 파멸시키리란 사실을 아직도 모르겠느냐?”
“무슨 헛소릴······.”
헥탄은 긴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그가 이도를 도와 반군에 몸을 의탁했던 이유는 단 하나, 복수 때문이었다.
온 일가친척을 몰살시키고 황제의 아래로 들어간··· 그리고 그 주군마저도 배신한 반골, 조카와 긴 악연을 끊어내기 위해.
바로 전날, 이도는 검을 손질하는 그에게 짧게 이야기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이 있지.’
‘응? 날 불렀나?’
‘당신이 하지 않더라도, 그 사내는 시작한 일을 끝내게 될 거야. 스스로의 손으로.’
‘···내가 자넬 도왔던 이유를 알고 있군.’
이도는 고개를 기울였다. 벌써 목까지 긴,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조카에게로 가. 황제와의 싸움에 당신은 방해물만 될 뿐이야.’
‘마음에도 없는 소리. 칼드윈 아이라스는 이미 인간의 껍데기를 벗어던졌다네. 늙은이라도 한 손이 아쉽지 않겠나?’
‘아쉬움 따위를 느끼기엔······.’
이도, 이 비밀 많은 사내는 결코 망설이거나 주춤거린 적이 없다. 마치 모든 것이 정해진 양, 또는 이미 겪었던 일인 양 전진할 뿐이다.
이내 푸석푸석한 입술이 열렸다.
‘너무 멀리 왔어. 우리 모두가.’
환상이 사라지며 현실이 펼쳐졌다. 평생을 쫓았던 조카와 마주보며, 노검사는 처음으로 거짓이 아닌 웃음을 머금었다.
“이쯤에서 끝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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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 서쪽 성벽.
“이젠··· 다 틀렸어······.”
“우린 다 죽을 거야, 저놈들한테 찢겨 먹힐 거라고!”
화살도 떨어지고, 더 던질 돌이나 기름도 없다. 이미 성문은 반파되었고 북쪽과 동쪽 성곽까지 점령당한 상태.
절망에 빠진 제국군 병사들 앞에, 돌연 검은 형체들이 나타났다.
“누, 누구냐!”
맨 앞의 병사가 검을 겨눴지만, 이내 칼끝은 힘없이 떨리며 내려간다.
눈앞의 인영들이 지난 몇 달간 제국군을 살육했던 장본인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정작 방랑자, 이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성곽 위를 둘러봤다.
“서쪽은 아직 무사하군.”
“성문이 반파됐습니다. 위보다 아래가 얼마 버티지 못할 겁니다.”
옆에 서 있던 요정왕의 아들, 제린이 말한다.
둘을 이동시킨 것은 고급 텔레포트. 성의 무수한 결계와 방어마법들이 약해졌기에 무효화된 틈을 찾아 들어올 수 있었다.
“들어왔으니 됐어. 그들은 언제 도착하지?”
제린은 품에서 작은 나뭇잎을 꺼냈다. 금빛 나뭇잎의 끝이 반짝이고 있었다.
“어림잡아··· 한 시간입니다.”
“아슬아슬하군. 이봐.”
별안간 지목당한 병사는 눈을 꿈뻑거리며 동료와 마주봤다.
이도는 태연히 지시했다.
“가서, 모든 병력을 성문에 집중하라고 전해. 너희가 살 방법은 그것뿐이다.”
“왜··· 뭐, 뭘 하려고··· 하시려고요?”
어차피 여기서 덤벼 봐야 개죽음이다. 압도된 병사가 묻자 짧은 답이 돌아왔다.
“인간이 저지른 과오를, 씻을 시간이다.”
그 말만 남기고 이도는 걸어나갔다.
곧이어, 성곽 위로 안개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