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84)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84화(184/199)
밝혀지는 비밀 (2)
* * *
-드디어 만났구나, 아버지의 원수!
-흐흐흐··· 그 꼬맹이가 이만큼 컸더냐?
럭셔리하게 꾸며진 아파트 내부.
100인치에 가까운 벽걸이 TV에서, 초고화질 기기가 불쌍해지는 연기력이 흘러나온다.
조선시대 무사 컨셉일까, 지나치게 멋을 낸 갑옷을 입은 배우가 검을 겨누고 외친다.
-오늘 나의! 이 검으로! 너의 목을 징치하겠다!
대사를 받아주던 악당 역할 중견배우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주연이란 놈의 연기력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수준이지만, 용케 웃지 않고 집중하려는 게 화면 밖으로 보일 정도다.
-오냐, 어디 해 보려무나. 이 자리에서 살아 나간다면 네가 왕이 될 것이다.
과거 ‘망회돌’ 에서 은기학 회장 역할을 맡았던, 원로배우 석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안타까워서 못 보겠군. 저걸 찍는 감독이 힘들었을까, 아니면 받아주는 배우가 고역일까?”
나란히 앉은 또 다른 원로배우도 박건과 연이 있는 이다.
‘서울의 개’의 부패한 경찰청장, 백장협은 정종을 홀짝이며 대꾸한다.
“둘 다겠지. 편집하면서 여럿이 골치깨나 싸맸을걸.”
“아니, 저놈은 왜 연기가 안 는다나? 예전에 양 노인네한테 특훈까지 받았다며?”
“연기를 어디 연습으로만 하나. 이십 년을 구르고도 정신 못 차리는 놈들투성인데.”
주고받던 백장협의 얼굴에 장난기가 서린다.
“그래서, 이백 억짜리 어디에 출연한다며. 이번에도 재벌가 노친네 역인가?”
“말도 마. 그 이후로 회장님 배역만 오십 편이 넘게 들어왔다면 믿겠나?”
백장협이 기어이 웃음을 터뜨린다.
망나니 회귀자가 돌아왔다, 속칭 ‘망회돌’은 웹소설판과 드라마판에 폭탄을 터뜨렸다.
주인공인 은씨 삼형제만큼 큰 인기를 모은 캐릭터는 단연 은기학, 은 회장 역할로 열연한 할아버지 석필호였고.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은 ‘망나니 회귀자가 돌아왔다’ 석필호··· 데뷔 후 첫 영예] [박건 마법이 이번에도 통했다? 한솥밥 동료들도 시상식 ‘싹쓸이’] [구신승 ․ 최필립 ․ 박건에 석필호까지, 수상의 품격 빛났다(종합)]기어이 연말의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트로피까지 거머쥐었다지만, 그 후 석필호는 ‘국민 재벌 회장’이 되고 말았다.
눈가를 훔친 백장협이 친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어때, 원래부터 회장 역할은 이골이 났었잖나. 한결같은 배역도 매번 다르게 살리는 게 우리 일이야.”
“하긴, 어설픈 감초 연기보다야 하던 역할이 편하긴 하지.”
이미지 고착이야말로 배우가 피해야 할 1순위라지만, 자주 하게 되는 배역은 존재한다.
석필호의 경우처럼 재벌이거나, 부패한 형사나 검사라거나, 반대로 늘 조직폭력배 보스를 맡는 배우도 제법 된다.
-폐하! 아니, 아버지! 왜 제겐 믿음도 사랑도 주지 않으셨던 것입니까!
TV에서는 얼굴만 잘생긴 폭탄이 발연기를 이어가고 있다. 석필호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그 친구는?”
막역한 친우들과 있을 때, 석필호의 입에서 나오는 ‘그 친구’란 대단한 존중의 표현이다.
그리고··· 요즘 젊은 배우들 중 그런 소릴 들을 녀석은 한 명밖에 없다.
“박건? 글쎄, 그쪽은 연기가 한결같다기보다 사람이 한결같잖나.”
끔찍하게 잘하긴 한다만. 덧붙인 백장협이 피식 웃었다. 석필호는 빈 잔을 다시 채웠다.
“한결같아? 뭐가 말인가?”
“내 먼 조카 놈한테 들었는데 말이야. 데뷔하고 지금까지, 팬들이 사진이나 사인을 부탁하면 단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더군.”
“그게 되나? 월드스타 반열에 오른 친구가.”
백장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아끼질 않으니까. 스케줄 때문에 바쁘면 단체사진이라도 남기고, 그걸 한 명 한 명 보내 준다는 데선 혀를 내둘렀네.”
“팬서비스가 대단한데. 우리가 젊을 때 극단으로 찾아온 팬들한테도 그만큼은 못했을 거야.”
한 명은 데뷔작에서, 다른 한 명은 웹소설 원작의 드라마에서, 두 배우 모두 박건과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다.
당시 박건이 일개 스탭부터 엑스트라··· 촬영장을 찾아온 팬들을 대하는 태도는 연예계의 원로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벌써 빈 술병만 여섯을 넘어간다. 백장협이 주름진 입가를 훔치고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나는 그래서 그 친구가 걱정되곤 했다네.”
“어이고, 살날이 수십 년 남은 젊은이를?”
“보게, 사람은 기계가 아냐. 배우는 특히나 더 불안한 족속들이고.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욕망에 집착하기 마련일세.”
지금은 육십 줄을 훌쩍 넘어섰지만, 그들 역시 젊은 날 바람처럼 살아온 배우들이다.
지금의 시스템이 정립되기 전, 야생에 가까운 연예계에서 살아남았기에 저 말의 뜻도 안다.
석필호가 물었다.
“그래서, 뭘 걱정했다는 건가?”
“너무 완벽해서 걱정이 됐지.”
“응?”
“박건 그 친구는··· 뭐랄까, 희생정신의 화신 같았어. 세상만사에 이미 초연해진.”
아직 서른도 안 된 배우가, 연기력은 물론 인성까지 완벽하다. 작품 내외적으로 동료를 위해 뛰어들며 팬서비스와 기부도 아끼지 않는다.
말로만 들으면 이상적이지만, 화려한 업적과 감탄스러운 미담 뒤엔 공허가 뒤따른다.
그 흔한 논란 한 번 없던 초신성, 젊은 괴물의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다른 얘기지만··· 만나는 스탭들, 특히 주변 사람들을 그렇게 챙긴다더군. 꼭 어디서 소중한 걸 잃고 온 것처럼.”
“뭐야, 그래서 연기를 시작했던 건가?”
벌써 1년이 지났던가. 뉴질랜드로 날아간 로만 일행들도 슬슬 소식이 들려올 시기다.
일어선 백장협은 벽 쪽의 서가로 가, 꽂혀 있는 시리즈 중 한 권을 뽑아들었다.
검은색과 금색이 섞인, 양장본 표지에는 ‘주신의 서’ 10권이라고 적혀 있었다.
“모르지. 뭐가 그 친구의 이유였을지.”
주름진 손가락이 넘기는 책장 속, 황궁에서는 최후의 혈투가 피를 뿜는다.
*
“우린··· 다 죽을 거야······.”
황궁의 가장 깊숙한 곳.
본래는 허락되지 않은 장소건만, 성에 남은 대신들이 모두 모여들어 떨고 있다.
“지금이라도 지하통로로··· 아니, 라우 경의 마법으로 어떻게든······.”
“자네 미쳤나! 이미 지하통로 쪽도 마수들이 둘러쌌을 거야, 그쪽으로 가면 개죽음일세!”
“그럼 여기서 다 죽자는 거요! 결사대가 성문을 막는 동안 우리라도 살아야지!”
끝을 목전에 두었음에도, 무의미한 갑론을박만이 공허히 홀을 울린다.
황제에게 충성하기에 남은 것이 아니다. 도망칠 만한 강심장들은 이미 황제의 주술에 피 뽑힌 미라로 변했다.
미친 폭군의 옷자락이라도 잡으려는, 가장 우매하고 한심한 양들만이 이곳에 모였을 뿐이다.
“크윽, 기어이······!”
통신마법으로 바깥 상황을 듣던 궁정마법단장 라우 경이 침음을 흘린다.
“성문이··· 뚫렸다고 합니다. 세 방향의 성곽은 이미 점령당했고, 열린 길로 마물들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는, 다른 궁정마법사들도 침통하게 고개를 숙인다.
달아날 길은 없다.
순백의 성, 카타람은 허락받지 않은 마법의 사용을 불허하는 바. 아무리 시간이 지나며 요정 결계가 약해졌다지만, 성 안에서 바깥으로의 텔레포트는 불가능하다.
공포에 미쳐 버린 대신 한 명이 황제의 앞으로 몸을 던지며 부르짖었다.
“폐하, 결정을 내려 주십시오!”
옥좌의 황제가 눈썹을 꿈틀거린 순간, 성 전체를 진동시키는 폭음이 울렸다.
천장에서 먼지가 떨어지고 대리석 기둥에 거미줄 같은 실금이 간다.
“······?”
다들 놀라는 와중, 황제만이 입매를 뒤튼다. 서쪽 성곽에 나타난 불청객들을 감지한 것이다.
-크악, 키에에엑!
-인간을 다시 도울 거라곤 생각지 못했건만.
-캬아아아악!
-이 또한, 운명이겠지.
요정왕의 아들, 제린이 영창을 마치자 태양처럼 불타오르는 반구형의 구체가 마수들 한복판으로 날아가 폭발한다.
그리고··· 저 먼 곳, 마수들에게 둘러싸인 백색 성을 바라보는 군마들이 있다.
-우리는 옛 동맹을 위해 출정한 것이 아니다.
말 위, 신비로운 금빛 갑주를 걸친 요정왕이 긴 창을 비껴든다.
-추악한 마귀들을 도륙하고, 내 아들을 구해내기 위해 검을 든 것이다.
요정왕의 뒤로 도열한 수만의 인마(人馬)가 일제히 창을 올린다.
빠아아아아―
뿔피리가 드높이 울려퍼지고, 한때 잊혀졌던 요정군이 순백의 성을 향해 진격한다.
긴 고민을 마친 요정왕이 결국 왕자의 청을 들어 달려온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이미 움직였다.
“왔느냐.”
황제의 입이 열린 찰나, 홀 위쪽이 무시무시한 절삭음과 함께 썰려나갔다.
한순간 하늘이 보이게 된 천장으로, 시커먼 까마귀 같은 사내가 뛰어내린다.
“이도!”
대신들이 기겁하며 일어서고, 궁정마법사들이 마법을 준비하지만 이도는 평온하다.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싼, 흰 옷의 여인을 안은 채 서 있을 뿐이다.
“아니, 저분은 황녀님이 아닌가!”
“분명 지하 감옥에 갇혀 있을 텐데······!”
그제야 레이윈 아이라스를 알아본 대신들에게서 신음이 흘러나온다.
제 딸을 가둔 절대자, 황제는 느긋하게 술잔을 들어올렸다.
“호오, 아직 명줄이 붙어 있더냐? 계집이지만 과연 아이라스의 핏줄은 이어졌구나.”
“이럴 필요까지 있었나?”
이도의 답에, 황제는 고개를 갸웃했다.
“제국의 신민은 모두 내 아래에 있다. 그 아이는 명실상부한 아이라스의 핏줄이면서, 감히 제 아비를 배신하고 모반을 획책했지. 도망친 군단사령관과 다를 바 없는 중죄다.”
“우습군. 처음부터 제 딸의 피를 빨아들일 계획이었으면서.”
황제의 붉은 눈이 사납게 빛난다.
“말했을 텐데, 제국민은 모두 황제를 위해 존재한다고.”
품 안에 안긴 레이웬 아이라스가 희미하게 신음했다. 모진 고문에 힘까지 일부 빼앗긴 듯, 파리한 맥박만 간신히 뛴다.
황녀를 연기하는 진지유를 내려다보다가, 건은 시선을 들었다.
“방랑자여, 네가 역사를 아느냐?”
“······.”
“아이라스의 선대들은 제국을 위해 오랫동안 봉사했다. 우리 가문이 아니었다면 이 나라는, 나아가 이 땅은 마수들이 지배하는 황폐한 불모지가 되었을 터.”
미친 폭군 칼드윈 아이라스이자, 배우 맥클레인 자바스런티가 대사를 잇는다.
‘몰입도는··· 완벽하군.’
이미 저쪽의 집중력 역시 최고조에 달했다. 남은 것은 황제와 방랑자, 칼드윈과 이도가 벌이는 최후의 일전뿐이다.
오래 전··· 죄악의 군주를 참했을 때처럼.
“그런데도 내게 죄를 묻느냐, 이 세계의 규칙조차 모르는 이방인이!”
이방인이, 이방인이··· 황제의 목소리가 메아리치자 대신들이 귀에서 피를 뿜으며 고꾸라졌다.
안고 있던 황녀를 안전한 곳에 내려놓은 뒤, 건은 홀 가운데로 걸어나가며 검을 뽑았다.
“말이 길군. 썩 나와라.”
황제와 한 발짝씩 가까워지는 동안, 세트장의 풍경은 사라지고 익숙한 암흑이 주위를 감쌌다.
새카만 어둠밖에 보이지 않는 공간. 네 번째 대악마가 만들어 낸 마경이다.
“죄악의 베리알.”
저 앞에서, 타르처럼 끈적거리는 거대한 어둠이 일렁이며 형체를 갖춰 간다.
금이 간 성검을 고쳐 쥐며, 용사―고드―박건은 호흡을 골랐다.
베리알 전(戰) 42회차.
오늘 죄악의 악마는 참살될 것이다. 넷째를 넘어 다섯째, 비밀에 싸인 아스메라우스에게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자 제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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