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85)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85화(185/199)
밝혀지는 비밀 (3)
* * *
대악마는 어디서 왔는가.
누군가는 저 외세의 사악한 파편이 대륙에 낙하한 것이라 하고, 또 누군가는 타락한 용사가 변질된 존재라고도 한다.
대악마를 수백 차례 참한, 철왕국의 현직 용사가 생각하기엔 일리가 있는 소리였다.
‘전자보다는 후자 쪽이지. 전대 용사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쐐액, 콰아아앙!
베리알이 쏘아보낸 마기의 창이 성검에 부딪쳐 대폭발을 일으켰다.
뒤쪽으로 날아가는 도중, 따스한 힘이 등 뒤를 받치며 침투하던 마기를 흩는다.
지금껏 수천··· 아니, 수만 번이 넘도록 합을 맞췄던 성녀의 신성력이다. 자세를 바로잡고 착지한 고드는 숨을 들이켰다.
―퍼버벙!
이번에는 용사의 발밑에서 파공음이 터진다. 합기를 극성으로 단련한 인간은 음속으로 나는 제트기나 다를 바 없다.
소닉붐이 허공을 찢고, 한때 대천사를 베려 했던 성검이 베리알의 마검에 튕겨나간다.
챙, 파챙, 쾅!
초근접전이 숨쉴 틈 없이 이어진다. 합기와 신성력, 온갖 축복으로 강화된 고드의 검격들을 베리알은 손쉽게 막아낸다.
“······.”
연격을 뿌리며, 고드는 눈을 가늘게 떴다.
거대한 어둠의 형체였던 대악마들과 달리, 죄악의 베리알은 갑옷을 입은 인간형으로 그들 앞에 나타났다.
새카만 갑주에 검푸른 마검. 일렁거리는 어둠만 없으면 영락없는 용사의 차림이다.
‘너는··· 누구냐.’
정말로 다른 용사인가?
하늘길에서, 아스루엘은 대악마를 자신들이 만들어낸 존재라고 말했었다.
믿지 않을 수 없지만··· 전부 믿을 수도 없다. 만에 하나, 필요가 없어진 용사들을 대악마로 만들어 활용하는 거라면······.
‘분노의 대악마. 발몬의 석실에 적혀 있던 글씨는 제국어였다.’
의심이 싹트고, 미혹이 눈을 가린다.
손속이 어지러워진 순간, 은밀하게 날아든 마기의 회오리가 왼팔을 훑고 지나갔다.
“용사님!”
아차 하는 사이 팔꿈치 아래서부터 손끝까지 먼지로 화한다.
뒤쪽의 성녀가 급히 신성력을 쏟아붓지만, 대악마의 격이 올라갈수록 재생에 가까운 상처 회복 능력도 무위로 돌아간다.
‘수천 번을 죽었는데, 팔 하나쯤이야.’
죽음을 경험한 자에게 육신의 고통은 무의미하다. 달려온 성녀에게 팔을 맡긴 채, 고드는 목소리에 합기를 불어넣었다.
“대악마 베리알, 죄악의 군주여.”
마검을 비껴든 중갑의 대악마는 답이 없다. 고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는 박건, 차원을 넘은 이세계의 용사다.”
“···용사님?”
네 번째 대악마, 죄악의 베리알은 다른 대악마들과 달리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성녀의 의문 섞인 눈빛을 받으면서, 그는 남은 힘을 끌어모았다.
만약 이쪽의 추측이 맞다면··· 놈에게선 분명 반응이 돌아올 것이다.
“네게 어떤 금제가 걸려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드높은 천상의 비밀을 파헤치고, 내가 살던 세계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이 끝없는 회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여전히 베리알에게서는 답이 없었지만, 놈에게서 쏟아지는 공격은 중단됐다.
“죄악의 베리알. 네가 용사나··· 그와 비슷한 존재였다면, 부탁한다. 나를 도와라.”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입술을 깨문 성녀도, 고개를 숙인 대악마도 아무 말이 없었다.
다음 순간, 베리알의 신형이 희미해지며 눈앞에 나타났다.
콰과광!
역시 틀린 건가? 마검을 막아내며 미간을 좁히던 고드는 곧 무언가를 깨달았다.
‘이건······.’
전과는 패턴이 달라졌다. 이번 회차를 포함해 42번, 바로 직전 전투까지도 이렇게 마구잡이로 달려든 적은 없었다.
파챙, 창! 무시무시한 마기는 여전하지만 공격의 기세는 한결 무뎌졌다. 그는 온 힘을 끌어올리며 성녀에게 외쳤다.
“아리아!”
오랜 전우는 목소리만 들어도 원하는 바를 알아차린다. 성녀의 모든 신성력이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오고, 한순간 신체는 ‘격’을 초월한다.
몸을 사리지 않고 돌진하는, 저 대악마의 목을 칠 수 있을 만큼.
츠카카카캉!
마치 전기톱에 썰려나가듯, 검붉은 불꽃이 튀며 투구와 갑주가 분리됐다.
목을 잃은 베리알의 몸은 몇 발짝을 더 걸어가고서야 쓰러진다.
그리고 꿈틀거리던 어둠이 소멸했을 때, 그 자리에는 오래된 해골만 남아 있었다.
“···이게, 무슨······.”
성녀의 눈이 커진 순간이었다.
머리 위의 하늘, 어둑하던 마경이 열리며 찬란한 빛이 쏟아져내렸다.
-용사여, 실로 잘해주었다.
천둥 같은 울림이 사방을 채운다. 천상에서부터 가까워지는 빛무리는 세 체.
마테카엘··· 프라우리엘··· 그리고 아스루엘.
녹광, 청광, 적광을 휘장처럼 두른 대천사들은 그들의 눈앞까지 내려와 멈췄다.
입을 벌린 성녀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세 분이, 여긴 어떻게······?”
신실한 신도는 대답을 얻지 못했다. 한때 싸웠던 적광의 대천사, 아스루엘만이 파장을 발했다.
-드디어 베리알을 참했군. 너희의 공에 경의를 표한다.
“공치사는 필요 없어. 그것보단 저쪽, 설명할 게 있어 보이는데.”
성검이 가리키는 곳으로, 아스루엘의 두건 속 얼굴이 살짝 돌아갔다.
이제 백골이 된 베리알의 옆. 불길한 보랏빛을 뿜어내던 마검은 눈에 익은 형태로 변해 있었다.
이내 용사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왜, 대악마가 성검을 가지고 있는 거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뒤쪽에서 날개를 일렁거리던, 녹광의 마테카엘이 파장을 흘렸다.
-그건 중요치 않다. 요는 네가 네 번째 대악마를 처치했으며, 아스메라우스에게 도전할 자격이 부여되었다는 것이다.
-마테카엘의 말이 옳다. 이 순간에도 세계의 균열은 커지고 있어.
아스루엘이 다시 나섰다.
-용사 고드. 너는 우리와 함께 드높은 천상에 오르게 된다. 다섯 번째 대악마, 공허의 아스메라우스는······.
“아니, 나는 갈 생각이 없다.”
-뭐라고?
“죽기 전, 오만의 고르존은 자신이 몇 번째냐고 묻더군. 불화의 모데움은 소멸하면서 빛을 경계하라는 유언을 남겼고.”
대천사들은 말없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고드는 태연히 말을 이었다.
“분노의 발몬, 세 번째 대악마의 석실에는 성녀는 알고 있다는 공용어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방금··· 베리알이 사라지는 순간, 놈은 내게 마지막 말을 전했다.”
-대악마의 간계에······.
“다섯은 없다.”
아스루엘의 파장이 멈췄다. 끌어올린 합기를 전신에 두르며, 고드는 다시 물었다.
“진실을 말해라. 이전 대의 용사들은 어떻게 됐지? 다섯 번째 대악마, 아스메라우스는 실존하는 적인가?”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르는 도중, 여태껏 말이 없던 프라우리엘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번 용사는 실패작이군.
그 순간, 빛의 족쇄가 날아들어 고드의 손발을 옭아맸다.
“용사님··· 아앗!”
허공에 매달린 그에게, 달려오던 성녀를 빛의 채찍이 후려쳤다.
마테카엘이 냉엄한 파장을 발했다.
-아리아 리버롯, 네 처분은 다음이다. 얌전히 순서를 기다리도록.
입가를 훔치는 성녀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면서도 다시 일어나 외쳤다.
“마테카엘님, 저희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아니, 너는 천상의 지령을 거부하고 용사의 편에서 빛을 멀리했지. 신실한 성직자에 걸맞지 않는 행태였다.
“드높은 천상은 용사와 한 편이 아닙니까!”
-아니지.
이번에 입을 연 것은 아스루엘이었다. 대천사는 허공에 묶인 그의 앞으로 유유히 떠 왔다.
-차원을 넘어, 이 땅에 발을 디뎠을 때부터 용사는 세계의 불순물이다. 큰 대가를 치르고 불러들였으니 마땅히 임무를 수행해야 할 터. 헌데 이번 용사는 감히 천상을 의심하고 적대했다. 심지어 악을 멸할 힘으로 천사들을 해쳤지.
흡사 넝쿨처럼, 빛의 족쇄는 손과 발부터 온몸으로 엉겨 붙어 왔다.
고드는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며 외쳤다.
“너희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을······.”
-그것이 잘못되었는가?
“아스루엘님!”
-성녀여, 그를 불러온 것이 너이니 누구보다 잘 알 터다. 용사의 소환 조건이 무엇인가?
돌연 화살이 성녀에게 향했다. 아리아는 피가 흐르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올곧고 정의로우며, 타인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할 사람······.”
-이제 알겠는가, 용사여? 그런 이가 아니었다면 저 차원의 균열을 넘지도 못했을 것이다.
“억지입니다, 아스루엘님!”
기어이 성녀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대천사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아스루엘이 한 손을 들자 그들의 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약속과 다르다고 우리를 원망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용사여, 네가 겪은 그 죽음들조차 위대한 존재들의 시간 속에서는 극히 찰나일 뿐이다.
-그러니 감사히 여기거라.
-한낱 필멸자로서, 차원을 넘어 또 다른 세계의 양분이 될 수 있음을.
세 대천사의 파장이 서로 섞이며 소용돌이치는 와중, 고드는 아래를 보았다.
그리고··· 성녀와 눈이 마주쳤다.
‘······?’
상황은 이미 최악에 달했다.
지난번 뼈저리게 느꼈듯, 상대가 아스루엘 혼자일지라도 자신이 승리할 확률은 낮다.
거기에 나머지 대천사들까지 왔으니 도주조차 불가능할 터.
하지만 저 아래, 주먹을 꽉 쥔 성녀의 표정은 무언가 다짐한 듯 결연했다.
깜빡, 깜빡깜빡.
왼쪽 눈꺼풀을 세 번 깜빡이는 윙크. 처음 전이된 순간부터,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그들이 정한 수신호가 보였다.
‘윙크 한 번에 1초, 그러니까 이번엔······.’
용사는 마지막 힘을 끌어모았다.
몇 초 뒤, 그들을 휘감았던 빛무리가 일제히 부서져 나갔다.
*
촬영팀 스탭, 조 알레우디오는 눈을 다섯 번 깜빡거리고 오른손으로 왼손 손등을 긁었다.
그러고는 결국 옆의 동료에게 귓속말했다.
“애니, 이게 무슨 상황이야?”
“······쉿!”
애니는 조용히 하라는 듯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댔지만, 이미 여기저기서 속삭이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뭐야, 애드립인가?”
“대본이 바뀐 건가··· 왜 가만히 있지?”
“감독님도 별 말이 없는데? 계속 가는 거야?”
박건이 멈춘 지 십여 초가 지났다.
이미 최후의 일전, 황제와의 칼부림은 끝나고 맥클레인이 무릎을 꿇은 상황.
검을 내리치면 끝인 장면에서, 돌연 한 팔을 든 채로 굳어 버린 것이다.
‘욕심을 내는 건가, 마지막 촬영이라?’
감독, 피터 숀은 생각했다.
박건의 연기가 늘 예상을 뛰어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어진 대본 안에서다.
엑스트라들의 동선, 액션, 죽는 순서까지 기억하는 괴물이 다음 지시문을 잊었을 리도 없다.
그렇다면 애드립이라는 소린데······.
‘조금 뜬금없단 말이지. 본인답지 않게.’
감독이 컷을 외칠지 고민할 때, 박건 앞의 맥클레인은 다른 결론을 내렸다.
‘애드립이 아니군. 확실해.’
함께 연기하는 배우··· 거기다 계속 호흡을 맞췄기에 알 수 있다.
저건 애드립이 아니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연기의 흐름은 깨졌다.
눈앞에 있는 것은 ‘주신의 서’ 속의 이도가 아닌 박건··· 혹은 다른 누군가다.
‘···다른 누군가라고?’
왜 그런 생각이 든 거지? 맥클레인이 의아해하는 동안에도 박건은 미동조차 없었다.
결국 촬영감독 한 명이 렌즈를 눈에서 떼고, 피터 숀이 메가폰을 입으로 가져갔다.
이대로라면 컷이 나올 상황. 사인을 기다리던 맥클레인은 불현듯 몸을 일으켰다.
“잠깐, 지금······.”
노배우의 말은 거기서 끊겼다. 막 컷을 외치려던 피터 숀도 그대로 굳어버렸다.
‘주신의 서’ 촬영 마지막 날.
지구의 시간은, 한순간 정지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