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88)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88화(188/199)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 (1)
* * *
‘주신의 서’ 촬영이 끝났다.
무려 1년 3개월, 하고도 13일.
심지어 관광객과 팬들이 찍은 사진만 몇 차례 돌았을 뿐, 정식 현장 스틸컷 등 내부 유출은 사실상 없다시피 했다.
[‘팀 주신의 서’ 뉴질랜드에서 마지막 만찬, 흩어지기 전 “다시 만나자”] [인천공항··· 팬들의 환호에 놀란 박건, “아침부터 졸리진 않으신지” 오히려 걱정하며 팬서비스] [‘극락 미모’ 1년간의 공백이 무색··· 더 어려진 진지유 “공항 올킬” 패션은?] [맥클레인 자바스런티, 피터 숀 등 헐리우드의 거장들, 입 모아 “박건은 규격 외의 배우였다”]기사들을 쭉 내리던, 모 연예지의 기자가 혀를 내둘렀다.
“내려도 내려도 끝이 없네. 일 년 넘게 잠수를 탔는데 영향력이 뭐 이래?”
“칸의 아들이잖아. 거기다 소속사가 오죽 난리를 떨었어야지, 배우랑 감독은 조용한데 회사들 호들갑이 전방위로 미쳤어.”
함께 앉아, 커피를 마시던 동료 기자가 대꾸했다. 먼저 말을 꺼낸 기자도 팔짱을 꼈다.
“하긴··· 웰플릭스고 로만이고, 일들을 잘 하긴 해. 요즘은 주신의 서 포스터가 안 붙은 곳이 없던데.”
‘주신의 서’를 단독공개하는 플랫폼, 웰플릭스는 진작 홍보전쟁에 뛰어들었다.
버스, 택시, 지하철 광고판, 온갖 스크린에 포스터가 붙고 유튜브에는 두 달 전부터 예고편들이 올라왔다.
[7월 1일, 주신의 아들들이 돌아온다.]아직 촬영도 다 끝나지 않은 작품이건만, 최초공개 날짜를 잡은 건 물론이고 대대적인 무대인사 이벤트까지 예고했다.
히트작 시리즈가 아닌데 무대인사에 팬시사회까지··· 플랫폼 측에서 얼마나 기대를 거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거기다, DG와의 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로만의 지원사격도 한창이다.
“최필립, 백하니, 구신승··· 아주 대표 선수들만 뽑아서 홍보를 시키는구만. 어떻게 된 게 본인들 작품보다 홍보열정이 대단해.”
“어허, 노중만이 가만있을 리가 없지. 그 DG도 기어이 팔다리 한 짝씩 잘라낸 작자 아냐.”
길고 길었던 DG의 인수전에서, 가장 큰 파이를 가져간 쪽은 명실상부한 로만이었다.
주주들로부터 지배구조 개선, 대표 변동근 사임, 경영권 확보를 위한 기업들의 공개매수까지.
무려 8개월의 대장정 끝에, ‘DG 인수 레이스’는 중지되었지만 로만은 충분한 지분과 DG 소속 아티스트들을 대거 안고 발을 뺐다.
사실상 지금의 DG는 40% 이상 축소된 상태. 또 하나의 거목이었던 조이너스가 숨죽인 지금, 로만은 가장 강력한 기획사로 부상했다.
“업계 1위끼리의 콜라보라, 이거구만.”
입맛을 다신 기자가 동료에게 물었다.
“근데 어떨 것 같아?”
“뭐, 작품?”
“그렇지. 이렇게까지 홍보하고 반응이 별로면 제대로 삐끗할 텐데.”
동료 기자는 보던 노트북을 돌려 댔다.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유튜브 채널에선, 퀸텀과 포퀸즈가 한목소리로 외치는 중이었다.
-주신의 서, 많이 사랑해 주세요! 저희도 나오는 날 새벽부터 본방사수할 거예요!
-아니, 리아야··· 공개 시간이 6시라니까······.
-어머! 죄송해요!
탑 배우들뿐만 아닌, 최근 대세 중 대세인 인기 아이돌들까지도 불꽃 튀는 응원을 보낸다.
서로를 마주본 기자들은 어깨를 으쓱했다.
“내용은 모르겠고, 1위는 무조건이네.”
*
나종모 PD가 부르짖었다.
“주신의 서! 공개 1시간 만에 웰플릭스 프로그램 순위 1위! 글로벌 신선도 압도적 1위!”
“나 피디님, 아직 공개 전인데 설레발치면 안 돼요. 불문율 몰라요?”
“그게 뭔 상관이에요, 영 작가님. 우리 건이 씨한테 징크스 따윈 없다고요.”
“어휴··· 이래서 PD들이란. 매니저님, 이런 감독이랑 두 번이나 일하는 거 안 힘들었어요?”
‘백정과 장군’ 각본을 집필했던 영도은 작가가 고개를 휘휘 저으며 물었다.
스케줄 때문에 늦는 형 대신, 이럴 때는 동생이 곤란한 질문을 떠안는다. 박선이 난처한 표정으로 웃는 사이 나종모 PD가 끼어들었다.
“힘들긴, 이 형제 기다리는 게 더 힘들었지. 어째 귀국하고서도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야?”
“PD님은 그냥 PD잖아요. 박 배우님은 명실상부한 월드스타고.”
이번에는 머리를 파랗게 염색한, 윤발25가 거들고 나섰다.
오늘 일정의 컨셉은 ‘작감이 참여하는 작품 쫑파티’. 어쩌다 보니 지금껏 일했던 작가며 감독들이 다 모이게 되었다.
이 인간들을 불러 모은 주축, 은희욱 작가가 논란을 일축했다.
“그게 다 종모 형이 안 와서 그래요. 당장 그제도 여의도에서 쫑파티를 밤새 했는데.”
나종모 PD의 표정이 뭐에 찔린 사람처럼 변했다.
“그건 양양 촬영이 늦게 끝나서··· 아니, 새벽 두 시에 서울로 떨어졌는데 파티를 어떻게 가!”
“거, 알 만한 분이 왜 그랬나?”
“그러니까요. 배우 쪼는 작감은 다음 작품 같이 할 사람 못 구한다던데?”
1세대 판타지 거장 용류백에, ‘주신의 서’ 원작 작가인 강영일까지 합세하자 아무래도 PD 쪽이 밀린다.
나종모 PD가 짐짓 서글픈 척 중얼거렸다.
“어휴, 작가님들 등살에 서러워서 살겠나. 김률이는 해외로 떴고, PD란 것들은 자기 촬영 한다고 바쁘고. 건이 씨라도 있었으면······.”
“아, 박 배우님은 언제 도착한대요?”
영도은 작가가 말꼬리를 낚아채며 물었다. 손목시계를 확인한 박선이 대답했다.
“삼십 분쯤? 이 근처랬으니까, 너무 안 늦게 도착할 거예요. 작감 분들한테 꼭 드리고 싶다고 선물까지 싸 와서······.”
“역시 박 배우님! 이렇게 주변 사람 잘 챙기는 배우가 또 있겠냐고요.”
“영 작가, 건이 씨 성격 몰라? 분명히 괴상한 목각인형 같은 걸 내놓을걸. 뉴질랜드에서 제일 비싼 기념품이라면서.”
또다시 갑론을박을 시작하는 작감들을 보며, 박선은 웃음을 꾹 참았다.
귀국 2주째. 들어오고 나서, 오히려 뉴질랜드에 있을 때보다 바쁜 시일들이 흘러가고 있다.
첫째는 환영 파티에 불려가느라,
둘째는 촬영 때문에 올스탑되었던 국내활동을 다시 시작하느라.
‘느낌 탓인가, 고드를 찍고 왔을 때보다 스케줄이 늘어난 것 같기도 하고······.’
자그마치 일 년 하고도 석 달이다.
스타가 몇 달간 해외여행을 가는 일이야 비일비재하다지만, 배우 박건은 항상 고점을 돌파한 직후 사라지곤 했다.
‘고드 : 분노의 파수꾼’부터 ‘주신의 서’까지 해외로만 나가는 통에, 팬들 사이에선 이번 작품은 적당히 잘 되자는 농담까지 돌고 있었다.
나종모 PD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맞아, 근데 포이즌스 호텔이랬나? 거기서 뭐 하고 있대요? 또 작품 미팅?”
매니저 동생에 로드까지 붙여 줬지만, 공식 스케줄이 아니면 박건은 운전부터 일정까지 혼자 다니기로 유명하다.
들은 바 없는 박선이 어깨를 으쓱였다.
“잘 모르겠어요. 선물 증정식이라던데······.”
“···증정식?”
*
“그래서, 이게 선물이라고요?”
백하니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녀의 손 위, 조그만 상자에는 웬 장승처럼 생긴 나무조각상이 혀를 내밀고 있었다.
소속사 동료는 뻔뻔하게 대꾸했다.
“네. 귀엽지 않습니까? 토속적이기도 하고.”
일 년도 더 지났건만, 박건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나무조각을 이리저리 돌려 보던 백하니가 물었다.
“···혹시 다른 사람들한테도 돌렸어요?”
“네. 조금씩 다르긴 한데, 생긴 건 다 비슷합니다. 백하니 씨한테는 특별히 색 있는 걸로 드린 거예요.”
가격도 차이가 있습니다. 생색내듯 덧붙이는 말까지, 누가 봐도 그 박건이 맞다.
백하니는 기념품을 백에 챙기곤 한숨을 쉬었다.
“크림에 전통 꿀에, 살 게 널렸는데 목각인형이라니··· 진짜 그쪽답네요.”
“사람은 원래 잘 안 변한다잖습니까.”
대꾸한 박건이 통유리창으로 흘러가는 구름에 시선을 보낸다.
탁 트인 호텔 라운지.
워낙 셀럽들이 자주 오기도 하고, 아래쪽 보안이 철저하기에 탑스타 반열이 자주 찾는 미팅 및 접선 장소다.
“그래서, 귀국하곤 어떻게 지냈어요?”
“뭐··· 오늘이랑 비슷했죠.”
“오늘이랑?”
박건은 잠깐 고민하더니, 무슨 작품 대본을 읊듯 최근 일정을 줄줄 늘어놓았다.
“어제는 최필립 씨, 이틀 전에는 구신승 씨랑 유 실장님, 공 팀장님을 만났습니다. 사흘 전에는 흑의사제 식구들을 오랜만에 봤고··· 지난주 일요일엔 회도팀 쪽 PD님이랑 저녁을 했네요. JNBC로 자리를 옮기신답니다.”
지독한 내향형, 혹은 사람을 질색하는 사람한텐 듣기만 해도 끔찍한 스케줄이다. 백하니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순회공연이 따로 없네. 오자마자 무슨 사람들만 만나고 다녀요.”
“자릴 오래 비웠으니까요. 백하니 씨는 해외여행 다녀오면 안 그럽니까?”
“당연하죠. 애초에 약속도 안 잡는데.”
두 배우는 눈을 깜빡이며 서로를 마주봤다. 결국 먼저 손을 든 건 백하니 쪽이었다.
“···됐고, 촬영은 어땠어요.”
“주신의 서 말입니까?”
“네. 이제 내일이면 공개잖아요, 웰플릭스 코리아가 아주 난리를 치던데.”
박건은 잠시 말을 멈췄다. 백하니는 새삼스레 동료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눈가로 내려온 장발에 흰 피부, 깊게 들어간 눈그늘과 유려하게 뻗은 입매 모두 여전하다.
아니, 오히려 뉴질랜드로 떠나기 전보다 혈색이 더 좋아졌달까. 작품 막바지로 갈수록 컨디션이 눈에 띄게 저하됐다는데, 적어도 눈앞의 박건에게서 그런 기색은 찾을 수 없었다.
“힘들었죠. 찍은 작품 중 가장.”
“······.”
백하니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가 아는 박건은 절대로 힘들다, 버겁다 등의 말을 하지 않는 배우였다. 이번엔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하지만 즐거웠습니다. 오랫동안 찾고 있던 걸 찾기도 했고.”
“얼굴이 달라지긴 했네요. 떠나기 전엔 폭탄 몇 개를 삼킨 눈빛이더니.”
박건은 웃지도 않고 대꾸했다.
“역시 예리하군요. 사실 앓고 있던 지병이 있어서, 데뷔 이후 쭉 고민이 많았습니다.”
“뭐야, 농담이죠? 지병이라니 무슨······.”
“그런데 이젠, 벗어난 것 같아요.”
드물게, 확신도 불안도 없는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스쳤다.
박건은 담백한 어조로 물었다.
“백하니 씨는 어떻습니까. 제가 앞으로도 배우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나요?”
“뜬금없이 무슨 소리예요?”
“그냥··· 비행기 안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반평생의 숙원을 이룬 상황에서, 쭉 작품을 찍는 게 옳은 일일까 하는. 물론 꼭 은퇴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요.”
사람들이 들었으면 까무러칠 얘기였으나, 백하니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모르죠.”
“······?”
“내가 그쪽 본인도 아닌데 어떻게 알아요. 그냥 좋을 대로 살아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면서요?”
귀국 후, 처음으로 한 인터뷰에서 박건이 한 말이었다. 백하니는 동료의 눈동자를 마주보면서 말을 이었다.
“영화를 찍든, 드라마를 찍든. 그럼 누군가는 그쪽을 보고 하루의 활력을 얻을 거고, 또 누군가는 사인회에 갔다가 행복에 젖을 거고··· 아, 그쪽 노리는 작감들 많은 거 알죠? 떠나 있는 동안 충무로고 상암이고 박건 저격작들이 쌓였어요.”
“안 그래도 연락이 많이 왔습니다. 다음 작품은 언제 들어갈 거냐던데요.”
“그러니까요. 그 괴물 같은 체력만 멀쩡하면 뭘 찍어도······.”
박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합기는 사라졌어도 몸은 멀쩡합니다.”
“네?”
“아닙니다. 백하니 씨랑 이런 얘길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좀 새로워서요.”
백하니가 뭐라고 말하려 했을 때, 웃음기를 머금은 음성이 들렸다.
“왜, 예전에 뭐 하는 작자냐고 물은 적 있었죠?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기억이 안 나네요, 너무 옛날이라.”
“이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백하니는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때마침 태양을 가렸던 구름이 흩어지며 햇살이 라운지로 쏟아져 들어왔다.
귀환한 뒤 처음으로,
꾸밈없는 미소가 용사의 얼굴에 떠올랐다.
“지금은, 배우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