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89)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89화(189/199)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 (2)
* * *
1년 뒤, 여름.
동작구의 주상복합아파트,
배우의 본가가 아침부터 북적거린다.
“와, 늦었다! 엄마, 왜 안 깨웠어!”
허겁지겁 방에서 달려나온 박선이 절규했다.
가족들의 권유에도, 이 집의 안주인은 따로 고용인을 쓰지 않는다. 주방에서 냄비를 뒤적이던 한영주가 대꾸했다.
“몇 번을 깨웠잖니, 네가 안 일어난 거야.”
“어? 진짜로?”
“그래. 아빠 닮아서 술도 약한 애가 뭘 그렇게 많이 마셨는지, 아주 술냄새 풀풀 풍기면서 곯아떨어졌더라.”
“아, 분명히 중간까진 기억이 있었는데······.”
박선이 머리를 부여잡는 사이, 얄미운 목소리가 식탁에서 들려왔다.
“이제 정식 팀장이잖아요. 선이도 관리해야 할 배우에 아이돌, 로드들까지 많아져서 요즘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아니, 나보다 형이 더 많이 마셨잖아!”
“그건 그렇지. 해독률이 다르니까.”
어젯밤, 샴페인만 열댓 병은 해치웠을 장본인은 태연하게 미역국을 한 모금 마셨다.
식탁에 앉아 있던 아버지, 박열호가 오히려 장남에게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낸다.
“거, 생일이라고 준다고 다 받아 마시면 속 버린다. 요령껏 넘겨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해.”
박건은 선선히 끄덕였다.
“괜찮아요. 어차피 작품 한번 들어갔다가 나오면 쫑파티만 몇 번씩 하는데요.”
“그래? 하긴··· 방송국 사람들이 술 잘 마시기로 유명하다더라.”
“예. 이번엔 외국 친구들도 많이 와서, 파티가 거의 한 달 내내 잡혀 있어요.”
양력으로 생일이 지난 게 사흘 전.
그러나, 배우의 생일파티는 본래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생일 기념 팬미팅, 관계자들, 이쪽 지인과 저쪽 친구들··· 아무리 한꺼번에 모은다고 해도 일주일은 넘게 술판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아무튼 무리들은 하지 마. 특히 선이 너, 형 주량 따라가려다가 큰코다친다. 못 먹겠으면 그냥 취한 척해.”
“아, 나도 잘 마신다고!”
“잘 마시긴, 엄마한테도 지면서. 얼른 이거나 먹고 씻어. 머리도 좀 감고!”
순식간에 꿀물을 타 온 한영주가 막내아들의 반란을 진압했다.
전역 후 3년. 달라진 사람은 박건과 박선 형제뿐만이 아니다. 얼굴이 훤히 편 박열호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숟가락을 들었다.
“너무 애 취급하지 마요, 여보. 우리 선이가 그 회사에서 최연소 팀장이라잖아. 혹시 우리 섭외해서 가족 예능이라도 나가게 되면······.”
한영주는 박선을 샤워실로 밀어넣다 말고 눈을 가늘게 떴다.
“왜요, 당신 또 공중파 타고 싶어서?”
“아냐, 말이 그렇단 거지!”
EBC의 모큐멘터리. ‘불의 길 : 소방 속으로’가 방영된 뒤, 박열호는 잠시나마 아들들 못잖은 인기를 누렸다.
유명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쏟아지고, 길거리만 나가도 알아보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던 것이다.
찔끔한 박열호가 얼른 화제를 돌렸다.
“영호랑 승아는? 잘 살고 있다더냐?”
“예. 영호가 여수에서 올라와서, 엊그제 셋이 같이 만났어요.”
그의 동창들, 단톡방 ‘개노답 삼총사’의 법조인 두 명도 잘 살고 있었다.
배영호는 서울 근무를 마치고 지방의 지청으로 발령이 났고, 서승아는 한국에서 세 손가락에 들어가는 로펌으로 이직했다는 모양이었다.
“네 엄마가 밥 한 끼 먹이고 싶다던데. 아무 때나 놀러오라고 해라.”
“어, 영호 형이랑 승아 누나? 엄마랑 아빠 못 본 지도 오래라고, 조만간 선물 사들고 찾아오겠대!”
화장실 문을 연 채, 요란하게 머리를 감던 박선이 저만치서 끼어들었다.
거실을 둘러본 박열호는 입맛을 다셨다.
“그, 지금은 놓을 자리가 없을 텐데······.”
이사하면서 확 넓어진 거실이지만, 월드스타에게 쏟아지는 선물들을 감당하긴 역부족이다.
냉장고, 공기청정기, 스타일러··· 그 외에도 온갖 크고 작은 선물들이 본가를 꽉 채우고도 모자라 박건의 아파트까지 옮겨져 있었다.
박열호를 따라, 집 안을 휘둘러본 한영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참, 고마운 분들이셔. 이렇게 오고도 아직 뭐가 더 남았댔지?”
“예. 다 들여놓기 힘들거나··· 소속사로 온 것들은 우선 회사에 뒀어요. 선이 승진 선물도 겸사겸사 많이 도착해서.”
부모 입장에서, 자식들이 사랑받는 것만큼 뿌듯한 일도 몇 없기 마련이다.
박열호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한영주의 손을 잡았다.
“여보, 우리 아들들이 벌써 이만큼 컸어. 처음 연예계로 갈 때만 해도······.”
눈물이 찔끔 나는 가장의 연설과 함께, 가족들은 아침식사를 마쳤다.
오늘 첫 일정은 로만 사옥. 회사로 가서 소속사 동료들과 만난 뒤, 근처에 미리 잡아둔 라운지로 이동해 낮부터 파티를 벌일 계획이었다.
“퀸텀 둘에 퍼핑돌즈 완전체, 거기다 새로 데뷔한 팀도 두엇 온댔으니까··· 이번에도 서른 명은 넘겠네. 얼른 가자, 형.”
말쑥한 수트에 포마드까지, 제법 태가 나게 세팅한 박선이 재촉했다.
반면 배우 쪽은 데뷔 초창기나 지금이나 여전히 느긋하다. 야구 모자를 눌러쓴 박건은 현관까지 나온 부모님과 인사를 나눴다.
“다녀올게요. 많이는 안 늦을 거예요.”
박열호가 옆의 한영주를 슬쩍 곁눈질했다.
“너무 무리 말고. 내일은 너희 엄마가 호텔 레스토랑까지 예약했으니까.”
“당연하죠, 얼마 만에 가족모임인데.”
“그래. 그런데 건이 너······.”
“예?”
먼저 나간 동생을 따라, 현관문을 반쯤 연 박건이 뒤를 돌아보았다.
한영주는 장남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흐뭇하게 웃었다.
“아냐. 재미있게 놀다 오렴.”
“예. 휘승이 형이 엄마한테도 안부 전해 달래요, 곧 놀러오겠다던데.”
“···또? 그 친구는 일 안 한대니?”
*
밴 안.
평소에는 로드가 붙지만, 오랜만에 박선이 운전석을 잡았다.
건은 염려를 담아 물었다.
“힘들면 내가 운전해도 돼.”
박선은 룸미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에이, 무슨 소리야? 이정도 숙취는 엄마 미역국 한 그릇이면 뚝딱 사라져!”
“그런 것치곤 아까부터 차가 비틀대던데.”
“어어, 진짜?”
“장난이지. 잘 가고 있어.”
“아, 형!”
서둘러 중앙선을 확인하던 박선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형이 이런 농담할 때마다 적응이 안 돼. 원래 장난도 안 쳤었잖아.”
“그럴 수도 있지. 이제 회귀도 못 하는 평범한 사람이 됐는데.”
그가 연재했던 소설, 철왕국 이야기는 아직까지 두 형제만의 비밀이었다.
일 년 전··· ‘주신의 서’ 촬영장에서 완결이 난 뒤, 소속사를 통해 꽤 많은 제작사며 PD들이 컨택해 왔다.
-MBS 박종률입니다. 배우님이 쓰시고 배우님이 연기하시는 작품이라면, 국장님께서 언제라도 황금시간대로 편성을······.
-스튜디오 갤로즈에서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진행 중인 계약이 없다면 배우님의 이야기를 시나리오화하고 싶어서······.
-감독 오유태입니다. 아이디플러스에 좋은 자리가 났는데, 제작비는 전폭 지원받을 수 있으니 함께 작업할 수······.
무수한 컨택들은 모두 거절당했다.
팬카페에 올린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기억의 반추일 뿐, 철왕국에서 겪었던 일들을 또다시 연기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리고, 가장 큰 이유라면―
“형, 난 아직도 잘 모르겠어. 정말로 전생 체험이었을까?”
잠시 신호에 걸린 틈을 타, 박선이 룸미러를 보며 물었다.
건은 사실이지만 사실이 아닌 답을 했다.
“글쎄, 비슷하지 않았을까.”
“촬영 마지막 날도 그래. 꼭 뭐에 홀린 기분이었다니까, 다 같이 꿈이라도 꾼 것처럼.”
“뉴질랜드?”
“응. 맥클레인 씨도 정신을 차려 보니 세상이 변해 있는 느낌이었다고 하고··· 감독님이랑 다른 스탭들도 다 그렇게 얘기하더라고.”
건은 차창으로 시선을 보냈다. 차원의 연결이 끊기고 멈췄던 시간이 흘러가기 직전, 그는 옛 동료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지금 모습, 잘 어울려요.
성녀의 목소리가 흐려질 때, 건은 끊길락 말락 하는 사념에 정신을 집중했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
―이번 생이 아니더라도, 지금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우린 만나게 될 겁니다. 그 때 다시 당신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막 사라지려던 파장이 희미하게 떨렸다. 흩어지는 빛을 향해, 그는 마지막 말을 전했다.
―용사가 아닌, 인간 박건으로서.
그리고 일 년이 지났다.
웰플릭스에서 공개 첫날 1위, 한 시간도 안 돼 플랫폼 순위를 갈아치운 ‘주신의 서’가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간 것도 13개월째.
연말과 연초에 시상식을 휩쓸고, 플랫폼이 매년 여는 글로벌 골든 베스트에 당당히 올라갔음에도 다른 환상은 보이지 않았다.
‘합기는······.’
철왕국의 흔적, 카메라가 켜질 때면 돌아오던 합기도 자취를 감췄다.
건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해 온 이세계의 권능은 이제 없다.
강인한 정신력과 초인적인 체력, 배역에 몰입하는 연기력은 여전하지만··· 저쪽 세상과 이어 주던 연결고리는 끊긴 것이다.
‘모든 기억이 돌아와서겠지. 차원의 균열도 점점 메워질 테니까.’
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메신저를 확인하자 회사에 미리 가 있을 동료의 이름이 떴다.
[진지유] : 오빠! 언제 와요? [진지유] :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ㅋㅋㅋㅋ 깜짝파티라고 완전 신남 [진지유] : 현재 도착자는 진지유, 최필립, 서희도, 변휘승, 이장미 [진지유] : 백구듀오는 지각 예정(뒤집어지는 고양이 콘)건은 슬며시 웃었다. ‘주신의 서’ 촬영이 끝나고도, 소속사 동료들과는 계속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최필립은 헐리우드로 진출했고, 구신승은 작년 밀라노 패션위크에 함께 섰다.
그간 작품으로 연을 맺은 다른 이들도 영화면 영화, 드라마면 드라마 등 각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빅뉴스라면 진지유와 백하니, 이장미가 새 주말극에 함께 들어간다는 정도일까.
[박건] : 출발했습니다. 금방 도착해요.톡을 보내며 시트에 기댔을 때였다.
“······?”
건은 고개를 돌렸다. 차창을 뚫어지게 보는 형을 알아차렸는지, 박선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형, 왜? 누가 있었어?”
교차로 앞, 언뜻 보였던 금발머리는 사람들의 물결에 금방 가려졌다.
그는 눈을 몇 번 깜빡이고 대답했다.
“아냐. 잘못 본 것 같아.”
*
도착한 로만 사옥.
두 형제가 라운지가 있는 층에서 내렸을 때,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었다.
눈을 둥그렇게 뜬 박건이 직원 한 명을 붙잡고 물었다.
“어, 다들 왜 나와 계세요?”
“모르는 외국 배우가 왔대요! 박 배우님을 찾는다던데요?”
“···저를 말입니까?”
손님을 맞이하려면 장본인이 가장 낫다. 뒤쪽에서 박건이 나타나자 직원은 뛸 듯이 기뻐하며 라운지 안쪽을 가리켰다.
“마침 딱 오셨네! 빨리 가보세요, 아까부터 저러고 있어요!”
외국 배우? 얼른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박건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그러니까 그쪽이 누구시냐고요. 알아야 연락을 하든 말든 하죠.”
“아리아라고요. 아까 말했는데.”
진지유의 심문에 이어, 살짝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렸을 때였다.
“······형?”
박선은 돌연 굳어버린 형을 돌아봤다. 대답 없이, 박건은 사람들을 헤치며 걸음을 옮겼다.
몇 발짝 더 다가가자 웬 금발 여자 한 명을 회사 동료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와, 어이가 없네. 다짜고짜 찾아와서 사람을 내놓으라 마라······.”
“근데 누구지? 배우 같긴 한데, 저런 마스크가 검색에도 안 뜨고.”
열을 올리는 진지유 옆에서, 최필립이 희한한 표정으로 스마트폰과 여자를 번갈아 봤다.
“극성팬인가 보지. 그냥 시큐리티 불러서 쫓아내면 되는데, 다들 뭘 고민하는 거야?”
이번엔 팔짱을 낀 백하니가 끼어들었다. 한국말을 대충 알아듣는지, 금발을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린 여자는 홱 돌아서며 중얼거렸다.
“여기 애들은 말귀도 못 알아듣네. 용사님, 이런 바보들 틈에서 고생이 많으셨겠구나······.”
“야, 누가 바보야!”
“지금 말 다 했어요?”
두 여배우가 동시에 소리치는 와중,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멎었다.
저벅, 저벅··· 고요해진 좌중 속, 걸어들어온 박건은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금발의 불청객을 마주보았다.
“···아리아.”
뭐야, 진짜로 아는 사이였나? 유준일 실장이 구신승에게 속삭일 때, 아리아라고 불린 여자도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말했죠? 찾아오겠다고.”
“······.”
작별하던 그 순간처럼, 투명한 빛무리가 머리카락 끝에 머물렀다가 흩어졌다.
박건은 고개를 들었다.
용사의 업을 벗은,
천만 배우의 미소가 얼굴에 떠올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