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90)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90화(190/199)
[외전] 두 번째 대악마 (1)* * *
-키에에에엑!
비명을 지르던 악마가 버르적거리다가 축 늘어졌다.
성검을 뽑은 사내는 칼날을 허공에 털었다. 주변 온도가 얼마나 낮은지, 뿌려진 핏방울은 그대로 얼음이 되어 떨어졌다.
“더 있습니까?”
“이게 마지막이에요. 가장 가까운 마기는··· 이 근방에선 느껴지지 않아요.”
뒤쪽에서, 정신을 집중하던 성녀가 숨을 몰아쉬며 대꾸했다.
박건··· 아니, 이제 ‘고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용사는 숨을 몰아쉬었다.
“잠시 휴식합시다. 모데움의 빙하는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혹독해지니까.”
파티 리더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지시에 따라 성녀는 신성력을 전개하고, 뒤쪽에 있던 파티원들은 모닥불을 피울 준비를 한다.
그리고, 그 와중 음산한 음성이 들린다.
“이봐, 용사.”
건방진 말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다. 제국의 2황자, 전사한 4황자를 대신해 파티에 들어온 헤인델 드 라자루스다.
“말하십시오.”
“우리 방향이 좀 어긋나지 않았나 싶은데. 천년의 대장장이가 말하지 않았나? 모데움을 찾으려면 빙하 아래를 뚫어야 한다고.”
고드 대신, 영 마음에 안 드는 눈초리로 황자를 흘겨보던 성녀가 끼어들었다.
“그래서 뚫었잖아요. 위층에서 얼음벽 다 부수고 내려온 거 기억 안 나요?”
“입 닥쳐라, 불결한 창녀야.”
“···뭐라고?”
2황자의 말버릇이 더럽긴 했지만, 이 정도로 막 나가는 자는 아니었다.
분노로 뺨이 붉어지는 성녀를 가로막으며, 고드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이번엔 이자로군.”
“뭐야?”
“불화의 모데움, 저 대악마의 영역에 우리가 들어왔다는 뜻이지.”
고드는 대답을 듣지 않고 불렀다.
“헌트, 무르고로스.”
이름이 호명되자, 복면 쓴 사내와 비늘로 온몸이 덮인 용인(龍人)이 2황자의 양옆으로 나와 섰다.
이내 다음 명령이 떨어졌다.
“모데움에게 홀렸다. 더 난폭해지기 전에 기절시켜.”
“이 천한 것들이······!”
2황자가 허리춤의 검을 뽑으려 했지만 파티 동료들의 호흡이 더 빨랐다.
성녀가 빛의 속박으로 움직임을 봉쇄하자 망나니 헌트가 몽둥이로 뒤통수를 후려쳤다.
깡! 양철통 깨지는 소리와 함께, 2황자는 개구리처럼 엎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묶어야 하나?”
입맛을 다신 헌트가 묻자 고드는 고개를 저었다.
“내버려 둬, 깨어나면 제정신이 돌아오더군. 아마 이번 회차도 그럴 거야.”
“···이번 회차?”
“그런 게 있어.”
헌트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2황자의 양팔을 질질 끌고 사라졌다. 이쪽을 흘끗 본 용인도 배낭에서 천막을 꺼내 치기 시작했다.
성녀, 아리아 리버롯이 기분 나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드디어 시작이네요. 하필 저 재수탱이가 영향을 먼저 받을 건 뭐람.”
“아마 나머지 동료들도 번갈아 변할 겁니다. 성녀님과 저를 빼면요.”
두 번째 대악마, 불화의 모데움의 대표적인 능력은 말 그대로 불화不和.
인간들 사이에 불신과 증오를 퍼뜨려, 용사행을 방해하고 내분을 유발한다.
-폐하! 용사를 보내선 안 됩니다!
-갑자기 무슨 말인가, 공작?
-입수한 첩보에 의하면, 용사와 성녀가 반역을 꾀하고 왕국을 집어삼킬 역모를 획책했다고 합니다. 지금 저들을 지원한다면 필경··· 크악!
-또 말썽이군. 친위대는 크로마스 공작을 신전 지하에 하옥시켜라. 대악마의 지배에서 벗어났는지는 성녀님께서 직접 확인하실 것이다.
덕분에, 오만의 고르존을 잡은 뒤부터는 외부의 적뿐 아니라 내부의 배신자들까지 단속해야 했다.
거기다··· 그가 전이됐던 시점에도 철왕국의 귀족들은 썩을 대로 썩은 상황.
모데움의 영향이 왕성까지 닿는 순간, 왕이고 대신들이고 질투에 눈이 뒤집혀 용사를 처형하라며 날뛰었다.
‘결국 대부분을 베고 회차를 재시작했지. 놈에게 시간을 줘선 안 돼.’
생각에 잠긴 사이, 성녀의 평이 이어졌다.
“정신력 강한 사람들··· 아니지, 사람 넷에 용 한 마리를 뽑아 왔는데도 이렇게 되다니. 빙하 속 마기가 놈의 권능을 증폭시키는 모양이에요. 이 지역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멀쩡했는데.”
“그렇게 부르면 무르고로스가 불쾌해할 겁니다.”
성녀는 코웃음을 쳤다.
“그럼 드래곤을 뭐라고 해요. 자기도 원래는 절대 폴리모프를 안 한다던데요, 하찮은 인간 모습으론 권능을 다 못 발휘한다고.”
“또 싸웠습니까?”
“싸운 건 아니고. 원래 용이랑 신성력은 잘 안 맞아요.”
고드는 저만치서 텐트를 치는 일행들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빙하 원정, 대(對) 모데움 전을 시작한 것도 벌써 몇 달째. 지난 회차에서 놈을 거의 잡을 뻔했지만, 결정적인 순간 동료가 조종당하며 성공 직전 고배를 마셨다.
화염 마법 전문가와 떠돌이 검사, 추운 지방을 잘 아는 사냥꾼까지··· 수십 명의 동료를 거친 끝에, 지금의 멤버가 추려졌다.
‘이 빙하에 들어온 게··· 스물두 번째인가?’
그리고 지금, 회차 중 가장 피해 없이 대악마가 숨어든 빙하 입구까지 오는 데 성공했다.
2황자 헤인델.
망나니 헌트.
마지막 드래곤 무르고로스.
성녀 아리아까지, 총 다섯 명의 원정대원 중 누구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
모데움을 잡을 가능성이라면 이번이······.
‘나도 변했군.’
고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느덧 저들을 장기말처럼 생각하고 있다.
이곳은 게임 속 세계도, 저들은 영화의 엑스트라가 아닌 피와 살을 지닌 사람인데도.
“왜요, 뭐가 느껴져요? 주변에 마기가 감지되진 않는데··· 모데움이 움직이면 아마 무르고로스가 먼저 알아차릴 거예요.”
결계, 경계, 체온 유지 등 신성 주문을 중얼중얼 외우던 성녀가 물었다.
“아뇨. 생각을 좀 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모데움을 처치한 뒤를요.”
성녀의 표정도 진지해졌다. 그들이 대적할 적수는 눈앞의 대악마뿐이 아니다.
모데움을 잡는다 한들, 바로 다음 순서로 대악마 중 무력이 가장 강하다는 발몬이 있다.
거기에 죄악의 베리알과 아무 정보조차 없는 공허의 아스메라우스까지. 어마어마한 상대들의 연속인 것이다.
아랫입술을 깨문 성녀가 말했다.
“뭐, 어떻게든 되겠죠. 이 빌어먹을 왕국에도 대체자들은 있으니까.”
“대체자들요?”
성녀는 아무렇지 않게 끄덕였다. 시선이 향한 곳에는 텐트를 거의 다 친 동료들이 있었다.
“네. 만약 제가 죽으면 신전의 다른 성녀가 용사님을 보필할 거고, 저들 중 누군가가 이탈한다면 또 다른 이가 자리를 채울 거예요. 용사님만 큰 부상을 조심하면······.”
“그런 말 마십시오.”
고드는 그녀의 말을 딱 잘랐다.
“예전에도 말씀드렸을 텐데요. 전 제 동료들을 소모품으로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용사님을 위한 칼이자 방패인걸요. 휘두를 이가 없으면 존재할 이유도 사라져요.”
“그러니까 그게······.”
몇 번··· 아니, 수십 번이 넘게 벌인 논쟁이지만, 이 대목에선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 밤새 입씨름을 해도 돌고 돌 뿐이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지?’
그가 이마를 짚자, 성녀는 잠깐 눈치를 보다가 볼멘소리로 중얼거렸다.
“앞으로 더 조심하란 얘기였어요. 발몬의 권능은 무화(無化)라는데, 우리 중 누굴 지키겠다고 용사님이 달려들면 큰일이 난다고요.”
“그러니까 더 강해져야죠. 제 합기의 성취는 어느 정도입니까?”
성녀의 눈빛에 금빛 광채가 어렸다. 숨겨진 마기까지 꿰뚫어볼 수 있는 천상의 성력, 심안을 발동한 것이다.
“이제 6성 후반··· 7성을 바로 목전에 두고 계시네요.”
“아직 멀었군요. 모데움을 상대하기 전 벽을 깨고 싶었는데.”
성녀는 질색하며 안광을 지웠다.
“무슨 소리세요? 이것보다 어떻게 더 빠를 수가 있다고.”
“그렇습니까.”
“당연하죠! 다른 용사들을 본 적 없어서 비교하긴 힘들지만, 아마 유례없는 속도일 거예요. 합기를 다루는 숙련도부터 말이 안 된다고요.”
그렇겠지, 첫 번째가 아니니까. 고드는 쓰게 웃으며 말을 삼켰다.
갈고 닦은 육체가 회귀한다 한들, 그 회차에 쌓은 경험은 정신에 각인된다.
싸우고, 또 싸우고··· 그 짓거릴 반복하다 보면 이전에 다다른 경지까지는 쉽게 올라가는 것이 당연하다.
‘오만의 고르존은 넉넉잡아 3성, 모데움과 전투가 가능한 수준이··· 아마 6성이었나.’
숫자가 커질수록 더욱 강해지던 대악마들의 힘으로 미루었을 때, 발몬은 필시 9성 이상을 달성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10성까지도.
목표의식 뒤에는 늘 불안이 따라왔다. 합기는 한계가 있지만 대악마의 격은 짐작하기 어렵다. 만에 하나, 12성 극성에 도달하고도 놈들을 쓰러뜨릴 수 없다면······.
“이봐, 인간.”
쉿쉿거리는 음성이 그를 불렀다. 두 사람은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돌아섰다.
눈보라를 뚫고, 양손에 클로(Claw)를 낀 용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몸 좀 풀지.”
*
한때, 그러니까 철왕국으로 전이된 초기.
고드는 수많은 강자들과 대련을 거치며 합기의 사용방법을 익혔다.
웬 미친놈 하나가 다짜고짜 쳐들어와 머리통을 박살내긴 했지만, 다행히 상식이 통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대련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해 드려야지요!
-물론입니다. 저 카르고, 용사님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사단 중 최고로만 뽑아 왔습니다. 아마 칼솜씨로는 저 이방의 묘족과도 버금갈 겁니다.
그리고 용사의 권능에 완전히 능숙해진 지금, 그와 맞붙을 수 있는 이는 몇 없었다.
파캉, 채채챙!
용인이 착용한 클러, 네 개의 발톱을 세운 마법무구와 성검이 격돌하며 푸른 불꽃이 튄다.
마지막 드래곤 무르고로스. 인간 형태로 폴리모프한 용인의 전투스타일은 압도적인 신체능력을 앞세운 고속 압박이다.
‘처음에는 저 속도를 못 견뎠지. 드래곤으로 변신했을 때는 갑피를 뚫지 못했고.’
느긋하게 생각하며, 고드는 번뜩이는 갈퀴를 연달아 쳐내고 성검을 내리그었다.
쾅!
합기가 일으킨 폭발을 뚫고, 또다시 두 그림자가 맞붙는다.
호각? 아니다. 이미 용사는 동료들에 비해 월등한 경지에 올라섰다.
저 용이 본체로 돌아온다면 모를까, 힘을 제한한 상태로는 7성 직전의 합기를 찍어누를 방법이 전무하다.
“볼 때마다 기이하군.”
문득 무르고로스가 입을 열었다. 곧 있을 대악마와의 혈전을 대비해, 전력을 쏟지 않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다.
“뭐가 말이지?”
“네 몸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힘, 대천사들의 것과 놀랍도록 비슷해.”
신성력은 없으나, 고룡의 눈은 본질을 꿰뚫어본다. 고드는 공격을 튕겨내며 대꾸했다.
“그들이 인간에게 선사했다고 하니까. 뿌리가 같은 거겠지.”
“그래서 불길하다는 거다.”
“그게 무슨······.”
성녀가 있는 천막과, 그들이 싸우는 빙하 위쪽과는 제법 떨어져 있다.
노란 눈동자에 섬뜩한 빛이 스쳤다.
“놈들을 믿지 마라.”
“아스루엘을 말하는 건가?”
“녹광과 청광, 적광의 대천사 모두.”
고드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들이 없다면 이 세계는 이미 파괴됐을걸. 아군을 왜 믿지 말라는 거지?”
“용들은 배신을 당해 멸종했지. 너희 인간과 간악한 요정들에게.”
경지 높은 전사들은 고도의 집중에 빠져든 상태에서도 대화가 가능하다. 성검의 날을 피한 무르고로스가 말을 이었다.
“인간, 절대자를 맹신하지 마라. 그들 역시 거대한 은하 속의 별들에 불과해. 신성을 잃는 순간 필멸자나 다를 바 없는.”
“······.”
“그러니, 그 신성을 잃지 않으려 할 터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적 속에서, 눈보라가 빙하 위를 한 바퀴 돌아 지나갔다. 싸움이 멈춘 자리엔 갈라지고 터진 균열들이 죽죽 가 있었다.
이 정도로 소란을 피웠지만 저 아래의 대악마는 나올 기미가 없다. 용인은 클로를 집어넣고 물었다.
“2황자는 곧 깨어날 거다. 죽일 건가?”
“···모데움의 정신지배는 그렇게 긴 시간 지속되지 못해. 아리아가 보호막까지 쳐 놨으니, 몇 시간은 버틸 거다.”
“뭐, 방패막이가 둘보다는 셋인 편이 좋지 않겠느냐. 성녀는 이 다음 여정에서도 필요할 테니.”
고드는 세로로 갈라진 용인의 눈을 가만히 마주 보았다. 이 용은 인간을 뼛속 깊이 증오하면서도 그들 일행에 합류했다.
모든 대악마를 죽이고, 알을 부화시켜 종족을 되살리겠다는 일념만으로.
“넌··· 마지막까지 갈 수도 있겠군.”
“무슨 뜻이냐?”
“아냐. 그만 쉬지.”
대 모데움 전, 22회차.
―개전까지 8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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