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91)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91화(191/199)
[외전] 두 번째 대악마 (2)* * *
소환된 가운데땅.
용사가 강해지는 요소는 다양하다.
합기의 숙련도, 신성의 축복, 쌓이는 실전 경험과 검법의 최적화 등등.
전이 첫날, 성녀 아리아는 신전의 어둑한 석실에서 몇 가지 가르침을 전했다.
-용사님, 우선 지금의 몸에 적응하셔야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주먹을 뻗어 보십시오.
아직 이 세계에서 쓸 이름조차 정하지 못했을 때였다. 박건이 주먹을 뻗자 파공음이 일며 공기가 찢어졌다.
놀란 표정의 그에게, 성녀는 그것 보라는 듯 말을 이었다.
-차원을 넘으며 육체가 재구성된 것입니다. 더불어 성력의 축복까지 깃들었을 테니, 이전의 몸과는 많이 다르시겠지요.
-······.
-날이 밝고 나서부터, 기사단장 웨일즈 경이 직접 용사님을 지도해 드릴 겁니다. 검술, 창술, 맨손 격투술까지. 합기를 제외한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있는 사내입니다.
-잠깐, 합기라는 건 또 뭡니까?
성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꾸했다.
-저희를 구원할 힘입니다. 저 대악마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그렇게, 기나긴 수련이 시작됐다.
이른바 초인으로의 적응.
이전의 몸이 아무리 평범했다 한들, 차원을 넘는 과정에서 육신은 더욱 강인해지고 정신력은 몇 단계 더 진일보한다.
하물며 이곳은 종말을 앞둔 세계가 아니던가. 몰려드는 악마군과 숱한 죽음 속에서, 한때 박건이었던 청년은 용사 고드로 바뀌어 갔다.
반드시 다섯 대악마를 처치하고,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겠다는 일념 아래.
콰아아앙―!
회상은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에 깨져나간다.
두터운 빙하 위로 충격파가 퍼지며, 발밑에 쩍쩍 갈라진 크레바스가 생겼다.
성검을 얼음에 박아넣은 고드가 소리친다.
“같은 것, 전방위에서!”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커먼 얼음돌풍 수십 줄기가 쇄도해 왔다. 마기를 칼날 같은 고드름과 섞어 날리는 모데움의 기본 패턴이다.
“젠장, 또 저거야!”
그러나 이곳은 악명 높은 툰브리드의 빙하. 제 보금자리에서 마음껏 쏘아대는 마기의 폭풍우는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자랑한다.
비명과 함께 날려 가던 망나니 헌트가 간신히 자세를 고쳐 빙판에 착지했다.
저쪽에선 인간 형태의 무르고로스와 2황자도 성녀를 지키며 물러서고 있었다.
2황자가 질린 표정으로 뇌까렸다.
“거 참, 우리 왕성이 작아 보일 지경인데.”
쿠웅.
그들의 앞, 눈보라를 뚫고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불화의 모데움.
두 번째 대악마는 첫 번째 대악마보다도 압도적인 거체를 자랑한다.
머리 양쪽엔 구불구불한 뿔이 솟아났고,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엔 새까만 마기만 불타며 적을 응시한다. 대악마들에게만 있는 네 쌍의 날개엔 칼날처럼 날카로운 발톱들이 꿈틀거린다.
이제 지겹기까지 한 적을 응시하며, 고드는 직전 회차를 떠올렸다.
‘지난번엔 저기에 꿰뚫렸었지. 침투한 마기 때문에 결국 이기지 못했고.’
본래 모데움은 만년빙하의 맨 아래층에서 용사들을 기다린다.
십수 번의 시행착오 끝에, 그는 이 빙하 자체가 놈의 마기를 증폭시키는 매개이자 보금자리임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걸 다 때려부쉈으니······.’
몸을 숨기고 있던 대악마를 끌어냈으니, 싸움은 지금부터다.
고드는 나직하게 동료의 이름을 불렀다.
“무르고로스.”
저 지고한 드래곤이, 인간의 형태를 취한 채 이곳까지 온 이유는 하나다.
무르고로스는 즉각 본체의 현신에 들어갔다. 파아앗! 선명한 붉은빛이 뿜어진 뒤, 적광이 가신 자리에는 드래곤의 거체가 날개를 접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2황자는 용과 대악마를 번갈아 보더니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됐다.
“우리 편도 더럽게 크군.”
이내 날개를 활짝 펼친 적룡이 날아올랐다. 모데움은 덩치가 비슷한 적을 의식하는 기색이었으나, 용이 노리는 것은 따로 있었다.
콰아아아앙!
작열하는 불꽃, 용언을 담은 브레스가 주변의 빙하에 직격했다.
마법사 군단으로도 녹이기 어려운 만년빙하가 녹기 시작하고, 일렁이는 불길 속에서 어마어마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네놈들······.
처음으로, 모데움에게서 음산한 파장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휘몰아치던 얼음폭풍도 살짝 기세가 꺾였다.
“헌트!”
대악마를 끌어내는 것은 용사가, 힘의 원천을 파괴하는 것은 드래곤이 맡았으니 다음은 세 번째 멤버의 차례다.
헌트가 도끼날에 손을 얹고 기도를 외우자 보랏빛 입자가 꽃가루처럼 흩날렸다.
망나니 헌트는 버퍼 겸 디버퍼. 적의 공격력은 약화시키고 아군은 강화시키는 오라를 성녀와 중첩해서 사용할 수 있다.
“무고하게 스러진 사형장의 영혼들이여. 그대들의 원념을 이곳에 모으노니······.”
기도가 진행될수록, 보랏빛 입자들은 더욱 맹렬하게 소용돌이치며 전장을 덮는다.
모데움이 날개를 휘둘렀지만 꽃가루는 흩어지지 않고 오히려 스며들었다.
콰앙, 퍼퍼퍼펑!
수십 줄기로 날아든 얼음돌풍은 찬란히 불타는 성검 앞에 스러졌다. 성녀의 축복과 헌트의 오라로, 마침내 합기 7성의 고지에 오른 것이다.
고드는 뒤를 향해 목청껏 외쳤다.
“2황자!”
“알고 있다, 이방인.”
냉엄한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검을 뽑아든 2황자가 따라붙었다. 동시에 모데움의 거체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펼쳐진 근접전. 용사의 성검이 대악마의 손톱과 충돌하자 가공할 충격파가 터진다.
‘···역시 7성이군. 버틸 수는 있어.’
원거리 폭격을 즐기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의 힘을 빼기 위한 것. 모데움의 진정한 힘은 저 거체에서 나오는 물리력이다.
첫 충격은 버텨냈지만, 대악마에게는 손 이외의 무기가 많다. 네 쌍의 날개가 믿어지지 않는 속도로 그에게 쇄도해 왔다.
“어딜!”
그리고, 2황자의 검에 가로막혔다.
-······.
모데움의 불타는 안광이 아래를 보았다. 날개 하나는 백색 보호막에, 다른 셋은 고작 인간 한 명의 칼날에 붙들려 있었다.
2황자, 헤인델 드 라자루스는 비릿하게 웃었다.
“더 해 보거라, 철왕국의 재앙이여.”
그 틈에 고드가 검격을 흩뿌리고, 무르고로스의 브레스까지 더해지자 모데움은 날개를 거두며 물러섰다.
2황자 헤인델의 재능은 괴력. 다른 영웅들에 비해 오만하고 괴팍하나, 선천적인 괴력만큼은 합기로 강해진 용사에 버금간다.
어린 시절, 정쟁에 휩쓸려 독살당한 어머니 쪽의 혈족 계승이라 했던가?
‘교단에게 배척받는 성녀, 끈 떨어진 2황자, 전직 망나니에 실패투성이 용사라.’
조합 한번 끝내주는구만. 쓴웃음을 삼킨 고드는 정신을 집중했다.
대천사들이 인간에게 준 권능, 합기가 혈관을 터뜨릴 듯 휘돌며 초인적인 힘을 부여한다.
챙, 파캉!
모데움의 긴 손톱이 튕겨나가고, 광폭한 검강이 놈의 옆구리를 길게 찢는다. 뒤를 노리는 날개는 2황자와 성녀에게 맡긴다.
‘이제··· 넉넉잡아 2분 30초쯤.’
극도로 힘을 끌어올렸을 때, 현재 육체로 지속 가능한 한계치는 3분여. 그 사이 끝내지 못한다면 이곳이 그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처절한 혈전이 이어진다.
포탄처럼 쏘아진 용사가 모데움의 상체를 연달아 베지만, 그 또한 어깻죽지와 허리에 깊은 자상을 입었다.
아무리 2황자가 뒤를 받치고, 성녀의 신성력이 쏟아진다지만 대악마에게 당한 상처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결국 날개를 두 개째 잘라냈을 때, 얼음송곳 하나가 복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용사님!”
“부상이 심합니다, 뒤로 물러나요!”
성녀와 헌트의 외침이 들렸으나, 그는 물러나긴커녕 더 거리를 좁혔다.
용과 망나니의 디버프, 성녀의 회복, 2황자의 지원은 어디까지나 보조일 뿐이다. 결국 대악마를 쓰러뜨리는 것은 용사의 몫일 터.
그렇기에 전력을 다했지만······.
“······크윽.”
고드는 올라오는 핏덩이를 삼켰다. 포기란 용납되지 않는다. 대 모데움 전, 가장 나은 조합을 고르고 또 골라 이곳까지 왔다.
여기서 나아가지 못한다면, 온전히 그가 더 강해지지 못한 탓인 것이다.
“하아아아―!”
절규에 가까운 기합이 터진 순간, 돌연 대악마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더불어 거대한 충격파가 상공에서 퍼져나갔다.
“······?”
붉어진 그의 시야에, 바로 뒤까지 온 헌트가 보였다. 무르고로스는 아예 지상에 내려앉아 모데움과 육탄전을 벌이고 있었다.
“쇠약의 오라는 뒤쪽에서도 충분해. 굳이 왜 가까운 전장으로······.”
“용사님이 이 꼴인데 어떻게 지켜만 봅니까, 저도 이 한 목숨 보태겠습니다!”
망나니 헌트, 한때 철왕국 죄인들의 참수를 도맡았던 사내가 열성적으로 외쳤다.
뺨에 상처가 난 2황자가 혀를 찼다.
“죽고 싶은 모양이군.”
“예, 용사님은 제 은인이라구요. 혼자서만 도망칠 바엔 차라리 함께 죽겠습니다.”
“···실랑이할 시간 없어.”
고드는 둘의 말싸움을 저지했다. 콰앙! 용과 대악마 쪽에서는 연신 폭음이 울려퍼졌다.
“헌트는 좌측, 2황자는 우측. 무르고로스의 사각에서 돌진한다.”
“전력으로?”
“전력으로.”
다른 명령은 없다. 고드가 튀어나가자 나머지 둘도 최후의 힘을 끌어올려 뒤따랐다.
그리고 그날, 두 번째 대악마는 성검 아래 검은 안개가 되어 절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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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 같은 기분이군.”
싸움은 끝났다. 녹아내리는 빙하와 김이 오르는 수증기의 바다 위에서, 검을 내린 2황자가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다시 용인으로 돌아온 무르고로스가 말했다.
“희생은 불가피했다. 그렇지 않나, 용사여?”
“······.”
22번째 회귀의 막바지··· 기어코 모데움을 참했지만 완벽한 승리는 아니었다.
고드는 대답 대신 시선을 내렸다. 둘러선 동료들의 발치에, 목이 삼분지 이쯤 잘린 헌트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무릎을 꿇고 있던 성녀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숨이 멎었어요. 천상의 권능으로도 죽은 이는 살리지 못해요.”
“제기랄, 빌어먹을 악마 자식들!”
얼굴을 일그러뜨린 2황자가 쥐고 있던 검을 빙판에 내동댕이쳤다.
몇 분 전, 그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은 총공세로 모데움을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무르고로스의 날개가 찢어지고 고드의 한쪽 눈이 터져나갔으나, 저 강대한 대악마도 합기로 불타는 성검에 난도질당했으니까.
-죽어라, 이 괴물아!
그리고 마지막 순간.
불화의 모데움은 최후의 권능을 사용했다. 단, 용사가 아닌 그의 동료들에게.
“황자님의 탓이 아니에요. 용사님이 아닌 그 누구라도 놈의 지배에 걸려들었을 거예요.”
성녀가 말했지만, 2황자는 대꾸 없이 불타는 바다 쪽으로 가 버렸다.
무르고로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한쪽 날개를 잃은 용인의 왼쪽 팔은 텅 비어 있었다.
“인간들의 동료애는 기이한 데가 있군. 대악마를 참한 대가로는 오히려 가볍거늘.”
“···자기 손으로 죽였잖아요. 당연히 충격을 받을 만 하죠.”
낮게 중얼거린 성녀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할 거예요? 일단 돌아가야 할 텐데, 저 꼰대들이 목을 빼고 기다려서.”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고드는 유쾌하지 못한 고민에 잠긴다.
망나니 헌트··· 앞으로의 여정에 반드시 필요한 자였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인간을 터뜨린다는 세 번째 대악마, 분노의 발몬과 맞서려면 더더욱.
‘동료 한 명을 잃었다고 해서······.’
용사의 수심은 깊어진다.
핵심 조각을 잃었으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저 발몬에게 부딪쳐 볼 것인가?
다른 무엇보다도, 이 기나긴 여정의 끝은 언제쯤에야 보인다는 말인가?
“복귀합시다.”
고민은 길고, 판단은 짧다. 시체를 수습한 고드는 걷기 시작했다. 이내 모여든 나머지 동료들도 리더의 뒤를 따른다.
반쯤 녹고 반쯤 얼어붙은, 만년빙하의 얼음이 부츠 밑창에 질척거리며 달라붙었다.
마치··· 괴물이 되어 가는 누군가처럼.
용사의 고행(苦行)은 이제 절반을 넘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