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96)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96화(196/199)
[외전] 그 후의 이야기 – (1)* * *
구신승, 대한민국의 남자 배우.
185cm에 달하는 키와 압도적인 비율, 외모에 뒤지지 않는 미친 연기력으로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다져 왔다.
내로라하는 이삼십 대 남배우 중, 순위를 매기는 질문엔 반드시 대여섯 손가락에 들 정도니 그 인기는 실로 대단하다.
천만 배우, 찍는 드라마 대부분이 히트, 깨끗한 사생활과 팬서비스로 유명한 구신승의 다른 별명은 미담제조기다.
-신승이요? 에이, 믿고 맡기죠.
-그 오빠는 완전 프로페셔널해요. 들어보니까 아역 시절부터 펑크낸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사고 칠 줄을 몰라요. 촬영 끝나면 집에 박혀서 혼자 게임이나 하고, 스캔들 날 일이 없으니 매니저 입장에선 최고죠.
팬들과 관계자들은 그 연기력을 노력의 산물이라고 평한다. 길거리캐스팅을 받아 아동용품 CF로 데뷔한 이래, 철저한 자기관리가 지금의 구신승을 만들었노라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스토리다.
-신승아, 대본은?
-몇 번 보니까 외워지던데.
-연기 선생님은?
-가르칠 게 없다고 그만 오랬어. 괜히 이상한 습관 만들지 말고 하던 거나 잘 하래.
-···어디 가선 그런 얘기 하지 말자. 사람들은 너무 많은 재능을 시기하니까.
별 노력 없이 대본을 외우며, 트레이닝 없이도 어린 시절부터 발군의 연기력을 뽐내던 천재.
그리고 많은 것을 타고난 이들이 흔히 그렇듯, 구신승은 무료했다.
소속사와의 계약이 끝나 가던 몇 년 전, 연락 한 통을 받을 때까지는.
대뜸 찾아온 노중만은 본론부터 꺼냈다.
-우리 회사로 오지.
-제가 말입니까?
눈앞의 중년 사내가 세운 기획사에 대해서는 구신승도 대충은 알았다.
소위 ‘악덕소속사’ 킬러, 악성계약에 허덕대는 배우들을 구출해 새로운 기회를 준다고.
그러나 다른 이들과 달리, 그는 딱히 불공정한 처우를 받은 적이 없었다.
주가가 오를 대로 오른 이십 대 중반. 한창 때일 남자 배우가 무엇이 부족하겠는가.
-전 대표님이 모은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곧 계약이 끝나긴 하지만, 굳이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도 없고요.
-그래서 온 겁니다.
-예?
-지루하지 않아요?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인생사가 죄 귀찮은 눈빛이던데.
-······.
-삶이 재미없겠지. 남들은 자전거를 탈 때 혼자 스포츠카를 타고 달리니까. 치열하게 노력할 필요도, 보상감이나 성취욕도 못 느꼈을 테고. 뭘 해도 쉬우니 연기가 재미있을 턱이 있나.
그가 연기 연습을 안 한다는 건 소속사에서 붙여준 매니저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구신승이 답하지 않자 노중만은 빙긋 웃었다.
-어차피 구 배우, 당분간은 은퇴할 생각 없는 거 알아요. 대형기획사에서 탄탄대로만 걸을 바엔 회사라도 옮겨 보면 어떨까 싶은데.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그 편이 더 재미있을 테니까.
도저히 스카웃 제의 같지 않은 제의였지만, 구신승은 정말로 이적을 단행했다. 수많은 반대와 측근들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노중만 역시 약속을 지켰다.
DG며 조이너스 등 초대형 엔터와 몇 년간 싸움질을 해 댄 것은 물론, 회사가 자리를 잡고 나자 웬 괴물 일반인을 데려온 것이다.
‘···스포츠카도 하늘을 날진 못하지.’
자전거를 지나쳐 달리는 스포츠카, 그 위엔 제트기가 날고 있었다.
혜성같이 나타난 신인배우 박건, 본인보다 더욱 눈부신 재능을 보면서 구신승은 생소한 기분을 느꼈다.
패배감 같으면서도 설레는 느낌. 후에 알았지만, 그것은 오랫동안 잃고 있던 흥미의 감각이었다.
“아니, 그래서 누군데요?”
“나도 궁금해 미치겠어요. 우리 회사에 온 적이 있던가?”
“당연히 없죠! 저런 비주얼이 왔는데 어떻게 기억을 못해? 대표님이 이젠 해외파까지 스카웃했다고 난리도 아니었을걸요.”
박건이 엮이면 늘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다고 했던가.
예상을 뒤엎는 것은 시청률이나 관객, 작품이나 연기뿐만이 아니다.
데뷔 이후 스캔들 한 번이 터지질 않더니, 갑자기 처음 보는 백금발의 외국인이 소속사로 찾아온 것이다.
-저, 찾는 사람이 있는데요.
나는 박건을 안다, 그와 약속을 했다, 그러니 반드시 만나야 한다는 고집을 부리면서.
덕분에 사옥 지하, VIP 미팅룸에는 로만 소속 직원과 배우들이 머리를 맞대고 모여 있었다.
“좋아요, 그럼 한 명씩 말해 봅시다.”
녹색 수트 차림의 공기형 홍보팀장이 먼저 브리핑했다.
“일단 홍보실 쪽으로는 다른 오더 없었어요. 유 실장님은?”
“나도 없죠. 어제 애슬로우 애들 첫콘 때문에 정신머리가 쏙 빠졌었는데.”
유준일 실장이 대꾸하자, 옆에 있던 양수연 팀장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일부러 언질을 안 주신 건 아닐까요? 대표님은 이런 얘길 잘 안 하시니까, 알면서도 그냥 두셨을 수도······.”
“양 팀장, 아직도 몰라?”
“네?”
“박건 씨 일이잖아. 대표님이 아니라 삼신할매가 와도 모를걸.”
양 팀장은 납득이 간다는 표정이 됐다. 당장 구신승 하나로도 골머리를 앓는데, 저 박건은 회사 내에서도 예측불허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무슨 사고가 또 날까, 이럴 때 가장 마음을 졸이는 쪽은 역시 홍보실이다.
공 팀장이 모두의 마음을 대변해 물었다.
“그럼 뭐,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요?”
실장 하나에 팀장 둘이 주머니를 털었지만 뾰족한 답이 나올 리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설명을 해 줘야 할 장본인들은 삼십 분 전에 회사를 떠난 탓이다.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옛 동료와 나눌 얘기가 있어서요.
-다들 안녕! 또 만나요!
-어, 난 왜······.
엉겁결에 끌려간 박선까지, 세 명이 사라진 자리에서는 추측만 무성해져 가고 있었다.
다리를 꼬고 앉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사태를 관망하던 최필립이 말했다.
“딱 보면 알겠던데. 여자친구구만.”
뒤쪽 말은 짜증 섞인 외침에 가리고 말았다.
“무슨 여자친구야!”
“여자친구는 무슨······.”
동시에 소리치던 두 여배우, 진지유와 백하니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최필립이 휘파람을 불었다.
“얘네 봐라. 공동의 적 앞에서 합심, 뭐 이런 거야?”
고개를 휙 돌린 백하니가 코웃음을 쳤다.
“공동의 적은 뭘. 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그러니까요. 별 사이 아닌 것 같던데요?”
초조하게 손가락을 꼼지락대던 진지유도 합세했다. 이내 두 배우는 박건과의 관계에 대해 온갖 추측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니면 어릴 적 소꿉친구거나··· 엄청 친해 보이진 않았거든요.”
“작품 찍을 때 알게 됐을 수도 있고. 해외에 꽤 오래 있었으니까.”
“몇 년 못 봤으면 남이죠. 언니도 그런 사람들 많지 않아요?”
“흥, 난 연락도 안 받아. 그 시간에 로봇박람회를 가고 말지.”
그 진기한 광경을 지켜보던 공 팀장이 유준일 실장에게 소곤거렸다.
“저 둘, 호흡이 왜 잘 맞죠?”
“충격적인데요. 같은 작품 들어가더니, 살다 살다 진백연합을 다 보네.”
나머지 사람들까지 나서서 추리하는 바람에 미팅룸은 한동안 시끌시끌해졌다.
소꿉친구다, 그냥 지인이다, 해외에서 알게 된 동료 배우다··· 추론의 끝은 최필립이 정리했다.
“직접 물어보면 되겠네. 어차피 조만간 보게 될 것 같은데.”
가지런한 눈썹을 좁힌 진지유가 물었다.
“왜 봐? 오빠가 만나고 싶어서?”
“뭔 소리야, 난 외국인 안 좋아해.”
“그럼 왜······.”
“일반인처럼은 안 보이지 않냐? 그 뭐, 처음 왔을 때 고드인가 뭔가 하는 배역 이름을 말했다면서. 백 퍼센트 관계자가 맞지.”
<고드 : 분노의 파수꾼>은 박건이 찍은 첫 해외 작품이었다.
최필립의 말이 끝나자 묘한 정적이 흘렀다. 침묵이 이어지던 중, 갑자기 백하니가 일어섰다.
“한심해서 못 봐 주겠네. 또 보이든 말든, 우리가 알 바야?”
“어어?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방금까지 자기도 궁금하다고······.”
“난 일어나요. 멍청한 고민 많이들 하시고.”
“야, 백하니!”
독설을 쏟아낸 백하니는 쌩하니 나가 버렸다.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진지유까지 슬그머니 폰을 쥐고 일어났다.
“실장님, 저도 슬슬 가 볼게요. 생각해 보니 제작사 미팅이 있었네요.”
“웬 미팅? 오늘 사옥 파티 때문에 일정은 다 밀었다고 했잖아.”
“갑자기 생겼어요. 신승 오빠랑 필립 오빠, 그럼 나중에 봐!”
미팅룸 문이 닫힌 뒤, 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서로의 얼굴만 쳐다봤다.
이내, 알 것 다 아는 관계자들 사이에서 조심스러운 의견들이 오갔다.
“···쳐들어갔을까?”
“그랬을 수도 있어. 눈에서 불꽃이 튀더라고.”
“에이, 설마··· 그냥 간 거겠지.”
“근데 저 둘 다 대단하네. 여태 박건 씨 철벽 뚫은 사람이 배우고 아이돌이고 전멸인데. 끈기 하난 인정해 줘야 돼.”
남의 연애사야 어쨌거나,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직장인은 억울한 법이다.
유준일 실장이 할 말 많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럴 거면 왜 모인 거야? 낮잠만 못 잤네.”
*
“여깁니다. 들어와요.”
박건의 아파트.
처음 차를 탈 때부터 신기해하던 아리아는 대리석 바닥을 보고 감탄했다.
“와, 좋은 곳에 사시네요.”
“그렇게 좋지는······.”
“신전 침실이랑 비교하면 엄청 크죠. 아니, 높다고 해야 하나?”
연신 안을 둘러보는 전직 성녀에게, 건은 따라 들어온 박선을 소개했다.
“아까 소개했죠? 이쪽은 제 동생. 저쪽은 아리아 리버롯, 옛날 동료야.”
“안녕하세요. 박선이라고 합니다.”
박선이 꾸벅 인사하자 아리아도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아, 용사··· 고드님의 가족이라고 하셨죠. 처음 뵙겠습니다.”
명색이 전담 매니저인데, 형의 배역 이름을 기억 못 할 리 없다. 이름을 들은 박선의 눈이 동그래졌다.
“고드? 영화 찍을 때 알게 됐던 분이야?”
“응, 대충 비슷해.”
“영화가 뭔가요?”
이번엔 대답이 갈렸다. 영문 모를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는 박선에게, 건은 한숨을 쉬며 설명했다.
“아직 한국어를 잘 못해서 그래. 모르는 단어가 많아.”
“아, 그러셨구나! 그럼 혹시 영어··· 아니, 불어나 노어를 쓰시나요? 저도 잘은 못 하지만 대충 의사소통은 되거든요.”
“······?”
박선이 영어로 설명했지만 아리아는 당연히 알아듣지 못했다.
다른 차원의 손님과 악전고투하는 동생을 보며, 건은 옛 추억을 떠올렸다.
‘나도 처음엔 저랬었지.’
차원을 넘으면 그 차원의 언어가 자연스레 적용되지만, 생소한 문화나 모르는 단어까지 이해할 수는 없다.
처음 철왕국에 전이된 뒤, 말은 통하지만 답답했던 이유도 그래서였다.
마정석은 뭐고 합기는 뭔지, 성력을 증폭시키는 무구와 매개체 같은 것들을 머릿속에 넣는 데만 꼬박 며칠이 걸렸으니까.
“그럼 두 분, 편하게 이야기 나누세요. 이 앞에서 마실 거라도 사 올게요.”
어느 정도 통성명이 끝났는지, 박선이 눈치 빠르게 자리를 비켜줬다.
희미한 미소를 띤 아리아가 말했다.
“좋은 동생이네요.”
“말했잖습니까. 저 녀석 때문에라도 살아서 돌아가야 했다고.”
“그러게요. 가족들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직접 보니까 신기하달까.”
“전 당신을 만난 게 신기합니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아리아의 답은 간단했다.
“찾았어요.”
“예?”
“멈췄던 시간 속, 의식 일부가 차원으로 흘러든 이세계의 마력에 반응해 깨어났어요. 그걸 단서로 찾고 또 찾았죠. 표류가 길어져서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리긴 했지만······.”
건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의 마지막 작품. 주신의 서 최종 씬을 찍었을 때, 잠시 철왕국과 지구의 차원이 연결되며 두 세상이 함께 멈췄었다.
빛에 휩싸인 아리아가 사라지고 꼬박 일 년.
그것도 지구의 기준으로 일 년인 것이지, 눈앞의 성녀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떠돌았을지는 감히 헤아릴 수도 없다.
“···다행입니다.”
아리아의 속눈썹이 부드럽게 올라갔다. 어려운 전투를 또 한 차례 넘겼을 때처럼, 건은 호수 빛깔의 눈동자를 마주보며 전했다.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서.”
“저도 약속했는걸요. 용사님을 찾아가겠다고 했는데, 교인이 돼서 거짓을 고할 순 없잖아요.”
“그냥 이름을 부르시죠. 여기서 용사라고 하면 다들 이상하게 볼 겁니다.”
아리아는 입술을 부루퉁히 내밀었다.
“입에 안 붙는 걸 어떡해요. 박건? 거기다 씨인지 뭔지, 그건 또 왜 붙이는지도 모르겠고. 이쪽 세계는 이상한 호칭이 너무 많아요.”
“철왕국이 아니니까요.”
“···맞는 말만 하는 습관은 여전하네요.”
박선이 커피를 사서 돌아올 때까지, 둘은 밀린 후일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지구의 좌표를 발견하고 육체를 전이시켜 보니 서울 한복판이었고, 광고판에 걸린 사진을 행인들에게 물어 회사를 찾아왔다는 것.
그녀 역시 저쪽 차원에서의 신성력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단련된 육체와 오감은 여전하다는 것.
이쪽 세상으로 넘어오면서 차원의 균열이 완전히 닫혔다는 것 등등.
이야기를 듣던 건은 미간을 좁혔다.
“그럼 저쪽 세상은······.”
“한동안 멈춰 있겠죠. 세 대천사들의 존재가 소멸하고 이계의 괴물들이 눈을 돌릴 때까진. 그 후 새로운 태동이 시작될 거예요.”
끔찍하리만치 강대하던 적광, 청광, 녹광의 대천사들이 떠올랐다.
수천 년간 차원의 균열을 키우며 인간과 악마들을 조종했으나, 그 절대자들도 결국 운명을 거스르진 못한 것이다.
“그나저나, 이젠 어떻게 할 겁니까?”
분위기를 바꿔 묻자, 아리아는 뭘 그런 걸 묻냐는 듯한 눈빛이 됐다.
“여기서 살아야죠. 돌아가지도 못하는데.”
“아니, 그러니까 뭘 하면서······.”
“뭐라도 되지 않겠어요? 이쪽 세상은 수도로 진군하는 악마들도 없으니까.”
하긴, 저 험한 세계에서 매일같이 싸워 온 전직 성녀 아닌가. 웬만한 일은 너끈히 처리하고도 남을 터였다.
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은 여기서 머물러도 됩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이야기하고.”
“필요한 것보단··· 궁금한 게 있어요.”
“뭡니까?”
지구로 전이해 온 첫날.
철왕국 출신의 옛 동료는, 푸른 눈동자를 반짝거리면서 물어 왔다.
“배우라는 거, 재미있어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