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98)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98화(198/199)
[외전] 그 후의 이야기 – (3)* * *
특별출연,
본래 출연진이 아닌 이가 드라마나 영화 등에 이벤트 형식으로 얼굴을 비추는 것이다.
친분 있는··· 또는 같은 소속사 배우들의 우정출연이야 이미 흔한 일이 된 터.
덕분에 요즘은 팬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볼거리로 자리 잡아, 심지어 같은 방송사의 다른 작품 캐릭터가 자연스레 세계관에 합류하기도 한다.
바로 오늘, ‘세 아가씨’의 최종회 촬영분처럼.
스튜디오 한쪽에 마련된 화장실. 나란히 서서 손을 씻던 스탭 하나가 중얼거렸다.
“와, 이게 되네. 며칠 전에 KBC에 이길도랑 장허용 같이 떴을 때 소리질렀는데, 우리도 캐릭터 콜라보를 다 하고.”
“원조 캐릭터 맛집은 종편이지. 지금까지 안 한 게 이상할 정도라니까.”
“하긴··· 그냥 묻기엔 아까운 캐릭터였어.”
진지유와 백하니가 시청률을 견인하던 주말극에, 강력한 우군이 출연을 예고했다.
이제 얼굴을 보기도 힘들어진 박건.
그것도 전설로 남은 수많은 작품 중, 데뷔작인 ‘서울의 개’ 속 최승으로.
“저,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영광이에요, 배우님! 진짜 팬이에요!”
“저도요! 혹시 사진 한 장만 찍어 주시면······.”
그래서일까. 박건이 매니저와 나타나자마자 스탭이고 배우고 할 것 없이 몰려들어, 사진을 찍어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노난 양반은 ‘세 아가씨’의 연출, JNBC의 양아들이 된 나종모 PD다.
사람들을 가까스로 헤치고 다가온 나 PD는 박건 형제의 손을 덥썩 잡았다.
“건이 씨, 선이 씨!”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어요?”
“못 지냈지, 우리 건이 씨 보고 싶어서 잠도 못 잤다고! 그치, 오 작가?”
인사를 나누는 두 사람 뒤로, 두꺼운 뿔테안경을 쓴 여자가 다가왔다.
이번 작품을 통해 나종모 PD가 발굴한 또 한 명의 신인, 오하늘 작가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중얼댔다.
“우와, 박건··· 박건 배우님이 진짜로······.”
“그래! 오 작가가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박 배우! 내가 우리 국장님 비상금까지 털어서 특출 받아온 거 아냐. 건이 씨 한번 부르려면 방송국 기둥뿌리가 휘청거린다고.”
“전 처음 듣는 얘기인데요.”
나종모 PD는 헛기침을 몇 번 했다.
“농담이지, 농담. 근데 저쪽 분은?”
촬영장에 도착한 뒤, 박건만큼이나 관심이 쏟아진 손님 한 명이 더 있었다.
저 멀리, 모자를 눌러 쓴 아리아 주변엔 벌써 사람들이 잔뜩 몰려든 상태였다.
“와, 그분! 누나모 나왔던 그 언니 맞죠!”
“안녕하세요. 오늘 일일 매니저로 박선 팀장님이랑 같이 왔어요.”
“사인 좀 해 주세요. 유튜브 보자마자 저희들 다 넋이 나갔었는데, 실물이 더 존예시네.”
“제가 사인이 아직 없어서··· 일단 이름만이라도 적어 드릴게요.”
수첩을 내밀었던 조명팀 스탭은 세상 감동받은 표정이 됐다.
“필기체 대박, 사인도 멋있어······.”
그 박건의 옛 동료란 타이틀에, 웹예능에서 눈도장까지 찍었으니 인기가 하늘을 찌를 만도 하다.
박건은 간단하게 소개했다.
“제 동료입니다. 현장 구경을 하고 싶대서, 겸사겸사 선이랑 같이 데려왔습니다. 혹시 문제가 될까요?”
저런 마스크가 배우라면 구경만 시키는 게 오히려 문제다. 나종모 PD가 슬그머니 박건의 귀로 입을 가져간다.
“왜, 여기 나오고 싶은 마음은 없대? 배역이 없으면 엑스트라나 카메오라도 괜찮아. 오 작가가 또 드리프트 귀신이거든.”
“아직 작품을 고르는 중이라서요. 오늘은 견학만 하겠답니다.”
“에이, 그럼 어쩔 수 없지.”
아쉬운 기색이 역력한 나 PD가 오하늘 작가와 떠나가고, 이내 ‘세 아가씨’의 주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단발까지 머리를 기른 진지유와 배역을 위해 파격적인 은발 숏컷을 감행한 백하니, 거기에 틴에이저 출신 스타 홍이랑까지.
거대한 가문과 엮여, 모략과 암투를 헤쳐나가는 세 자매의 서사만으로 무려 20%의 시청률을 견인한 주인공들이다.
“오빠! 언제 왔어요?”
“방금요. 나 PD님이랑 오 작가님하고 인사하던 참이었습니다.”
“이쪽은 이랑이. 엄청 잘 하는 동생이에요. 오빠랑 작품 한다고 잠도 못 잤다던데.”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세요! 진짜 팬이에요!”
진지유가 홍이랑을 소개시켜 준 뒤, 그때껏 뒤쪽으로 빠져 있던 백하니도 뚱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도착했으면 연락이라도 하지.”
“촬영 중이었잖습니까. 민폐일까 봐 회사에서 바로 왔죠.”
“···민폐는 무슨. 다들 좋아 죽는 거 안 보여요?”
박건은 촬영장을 한 차례 휘둘러보았다.
“그건 모르겠고, 오랜만에 같이 하는군요.”
“그러게요. 백정장군 이후로 처음이니까.”
손을 모아쥔 홍이랑이 눈을 반짝이며 두 선배들을 번갈아 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선배님들 전부 같은 작품에 나오셨구나! 서울의 개랑 백정장군, 주신의 서까지 다 챙겨 봤었어요, 저!”
두 여배우 모두, 특히 진지유랑은 합을 많이 맞춰 본 경험이 있다.
진지유와 홍이랑이 박선과도 인사를 나누는 사이, 백하니가 영 마뜩찮은 표정으로 물었다.
“쟤는 왜 데려온 거예요? 같이 나오는 것도 아니면서.”
뭔가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 싶더니, 같이 온 아리아를 본 모양이었다. 박건은 어깨를 으쓱했다.
“현장이 보고 싶다던데요.”
“명배우 납셨네, 본인 작품이나 고르지.”
“지금 고르는 중입니다. 데뷔작이라 다들 고민이 많아서.”
“됐고, 일이나 잘 해요. 오랜만에 복귀하면 호흡만 실수해도 물어뜯으려고 드니까. 박건 은퇴니, 연기력이 저점이니, 이상한 소리 꾸준히 나왔던 거 그쪽도 알죠?”
박건의 한쪽 눈썹이 부드럽게 내려갔다. 그 역시 연예계 물을 먹은 게 몇 년이다.
사전에 진행된 특별출연 관련 미팅에, 나 PD가 뛸듯이 기뻐하면서도 걱정을 내비친 이유쯤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건이 씨, 괜찮겠어? 마지막 작품 이후로 공백기가 나름 길었잖아. 비중이 적은 편도 아니라, 혹시 부담스러우면······.
-예. 상관없습니다.
단순 카메오도 아니고, 엄연히 스토리라인에 녹아든 옛 캐릭터의 부활이다.
그것도 데뷔작··· 박건을 알린 첫 작품이자, 전설로 남은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그건 모르지만,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뭘 믿고?”
<서울의 개>,
인간 백정 최승이 돌아온다.
“내 배역이니까.”
*
‘세 아가씨’는 차씨 자매들의 이야기다.
첫째 차연,
둘째 차희,
셋째 차은.
부모를 사고로 잃은 세 명의 자매가 재벌가의 암투에 휘말려, 온갖 풍파를 이겨내며 성장해 나가는 인간승리 스토리.
설명은 간략하지만, 20회가 넘는 회차 동안 차근차근 쌓은 서사와 방대한 등장인물들을 에피소드에 훌륭히 녹여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PD님,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요? 서울의 개 마지막 회에서 최승이 죽었다는 설정인데, 여기서 다시 나오면 시청자들이······.
-걱정 마, 걱정 마. 내가 은 작가한테 허락까지 맡았다고. 오 작가는 그냥 다시 한 번 날뛸 수 있게 판만 깔아 주면 돼.
미팅 전, 오하늘 작가가 조심스럽게 제기한 문제는 나 PD가 화통하게 해결했다.
형사였던 친형에게 총을 맞아 사망한 것으로 공표됐지만, 사실 죽지 않고 모습만 감췄다는 설정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그렇게 살아난 최승··· 아니, 분장을 마친 박건이 세트장으로 걸어나오자 탄성이 터졌다.
“와, 그 때랑 똑같아요!”
“대박··· 이걸 다시 보네.”
좋은 배우가 오래 가듯, 잘 뽑힌 캐릭터의 존재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최승의 시그니처와 같은 후줄근하고 통 넓은 쥐색 양복에 색 바랜 구두.
당시 정리되지 않았던 머리를 아예 장발로 늘어뜨리고, 살짝 거무스름하게 분장을 하자 시간의 흐름이 여실히 느껴진다.
극중 ‘최승’이 나오는 씬은 바로 다음이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탭들 사이로, 아리아가 슬쩍 다가왔다.
“잘 어울리시네요, 용사님?”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듣는 사람 없는데.”
“미리부터 조심해야죠. 이런 사담도 다 마이크에 들어갑니다.”
“어휴, 이놈의 현대문명······.”
입술을 삐죽대는 아리아를 보며, 박건은 희미하게 웃었다.
“인기는 아리아가 더 많던데요. 적성에 잘 맞는 모양입니다.”
아리아는 짐짓 거만한 척 턱을 치켜들었다.
“그럼요. 수도에서는 매일같이 돌면서 기도를 드렸었는데, 전직 성녀한테 이 정도 팬서비스는 식은 죽 먹기라고요.”
“이제 이쪽 언어에 완전히 적응했군요.”
“지금까지 못 하면 바보죠. 잘 하고 와요.”
아리아가 빠져나간 직후, 약속이라도 한 듯 스탠바이 사인이 떨어졌다.
“자, 슬슬 준비하겠습니다!”
곧이어 시작된 촬영.
작중 주연들과 대립각인 ‘대흥그룹’에 둘째 차희가 납치당하고, 차연과 차은이 대한민국을 뒤흔들 로비 물증을 손에 넣지만 이내 따라잡힌다.
허름한 모텔로 끌려와, 손발이 묶인 묶인 자매 앞에 그녀들의 조력자가 내동댕이쳐진다.
“태우 씨!”
“천한 촌것들, 근본 없는 잡년들이 귀찮게 하고 있어. 회장님이 얼마나 상심하셨는 줄 알아?”
싸늘하게 내뱉은 ‘최 실장’, 피도 눈물도 없는 대흥의 사냥꾼 역을 맡은 유호석이 피투성이 사내를 발로 툭툭 찬다.
아직 숨은 붙어 있지만, 세 자매와 조력자 모두 살아나갈 수 없을 것이다. 첫째 차연―백하니―이 표독스럽게 외친다.
“더러운 쓰레기들!”
“그래, 그래.”
“김성오 GBC 국장 살해 사건, 정아라 판사 협박 및 인질극, 한동은행 횡령금 주선까지, 다 너희 짓이라는 증거가 있어. 우리한테 손끝 하나라도 댔다간······.”
말하던 차연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매몰차게 뺨을 올려붙인 최 실장이 빈정거린다.
“어쩔 건데? 어차피 네년들은 끝났어. 회장님이 기회를 주시면 목숨은 부지하겠지만, 어디 필리핀 같은 곳에나 팔려가겠지. 한국 땅은 평생 밟을 생각도 말아야······.”
쾅, 쿠당탕!
이번에는 최 실장의 말이 끊긴다. 모텔 방문이 통째로 부서져나가며, 덩치 큰 경호원이 부서진 문짝과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네놈은 누구냐.”
몸을 도사린 최 실장이 나지막이 묻자, 저벅저벅 들어온 장발의 남자가 대꾸했다.
“최 실장.”
“······?”
최 실장이 영문 모를 표정을 지을 때, 보이지도 않는 주먹이 목을 치고 지나갔다.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상대를 치우며, 최승은 차연과 차은에게 명함 한 장을 건넨다.
<승승장구 심부름센터>
[실장 최 승]“심부름센터······?”
이쪽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다. 차연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자, 불탄 나무껍질처럼 잔뜩 쉰 대답이 돌아왔다.
“당신 동생, 차희. 무슨 일이 생기면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아, 남 이사님이 얘기했던······.”
그제야 자매들의 눈빛에서 의심이 가신다. 최승은 잔뜩 낡은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곧 더 몰려올 거요. 대흥도 위기를 느꼈으니까. 기껏해야 일반인들이, 이렇게까지 저희를 몰아붙일 줄은 몰랐겠지.”
그 말을 증명하듯, 열린 창 아래서 거친 고함소리가 올라왔다.
최승은 아래쪽을 향해 턱짓했다.
“빨리 안 가면 늦을걸.”
이내 대흥의 경호팀으로 분한 스턴트맨들이 뛰어올라오며, 모텔 복도에서 치열한 격투가 벌어진다.
“컥······.”
“이 새낀 뭐야, 한꺼번에 덮쳐!”
“가스총! 총이라도 쏴서 제압하라고!”
다양한 연기로 스펙트럼을 증명했다지만, 배우 박건을 주목받게 한 것은 압도적인 액션이다.
앞서 대사들에서 여전한 존재감을 증명했다면, 1분도 안 되는 짧은 액션에서는 날것 그대로인 최승의 움직임이 그대로 재현된다.
헤드무빙만으로 고무탄을 피하고, 잡힌 상대의 발목을 부숴 던지고, 늑골이 으깨질 기세로 주먹을 꽂는 포악한 폭력들이.
“······.”
마지막 남자가 풀썩 쓰러지며, 일시적으로나마 길이 뚫린다.
차연과 차은 쪽을 본 최승은 치렁치렁한 머리를 쓸어올렸다.
“가요. 남연우 이사한테 안부 전하고.”
오하늘 작가는 프로 중의 프로다. 기존에 뿌려 뒀던 떡밥을 자연스럽게 최승과 이으며, 서사와 임팩트 모두를 잡는다.
이제 빠져나간 차씨 자매가 둘째 차희와 합류하며, 대흥과의 정면대결을 펼치는 하이라이트로 달려나갈 것이다.
은발의 숏컷, 차연으로 분한 백하니가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괜찮겠어요?”
수많은 시청자들의 애를 태웠던, 고독한 들개 같은 얼굴에 옅은 회한이 스친다.
그 사이··· 배우도 캐릭터도 한 단계 더 성장한 것일까. 마음의 짐을 벗어던진 자리로, 더욱 완숙해진 연기력이 들어찬다.
“죽어 보기도 했는데, 뭘.”
오늘 촬영엔 단 한 차례의 NG도 없다.
많은 의미가 담긴 대사를 마지막으로, 잔뜩 흥분한 나종모 PD의 오케이 사인이 울려퍼졌다.
“컷! 오오케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