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199)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199화(199/199)
[외전] 그 후의 이야기 – (4) (完)* * *
[폼은 일시적이나 클래스는 영원··· 부활한 ‘최승’, 차씨 가문 부흥 이끌다] [돌아온 최승··· ‘서울의 개’ 때와 달라진 점 12가지 분석] [“세 아가씨들에 최승이 왜 나와?” 부활한 박건 힘입어, 경쟁작 ‘압살’한 JNBC 주말극]박건이 등장한 ‘세 아가씨’의 마지막 회차는 순간시청률 28.8%, 평균 26% 이상을 유지하며 화려한 마무리를 거뒀다.
그리고 다음날, 숨쉴 틈도 없이 웰플릭스의 새로운 예능이 공개되었다.
피지컬리티.
지난 겨울, 웰플릭스에서 2주간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장르는 서바이벌 예능. 제목처럼, 참가자들이 각자의 피지컬을 겨뤄 최후의 1인을 선정하는 데스매치식 서바이벌이다.
해외에서 <분노의 주방>, <월드 오브 솔져스> 등 수많은 메가 히트작을 배출했던 닉 호건이 메가폰을 잡았고, 공개일 전날에야 출연자를 공개하며 팬들의 기대감을 최고조로 올렸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국적도, 성별도, 인종도 불문한 치열한 육체의 경쟁을 시작합니다.
-각자의 흉상 앞에 서 주시기 바랍니다.
-탈락이 결정될 시, 참가자는 자신의 손으로 흉상을 부수고 경쟁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이어, 긴장감 넘치는 음악과 함께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남녀들이 등장한다.
등장한 이들의 면면부터 화려하다. 네이비씰, 스페츠나츠, SAS 출신 장교, 소방관과 보디빌더, 금메달 출신 운동선수······.
화려한 경력들이 지나가는 와중, 마지막 순서인 111번째로 유일한 동양인이 걸어나온다.
-한국, 박건.
카메라는 짧고 단출한 자막과, 박건을 보고 수군거리는 참가자들을 번갈아 비춘다.
홀로 걸어나온 박건은 사람들을 흘끗 보더니 자신의 흉상 옆에 가서 섰다. 화면이 바뀌며, 미리 따 둔 개인 인터뷰가 오버랩된다.
-배우라고 들었는데, 위협적인 참가자들이 많다. 긴장은 안 됐는지?
-그다지. 더한 경험도 해 봤다.
-서바이벌에 임하는 각오는?
-너무 오랫동안 살아남지 않는 것.
마치 농담처럼, 수수께끼 같은 답을 던진 박건은 카메라 저편을 보고 슬쩍 웃었다.
이윽고 본 게임이 시작된다. 시지프스의 형벌을 본뜬 바위 굴리기, 상자 빼앗아 달리기, 진흙탕에서 벌어지는 맨손 참호격투 등등.
일대일 개인전부터 십대십 단체전까지··· 치열하게 벌어지는 모든 종목에서, 박건은 한 번의 패배도 없이 연승을 쌓는다.
-빌어먹을, 이게 말이나 돼!
-저 미친 동양인은 뭐야? 아시아에서 키운 비밀병기쯤 되는 건가?
-최근 전역했다잖아. 내 오른팔과 재산 절반을 걸고, 엄청난 군인이었을 게 분명해.
압도적인 무력의 우위.
폭발적인 순발력, 강인한 지구력, 바위와 맞서는 듯한 근력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다.
1화부터 3화, 4화, 5화··· 박건과 맞붙은 참가자들은 파도에 쓸려나가듯 무력한 모습으로 패배하며 스스로의 흉상을 부숴야 했다.
이내, 최후의 2인이 긴 줄이 놓인 단상에서 마주한다.
마지막에 맞붙게 된 출연자는 에네스 프로이츠카라는 러시아 출신 퇴역군인이었는데, 오랫동안 시스테마와 삼보를 수련한 모양이었다.
6피트 3인치(190CM)에 달하는 문신투성이 근육 거한이 비죽 웃었다.
-어이, 꼬마. 일대일 줄다리기는 장난이 아냐. 저 아래에 처박히고 싶지 않거든 기권하라고.
-넌 몇 살이지?
-서른여섯인데, 문제 있나?
-한참 어리군.
-······?
가벼운 트래쉬토킹으로 시작된 승부는, 에네스가 볼썽사납게 단상 밑으로 추락하면서 끝났다.
정확히 2.8초. 어린애 손목 비틀듯 끝난 결승전에, 대기실에서 모니터로 관람하던 참가자들 사이엔 적막만이 흐른다.
“······.”
1화부터 4화까지, 공개된 회차를 쭉 달리던 ‘박건 크루’ 멤버들도 할 말을 잃긴 마찬가지다.
“···어, 흠. 끝난 거예요?”
“당연히 끝났지, 역시 미스터 고드! 자, 모두 이 순간을 기념합시다. 인스타에 올릴 거니까, 다들 여기 좀 보고······.”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서희도가 바람 빠지는 소릴 내고, 소파 뒤쪽의 나종모 PD가 그 틈을 타 셀카봉을 치켜올린다.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어딘지 여유 넘치던 아리아가 한 줄로 평했다.
“완전 발랐네.”
다소 부족하던 아리아의 어휘력은 이제 토종 한국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지간한 줄임말은 물론, 최신 밈부터 영어와 중국어까지 원어민 수준으로 줄줄 외워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는 후문이었다.
“그 정도는 아니고··· 힘을 쓰긴 했습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저만하면 식은 죽까지도 못 갔잖아요. 표정 보니 딱 알겠네.”
“바로 전 상대가 더 어려웠어서요. 게임이 익숙하지 않아서 조금 헤맸습니다.”
“안 다치게 끝내려니까 그렇죠. 한창 때였으면 서바이벌이고 뭐고, 편집할 분량도 없었겠는데?”
박건이 대꾸하자 아리아도 지지 않고 누구의 자세가 좋다는 둥, 누구는 부상 탓에 밸런스가 나빴다는 둥 토론을 시작했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유준일 실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 회사 배우님들, 참 대단하다니까.”
* * *
스타의 삶은 바쁘다.
‘피지컬리티’ 방영 일주일 뒤.
쏜살같이 하루가 흘러가고, 한밤중 돌아온 본가에서 부모님의 열렬한 환영이 쏟아졌다.
“둘 다 고생 많았어. 저녁은 먹었니?”
“응, 미팅 자리에서 대충 때웠지. 엄마랑 아빠는?”
“지금 우리가 밥이 넘어갈 때냐! 잘했다, 정말 잘했어!”
어머니 한영주 뒤에서, 불쑥 나타난 박열호가 두 아들을 한꺼번에 끌어안았다.
“건이도 선이도 무지하게 멋있었다. 이제 전 세계 사람들이 대한민국 소방관의 저력을 알게 됐을 거야. 그 덩치들 사이에서 압도적으로 우승을 해 버렸으니, 청장님 표창이 내려와도······.”
“여보, 건이는 군인 출신 배우로 나갔잖아요.”
“소방관 아들이면 반은 소방관이지!”
아들 자랑은 아빠가 하는 법이다. 소방의 명예를 드높였다며 기뻐하는 아버지에게서 겨우 벗어나, 형제는 차 한 잔씩을 들고 서재 겸 작업실에 마주 앉았다.
시나리오 뭉치들을 테이블에 잔뜩 깔아 놓은 박선이 안경을 꺼내 썼다.
“이건 지난번 계약서, 이건 각색 방향이랑 정식 각본화를 시켰을 때 바뀌는 부분들이야. 아직 기획 단계고 형의 의사에 따라서 변동 가능성도 충분하니까, 확인만 하면 될 것 같아.”
“응, 알겠어.”
“그리고 여기··· 이쪽은 전부 회사에서 받은 시나리오. 표시해 둔 건 본부장님 픽이야.”
철이 된 파일 중, 몇 개는 노랗게 칠해져 있었다. 첫 장을 넘기던 건은 고개를 들었다.
“본부장님이 작품 추천을?”
“응. 개인적으로 연락 주시는 감독님이랑 PD님들도 엄청 많고.”
“개인적이라면······.”
“대충 인선도 정했고 촬영 날짜도 코앞인데, 형이 꼭 배역을 맡아 줬으면 좋겠다고. 원하는 배우, 배경, 작품 방향까지 맞출 수 있으니 미팅만 주선해 달래.”
건은 턱을 비스듬히 내렸다.
“그건 좀 민폐겠는데. 지금 일정이 언제쯤 끝날 거란 기약이 없어서.”
박선도 신중하게 동감을 표했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번에 준비하는 우리 작품, 아직 아무도 모르지?”
“응. 그럴 거야.”
“좋아, 오피셜로 띄우는 것도 회사랑 논의해 봐야 하니까··· 일단 내일 대표님이랑 본부장님 만나 뵙고 이야길 꺼내야겠어. 그럼 아마 2차 미팅 날짜가 내주쯤······.”
“선아.”
태블릿에 얼굴을 파묻다시피 한 채, 일정을 확인하던 박선이 화면에서 눈을 뗐다.
“어, 응?”
“예전 생각 나지 않아? 첫 작품 찍은 다음, 그 때도 이렇게 같이 골랐었잖아.”
“맞아! 형 덕분에 내가 안목 있는 매니저처럼 돼 버려서 곤란하다니까. 다른 팀장님들도 이 시나리오 어떠냐면서 가져오시고··· 지난주엔 아희가 작품 하나만 봐 달라더라구.”
짐짓 공을 형에게로 돌리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박선을 ‘박건 낙하산’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제 형이 직접 골라 연전연승했던 작품들의 후광 탓이 아니다.
회사에선 이미 유명해진 근면함은 물론, 겉보기엔 말랑해 보이지만 의외로 수완이 좋아 따르는 배우들도 제법 생겨났다.
특히 될성부른 떡잎들을 아이돌이고 배우고 점찍는 능력이 뛰어나, ‘천사 버전의 차인혁’이라고도 불린다는 모양이었다.
“역시 차기 실장 후보자.”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일 잘하시는 팀장님들이 얼마나 많은데, 난 이제야 좀 적응했는걸.”
질겁하던 박선은 이윽고 멋쩍게 웃었다.
“···그래도 뿌듯하긴 하다. 영호 형이랑 승아 누나도 오랜만에 보고.”
며칠 전엔 한동안 못 봤던 친구들, 배영호와 서승아를 불러 ‘피지컬리티’ 방영 파티를 했다.
처음에는 조용히 하고 넘어갈 생각이었지만, 소식을 들은 지인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결국 연예인 친목회가 되고 말았다.
‘야, 건아··· 요즘 지유 씨 좀 잘 챙겨줘라. 그 이상한 외국인, 어? 아리안지 아리랑인지 하는 여자한테 배역 안 뺏기게 신경을······.’
잔뜩 취한 배영호가 건을 붙들고 술주정을 늘어놓는 동안, 서승아는 한쪽에서 변휘승과 샴페인 배틀을 벌였다.
막판에는 포 퀸즈 멤버들까지 도착해, 홈파티는 무려 다음날 낮까지 이어지다가 끝났다.
“승아가 조만간 넷이서 보자던데. 변 형이 마음에 든 모양이야.”
“그것도 신기해. 그 누나가 휘승 배우님 스타일을 좋아할 사람은 아닌데··· 묘하게 죽이 잘 맞는 것 같더라고.”
의외의 로맨스로 이야기꽃이 필 때, 뒷주머니의 휴대폰이 울렸다. 액정에 뜬 이름은 파티에 불참했던 동료였다.
진지유가 웬일이지? 고개를 갸웃한 건은 동생에게 눈짓하곤 통화 버튼을 눌렀다.
“박건입니다.”
받자마자 상큼한 목소리가 저편에서 들려왔다.
-오빠! 어디예요?
“지금 본가죠. 선이랑 있습니다.”
-앗, 그럼 잠깐 나올래요? 딱 그쪽 지나가던 참이었는데.
이 정도면 대놓고 찾아온 수준이다. 건은 시계를 흘끗 보고 다시 물었다.
“지금 말입니까?”
-네, 사실 벌써 다 왔거든요.
*
진지유는 지하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건이 조수석에 올라타자 다짜고짜 꽃다발이 내밀어졌다.
“웬 꽃입니까?”
“피지컬리티! 오빠가 우승했잖아요. 하필 그때 해외 일정이 잡혀서··· 그래도 파리에서 열심히 응원했어요.”
회사 사람들과 ‘피지컬리티’를 함께 보던 날, 진지유는 앰배서더로 활동하는 브랜드 쇼 때문에 한국에 없었다.
축하한다는 톡만 엄청 울렸었는데, 멀리서도 공개되자마자 몰아본 모양이었다.
건은 동료의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고마워요. 잘 보관하겠습니다.”
“말이라도 감사하네요. 오빠가 꽃이랑 안 친한 거, 회사 사람들은 다 알아요.”
“그래도 누가 준 건 좋아합니다.”
<세 아가씨>에 출연했던 이후, 진지유와 만나는 것도 오랜만이다.
파리는 좋았다느니, 근황은 어땠느니, 소소한 사담이 지나가자 어색한 정적이 찾아왔다.
네일팁 달린 손톱을 내려다보던 진지유가 불쑥 그를 불렀다.
“저, 오빠.”
“예.”
“궁금한 게 있는데요.”
“예.”
이번엔 잠깐 침묵이 흘렀다. 진지유는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물었다.
“제가 오빠 좋아하는 거 알죠?”
“예.”
진지유는 볼에서 바람 빠지는 소릴 냈다.
“···진짜, 오빠도 참 한결같아요. 그게 아는 사람 반응이냐구요.”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적이 없어서.”
“진짜요? 연락 오는 사람들은?”
건은 잠깐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애초에 얘길 잘 안 나눠서요. SNS도 선이가 관리하고, 개인적인 교류는 지인뿐입니다.”
“···그것도 오빠답네요.”
고개를 살래살래 젓던 진지유는 픽 웃었다.
“쭉 생각해 봤는데요. 그 한결같음 때문에 오빠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연예계에서 한 번도 못 본 캐릭터가, 몇 년이 지나도 변한 게 없으리라고 누가 생각하겠어요.”
건은 새삼스레 눈앞의 여배우를 보았다. 한창 철왕국의 기억을 찾으려 동분서주할 무렵··· 동료가 표하던 호감표시는 알고 있었다.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서, 아리아가 돌아온 뒤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 두었을 뿐이다.
‘나이 차이도 난다고 생각했었지. 철왕국에서 보낸 시간이 수십 년이니.’
건이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진지유는 손사래를 쳤다.
“말 안 해도 돼요. 충분히 대답이 됐으니까.”
“지유 씨.”
“그냥, 하는 김에 조금 더 좋아해 보죠. 당장은 답이 안 나올 것 같긴 한데··· 대한민국 여배우 절반은 박건 짝사랑해 본 경험이 있을 거라서.”
“그건 몰랐습니다.”
“···앞으로도 몰랐으면 좋겠네요.”
둘은 얼굴을 마주 보다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웃던 진지유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맞아. 오빠 보러 간다니까 하니 언니가 말 좀 전해 달라던데요.”
“뭘 말입니까?”
“아리아랑 막, 열애설 같은 게 터져서 회사 주가 떨어지면 가만 안 두겠다고······.”
차원을 넘어 재회한 전우지만, 저쪽과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될 생각은 아직 없었다.
건은 대수롭지 않게 설명했다.
“그건 잘 모르겠네요. 다음 작품에 도움을 좀 받아야 해서.”
“응? 다음 작품요?”
“예. 제가 각본을 맡은 첫 작품인데, 주연 중 한 명으로 부탁할 게 많습니다.”
연습생 시절부터, 이 바닥 생활 십 년이면 보통 사람 눈치는 한참 넘는다.
진지유는 눈이 커져서 입을 가렸다.
“설마, 팬카페에 연재했던 그거······.”
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는 한참 전부터 오갔었는데, 조율할 부분이 많아서 오피셜이 늦어졌습니다. 제작비 문제도 있었고요.”
“대박··· 역시, 그냥 소설로 끝나기엔 너무 아까운 작품이었다니까요. 이번엔 각본부터 주연까지 다 참여하니까, 진짜 엄청난 게 나올 거예요!”
동료이기 전에 한 명의 팬이다. 진지유는 자기 일처럼 흥분하다가 가장 중요한 게 생각났다는 표정이 됐다.
“아, 그럼 제목은? 그대로 가요?”
건은 슬며시 웃었다. 바로 어젯밤, 그를 찾아온 또 다른 손님과의 대화가 떠오른 탓이었다.
-철왕국 이야기입니다.
-예?
윤발25는 입을 떡 벌렸다.
-어어, 혹시 그거 아니에요? 배우님이 팬카페에 연재하시던 글요. 나도 연재분 쓰다가 막히면 자주 가서 구경했는데!
-맞습니다.
지구로 귀환한 뒤, 반쯤은 취미 삼아 팬카페에 연재했던 ‘철왕국 이야기’. 그 장대한 서사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굵직한 플랫폼들이 오퍼를 넣었지만, 최종 결정은 최근 초대형 투자를 유치한 C&J의 C-Ving으로 정해졌다.
지금은 신임 대표가 된 진규일 전(前) C&J 본부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업고, 작품은 총 24화로 제작될 예정이었다.
-C&J, 창진그룹의 진규일 대표와는 예전부터 연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좋은 조건으로 계약이 가능했고요.
<주신의 서>도 어마어마한 자본이 투입된 판타지였지만, 이쪽은 오리지널 스토리 아닌가. 윤발25는 침을 튀기며 기대감을 피력했다.
-캬, 축하드립니다! 웹소설 작가로서, 이건 어디 OTT에서 드라마로 만들면 죽여주겠다 싶었어요. 특히 그 마왕··· 누구야, 발록인가 뭔가 있잖아요.
-분노의 발몬 말입니까?
-아, 발몬! 전 그 보스가 마음에 들더라고요. 시선만 스쳐도 존재가 분해돼 버린다니, 완전 끝판왕이 따로 없어서.
-쉽지 않았습니다.
-예, 뭐. 그런 CG 구현은 아무리 기술이 발전했어도 쉽지야 않겠지만······.
신나게 떠들던 윤발25는 무언가 생각난 듯 손가락을 튕겼다.
-맞다, 제목은 그대로 간다고 하셨죠. 철왕국 이야기?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사실 전 보자마자 다른 제목이 생각났거든요. 요즘 유행하는 웹소설 식으로 풀어서, ‘용사님은 천만배우’ 라거나······.
건은 어깨를 으쓱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제작사랑 투자자들의 의견도 중요해서.
-하, 어쩔 수 없죠. 나중에 가제라도 꼭 고려해 주세요. 저런 제목이 진짜 히트라니까요.
못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던 윤발25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래서, 첫 촬영은 언제래요?
*
시간은 흐른다.
가을이 겨울로··· 겨울이 또 봄으로.
기승을 부리던 추위가 물러가며 마지막 꽃샘추위마저 사라질 즈음.
꽃망울이 봉오리를 터뜨리며 만개하려는 지리산의 한 부지에, 촬영팀이 자리를 폈다.
“이쪽! 여기예요, 김 선배!”
지리산 국립공원은 그 장엄한 풍광과 위용 때문에 촬영 장소로 자주 점찍힌다.
얼핏 다큐멘터리 촬영팀인가, 싶기도 하지만 내리는 사람들의 인종이 제각각이다.
“헬로우, 나이스 투 미츄.”
“어··· 예, 떙큐. 반갑습니다.”
스탭들이 어색하게 인사하는 동안, 슬슬 스타렉스보다 더 큰 차량들도 들어온다.
유연한 차체의 스프린터 밴. 국내에서 이젠 제법 많이 볼 수 있는 ‘연예인 차’라지만, 내리는 면면들이 하나같이 여간내기가 아니다.
“아, 장미 씨.”
“송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해요, 안녕해. 괜찮으니까 그러지 마.”
연극판 출신들의 인사성은 유명하다. 허리까지 굽히려는 이장미를 뜯어말린 중견배우, 송현아가 손목시계를 본다.
“다른 사람들은? 나 늦은 거 아니지?”
“네. 박건 배우가 제일 빠르긴 했는데··· 지금은 최필립 배우랑 저 위로 올라갔어요. 스탠바이 전에 앵글을 확인해야 한다면서.”
“아유, 역시 부지런하네. 그럼 장미 씨는 나랑 같이 가요. 초행인 사람들, 아마 오면서 애 좀 먹을 거야.”
“네, 선배님!”
.
.
.
저 아래쪽에서, 도착한 밴 문이 열리며 연예인으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내린다.
이제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해지는 주차장을 내려다보며, 최필립이 휘파람을 불었다.
“역시 월드스타네요. 저 엉덩이 무거운 양반들까지 일찍 나오고.”
“첫 촬영이라서일 겁니다.”
대꾸한 건도 아래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막 도착한 배우, 송현아가 이장미와 함께 촬영감독들과 인사를 나누는 중이었다.
“아직 박건 씨는 본인의 영향력을 몰라. 촬영장에 가장 먼저 출근하는 글로벌 스타, 솔선수범하는 칸의 아들이 얼마나 귀감이 되겠어요.”
“필립 씨도 같이 하시겠습니까?”
최필립은 기대 말라는 듯 코웃음을 쳤다.
“일 없어요. 난 그런 캐릭터 아니니까, 나중에 신승이 형이나 꼬셔 봐요.”
“구 배우님은 고정이 아닌데요.”
“그 양반이 고정 아니라고 안 나오겠어요? 요즘 할 것도 없다던데, 촬영 끝까지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할걸.”
그들이 시시덕거리는 와중,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과 엑스트라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칸의 아들이 각본부터 주연까지 두루 맡은 작품이다.
이번 <철왕국 이야기>가 제작된다는 오피셜이 뜬 뒤, 방송가는 일대 파란에 휩싸였다.
오디션을 준비하는 이, 인맥을 활용하는 이, 로만에 직접 찾아오는 이까지.
대대적인 인선人選이 끝난 뒤, 합류한 배우와 스탭들의 숫자가 어마어마하다는 후문만 퍼졌다.
“그나저나, 확실히 사람이 많네요. 기자들을 추려냈는데도 저 정도면··· 웬만한 블록버스터 영화보다 규모가 크겠어.”
최필립의 배역은 주인공과 한 부대에서 복무하던 직속 후임이다.
팬카페에 연재됐던 오리지널 스토리를 따라가는 이번 작품에서, 정작 주인공의 이름은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지구에서는 ‘박 중사’, 이세계로 전이된 뒤에는 이름 없는 용사로만 불리며 저 대악마들과 처절한 혈투를 벌일 뿐이다.
“예전에 함께 작업했던 분들까지 와 주셨으니까요. 감사한 일입니다.”
“박건 씨가 감사할 게 뭐 있어요? 역대급 경력에 이름을 써넣을 기횐데, 합류하려면 지구 반대편에서라도 날아와야지.”
최필립의 말마따나, 이번 작품에는 배우뿐 아닌 제작진 역시 초호화로 꾸려졌다.
<고드 : 분노의 파수꾼> 시절 인연을 맺은 베테랑 촬영감독들에, <주신의 서>에서 지휘봉을 잡았던 피터 숀 감독도 합류했다.
그 밖에도 내로라하는 미술 및 음향감독들까지 총출동해, 철왕국의 분위기를 완벽히 재현하겠다며 각오를 불태우는 중이었다.
“필립 씨! 건이 오빠!”
“거기 주연 두 분! 슬슬 내려와요, 다들 기다리다 목 빠지겠어!”
어느새 사람들이 모였는지, 저 아래서 그들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장미, 진지유, 그 외 중견 배우들과 오디션으로 발탁된 신인들······.
저마다 기대에 찬 얼굴들 틈에서, 백금발의 성녀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걸어나왔다.
“준비됐어요, 용사님?”
함께 서 있던 최필립이 어깨를 툭 쳤다. 건은 새로운 동료를 흘끗 본 뒤, 늘 해 왔던 대답을 입에 담았다.
“물론입니다.”
.
.
.
작품의 첫 장면이 담길 산중턱.
수많은 카메라들이 군복 차림의 배우를 조망한다. 한참 만에 입어도 익숙한 복장을 한 채, 건은 잠시 눈을 감았다.
‘이세계에서 지구로 귀환한, 첫 번째 씬.’
맨 처음, 카메라 앞에서 철왕국의 공기를 감지했을 때가 퍼뜩 스쳤다.
비록 합기는 사라졌지만, 이쪽으로 쏟아지는 기대와 바람은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용사의 업(業)을 벗은 한 인간이 해야 할 일 역시도.
내 힘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또 다른 힘을 줄 수만 있다면······.
“용사든 배우든, 이름이야 상관없겠지.”
“예?”
“아닙니다. 옛날 생각이 나서요.”
철왕국의 용사행, 그 기나긴 여정을 함께할 총괄 프로듀서로는 베를린 영화제를 제패한 옛 동료가 돌아와 주었다.
야구 모자를 눌러쓰기 전, 메가폰을 든 김률 감독은 짧은 눈짓을 보냈다.
“자, 그럼 준비하시고······.”
눈부신 불빛들이 차례로 켜진다. 조명판과 반사판, 초대형 LED가 열기를 내뿜는 순간, 렌즈가 겨눈 현실은 또 다른 세계로 탈바꿈한다.
‘이제, 정말로 돌아왔다.’
귀환한 용사는, 빛 속에서 환히 웃었다.
“스탠바이, 큐―!”
* * *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야진철입니다.
첫 웹소설 연재였음에도 독자님들의 과분한 사랑 속에서 유료화까지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건강상의 문제로 후반부 연재 주기가 떨어지며 실망시켜 드렸지만 ^_ㅠ 그럼에도 완결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건 독자 여러분들, 이 글을 한 번이라도 봐 주신 모든 분들이 계셨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 박건도, 로만의 식구들도, 철왕국의 옛 전우들도, 분량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애정을 가지고 그려내려 노력했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은 작가임을 저 스스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차기작에서는 보다 정교한 구성과 많은 비축분, 완결까지의 스토리라인을 탄탄하게 준비해 더욱 재미있는 글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전까지 썼던 글과 앞으로 쓸 글이 많지만, 이번 작품의 독자님들은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읽어 주신 분들과 응원해 주신 분들, 수천 번을 거듭해도 부족할 만큼 감사드립니다.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글로 보답하는 야진철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