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21)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21화(21/199)
드라마가 남긴 것 (3)
* * *
“아니, 지유 씨!”
“축하드려요. 피디님.”
이미 혀가 꼬부라진 나종모 PD가 호들갑스럽게 놀라는 시늉을 했다.
“종방연 때 오신다면서요, 막방 쫑파티는 어떻게 알고 또 와 주셨습니까.”
진지유는 미안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았다.
“하필 그때 해외 스케줄이 잡혀서요. 서울의 개 식구들은 출국 전에 꼭 보고 싶어서 슬쩍 왔어요. 아, 혹시 특별출연이라 못 끼는 거면······.”
“누가 못 낀대요, 특출, 보출, 엑스트라들도 다 우리 식구지! 안 그래, 김 감독?”
“말해 뭐합니까. 그니까 얼른 산삼주나 마저 까시죠, 식구들 기다리잖아요.”
무술감독과 촬영감독이 산삼주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사이, 은희욱 작가가 진지유에게 슬그머니 다가왔다.
“스케줄 들어간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작가님, 제 스토커세요?”
“팩트 체크는 해야지. 광고도 귀찮아서 안 찍는다던 애가 갑자기 해외?”
술잔을 든 진지유가 웃는 얼굴 그대로 입술만 움직여 대꾸했다.
“종방연 때 관계자들도 올 거 아냐. 놀러온 사람한테 얼굴 들이밀면서 작품 찌르려고 난리 칠 텐데, 여배우 정신건강에 해로워.”
“어휴, 연예부 기자들이 이 꼴을 봤어야 되는데. 로만 홍보팀이 시사회마다 챙겨주니까 진지유 내숭을 아무도 모르지.”
“백하니보다 심하겠어? 걔는 자기가 걸치는 명품 빼고 인생이 다 가짜야.”
실실 웃던 은희욱 작가가 갑자기 표정을 바꿨다.
“너, 혹시 그거냐? 박건 씨 영입 팀, 중만이 아저씨 특별 지령으로······.”
“아니니까 관심 끄셔. 나 간다.”
진지유는 때마침 다가온 서희도에게 아는 척을 하면서 가 버렸다. 뒤에 남겨진 은희욱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한번 발을 들였으면 좋건 싫건 프로니까. 당사자들이 알아서 하겠지.”
*
밤이 깊었을 때는 멀쩡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스탭들은 여태 한 고생을 한풀이라도 하듯 마셔 댔다.
산삼주를 혼자 절반이나 축낸 나종모 PD는 일찌감치 뻗어 실려나갔고, 용준상과 서희도도 돌리는 술잔을 받다가 녹초가 됐다.
“어, 이 테이블도 생존자가 있었네?”
술 세기로 유명한 김정남 촬영감독이 맥주 피쳐를 싸들고 가다가 멈춰 섰다.
“박건 씨는 괜찮아? 많이 마셨으면 무리 말고 들어가요. 스탭들 템포 따라가다가 술병 날라.”
“예. 조금만 더 먹다 가겠습니다.”
촬영감독이 지나간 뒤, 건은 새 소주 한 병을 땄다.
‘여긴 잘 안 취하는군. 철왕국 증류주에 익숙해져서 그런가.’
난쟁이들이 오크통에 담근 술은 웬만한 위스키보다 도수가 셌다. 현지표 폭탄주에 비하면 이쪽 세상 소주는 음료수나 마찬가지다.
옛 추억을 회상하고 있을 때, 고기 냄새를 뚫고 우디한 향이 확 끼쳤다.
“저도 한 잔 주실래요?”
“아, 지유 씨.”
얼굴이 발그레해진 진지유가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건의 앞에 널린 소주병들을 보곤 눈이 동그래졌다.
“와, 숙취해소제 뭘로 쓰세요? 이거 반만 마셔도 아침에 못 일어나겠다.”
“체질이 타고나서요. 지유 씨는 괜찮으십니까? 자리에 손님이 많던데.”
명색은 특별출연이지만, 가장 이름값 높은 여배우답게 진지유의 자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진지유는 큰 눈을 깜빡여 윙크했다.
“대외 주량은 두 병. 마음먹고 달리면 네 병까지도 마셔요. 아빠가 부산 토박이에 말술이신데 빼닮았나 봐요.”
“털털한 성격이시군요.”
“이미지관리도 옛말이죠. 같은 소속사에 진짜 내숭덩어리가 있어서, 겹치는 컨셉은 안 잡기로 했어요.”
다른 여배우들과는 합을 맞출 기회가 별로 없었다. 몇 화 만에 퇴장한 조연, 이름이 아마··· 강한나랬나?
기억도 잘 나지 않았기에 건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무튼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는 제가 해야 할 것 같은데요? 특별출연 한 장면 찍어 놓곤 화제성만 쏙 빼먹었잖아요.”
“상부상조 아니겠습니까. 용준상 선배님이나 서희도 씨도 많이 고마워하셨습니다.”
서로에게 술을 따라 준 둘은 잔을 부딪쳤다.
“다음엔 꼭 같이 해요. 특별출연 말고, 둘 다 주연으로요.”
“불러 주시면 언제든 가겠습니다.”
진지유의 표정이 다 안다는 듯 새침해졌다.
“그거 립서비스죠? 아까 나 PD님한테도 그러시더니, 불러도 관심 없으면 절대 안 들어올 거 다 알아요.”
“아뇨, 진심입니다. 연기도 실제 못잖게 표정이 다양하시던데요.”
길게 깎은 오이를 입으로 가져가던 진지유의 손이 멈췄다.
“제 연기 봤어요?”
“예, 선이한테 물어봐서 몇 작품 봤습니다. 과외선생으로 나오셨던 데뷔작이랑, 최근 찍으신 스릴러 영화요.”
“하필 봐도 그걸······.”
진지유는 미묘한 어조로 중얼거리다가 금방 표정을 풀고 웃었다.
“그거면 됐죠. 박건 씨랑은 완전 정극 쪽 같이 찍어도 재밌을 것 같아요.”
“은 작가님 작품으로 말입니까?”
“절대. 이제 스릴러랑 느와르는 질렸어요. 좋은 작품 있으면 공유할 테니까, 그쪽으로도 뭐가 들어오면 알려주세요.”
주변을 둘러봤지만 매니저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까 신나게 받아 마시더니, 둘 다 어디서 뻗어 있는 모양이었다.
“연락은 회사로?”
“설마요. 번호 찍어 주세요.”
진지유는 스페이스그레이 색상의 아이폰을 내밀었다. 하얗고 긴 손가락이 심플한 케이스를 받친 채 까딱거린다.
‘이게 그, 비공식 스카우트 같은 건가?’
잠시 고민하던 건은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스카우트라면 우습고, 개인적인 관심이라면 더더욱 말이 안 된다.
상대는 대형 엔터테인먼트의 간판스타, 이쪽은 운 좋게 반짝 인기몰이를 한 조연일 뿐이다.
“이건 제 번호입니다.”
휴대폰을 돌려받은 진지유는 픽 웃더니 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도 제 번호거든요? 매니저 연락처 줄 거면 여기까지 안 왔어요.”
“예, 저장했습니다.”
“마지막 화··· 잘 됐으면 좋겠네요.”
뺨을 만지작대던 진지유가 중얼거렸다. 건도 마주 덕담을 건넸다.
“저도 진지유 씨가 잘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쭉.”
시선이 마주쳤다. 진지유는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이내 생긋 웃어 버렸다.
“그런 말 오랜만에 들어요. 팀장님도 저한테 뭘 하라고만 했지, 잘 될 거란 응원은 잘 안 해 주시거든요. 팬미팅은 아이돌 그만둔 뒤로 한 번도 못 열었고.”
“그렇습니까.”
“고맙다는 얘기예요. 연락할게요.”
진지유는 눈인사를 하곤 떠나갔고, 그 자리를 다른 스탭이 채웠다.
건은 바람도 쐴 겸 가게 밖으로 나왔다. 어딜 갔나 했더니, 박선은 가게 입구에 쪼그리고 앉아서 겔겔대고 있었다.
“어, 혀어엉.”
“응. 많이 취했다. 그만 대리 불러서 집 가자.”
“아냐아, 아냐, 산삼주가 너무 세서··· 이제 다 깨 가.”
현도균 감독이 권하는 산삼주를 몇 잔 마셨지만, 취기는커녕 간에 기별도 안 갔다.
박선이 여전히 꼬인 발음으로 말했다.
“형, 내가 무지무지 고마워하는 거 알지? 1년차 로드가 배우 전담이라니, 형 아니었으면 이런 자리에 끼지도 못했을 거야.”
“나도 너 아니었으면 여기 없었어. 언감생심 배우는 꿈도 못 꿨고.”
박선은 눈물을 글썽이다가 기어이 건을 부둥켜안고 고해성사를 시작했다.
“오 실장님이랑 싸웠을 때는 진짜 심장 내려앉는 줄 알았어. 본부장님에 대표님에, 혹시라도 나 때문에 형 전역 날 무슨 일이 생겼으면······.”
그러고 보면 오귀준인지 뭔지, 그 오줌싸개 실장이 나름 은인인 셈이었다.
동생을 때리지 않았으면 그날 로만에 갈 일도, 은 작가와 마주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괜찮아. 합기를 못 써도 그런 인간들은 백 명도 거뜬하니까.”
“합기? 그게 뭐야?”
“있어. 옛날에 먹고 살았던 거.”
“······?”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동생을 데리고 들어가려다가, 박건은 길 맞은편을 봤다.
사람들 눈이 잘 안 닿는 골목 한쪽에 새까만 스프린터 밴이 서 있었다.
돈이 있어도 일 년은 기다려야 뽑는다는 톱스타용 차였으나, 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열린 차창으로 흘러나온 여자의 목소리가 청각에 잡혔던 것이다.
“뭐야. 진지유 쟤 진짜 왔잖아? 앞에 저거, 걔 매니저 차 맞지?”
“그럼 가짜로 왔겠냐? 사람 말 좀 믿으세요, 백하니 배우님. 인스타 다 봐 놓고 부득부득 확인하겠다면서 고집을······.”
“한 마디만 더 해 봐.”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웃음기를 머금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온 김에 인사라도 하지 그래. 아직 그 배우랑 안에 있을 텐데?”
“됐어, 가!”
이내 밴은 바람처럼 떠났다. 건은 육중한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식당으로 들어갔다.
연예인들의 친목은 아직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차라리 군대가 편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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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개’ 마지막 방영일.
드라마의 광팬, 한지영은 커뮤니티 댓글들을 훑어보면서 분노에 몸을 떨었다.
“박건은 서희도랑 용준상한테 묻어가는 배우··· 와, 이건 선 넘었지. 묻어가긴 뭘 묻어가?”
팬이 있으면 안티도 있는 법. 인기를 시샘하는 무리는 연예인의 숙명이다.
-박건 연기 스펙트럼은 솔까 뻔함 ㅇㅇ 앞으로도 그럴 게 보여서 아쉬움
-마스크 피지컬 비율, 장난 아닌 건 알겠고 싸움도 잘 하는데 딱 그뿐임. 배우라기보다 90년대 스턴트맨 느낌?
-원툴은 오래 못 가는데. 보나마나 암살자나 특수요원 좀 맡다가 사라질 듯
-거품은 꺼지기 마련~
드라마가 승승장구하는 와중, 몇몇 커뮤니티에서는 ‘박건 거품설’, ‘액션 원툴설’ 등등이 꾸준히 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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