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28)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28화(28/199)
드라마판과 영화판 (1)
* * *
마침 노크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노중만이 느긋하게 턱짓했다.
“드디어 나왔군. 일단 먹고 얘기하죠.”
다음 코스와 함께, 레스토랑에서 서비스하는 모든 주류가 트레이에 실려 들어왔다.
전통주, 인삼 소주, 막걸리에 이화주··· 섞어서 마셨다간 실려 나가기 딱 좋은 라인업이다.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입맛에 맞는 걸로 골라요. 안 마셔도 되고.”
술병들을 훑어본 박건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
“대표님이 드시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럼 이화주로. 올 때마다 곁들이는데, 여기 음식들이랑 궁합이 참 좋아.”
잔이 부딪쳤다. 다시 한 잔을 따라 준 노중만 대표가 손깍지를 꼈다.
“처음 봤을 때, 박건 배우가 잘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습니까.”
“사람 보는 눈이 있는 편이거든.”
“그 매니저랑 아이돌은 아니던데요.”
말에 뼈가 있다. 갑이 을에게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면, 어쨌든 을도 마냥 을이 되지는 않는다.
“대표는 신이 아니니까.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엮이지 않았겠지만, 벼인 줄 알았던 잡초는 뒤늦게라도 솎아낼 수밖에.”
노중만은 자기 잔도 채운 뒤 찬찬히 돌렸다. 그리곤 불빛 아래 찰랑거리는 술을 보며 물었다.
“박건 씨, 혹시 영화 좋아해요?”
“보는 건 판타지만 좋아합니다.”
“영화에선 자극적인 소재들만 다룬다지만, 이 판은 더한 경우가 많아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지저분한 일이 일어나는 곳이 여깁니다. 박건 씨 동생이 겪은 일은 약과인 편이지.”
“어쩔 수 없었다는 뜻입니까?”
“아니,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깁니다. 사고 친 매니저 한 명쯤은 잘라 버리면 그만이지만, 인기 배우들은 값비싼 수익 모델이니까. 핸들링은커녕 흠집 안 나게 필사적으로 싸고 돌 겁니다.”
로만은 칼 같은 내부 관리로 유명하다.
거짓 논란에 휘말린 아티스트는 끝까지 감싸지만, 사건이 밝혀지면 어설픈 변명 없이 소속사가 입장문을 내 버린다.
그것이 누구의 기조에서 나온 내규일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얘기가 샜군. 박건 씨를 처음 봤을 때, 나와 비슷한 부류라고 생각했어요.”
“비슷한 부류라면?”
“배우랑은 거리가 멀고, 군복은 입었지만 군인은 아닌, 꼭 용병 같은 느낌이 들었지.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박건은 등심을 한 조각 더 잘랐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군대를 다녀오면서 변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 염려가 됐어요. 여긴 그런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서.”
“연예계 말입니까?”
노중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세와 빽으로 급이 나뉘고, 둘 다 없으면 합법적이고도 더러운 방식으로 손해를 보지. 불공정과 부조리야말로 이 씬의 룰이에요. 약자가 짓밟히는 게 전쟁터만큼 당연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박건은 별달리 염려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귀준이 동생을 폭행했을 때, 대형 엔터 한복판에 쳐들어와서도 무덤덤하던 그 태도다.
“하긴, 거기서처럼 할 수는 없겠군요.”
“거기서처럼?”
“아, 혼잣말입니다.”
노중만 대표가 뭔가 말하려던 순간, 직설적인 질문이 날아들었다.
“뭘 해 주실 수 있습니까?”
드디어 본론이 나왔다. 두 쪽 모두, 사람을 물리고 단둘이서 보자고 한 진짜 이유다.
노중만은 큼지막한 손바닥을 폈다.
“박건 씨가 필요한 것들, 거의 모두.”
“모두?”
“내 입으로 말하기도 우습지만··· 난 루머가 있어요. 조직폭력배에 전직 사채꾼 출신이라 사람 담그면서 회사를 키웠다는.”
“그렇게는 안 보입니다.”
노중만 대표의 눈썹 한쪽이 올라갔다.
“왜지?”
“피 냄새가 별로 안 나서요. 사람을 때려 본 손도 아니시고.”
“하하, 그런 말을 들으니 또 새롭군. 다른 사람들도 좀 알아주면 고맙겠는데······.”
빙긋 웃은 노중만은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것 빼고는 다 할 수 있지.”
“빼고라면?”
“여론전, 협잡질, 방송국 및 타 대형 기획사들과의 파워게임, 소속사 아티스트가 당한 부당한 대우를 되갚아 주는 것들 전부.”
무저갱처럼 새까만 눈동자와, 빛바랜 듯 다갈색 눈동자가 허공에서 마주쳤다.
“지금은 모르겠지. 본격적인 판에 뛰어든 게 아니니까. 그런데 한 발씩 올라가다 보면, 능력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시기가 옵니다. 소속사는 그 때를 대비한 보험이라고 생각해요.”
“왜 저입니까?”
노중만은 도드라진 눈썹뼈를 긴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사람 보는 눈이 유별나서. 이 덕에 여기까지 왔는데, 박건 씨 같은 사람은 몇 못 봤어요.”
“저는 평범한 편입니다.”
“아니, 평범하지 않아요. 돈도, 연기도, 인기에도 별 관심이 없어. 마치 이 바닥엔··· 무언가를 찾으러 온 것처럼 보인달까.”
박건은 대답 없이, 반쯤 먹은 농어찜만 주의 깊게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노중만이 한쪽 손가락을 세웠다.
“딱 1년. 그다음은 1인 소속사를 차리든, 더 큰 기획사로 가든 마음대로 해요. 그 1년 안에도 자유해지를 원하면 당연히 놓아 줄 거고.”
나가고 싶을 때 나갈 수 있다.
신생 매니지먼트 중에도 자유해지가 보장된 소속사는 몇 없다. 배우 입장에서는 탐이 안 날 수 없는 조항이다.
거기다 신인의 통상적 계약기간은 3년에서 5년. 사실상 톱 배우보다 더한 대우인 셈이다.
“제가 대형기획사로 가길 바라지 않으시는군요.”
“그냥 넘어가질 않는군. 꼭 흉금을 다 털어야 직성이 풀리나?”
어지간한 화술로는 상대를 속일 수 없음을 서로가 안다. 노중만은 빙긋 웃었다.
“지금은 눈치만 보고 있지만, 그것도 다음 작품까지야. 곧 사자 새끼, 공룡 새끼 할 것 없이 박건 씨한테로 몰려들 거거든. 난 걔들한테 내가 찍은 사람을 뺏기고 싶지 않아요.”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내가 본 박건 씨를 믿으니까. 들어오자마자 뒤통수치고 나간대도 뭐, 내 안목이 녹슬었다는 걸 배운 값치곤 싸지.”
음식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박건은 더 이상 먹지 않았다.
어쩐지 회상에 잠긴 눈빛으로 접시에 올려놓은 나이프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노중만이 대화를 정리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죠. 오늘은 이쯤 하고, 나중에 동생을 통해서······.”
“아뇨.”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음을 정했습니다. 여기서 끝내시죠.”
*
로만 엔터테인먼트 본부장실.
“지금쯤 결판이 났겠네.”
백하니가 툭 던지듯 중얼거렸다. 잠깐 전화를 받으러 나간 본부장 대신 유준일 실장이 물었다.
“뭔 결판?”
“대표님요. 또 누구 꼬시는 중일 텐데.”
오늘의 일정, 백하니와 로만의 재계약은 양측이 그럭저럭 만족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됐다.
같은 조건으로 1년. 백하니 쪽도 로만 쪽도 나쁘지 않은 재계약이다.
유 실장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휴대폰 일정을 확인했다.
“꼬시긴 뭘··· 아니, 근데 대표님이 어디 갔는지는 네가 어떻게 알아?”
“오늘 나 재계약 미팅 있는 거 알면서 본부장님만 나왔잖아요. 거기다 정월인가, 그 맛대가리 없는 레스토랑은 대표님 아지트고. 눈독 들인 인간 있으면 그쪽으로 불러다가 계약서 들이밀잖아.”
신랄한 평가가 이어지던 와중, 유 실장은 문득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대표님 행선지는 어떻게 알았냐고. 직접 말해 주신 거야?”
“아뇨. 서 비서한테 물어봤죠.”
“내 그럴 줄 알았다. 너, 찬영이 또 쪼아댄 거 대표님한테 걸리기라도 하면······!”
“쪼긴 뭘 쪼아요, 내가 닭인가?”
“야, 백하니!”
식겁한 유 실장이 주위를 둘러봤지만, 백하니는 당당하게 쏘아붙였다.
“그리고 쪼았음 어쩔 건데요. 와우키즈 애들처럼 쫓아내기라도 할 거예요? 무게 딱 잡고, ‘이제 같이 갈 수 없겠다’고 하면서?”
“넌 진짜··· 어휴, 너랑 있다간 제 명에 못 살겠다. 본부장님 앞에선 절대 그런 얘기 마.”
“걱정 마요. 이제 여기도 올 일 없으니까.”
톱급 여배우들은 다들 대외활동이 드물다지만, 그중에도 백하니는 칩거의 여왕으로 악명이 높다.
예능에는 절대 나오지 않고, 스케줄이 없을 때면 지독한 은둔주의를 고수한다.
작품이 개봉할 때면 여러 프로에도 출연하고, 셀럽 초빙 행사에도 자주 다니는 진지유와는 정반대의 스타일이다.
‘그래서 둘이 안 맞는 건가?’
진지유와 백하니는 연예계 관계자 사이에서 익히 알려진 앙숙이다.
앙숙이 뭔가. 철천지원수에 가깝다.
여배우들이 서로를 싫어하는 것이야 흔한 일이지만, 둘은 정도가 심하다.
2년 전, 노 대표가 특별휴가로 보내 준 괌 여행에서 머리채를 잡고 싸운 일화는 회사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됐다.
그 영광스러운 자리를 떠올리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릴 만큼.
‘아주 그냥, 흉흉한 비키니 파이트였지.’
값비싼 얼굴들이 네일에 긁히고 가느다란 팔다리 군데군데 피멍이 들었다.
그 이후, 둘은 표면적으로나마 한동안 조용히 지냈다. 완력 대결로는 이기기 쉽지 않음을 깨달은 라이벌들처럼.
대신 다른 데서 싸움이 벌어졌다. 광고, 드라마, 영화, 나오는 일감마다 경쟁이 터지는 통에 홍보실 직원들만 죽어나곤 했다.
그런 상황에, 혹시 톱급 여배우라도 온다면?
‘···난리도 아니겠는데.’
백하니는 손목시계를 흘끗 내려다봤다. 손목에 감긴 시계는 샤넬 프리미에르 벨벳, 새까만 가죽스트랩이 인상적인 명품 라인이다.
“아무튼, 혹시 속보 뜨면 내 매니저한테 연락 넣어 두라고 해요. 누가 들어오든 간에.”
“속보? 무슨 속보?”
백하니는 별 모자란 놈을 다 보겠다는 눈초리로 유 실장을 쳐다봤다.
“지금까지 뭐 들었어요? 이놈의 집구석에 새로 합류할 인간요.”
“그러니까 뭘 보고 그렇게 확신하는······.”
“아. 홍보실 공 팀장님, 또 내 말 무시하면 찾아가서 뒤집어엎을 거라고도 전해 주고.”
저건 협박이 아닌 사실 전달이다. 로만과 계약한 초창기, 백하니는 그야말로 현세에 강림한 미친년이었다.
상대가 누구든, 장소가 어디든 기분이 나쁘면 코뿔소처럼 들이박았으니까.
대표실에 쳐들어가고 팀장들에겐 커피를 뒤집어씌우고, 본부장을 쥐 잡듯이 잡는 통에 로만의 전 직원과 배우들이 그녀를 피해 다녔다.
‘몇 명만 빼고.’
그 몇 명이 곧 해외 일정을 마치고 복귀할 예정이었다. 유 실장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대표님이 정말로 뉴페이스를 데려오시면··· 재밌는 조합들이 나오겠네.’
그의 얼굴을 봤는지, 백하니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퍼 조끼를 걸쳤다.
“더러워. 왜 그렇게 웃어요?”
“사람한테 더럽다가 뭐냐. 재밌는 게 생각나서 그래.”
“됐어요, 속이 더 안 좋아졌어.”
백하니가 일어나는데 본부장실 문이 열리며 이상철 본부장이 들어왔다.
이 본부장은 백하니를 보고 환상의 동물이라도 본 듯 놀랐다.
“어, 웬일로 아직 안 갔냐?”
“본부장님이 비켜주셔야 가죠.”
“그래, 그래. 얼른 들어가고··· 참, 대표님한테 연락 왔다. 새 배우 한 명 계약할 거야.”
어깨도 스치기 싫다는 듯, 몸을 틀어 본부장실을 나가던 백하니가 딱 멈췄다.
“누구요?”
“대외비야. 오피셜 뜨면 기사로 확인해.”
대번에 잘 정리된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본부장님, 저 백하니예요. 방금 전에 재계약했다고 이러시기예요?”
저 정도면 숫제 강짜지만, 이상철 본부장도 로드, 팀장, 실장을 다 거친 베테랑 중 베테랑이다.
벨트에 엄지손가락을 턱 찔러넣곤 유들유들하게 대꾸한다.
“백하니 배우님, 내부계약 정보는 임원진들 이외 공개가 불가능해요. 억울하면 회사 주식 사서 대주주 되시던가.”
“딱 다섯까지 세요. 하나, 둘, 셋······.”
“아이쿠, 저는 먼저 가 보겠습니다. 애들 스케줄 끝날 때가 다 됐네.”
이럴 때는 튀는 게 상책이다. 유 실장이 잽싸게 빠져나오자마자 뒤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야, 명패! 명패! 그거 천연 자개로 주문한 거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성질 긁은 양반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더군다나 백하니의 지랄은 로드나 코디보다 팀장과 실장에게 자주 터졌다.
고급 정보까지 하나 접수했으니··· 이만하면 재계약이랍시고 성깔 더러운 여배우와 반나절을 부대낀 보람이 있다.
희희낙락하던 유준일 실장이 콧잔등을 긁적였다.
“잠깐만, 그래서 누가 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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