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42)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42화(42/199)
폭풍우를 헤치고 (1)
* * *
“어··· 뭐야, 벌써 이것밖에 안 남았어?”
스케줄을 훑던 촬영팀 스탭이 중얼거리자, 옆의 동료가 대꾸한다.
“이것밖에라니, 반은 남았구만.”
“벌써 절반도 넘었잖아. 우리 크랭크인 날짜를 생각해야지.”
아, 하고 납득한 동료가 자기 스마트폰을 켰다.
“진짜 빠르긴 했네. 역대급이다.”
일촬표(일일촬영알람표)에서 완료 표시가 된 부분들이 남은 분량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굵직한 씬들이 남아 있다. 서요한과 이유원의 조우, 악마의 정체, 최종장의 대결··· 이 중 하나라도 펑크는 용납되지 않는다.
많이 왔지만, 그만큼 많이 가야 한다.
“자, 오늘도 시작하겠습니다!”
다행히 박건의 폼은 떨어질 기미가 없다. 하루에 수십 컷씩 OK를 받아내는 주연 덕에, 극중 사건들은 점차 핵심으로 치달아 간다.
유족에게서 들은 단서를 토대로 수사에 나선 서요한. 최근 서울에 ‘구원회’라는 신흥 종교가 점점 세를 확장한다는 정보를 입수한다.
서요한 : 비밀집회에 보안유지··· 거기다 인간의 힘으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것들, 이름부터 구린내가 풀풀 풍기네.
우여곡절 끝에 변장해 잠입한 집회. 서요한은 구원회의 교주를 먼발치에서나마 관찰한다.
교주 : (눈을 감은 채) 여러분, 이제는 이 불의 연못에서 우리를 구원해야 합니다.
신도들 : (모두 엎드린 상태로) ···구원을 바랍니다.
교주 : 거짓된 말, 부조리한 말을 신의 뜻이라 속이는 세상입니다. 증오와 폭력이 끊이지 않는 시대입니다. 이 덧없는 절망만이, 그들이 말하는 신의 뜻입니다.
신도들 : (숫양 모양의 상징을 들어올리며) ···구원이 우리에게 있음을 믿습니다.
교주 : 일어나세요. 그리고 깨달으십시오.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먼발치지만 느껴진다. 코를 찌르는 유황 냄새, 여느 마귀들과는 차원이 다른 악취다.
구원회 교주 이유원, 그녀의 안에 서요한이 수년을 쫓은 악마가 있다.
서요한 : (사제복 속의 은십자가를 쥐며 중얼거린다) 이미 들어갔군, 부마해 있어.
이내 집회는 끝나고, 교주는 숫양 가면을 쓴 남자들과 연단 뒤로 사라진다.
놈들을 쫓던 중, 사제복 차림의 남자들이 나타난다. 악마의 흔적을 쫓고 있던 바티칸의 검, 장미십자회의 한국 지부에서 파견된 사제들이다.
베드로 : ···서요한? 아직도 악마를 쫓는 중이었나?
서요한 : 누구쇼, 나 알아요?
마테오 : 알다마다, 불법 구마행위로 십자회의 유의 인물로 등재된 냉담자 형제여.
서요한 : 미안한데 아저씨들, 댁들이랑 이럴 시간 없거든? 좀 비켜 주면······.
그때, 무시무시한 돌풍이 휘몰아친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마귀의 바람에 사제들이 눈을 가린 사이, 눈이 뒤집힌 부마자들이 돌진해 온다.
베드로 : 하늘에 계신··· 크윽!
서요한 : 내 뒤로 와, 빨리!
사제들이 기도문을 읊지만, 악마의 돌개바람은 신성력마저 가르고 쪼갠다.
부마자들에게 당하려는 찰나. 십자가를 꺼낸 서요한이 앞으로 나서 바람을 흩는다.
‘신성한 벽’에 가로막힌 부마자들이 이를 가는 사이, 바람이 잦아들며 흰옷을 입은 이유원이 앞으로 나선다.
서요한 : (사납게 이를 드러내며) 오랜만이다, 속 뒤집히는 냄새는 여전하네.
이유원 : 어머, 사제님들이 이런 곳에서 무얼 하고 계셨을까요?
서요한 : 모른 척할 생각이냐? 넌 날 알 텐데, 그때도 이런 바람이 불었어.
이유원 : (미소 띤 표정 그대로 서요한을 바라보며)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세상에 구원의 말씀을 전하는 일개 심부름꾼이랍니다.
서요한 : 너지? 뱀 비늘의 악마.
사실 서요한의 부모님은 둘 다 부마자의 습격으로 사망했고, 붙잡힌 부마자도 몇 년 뒤 감금됐던 정신병원에서 숨졌다.
이후 서요한은 본인의 능력을 개화.
신을 원망하고 악마를 물리치며, 구마사제라는 이름으로 이십여 년간 놈만을 쫓았다.
서요한 :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성 미카엘 대천사여, 지옥의 세력과 무서운 싸움 중에 있는 저희를 보호하소서. 모습을 드러내라, 불결한 신아!
부마자들이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지만, 이유원의 얼굴은 평온하다. 힘의 차이가 그토록 크다는 뜻인가? 아니면······.
이유원 : 엄마, 엄마, 누가 좀 도와주세요, 아직도 아이처럼 울고만 있군요. (얕은 웃음소리) 저기 위, 날개 달린 위선자들이 그 부름에 한 번이라도 응한 적 있었나요?
서요한 : 주님, 마귀의 뒤쫓음에서 저희를 보호하소서.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교회에 안전과 자유 주시기를 간구하오니······.
이유원 : (유유히 돌아서며) 진실을 외면하는 안쓰러운 이 같으니. 사제님이 그토록 찾는 그 신이··· 아니, 당신이 누구를 보호할 수 있을지 지켜보지요.
이윽고 새까만 밴이 달려와 이유원과 부마자들을 싣고 사라진다.
서요한, 땀에 젖은 얼굴로 쥐고 있는 은십자가를 내려다본다.
쓰러진 십자회 사제들의 몸, 그리고 요한의 팔뚝에도 긴 칼날에 베인 듯한 흉터들이 새겨져 있다.
*
“감독님! 감독님 어디 계세요!”
“저쪽, 저기! 빨리 모셔 와, 거의 다 오셨대!”
촬영장이 소란해졌다.
오늘은 ‘밀리언 벤처파트너스’ 사장 및 임원들의 현장 방문이 있는 날이다.
김률 감독보다 큰범 쪽 사람들이 더 몸이 달아 아침부터 부산했다.
무려 40억, 총 제작비의 80%를 투자해 주신 갑 중 갑들의 행차시다. 영화가 잘 될 거란 확신은 못 줘도, 문제가 없다는 인상은 줘야 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 태 대표도 소식을 듣고 황급히 달려왔다.
“아이고, 왕 사장님! 얼굴이 더 피셨습니다. 어떻게 점점 젊어지십니까!”
“사업하는 사람이 젊어지기는요. 요즘 운동을 시작해서 그런가 봅니다.”
빈말이라도 칭찬은 기껍기 마련이다. 왕종길 사장은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근교로 나오니 좋구만. 안 그래요, 강 전무?”
“예, 다음 워크숍은 가평 쪽에서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촬영이 잡힌 로케이션도 마침 도심 외곽이다.
왕종길과 옆의 몇 명이 강둑을 따라 걸어들어왔다. 마중을 나온 김률 감독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어우, 감독님은 또 왜 이렇게 살이 빠지셨을까. 영화촬영이라는 게 많이 힘든가?”
“괜찮습니다. 일정에 맞추려다 보니 잠을 조금 못 자서 그렇습니다.”
“쉬어 가면서··· 아니, 투자자니까 마음 놓고 쉬라고도 못 하겠네. 눈 딱 감고 고생 좀 해 줘요.”
김률과 악수를 나누던 왕종길 사장의 눈이 문득 커졌다.
“···박 배우님?”
매니저와 함께 온 박건이 앞에 서자 왕 사장뿐 아니라 임원진들도 술렁거렸다.
“연예인이네, 연예인이야.”
“성당 신부들이 다 저랬으면 미사도 못 드렸을 거야. 매일 미어터져서.”
“우리 아들놈, 요즘 이상한 바람이 들어서 연기학원 보내달라던데··· 딱 잘라야겠구먼.”
사제복 차림의 박건을 보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감탄부터 터지는 것이 정상이다.
박건이 사진을 찍어주는 동안, 왕종길 사장은 촬영장을 돌며 배우들과 인사를 나눴다.
“여기, 내 개인카듭니다. 오늘 놓고 갈 테니 제작비 걱정 없이 시켜 먹든, 가서 먹든 하세요. 날도 추운데 고생들 하시니까.”
부족한 제작비로 살림을 꾸리는 제작 PD에게는 은총 그 자체다.
제작과 라인, 조연출까지 하는 큰범의 살림꾼 한상윤 PD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카드를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쪽으론 맹탕이거든요. 전폭적으로 믿고 있으니까, 잘들 좀 부탁합니다.”
이번에는 한상윤뿐 아니라 촬영장 식구들 전원의 눈에서 감동이 뚝뚝 떨어진다.
이거야말로 엔젤 투자자다.
지금껏 촬영장 분위기가 좋을 수 있던 데엔 투자사의 영향도 크다. 내 돈 들어갔다고 간섭하는 순간 영화는 좌초되지만, 이 투자회사는 적금을 맡긴 듯 느긋하기만 하다.
세트를 신기한 듯 둘러보던 왕종길 사장이 김률 감독에게 물었다.
“오늘, 촬영 좀 구경해도 되나요? 내가 이런 건 한 번도 못 봐서··· 거기다 우리 애들이 박건 배우를 그렇게 좋아하거든요. 사진은 못 찍어도 얘기라도 들려주려고.”
예상했던 말이 떨어졌다. 남의 잔치도 아니고, 내 생일잔치에 와서 초를 안 불 수는 없다.
김률 감독이 알겠다고 하려는데 한상윤 PD가 와서 양념을 친다.
“사장님, 혹시 오신 분들 중에 심장이 안 좋은 분은 안 계시지요?”
“심장이요? 우리가 아직 그럴 나이들은 아닌데, 심장은 왜······.”
“그게, 오늘 찍을 씬이 뭐랄까. 좀 충격적이라서요. 보고 놀라실 수가 있습니다.”
자기들끼리 얼굴을 마주보던 왕 사장과 임원들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애들도 아니고, 이쪽 업계 사람들은 내 돈 나가는 게 귀신 백 놈보다 무서워요. 그런 걱정 말고 보여주셔도 됩니다.”
“정 그러시다면야 뭐, 그럼 믹스커피 한 잔씩 돌리겠습니다.”
“좋지요. 다들 가자고.”
몇 걸음 뒤, 여차하면 나갈 기세로 사태를 관망하던 태종범 대표가 혀를 내둘렀다.
“한상윤이 저놈 저거··· 다 컸네, 다 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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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해질 때쯤, 촬영장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아까보다 다소 수척해진 왕종길 사장이 임원들과 건성으로 인사를 나눴다.
나이 지긋한 임원 중엔 안색이 파래지다 못해 흙빛이 된 사람도 있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강둑 아래까지 따라온 제작사 대표와 조연출이 넙죽 허리를 굽혔다.
“예? 아, 예. 두 분 다 고생해 주십쇼.”
자신의 벤츠에 올라, 왕종길은 시동을 걸려다가 멈췄다. 가까운 일정이라 기사를 안 데려온 게 이렇게 후회될 수가 없다.
“···역시 노 대표님 눈은 안 빗나가.”
*
다음날, 촬영장.
오늘과 내일은 촬영이 널널하다. 촬영감독과 조명감독, 김률 감독이 한창 회의 중일 때였다.
“감독님, 감독님!”
뛰어들어오는 얼굴이 귀신이라도 본 듯 허옇다. 겨우 숨을 고른 연출팀 스탭은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흔들었다.
“큰일났어요, 이장미 씨가······!”
*
[‘흑의사제’ 주연 중 과거 접대 논란··· ‘무명 연극배우’는 누구?] [김률 사단, 결국 징크스 못 벗어나나] [로만의 위기론··· 와우키즈에 이어 ‘대형신인’ 박건까지 고꾸라진다면?]“와, 애 좀 봐라? 며칠 전까지 DG 마약돌은 엄청나게 올려치더니, 우리한텐 뭐, 위기론?”
로만 엔터테인먼트 1회의실.
공기형 팀장이 분노를 터뜨리고, 함께 와 있던 유준일 실장도 한 마디 보탰다.
“딱 봐도 재고 있었네요. 촬영장 파파라치들, 뒷정보 캐는 애들이 소스 줬고··· 스포츠매일, 연예투데이, 또 얘네가 총대 멨지.”
간밤에 기사가 터졌다. 모 소속사에서 성접대 의혹으로 은퇴한 배우가, 지금 오컬트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한다는 거였다.
N소속사니, I씨니 하나마나한 자음을 썼지만 누군지는 뻔했다. 애초에 지금 주목을 받으면서 크랭크인 중인 오컬트는 하나뿐이지 않나.
흑의사제와, 이장미다.
“공 팀장님, 우리 쪽도 대처는 해야지 않겠어요? 잘못하다간 타격이 좀 있겠는데.”
“일단 그 배우 연락처 수배해서 연락해 보려는데, 계속 안 받아요. 촬영장 분위기도 알 만하고······.”
홍보팀장과 배우팀 실장이 말하는 것을 듣고만 있던 이상철 본부장이 빙긋 웃었다.
“두 사람, 박건 씨를 누가 데려왔는지 알아?”
유 실장이 제꺽 답했다.
“대표님이시죠.”
“그래. 그럼 이장미가··· 아니, 그 영화가 망가지면 우리 코가 뭉개지겠지? 박건 씨는 소속사 잘못 만나서 커리어 꼬인 배우가 될 거고.”
“···그렇겠죠?”
“그런데 대표님은 어딜 가시고 나만 여기서 두 사람이랑 보고 있을까?”
“······.”
둘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봤다. 본부장은 옆의 태블릿을 켜더니 쭉 밀어 보냈다.
“한번 봐.”
서둘러 화면에 뜬 사진들을 넘기던 공 팀장의 눈이 커졌다. 유 실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다.
“역시, 믿고 있었습니다.”
“가서 싸워. 나중에 물건만 가져오고.”
태블릿을 챙긴 공 팀장이 잽싸게 뛰쳐나갔지만, 로드 출신 유 실장은 걱정스레 물었다.
“저걸로 여론이야 덮겠지만··· 거기, 배우 멘탈 잡아 줄 사람이 있을까요? 무명 감독에 경험 없는 배우들이라서.”
이상철 본부장은 피식 웃었다.
“이미 거기 있잖아. 우리한테 한 방 먹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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