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50)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50화(50/199)
시상식의 주인공들 (3)
* * *
-박열호 전 소방장님, 한영주 여사님, 박선 매니저님······.
오늘은 일요일이다. 아침을 먹는 동안, 박열호는 TV 자동재생 기능으로 아들이 소감을 말하는 장면을 일곱 번째 틀었다.
“아들아, 아빠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아니, 사실 여한이 없진 않지만 마음이 그렇단다.”
“아, 예.”
기어이 한영주가 핀잔을 줬다.
“여보, 그만 좀 해요. 애들이 민망해하잖아요.”
“아냐, 엄마. 나는 안 민망한데? 내 이름 말하는 부분 벨소리랑 컬러링으로 다 해 둘 건데?”
신이 난 박선이 스마트폰에 저장된 녹음본을 틀자, 박건의 젓가락이 잠시 멈췄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머, 네 형 표정 안 좋아진 거 봐. 평소엔 그렇게 무표정한 애가······.”
“괜찮아. 형도 코디님한테 나 책가방 모델 한 거 얘기했거든. 덕분에 우리 홍보팀장님이 볼 때마다 자꾸 놀리셔.”
박열호는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사이가 좋구나. 더 서로를 아껴주도록 해라.”
“···그만들 하고, 너희 오늘도 나가니?”
남편에게 콩나물국을 덜어 주던 한영주가 물었다. 박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번 대종상은 늦춰지고 JNBC 연기대상은 당겨져서, 하루 건너 참석하게 됐어요.”
“그래도 피곤하겠다. 스타일링은?”
“어··· 여배우들은 시상식마다 드레스 협찬 때문에 전쟁인데, 우린 괜찮아. 어차피 헤어부터 코디까지 회사에서 다 해주니까요.”
한영주는 한결 안심이 된 표정으로 보리차를 따랐다.
“그럼 다행이고. 오늘은 그냥 놀고 온다고 생각하고, 마음 편히 즐기다 와.”
“예.”
이번에도 형이 아닌 동생 쪽이 손사래를 친다.
“아냐, 엄마. 어쩌면 오늘이 어제보다 더 마음 졸여야 될지도 몰라.”
“왜? 건이 경쟁자들이 그렇게 세니?”
“아니, 형이 아니라 우리 감독님 때문에. 이번에 후보로 올라간 부문이 엄청 많아.”
듣고 있던 박열호가 신중히 말했다.
“그 친구, 아빠도 좀 찾아봤다. 너희랑 얼마 나이도 차이 안 나는 것 같은데 심지가 굳어. 성공할 만하더라.”
“아마 잘 될 거예요.”
가족들의 시선이 장남에게 모였다. 박건은 세 그릇째 비운 밥그릇을 내려놓았다.
“요즘 감이 좀 좋아서요. 왠지 그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
시상식의 분위기들은 조금씩 다르다.
연예대상과 연기대상은 방송사 주관이다 보니 비슷하지만, 영화제나 대종상은 또 그 궤를 달리하는 구석이 있다.
“형, 인상 써 봐.”
“이렇게? 왜?”
“내가 들었는데, 대종상에서는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잡아야 된대. 함부로 말 못 붙이게.”
“요즘은 영화제도 많이 부드러워졌다면서.”
“아냐, 그래도 아직 좀 남았댔어. 지난번엔 백스테이지에서 어떤 신인이 무시당해서 울었대.”
“그건 괴소문 같은데.”
소용없다. 잔뜩 기합이 든 박선은 포토월에 설 포즈니, 의상 컨셉이니 중얼거리다가 자기 방으로 가서 틀어박혔다.
흘러나오는 얘기를 들으니 또 홍보실이랑 통화하는 것 같았다.
“형은 너무 밝은 톤 수트는 안 어울릴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어제 헤어가 세련되긴 했는데, 오늘도 비슷한 느낌으로 가는 것보다는······.”
어젯밤, 혹시 대종상에도 참석하느냐고 물어본 진지유는 불참을 전했다.
진지유 : [초대장은 왔는데 안 가려고요. 올해 영화 성적도 별로였고, 영화배우들 틈에 끼기 싫어요.]
그녀가 상반기에 출연한, 유명 감독의 스릴러는 품만 들고 흥행을 못 했다는 모양이었다.
‘순혈’ 들의 텃세는 이제 잘 안다. 받을 상도 없는데 괜히 가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
박건 : [알겠습니다. 다음에 뵙죠.]
박건 : [아, 여쭤볼 게 있는데]
진지유 : [뭔데요?]
박건 : [저희 소속사 중 다른 사람들은 혹시 옵니까? 어제 그 아이돌분들처럼요.]
진지유는 바로 읽고서 답이 없었다. 톡은 십 분쯤 뒤에야 돌아왔다.
진지유 : [글쎄요. 전 잘 몰라서, 실장님한테 알아봐 달라고 할까요?]
박건 :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진지유 : [저도 물어볼 거 있는데]
진지유 : [오빠라고 해도 되죠?]
박건 : [지유 씨 편하신 대로 부르시면 됩니다.]
진지유 : [사실 벌써 불렀어요 ㅋㅋㅋㅋ]
말과 함께 또 윙크 이모티콘이 날아온다. 아이돌 출신이라 애교가 많은 건가? 건은 생각하면서 메신저를 나갔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가 놓고 정작 소속 연예인들은 몇 명을 못 봤었다.
거기다가 같은 회사 아이돌까지 못 알아보지 않았나. 배우 라인업··· 그것도 이름만 외운 벼락치기의 폐해다.
‘군대였으면 큰일 날 일인데.’
그나마 공연이라 망정이지, 어디 옆자리에서 마주쳤는데 얼굴을 모르면 큰일이다.
로만 홈페이지에서 프로필들을 외우고 있는데 동생이 들이닥쳤다.
“형, 태 대표님도 감독님 태우고 출발했대! 우리도 얼른 가자!”
‘외인구단’이라는 컨셉답게, 오늘은 영화 식구들을 다 불러모아서 같이 가기로 했다.
집결지는 로만 엔터테인먼트. 공 팀장은 전화까지 걸어 꼭 회사로 오라고 전했다.
‘우리 배우님만 괜찮으면 다 가는 게 그림이 좋죠. 딱 밴 문 열리면서 우르르 내리면··· 크, 이런 건 또 그 판에서 못 보던 거거든.’
시상식은 개인전인 동시에 팀전, 단체 대 단체로 붙는 자리다. 한꺼번에 가서 쾅 떨어져야 외인구단이라는 이름에 맞는다.
*
“우와, 와··· 이게 다 소속사 건물이라고?”
로만 엔터테인먼트 라운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흑의사제’ 팀 동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여기가 회사면 출근할 맛 나겠다. 라운지가 무슨 영화 촬영장만 하네.”
“내가 아는 소속사는 다 무슨 구멍가게였는데, 여긴 아주 백화점이야.”
이장미만 창피해 죽겠다는 얼굴로 멀찍이 떨어져 오만상을 구기고 있다.
“진짜 짜증나······.”
그들이 견학 온 학생들처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오늘의 주인공들이 등장했다.
“캬, 우리 감독님 멋있다!”
“어우··· 둘 다 수트빨 장난 아닌데?”
영화 흥행의 두 주역이 라운지 바닥을 레드카펫처럼 밟으며 들어온다.
김률은 깔끔한 나비넥타이로, 박건은 두터운 벨벳 라펠의 수트로 포인트를 줬다. 어제의 베스트 대신 까만 셔츠를 매치한 올블랙 룩이다.
박선과 함께 따라들어온 태종범 대표가 아낌없이 박수를 친다.
“크흐, 이거지. 난 오늘 죽어도 좋아, 눈이 이렇게 호강하는데 뭐가 더 필요해?”
“정말요? 사모님한테 허락도 안 받으시고서?”
“어허, 성화 씨! 오늘은 와이프 얘기 금지야.”
이야기꽃이 피는 가운데, 공 팀장이 이장미에게 슬그머니 접근했다.
“이장미 배우님, 혹시 오늘 따로 준비하신 드레스가······.”
“그럴 급도 아닌데요, 뭐. 그냥 깔끔하게 입고만 가기로 했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그러지 말고, 잠깐 저희 스타일리스트한테 들렀다 가시죠. 남자 배우들이면 몰라도 여배우의 레드카펫 아닙니까.”
정말로 관심이 없을 리가 없다. 익숙하지 않은 분야라 그냥 포기했을 뿐이다.
극단 동료들 쪽을 흘끔거린 이장미가 얼굴을 붉힌 채 중얼거린다.
“그럼 잠깐만······.”
저쪽에서는 다른 직원이 비슷한 오퍼를 나머지 배우들에게 건네고 있다.
잠시 후 다시 라운지에서 만난 배우들은 서로의 얼굴을 가리키면서 경악했다.
“야, 너 누구야!”
“내가 할 소리다. 어디서 특수분장을 다 받고 왔냐?”
“이장미 봐라. 쟤는 진짜 사람이 달라 보이네.”
영화에서 입었던 원피스와 비슷한, 하지만 훨씬 우아한 순백의 드레스가 가녀린 몸을 감싼다.
이장미도 익숙하지 않은지 연신 등 쪽을 보며 핏을 확인한다. 야심차게 협찬받아 놓고 하마터면 못 쓸 뻔한 디자이너 제품이다.
‘진지유도, 백하니도 안 가서 입힐 사람이 없었는데, 딱 맞는 모델이 굴러들어왔어.’
내심 쾌재를 부르던 공 팀장이 앞으로 나서서 손뼉을 쳤다.
“자, 여러분! 슬슬 출발할까요?”
*
“어이고, 박건 배우 아니신가.”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선배는 무슨··· 그냥 나이만 먹은 늙다리지. 내 영화 정말 잘 봤어요. 나 젊을 때 이런 배우가 충무로에 있었으면 밥줄 끊겼을 거야.”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람 좋게 웃어젖힌 중년 남배우가 함께 온 일행들과 돌아서서 사라진다.
옆에 있던 박선이 귀띔해 주었다.
“윤덕수 배우, 엄청 유명한 아저씨야.”
“나도 봤어. 옛날에 우리가 같이 본 영화 주인공이었잖아.”
“어, 형도 기억하는구나!”
어째 익숙한 얼굴들이 많다. 기업 영화에 단골로 나오는 원로배우, 미스코리아 출신 탑 여배우, 그들 형제가 어릴 때 잘 나가던 원조 ‘꽃중년’ 배우 등등······.
“반가워요, 김건 씨.”
“박건입니다.”
미끈하게 잘생긴 놈이 연기 톤의 탄식을 흘린다.
“아··· 미안해요. 이름을 잘 못 외워서.”
온 사람이 많은 만큼, 같잖은 신경전을 벌이는 놈들도 더러 있었다.
딱히 대응하지 않자 녀석은 얕잡아보는 눈빛으로 위아래를 훑더니 사라졌다. 박선이 커다란 진돗개처럼 으르렁대며 브리핑했다.
“‘너를 찾아서’ 주연이야. 지금 우리랑 경쟁 중인 연말 기대작.”
영화 흥행에서는 동시개봉작들 만큼 처참하게 패하지 않았으니, 급만 따지면 자기들 쪽이 높다고 생각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괜찮아.”
건은 놈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뗐다.
연기대상 때보다 더 큰 홀에, 수많은 카메라들이 착착 설치되고 있다.
“오늘도 우리가 이길 거니까.”
*
대종상영화제.
한국 3대 영화제 중, 가장 역사가 깊기로 유명한 영화제다.
한때 수상작들의 공정성 논란으로 파행을 겪으며 떨어진 권위를 되찾기 위해서일까.
작년부터는 국민심사단 투표를 심사에 높은 비율로 반영하는 강수를 뒀고, 조잡한 부문들을 없애며 옛 명예를 되찾아 간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번에 ‘흑의사제’가 수상 후보로 오른 것은 무려 여섯 부문. 미술, 편집, 각본, 신인남자배우, 감독상과 최우수작품상이다.
보수적인 영화제의 특성을 감안할 때, 남우주연상이 아닌 작품상이라도 노미네이트된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중들의 관심도 그곳에 쏠렸다.
쟁쟁한 히트작들이 버티는 가운데, 과연 다크호스의 성적표는 어떨 것인가?
“편집상 부문, 흑의사제.”
벌써 두 개째다. 방청객과 배우들의 박수 소리가 홀을 울리는 가운데, 김률은 트로피를 불끈 들어 올렸다.
본래 미술감독, 편집감독 등 각 분야마다 감독이 따로 있지만, ‘흑의사제’는 촬영을 제외한 대부분을 김률이 도맡았다.
미술상, 편집상을 연이어 김률이 들어 올리자 장내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 커졌다.
당연하다는 듯 박건이 신인남자배우상에 호명됐을 때는 방청석에서 열광적인 환호가 터진다.
“축하드립니다. 될 줄 알았어요.”
자기도 꽃다발에 파묻히다시피 한 김률 감독이 목소릴 높였다. 어째 본인이 상을 받은 것보다 기뻐하는 눈치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걸 기대하고 있어서요.”
“다른 거라면······.”
오늘 참석한 여배우들 중, 손꼽히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장미가 거든다.
“당연히 작품상이죠. 화끈한 수상소감 준비하세요, 생중계니까 욕은 자제하시고.”
“감독님이 넌 줄 아냐. 욕 말고 그냥 한··· 고마운 사람들 부르면서 10분쯤 끌어 버려요. 방송사고는 그렇게 내는 거지.”
장성화까지 가세해 떠드는 와중, 각본상과 감독상은 ‘누런 강’으로 800만 관객을 돌파한 유명 감독에게로 돌아갔다.
“와, 저건 좀 아니지. 시나리오가 아니라 관객 수로 주면 어쩌자고!”
“입 다물고 봐, 저쪽도 잘했으니까. 그리고 아직 작품상 남았어.”
강력한 적이 주연상 및 조연상도 휩쓸 게 뻔한 상황. 사실상 ‘누런 강’과 ‘흑의사제’ 간 명예를 건 각축전이다.
저 멀리, 상대 진영에서 이쪽을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박선은 이미 귀까지 막고 중얼중얼 기도하느라 여념이 없다.
“하느님, 예수님, 제가 비록 종교인은 아니지만 이번 작품으로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제발 한 번만 도와주신다면······.”
나머지 사람들도 마른침을 삼키며 시상자로 나선 배우의 입만 애타게 쳐다보았다.
각본상은 시나리오, 감독상은 연출이라면 작품상은 그야말로 모든 것의 총집합체다. 사실상 한 해의 최고작에게 돌아가는 명예인 것이다.
“최우수작품상.”
그리고 마침내, 수상작이 호명됐다.
“흑의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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