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53)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53화(53/199)
변화는 빠르게 (2)
* * *
[분당 심박수 – 혈압] [107 – 134/80mmHg]“으, 워치가 고장이 났나······.”
포그의 3년차 에디터, 채은비는 뛰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켰다.
스마트워치에 찍힌 심박수가 난리칠 만도 하다.
오늘은 현 연예계 최고의 화제작. 드라마와 영화로 연타석 홈런을 때려낸 박건과의 인터뷰가 있는 날이니까.
‘설마 진짜 올 줄은 몰랐는데.’
그녀의 회사는 총 직원 여섯 명의 평범한 패션지. 그렇기에 대단한 셀럽을 모실 수도 없다.
작년 8월이었던가? ‘서울의 개’로 흥행한 신인이라기에 연락을 넣었었는데 놀랍게도 답이 왔다.
-곧 영화 크랭크인인데, 혹시 일정을 조율해서 나가도 괜찮습니까?
괜찮다고 했다. 배우들은 보통 다음 작품 홍보일정을 맞춰서 인터뷰를 하니까.
그게 얼마나 큰 오산이었는지는 영화 개봉 직전에 알았다. 홍보고 뭐고, 배우 혼자 힘으로 600만 관객을 찍어 버린 것이다.
깔끔하게 포기하던 편집장이 눈에 선하다.
‘야, 텄다. 박건은 포기하고 다른 사람 섭외해.’
급 높은 연예인에게 이런 구두약속은, 그것도 소규모 패션 잡지는 안 가도 되는 동창회나 다름없다. 그래서 당연히 캔슬할 줄 알았는데······.
-아,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정신이 없어서, 연락을 드린다는 걸 지금까지 잊고 있었어요. 혹시 지금이라도 출연 괜찮을까요?
매니저란 사람은 미안함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사과하더니 즉석에서 일정을 잡았다.
···이 사람들, 뭔가 이상하다.
뜨긴 자기들이 떴는데, 다시 연락해서 죄송하다는 연예인은 난생 처음이다.
‘인턴 2년에 에디터 3년. 그동안 진짜 개차반들밖에 못 봤는데······.’
이유는 몰라도 지독한 호사다. 초일류가 되어 돌아온 유망주의 화보면, 이번 호의 판매 부수는 지붕을 뚫고 치솟을 거다.
섭외한 스튜디오로 나가는 길에, 하필 일정이 겹친 편집장은 법인카드를 쥐여 주며 당부했다.
‘채은비, 너만 믿는다. 개소리만 삼십 분 해도 괜찮으니까 꽉꽉 채워서 뽑아와, 알겠지!’
독특한 질문을 준비할 필요도 없다. 이 깜짝 스타를 모시러 온갖 패션 잡지가 달려들었지만 그들만 간택을 받았다.
무엇 때문일까. 회사 규모? 콘셉트? 아니면 편집장님이랑 뒤에서 쇼부를 쳐서? 우리 회사 그럴 돈도 없을 텐데······.
채은비의 머릿속이 망상으로 과열될 때쯤, 유리문에 매달린 종이 울렸다.
곧이어 남자 두 명이 스튜디오 중앙에 앉아 있는 채은비에게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박건입니다.”
“안녕··· 예, 안녕하세요, 와.”
29년 인생에서 가장 바보스러운 첫인사를 하면서, 채은비는 통감했다.
스크린은 가짜다. 드라마와 영화를 다 봤지만 결단코 실물이 압도적이다. 함께 온 사진작가와 스타일리스트는 인사도 잊고 턱이 빠져라 입을 헤벌리고 있다.
“너무 늦게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사과하는 연예인의 앞으로, 싹싹해 보이는 매니저가 나타나 꾸벅 고개를 숙인다.
“형 때문이 아니라 저 때문이에요. 중간에 일정을 빼놓는다는 걸 잊어버려서··· 일단 이거라도 받으세요. 오면서 에디터님이랑 스탭분들 드시라고 쿠키 좀 샀어요.”
“아니에요, 정말··· 이렇게 와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데, 잘 먹겠습니다!”
훈훈한 인사가 오가고 인터뷰가 시작됐다. 패션 잡지의 흔한 문답식 인터뷰지만, 대담(對談)을 담을 카메라와 조명판도 옆에 있다.
이 인터뷰는 화보와 함께 촬영장 현장 컷으로 유튜브에도 올라갈 것이다.
“‘서울의 개’ 때보다도 더 엄청난 스타가 되셨어요. 인터뷰 요청이 많이 왔을 텐데, 다른 잡지가 아닌 포그를 선택하신 이유가 뭔지 여쭤봐도 될까요?”
“출연하기로 약속했으니까요.”
“아아······.”
“그리고 컨셉이 따로 없어서 좋았습니다.”
“예? 컨셉이요?”
박건은 마침 수트 케이스를 들고 들어온 매니저를 돌아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제 배경 때문인지, 당시 연락왔던 패션지 분들이 자꾸 군복을 권하더라고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곳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물론 외모는 절대 평범치 않다. 아직 헤어와 메이크업 등 스타일링 전인데도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심장이 덜컥덜컥 멎는다.
‘···며칠 안 씻겨서 내보내도 웬만한 배우는 옆에도 못 서겠는데.’
뒤를 이어, 소속사 프로필에 없는 신변잡기가 오간다. 작품 얘기만 하면 안 될 것 같아 밤을 새가며 고심한 ‘평범한’ 질문지다.
“별자리는 어떻게?”
“쌍둥이자리입니다.”
“생년월일은······.”
“6월 3일이고요.”
“혹시 좋아하는 음식은······.”
“바비큐, 피자. 주로 양식을 좋아하고, 날개 달린 것만 아니면 다 먹습니다.”
“요즘 즐겨 하는 취미, 또는 즐겨 보는 채널이 있으신가요?”
“쉴 때는 거의 유튜브를 보고요. 고기 굽는 채널, 해외 특수부대 훈련 시연과 게임 공략 영상을 주로 구독 중입니다.”
대부분의 대답이 담백한 즉답이다. 어떤 질문에도 망설이거나 재는 기색이 없다.
‘하긴, 소문만 들어도 겉과 속이 똑같은 사람이라고 하니까.’
서울의 개와 흑의사제, 두 작품을 고른 이유를 묻자 박건은 드물게 말을 골랐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부터, 해야만 할 것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이야기 자체도 제가 좋아하는 종류였고요.”
“감사합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배우 박건에게 연기란 무슨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이번에는 침묵이 흐른다.
긴 속눈썹이 천천히 오르내리고, 눈동자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친다. 채은비는 저도 모르게 뻗어 가려는 손을 꽉 눌렀다.
“과거로의, 회귀입니다.”
“회귀라면······.”
“말 그대로입니다. 슛이 나오고··· 카메라가 돌아갈 때, 그 순간만큼은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듭니다.”
부지런히 수트 케이스를 옮기던 매니저도 저만치서 심각한 얼굴로 듣고 있다.
채은비는 마른 입술을 적시고 물었다.
“예전에도 연기를 하셨던 걸까요?”
박건은 문득 시선을 들었다. 지그시 쳐다보는 눈동자 속, 이번에는 명확한 빛이 떠올랐다.
회한··· 또는 비감이다.
“그랬을 겁니다, 아마.”
끄트머리에 가서 분위기가 무거워졌지만, 오늘의 인터뷰는 대성공이었다.
팬사인회에 온 팬처럼 인터뷰를 구경하던 코디와 사진작가가 위치로 돌아간다. 인터뷰가 끝나면 지면에 실릴 화보 촬영이 예정돼 있었다.
“아! 하나 깜빡한 게 있는데, 혹시 차기작은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계실지요? 찍고 싶으신 장르가 있으신지도요.”
드라마는 조연, 영화는 주연으로 신인상을 휩쓸었다. 이제 당분간 푹 쉬다가 방송 3사의 대작에 들어가기만 하면 완연한 A급 대열로 합류한다.
나온 대답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원하는 장르는 따로 없고요. 최대한 빨리, 많이 찍고 싶습니다.”
*
바야흐로 미디어 시각화의 시대다. 패션지들도 그 흐름에 올라탔다.
예전엔 인터뷰와 화보 몇 장만 자체 지면에 올리고 끝이었다면, 요즘은 셀럽의 촬영장 스틸 컷, 미공개 영상 등을 온갖 곳에 업로드한다.
포그도 다르지 않다.
채은비가 보물처럼 들고 온 자료를, 직원들이 밤을 새며 편집해 ‘이달의 호’ 발간일에 맞췄다.
나흘 만에 나온 잡지는 평소 판매 부수의 5배, 온라인 지면 조회수는 10배를 훌쩍 넘어서며 ‘박건 효과’의 기염을 토했다.
무수한 성원 속에서 업로드된 촬영장 스틸 컷 영상엔 팬들의 댓글들이 쏟아졌다.
[박건(PARKGEON) 치명적인 사제님, ‘대세’의 품격과 차후 행보는?(feat. 선매니저) ㅣin FOGUE]조회수 12만 회
-포그가 박건 단독인터뷰를?!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서울개 때 생각나네 ㅋㅋㅋㅋ 특수부대랑 게임공략이랑 고굽채널은 무슨 콜라보냐구요
-말투 하나하나가 무뚝뚝한데 섬세해… 전형적인 로맨스소설 남주 재질…
-(워커홀릭 냉미남 팀장)
-하는 행동은 세상 무해한데 옆에 있는 사람들한텐 최고로 유해한 배우
-배우님 옷 목록)1:23 추리닝/집업, 3:16 실크셔츠/가죽팬츠, 6:44 아가일니트/데님팬츠
-수트나 사제복만 보다가 저렇게 일상복 입은 거 보니까 너무 좋다.. 홈예능은 안 나오나요?
-가족들이랑 살고 있어서 부담스러울 듯요.
-일하고 싶다잖아요! 소속사는 뭐하냐 배우 작품 안 잡아 주고!
-영화 내린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벌써 작품 들어가려나,,,?
-박건이라면 가능합니다. 우리 배우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
그날 밤.
헉헉대며 방문을 열고 들어온 박선이 묵직한 서류 더미를 내려놓았다.
책상에는 이미 시나리오 무더기 다섯 개가 돌탑처럼 줄지어 올라와 있다.
“형, 이게 마지막이야. 소속사에 들어와 있는 건 전부 복사해서 가져왔어.”
박건은 종이 속에 파묻혀 대본을 넘기던 중이었다. 하룻밤을 꼬박 샜는데도 눈가엔 피로한 기색 하나 없다.
“고맙다. 다음번엔 그냥 내가······.”
“무슨 소리야, 자기 발로 뛰면서 시나리오 물색하는 배우가 어딨어? 내가 다 찾아줄 테니까 형은 읽기만 하면 돼.”
땀을 훔친 박선이 뿌듯한 표정으로 종이 뭉치들을 탕탕 쳤다.
“다는 아니지만 좀 훑어봤거든? 대충 봐도 괜찮은 작품들 꽤 많았어. 장르도 다양하고, 이 정도면 차기작 고르는 건 쉬울 거야.”
“어디까지가 우리한테 온 시나리오야?”
“어··· 그건 여기, 빨간 표시 된 것들. 나머지는 다 주인 없는 거라고 보면 돼.”
“혹은 주연이 없거나.”
“그렇지!”
손가락을 튕기는 동생에게, 박건이 시나리오 두 부를 내밀었다. 박선의 눈이 커졌다.
“어, 혹시 이거······.”
“응. 재밌어 보이더라고.”
“오케이, 바로 연락해서 진행 현황 확인할게.”
박선은 시나리오를 받지도 않고 후다닥 뛰어나갔다. 쾅! 그 와중 문 닫는 건 까먹지 않는다.
혼자 남은 배우의 손에는 MBS와 JNBC 로고가 찍힌 두 작품이 흔들린다.
“···급하진 않은데. 이번엔 느낌이 잘 안 오네.”
<분노의 바다>
<소년, 복수를 결심하다>
*
JNBC 사옥 3층 휴게실.
‘서울의 개’ 때 함께 일했던 조명감독이 바삐 지나가다가 흠칫 놀랐다.
“어어, 박건 씨! 무슨 일 있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다음은 오가면서 얼굴을 익힌 드라마국 PD.
“박건 배우님? 여기서 뭐하고 계세요?”
“생각할 게 좀 있어서요.”
이번에는 지나가던 제작팀 여자 스탭.
“저··· 이거 드시고 하세요. 저희 팀 심부름으로 커피랑 쿠키 샀는데 남을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그 와중 팬서비스도 남다르다. 찌푸리고 있던 인상을 풀고, 눈까지 마주쳐 주지 않나.
얼굴이 새빨개진 스탭은 도망치듯 뒷걸음질 쳐 떠난다. 누가 봐도 일부러 사 온 간식이지만, 어쨌든 주고받은 사람 둘 다 만족했으니 된 거다.
저만치서 600만 배우의 기행을 훔쳐보던 조연출과 PD가 쑥덕거린다.
“며칠 됐지?”
“오늘로 사흘요.”
“와··· 쉽지 않네.”
박건이 돌연 JNBC에 나타난 지 3일째. 나종모 PD를 만나러 왔나 했더니, 자기가 아는 사람들한텐 인사만 돌리더니 휴게실에 처박혔다.
앞에는 날마다 바뀌는 시나리오 뭉치들을 끼고서, 마치 계시라도 기다리는 사람처럼.
“처음엔 그 뭐지, 새로 들어가는 주말극에 관심 있는 것처럼 보였다던데요.”
PD가 떡진 머리를 긁으며 아는 척했다.
“아, 분노의 바다?”
분노의 바다, 전형적인 기업 스릴러물.
인기 작가가 각본을 쓰고 노련한 PD가 연출을 맡은 1분기 최고의 기대작이다.
“주기태랑 이현옥 작품이잖아. 박건 네임밸류면 그쪽 주연도 문제없이 뚫을 텐데?”
“그게요, 거기서 오디션을 봤는데 글쎄······.”
조연출이 속닥거리자 PD의 표정이 점점 의아함으로 물든다.
“그럼 배우가 깐 거잖아.”
“그죠.”
“근데 왜 저러고 앉아 있대? 오디션 탈락한 연습생처럼.”
조연출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글쎄요. 작품 고르는 배우의 루틴··· 뭐 그런 거 아닐까요?”
“하긴, 우리 방송국이 터가 좋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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