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6)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6화(6/199)
오줌과 스카웃 (4)
* * *
박건 중사의 전역 환영 술자리는 새벽 세 시가 다 돼서 끝났다.
세 명이서 고기 10인분, 소주만 일곱 병이 넘게 비운 뒤였다.
둘은 반쯤 고주망태가 됐지만 건은 멀쩡했다. 아무래도 이 몸뚱이는 기감뿐 아니라 내장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이 새끼, 왜 안 취해, 어? 너 부대에서 간 강화 수술 같은 거 받았지?”
“너나 정신 좀 차려라, 영호야. 부장이랑 맨날 회식한다면서 뭐 이렇게 술이 약해?”
잔뜩 취한 배명호를 택시에 구겨넣은 뒤, 어플을 켠 서승아가 투덜거렸다.
초임 검사한테 변호사가 술로 지면 안 된다면서 꿋꿋하게 소주를 조진 결과였다.
“야, 꼭 나한테 연락해.”
“뭘?”
“오디션. 계약조건 봐 줄 테니까.”
“선이가 와 준다는데?”
“초짜 매니저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방송국 놈들 이상한 독소조항 있나 없나 확인해야 돼.”
“아직 한다고도 안 했고.”
서승아가 답답하다는 듯 발을 굴렀다.
“고민할 게 어딨어? 너 전부터 그런 거 하고 싶댔잖아. 부대별로 나가서 경쟁하는 프로그램. 특수부대 이미지 쇄신하고 전우들이랑 아버지 명예도 높이고 싶다고.”
그랬었나? 서승아는 그의 침묵을 긍정의 의미로 알아들은 것 같았다.
“배우가 예능인보다 백배 낫지. 군복 입었을 때 제의받았다면서?”
“그러긴 했는데.”
“그럼 빼박이네. 군인 아니면 전직 군인, 최소 어울리는 역할은 줄 거 아냐.”
“넌 변호사가 왜 이렇게 연예계를 잘 알아, 그쪽 동네 좋아했냐?”
취기 때문에 발그스름하던 서승아의 얼굴이 조금 더 붉어졌다.
“뭐래, 나 덕질 안 하거든. 그리고······.”
“그리고?”
“절망의 군주, 그거 쓴 곽남매보다 은희욱이 훨씬 재밌어. 예전에 변호사물로 데뷔할 때부터 스토리 디테일이 좋더라.”
“안 하긴 무슨, 덕질 맞네.”
마침 어플로 잡힌 택시가 도착했다. 서승아는 냉큼 차에 타선 고개만 삐죽 내밀고 소리쳤다.
“꼭 연락해! 나 말고 은희욱한테!”
*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건은 몇 시간 전 온 문자를 다시 읽었다.
010-2XXX-8XXX
박건 씨, 은희욱입니다. 이번에 JNBC 들어가는 제 드라마, 최승 역으로 오디션을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별도로 첨부합니다.
문자를 받고, 박선에게 전화를 걸어 묻자 대번에 허락이 떨어졌었다.
-형, 당장 해!
‘괜찮겠어?’
-내가 안 괜찮을 게 어딨어? 그 작가님이 로만에 계신 것도 아니고, 난 신경 쓰지 말고 무조건 보고 와!
다른 로드 자리를 알아보는 동안 물류센터 알바를 뛴다더니, 뒤에서 ‘박선 씨! 여기 좀 도와줘!’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쨌든 형, 나 또 가야 되니까 퇴근해서 얘기해. 답장은 꼭 바로 보내고, 알겠지?
오디션······ 생소한 단어는 아니다.
예전에 길거리캐스팅을 몇 번 당한 적이 있었다. 꽤 유명한 기획사가 모델 겸 배우를 제안했고, 거절하자 떨어져 나갔다.
그게 벌써 칠팔 년 전이긴 했다.
좀 모자란 놈한테 겁 한번 줬을 뿐인데, 군복 때문에 임팩트가 있었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택시에서 내렸을 때였다.
반경 몇 미터 안에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다.
‘찾아왔군.’
아파트로 걸어올라가자 계단에 걸터앉아 있던 은희욱이 일어서며 웃었다. 여전히 그놈의 개량한복 차림이었다.
“와, 역시 놀라지도 않네요. 새벽까지 기다린 보람 없게.”
“술을 좀 마셔서요.”
은희욱은 신기하다는 눈으로 건의 위아래를 훑어봤다.
“세상에서 제일 멀쩡해 보이는데··· 아무튼, 생각은 좀 해 봤어요?”
“전 살면서 연기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연기력이 필요한 배역이 아니라니까. 그때 그 사람, 로만 매니저 족쳤을 때 분위기만 낼 수 있으면 돼요. 어차피 중요한 건 액션이랑 마스크라서.”
배역이야 그렇다 쳐도, 이 새벽에 작가씩이나 되는 양반이 왜 찾아오는지는 이해가 안 갔다.
“왜 접니까?”
건이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은희욱의 표정에서도 웃음기가 빠졌다.
“아이디어가 떠올라서요.”
“아이디어요?”
은희욱은 잠깐 사이를 뒀다.
“제가 어릴 때 시골에서 컸거든요. 둘째삼촌이 유명한 개장수였어요. 삼촌을 따라다니면 동네 개란 개들은 다 낑낑거리면서 꼬리를 말아요. 귀신을 본 것처럼 침도 흘리고, 오줌도 싸고.”
“자기 동족을 죽인 사람을 알아보는 거 아닙니까?”
“맞아요, 최승이 그래요. 사육된 인간백정. 사람 피를 날 때부터 묻혀서 보는 사람마다 꺼려하는, 극에서 꼭 필요한 캐릭터거든요.”
건은 기이한 기시감을 느꼈다.
용사로서 했던 일과 닮지 않았는가. 악마를 죽이고, 타락한 인간과 이종(異種)들도 죽이고, 그 두 가지를 반복하면서 살아왔다.
만 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 만 명을 제 손으로 찢어 죽였다면?
미쳐버린 백정일 뿐이다.
“박건 씨. 극의 재미, 인생의 재미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잘 모르겠습니다.”
“의외성이에요. 이렇게 우연히 만난 일반인한테 매달리는 것도 재밌고, 박건 씨 연기력이 또 무진장 형편없어서 오디션장에서 쪽팔리면 그것도 재밌겠고······.”
“제가 못 하겠다고 한다면?”
은희욱 작가는 한숨을 쉬었다.
“기존 배우 중 아무나 쓰려고요. 오디션비도 굳고 좋죠, 사비로 왕창 내려고 했는데.”
건은 생각했다.
‘앞으로 돈이 좀 필요할 텐데.’
살아남기 위한 투쟁은 이쪽 세계에서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불구가 된 아버지와 밤늦게까지 외제차를 파는 어머니, 물류센터로 출근하는 동생.
아직 돌아오지 않은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의 기억들.
밥값을 위해서라도, 피할 도전은 아니었다.
“하겠습니다.”
*
오디션장이 마련됐다.
일반적인 오디션일 경우 연출진이 앉을 공간만 있으면 되지만, 최승 역은 연기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액션, 합, 분위기를 모두 알아봐야 하니 소품은 필수요, 공간도 필요하다.
세트 소품과 장비를 나르던 스탭 두 명이 막간을 틈타 수군거렸다.
“그냥 있는 배우들 대충 쓰면 되지, 하여간에 그놈의 유니크는 참 좋아하셔.”
“디테일 변태 둘이잖아. 저거 봐, 촬영감독님에 무술감독님까지 불러다가 같이 보는 거.”
“그래서 오늘 오는 사람은 누군데? 은 작가님 픽이면 또 무명?”
“몰라. 듣기론 이번엔 배우도 아니고, 생판 모르는 길거리 캐스팅······.”
스탭들의 목소리가 딱 멎었다.
오디션장 뒤쪽 문이 열리며 후줄근한 정장을 입은 남자가 걸어들어왔던 것이다.
“어······.”
누구의 입에선지 감탄사가 나왔다.
배우는 배우의 아우라가 있다는 옛말이 있다.
그런데 들어온 사람은 누가 봐도 배우, 아니, 섭외한 ‘업자’ 같았다.
훌쩍하게 큰 키, 싸구려 느낌의 원 버튼 감색 수트, 짧은 머리에 야성적으로 뻗은 이목구비.
헐렁하게 큰 양복을 걸쳤음에도 셔츠 밑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육체가 위압감을 준다.
“오늘 오디션 보러 온 박건입니다.”
“아, 예, 이제 준비 다 됐고 곧 연출진들 오실 거거든요. 저쪽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남자는 스탭과 얘기를 하더니, 긴장한 기색도 없이 대기용 의자에 앉았다.
키가 185는 족히 돼 보인다거나, 보는 각도에 따라 마스크가 신기하게 달라진다거나, 그런 것보다도 기이한 아우라가 감돌았다.
은퇴한 형사, 아니면 교도소에서 십수 년을 살다가 출소한 수감자 같은······.
스탭 둘은 동시에 서로의 눈을 마주봤다.
그리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은 작가님 픽은 틀리질 않네.”
“괜히 스카우터가 아니라니까.”
“어디서 저런 사람들만 쏙쏙 골라 오는지 몰라, 엔터 헤드헌터들도 인재가 없다고 앓는 소리 하는 판에.”
길거리 캐스팅을 운운하던 여자 스탭이 진지하게 두 손을 모았다.
“제발 잘 해라, 제발.”
*
건은 생각한다.
‘와 버렸네.’
특별히 오디션용으로 사무실 한 칸을 빌렸다더니, 상상했던 좁은 방보다는 넓은 공간이다.
스탭 복장의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커다란 카메라가 몇 대 설치된다.
“제발 잘 해라, 제발.”
그가 들어왔을 때부터 쳐다보던 스탭 중 하나가 중얼거렸지만, 건은 내색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무음으로 돌렸다.
‘여긴 분위기가 좋네, 응원도 해 주고.’
사실 제안을 받아들인 것도 절반은 돈, 절반은 흥미 때문이었다.
전직 용사라고 신은 아니다. 영양분을 섭취해야 신진대사가 가능하고, 며칠간 경험한 바로 이 몸은 쓸데없이 연비가 많이 들어간다.
알아보니 보안업체 직원, 경호원 등은 면접도 까다롭고 월급도 세지 않았다.
반면 여긴 오디션만 봐도 30만 원, 만약 출연이 확정되면 회차마다 꽤 챙겨준다고 했다.
비중 있는 조연에 액션까지 있어 수당이 더 붙는 모양이었다.
건은 굳은살투성이 손을 내려다보았다.
특수부대원으로서의 박건 중사도 유능했지만, 지금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파괴적인 작전수행을 삼십 년간 하고 돌아왔다는 점에서.
‘잘 안 되면 해외로 가 볼까.’
전직 용사는 실체화된 폭력의 화신이나 마찬가지다. CQC, 사격술? 특수부대 시절에도 그보다 잘 쏘는 대원은 없었다.
이 장기를 살려 용병이나 PMC, 그 밖의 폭력이 필요한 곳에 간다면······.
“어, 박건 씨?”
목이 통통하고 눈이 가느다란 사내가 바삐 걸어오더니 한 손을 내밀었다.
“예, 접니다.”
“총괄피디 나종몹니다. 얘기 많이 들었어요. 은 작가님이 좀 칭찬을 해야 말이지. 아, 작가님도 이 앞이라고 곧 들어올 거래요.”
잡은 손을 흔들면서, 건을 빠르게 훑은 PD의 얼굴에 만족감이 서린다.
“일단 분위기는 제일 좋네요. 나머지 세 명보다 훨씬 최승에 어울려서.”
“감사합니다.”
“진짜 군인, 거기다 특수부대 출신이시라고?”
“예. 며칠 전에 전역했습니다.”
“그럼 액션 디렉팅도··· 아니지, 그냥 우리 무술감독님이랑 얘기합시다.”
“알겠습니다.”
나종모 PD는 싱글싱글 웃으며 악어처럼 짧은 팔로 허공에 주먹질을 했다.
“몸 안 풀어도 되겠어요? 다른 배우들은 자기 매니저랑 쉐도우만 삼십 분씩 하던데?”
건은 PD라는 사내를 쳐다봤다. 살집만 두둑하고 근육은 거의 붙지 않은 몸, 폭발력도 지구력도 형편없을 육체였다.
오면서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다. 다 자란 악마견 한 마리만 있으면 서울엔 생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여기 있는 스탭들이 전부 달려들어도 괜찮다고 하는 대신, 그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올 때 뛰어와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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