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7)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7화(7/199)
욕탕 속 상어 (1)
* * *
무술감독 현도균은 불만이 많았다.
첫째는 성질을 긁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 같은 배우들의 액션 수준에.
어제 가르친 자식, 충무로 흥행수표라는 젊은 놈은 수업 내내 시들시들하더니 기어이 현기증이 난다며 드러누웠다.
‘모자란 놈, 배우병만 걸려서.’
둘째는 지금 자문 겸 액션 총괄을 맡은 새 드라마의 앞날에.
며칠 전엔 할 마음도 없어 보이는 배우들 셋을 데려와 합을 맞춰 보게 시키더니, 이번에는 일반인 오디션이라고?
디테일로 유명한 은 작가라지만 내심 실망스럽다. 그 따위 배우들로 칼 잘 쓰는 살인기계 배역을 어떻게 소화시키겠나. 또 카메라만 요령껏 흔들어서 대중들 눈이나 흐리겠지.
‘옛날이 차라리 좋았는데. 우리 액션스쿨만 잘 됐으면 이깟 감독 일은······.’
현도균은 십오 년째 하는 생각을 곱씹으며 소품 칼을 던졌다 받았다.
겉모습은 칼처럼 보이지만 날도 없고, 맞아도 안 아픈 스펀지 사시미다.
“합 맞춰 본 적 있어요?”
마찬가지로 제작팀이 준 사시미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던 남자가 대답했다.
“없는데, 상관없습니다.”
“내가 상관있어요. 자, 자세 잡아 봐요.”
눈살을 찌푸린 현도균이 기본적인 시범 몇 가지를 보였다.
“이렇게 상단, 다음은 중단, 막고 피하고 다시 나한테 휘두르면 돼요. 칼끼리 부딪칠 일 없게, 하나, 둘, 셋에서 팍.”
“예.”
아빠 옷처럼 품 넓은 수트를 입은 남자는 고개만 끄덕였다. 느리게 해 보자거나, 다시 보여 달라거나 하는 말도 없었다.
“그 다음은 이렇게······.”
“예.”
‘뭐, 못 하고 절면 자기만 망신이지.’
현도균은 배우라는 족속들을 썩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이 열정 없는 수트맨한테도 필요 이상의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
자기 동작만 대충 다 보여준 뒤, 돌아가며 생각한 것이 다였다.
‘그래도 칼 든 태는 좀 나오네.’
*
<서울의 개>은 남자 배우 둘을 전면에 배치한 느와르 드라마다.
극은 조폭들끼리의 싸움이 발생한 서울을 조망하며 시작된다.
주인공은 강력반 형사인 마대휘.
최근 일어난 폭력사건과 마약거래, 사채발행 피해자들을 쫓던 중 신흥 조직을 발견하고, 그 뒤에 누군가 있음을 알아차린다.
‘정 인터내셔널’의 대표, 마대휘의 안티-테제이자 또 다른 주인공인 정연우다.
정연우는 부산, 포항, 대구를 비롯한 아래 지방의 조폭부터 통합해 세를 불렸고, 마대휘가 쫓기 시작하며 본격적인 싸움이 발발한다.
그리고 박건이 맡게 될 ‘최승’은 정연우의 보디가드이자 행동대장이다.
#S42, C1.
서울의 폭력 조직들이 ‘정 인터내셔널’에 빠르게 정리됐지만, 굵직한 조직 몇 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 중 하나가 차이나타운을 근거지로 삼아 장기매매를 일삼는 흑룡파다.
마대휘는 차이나타운 안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유곽으로 잠입한다.
흑룡파가 관리 중인 이 영업장에 정연우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지만, 신분이 들통 나 야쿠자들에게 쫓기게 된다.
ㅡ물러서, 이 새끼들아!
마대휘가 안전장치를 풀고 공포탄을 발포하지만 소용없다.
ㅡ당장 나와야 돼, 거기 지금 흑룡파 새끼들 우글우글해!
ㅡ나도 나가고 싶지. 그럴 수만 있으면.
마대휘는 동료의 목소리가 울리는 이어링을 빼 버린다.
단독작전이므로 지원은 오지 않는다. 실탄은 여섯 발, 적은 어림잡아도 사십 명.
온탕의 열기가 형사의 시야를 가리고, 리볼버 총열에 물방울이 미끄러진다.
손에 긴 갈고리낫과 사시미를 들고 얇은 팬티만 입은 흑룡파 조직원들이 좁혀 오는 순간.
사우나 온탕 한복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물 속에서,
‘그’가 나타난다.
*
강한 조명이 얼굴의 음영을 지운다.
최승으로 분한 박건이 숙였던 고개를 들었을 때, 끈적한 정적이 깔렸다.
본래는 탕 안에서 촬영될 장면이다. 물이 있을 리 없는 오디션장이건만, 그 자리의 사람들은 분명 습기를 느꼈다.
열탕에 들어온 듯 숨이 막힌다.
“······.”
최승 앞에 서 있던 무술감독 현도균은 눈을 크게 떴다.
저 일반인이 고개를 든 순간 분위기가 변했다.
눈앞에 있는 건 허우대만 좋은 배우 지망생이 아니었다.
고개를 들어 피를, 아니, 물을 털어버린 최승이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었다.
‘저 새끼, 진짜 칼이 어디서 나서······.’
싸우지 않으면 죽는다.
식지 않은 무도가의 피가 굳어버린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현도균이 스펀지 칼을 벼락같이 휘둘렀고, 최승은 손쉽게 피하고 약속한 궤적으로 찔러넣었다.
방어, 공격, 다시 방어. 본래는 세 합이 끝나고 칼에 찔려 나뒹굴어야 한다.
지나치게 몰입한 탓일까. 현도균은 저도 모르게 날아오는 칼날을 피하려 몸을 틀고 말았다.
명백한 NG. 그러나 기이한 궤적을 그린 칼은 현도균의 우측 경동맥을 길게 잘라냈다.
푸확!
가상의 피를 흩뿌리며 현도균이 쓰러졌다. 적을 베어 버린 최승은 멈추지 않고 전진한다.
한 명, 두 명, 네 명, 일곱 명. 허공을 찢는 칼질이지만 치명적인 동맥이 썰려 울부짖는 야쿠자들이 보이는 것 같다.
뚜벅··· 탁.
이내 박건은 연출진들이 앉아 있는 책상 앞까지 당도했다.
공포와 혼란, 경악에 빠진 시선들이 그를 따라왔다. 이미 세트장은 카메라가 비추는 오디션장이 아니라 피와 물로 범벅된 유곽이었다.
극을 찢고 튀어나온 인간 백정은 턱에 튄 붉은 물을 닦더니, 식칼을 휙 털었다.
우당탕!
기어이 누군가의 의자가 나뒹굴었다.
*
“컷, 커어어엇!”
벌떡 일어난 사람은 나종모 PD였다.
뒤늦게 컷을 외친 그는 눈앞까지 온 박건을 와락 끌어안았다.
“이겁니다, 바로 이거예요! 안 그렇습니까, 은 작가님?”
은희욱 작가는 대답하는 것도 잊고 입을 벌린 채 굳어 있었다.
“보세요, 박건 씨. 우리 작가님 정신 쏙 빠진 거. 촬영감독님, 잘 찍혔어요? 무술감독님, 진짜 돌아가신 거 아니죠? 나 보다가 소름이 돋아서 일어나 버렸다니까.”
수다스러운 칭찬이 다다다 쏟아지는 와중에도 박건은 태연했다.
컷을 외치기 전까지 돌처럼 굳어 있던 스탭들도 마법이 깨진 양 서로를 마주봤다.
머쓱하게 일어선 현도균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무술감독 현도균입니다. 그, 중간에 커버해 줘서 고맙습니다. 워낙 분위기가 리얼하셔서 실수를 다 했네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혹시 나이프 파이팅을 배우셨는지··· 아니면 수련하신 무도가 따로 있습니까?”
아까는 귀찮아 죽겠다는 태도더니, 지금은 까마득한 선배라도 모시듯 존칭을 쓴다.
박건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이것저것 했습니다.”
“그럼 혹시 유파나 뭐라도······.”
집요하게 묻는 무술감독을 나종모 PD가 떼어 놓았다.
“자, 자, 그건 차차 알아가시고. 우리 박 배우님 한두 번 볼 거 아니잖아요? 원랜 몇 컷 더 찍으려고 했는데··· 이래서야 기다릴 수가 있나. 작품부터 보면서 얘기합시다.”
곧 PD와 작가는 박건을 데리고 촬영감독 쪽으로 가 버렸다.
이내 셋은 찍힌 영상을 보며 신나게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이거라니까. 머리 드는데 난 진짜 죠스가 나오는 줄 알았어, 탕 안에서.”
“제가 뭐라고 했어요. 새벽 네 시까지 기다려서 모셔 온 보람 있댔죠?”
“아이고, 종로 뒷방에서 성수 아파트로 이사시켜 준 은 작가님 못 믿으면 누굴 믿겠습니까. 김 감독님, 이거 탕 안에서 나올 때 진짜 끝내주게 뽑아 줘요. 내가 볼 때 올해 레전드 등장씬에 무조건 들어가니까.”
한창 떠들던 중, 나종모 PD가 옆에서 기웃거리던 스탭 한 명을 불렀다.
“어, 희영 씨. 그 친구들한테 연락해.”
“예? 누구요?”
“최승 배역 오디션 본 배우들 말야. 안 기다리셔도 될 것 같다고.”
*
“붙었다고?”
“어.”
“···오디션에?”
“그렇다니까. PD란 사람한테 여태 잡혀 있다가 이제 온 거야.”
박선이 멍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어머니는 자고 있어서, 불 꺼진 거실에는 아버지와 박선만 나와 있었다.
“그럼 진짜 은희욱 작가님 신작에 출연하는 거야? 엑스트라, 아니면 단역?”
“그럴 것 같은데. 비중이 몇 화 있긴 해.”
박열호가 기특해 죽겠다는 듯 으스댔다.
“그래, 우리 아들이 웬만한 배우들보다 인물은 낫다. 건이 너 어릴 적엔 기저귀 모델 하자는 데도 있었어. 네 엄마 때문에 못했지.”
“아, 어머니는요?”
“늦게 퇴근해서 지금 잔다. 내일 얘기해 주면 엄청 좋아하실 거야. 그 드라만가 뭔가, 촬영 시작은 언제부터라냐?”
“곧 들어갈 것 같아요. 일정은 따로 연락 준다고 했습니다.”
박열호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하나뿐인 손으로 건의 등을 몇 번이나 쓸어내렸다.
“전역하자마자 쉬지도 못 하고··· 아무튼 잘 해 봐라,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하고.”
“예, 아버지도 얼른 주무세요.”
밤이 늦은 터라 가족들은 간단하게 기쁨을 나누고 방으로 돌아갔다.
몇 분 후, 노크소리가 들렸다. 열어 보니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박선이었다.
“형, 부탁이 있는데.”
한참을 우물쭈물하던 박선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나도 매니저로 데려가 줄 수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