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73)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73화(73/199)
역대급 태그팀 매치 (5)
* * *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고생하셨어요, 들어가세요!”
화장품 광고 촬영 하나가 또 끝났다.
정일준 팀장과 인사한 스탭들이 저만치 있는 진지유에게 달려가 사인을 부탁한다.
요즘 박건과 엮이면서 이미지가 갈수록 좋아져서, 별다른 작품 활동을 안 하는데도 단가 높은 광고가 계속 들어온다.
작년 초, 영화 실패 이후 살짝 정체됐던 몸값도 오히려 더 뛰었다.
이만하면 ‘박건 특수’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영향력이다.
‘제대로 대화는 안 해 봤는데······.’
오며 가며 한두 번 인사한 바로는, 지금까지 연예계에 없던 캐릭터다.
외모만 보고서 최필립보다도 까탈스러울 거라 예상했으나··· 전혀 다르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상냥하고 친화력도 좋다.
철이 든 구신승이 남성스러워진 느낌이랄까. 정 팀장은 무릎까지 굽히면서 스탭들과 셀카를 찍어 주는 진지유를 보며 생각했다.
확실히, 같이 있는 그림을 상상했을 때 이쪽도 썩 잘 어울린다. 그 비공식 오디션에서 백하니만 제쳤더라면······.
생각하는 사이, 활기차게 걸어온 진지유가 팔을 톡톡 쳤다. 새벽부터 일정이 바빴는데도 피곤한 기색 한 번을 내비치질 않는다.
“오빠, 뭐 해? 밥 먹고 들어갈까?”
“아까 모니터할 때 대충 때웠어. 졸릴 텐데 얼른 가서 쉬어야지.”
“그래도 기다린다고 고생했잖아. 여기 근처에 괜찮은 스시집 있으니까, 포장이라도 해서 가자.”
행동력도 발군인 게, 말과 함께 이미 스마트폰을 꺼내 예약에 들어간다.
정 팀장은 그가 먹을 초밥을 주문 중인 배우를 보다가 어렵사리 물었다.
“지유야, 너 괜찮아?”
“응? 뭐가?”
“아니, 그때 로드도 없이 혼자 갔었다면서. 괜히 끝나고 실망했을까 해서······.”
“아, 오디션··· 푸흡. 그거 소문 다 났지?”
그 자리에 있던 직원들만 십여 명이 넘는다. 아무리 입단속을 해도 전부 막기는 어렵다.
진지유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괜찮아, 일부러 그런 거니까.”
“일부러라니?”
“배역 욕심도 나긴 했는데, 회사가 정한 걸 어떻게 뒤집어. 그냥 백하니 긴장 좀 시키려고 시위하고 온 거야. 대표님 부탁이라 찍긴 찍는데 촬영장 가서 태업할까 봐.”
그렇다면 큰 문제는 없다. 끄덕이던 정 팀장은 문득 더 무서운 사실을 깨달았다.
배역에 욕심이 나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진심으로 뺏으려던 것도 아니고, 극을 더 잘 찍게 하려고 그 수고를 했단 말인가?
정 팀장은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었다.
“지유야, 혹시나 해서 말인데··· 박건 배우랑 너랑, 둘 사이에 뭐가 있진 않지? 동료 이상의 감정이라든가······.”
바삐 움직이던 진지유의 손가락이 멈췄다.
고양이처럼 끝이 올라간 눈매가 도발적으로 이쪽을 응시해 온다.
“있으면?”
“······어?”
“농담이야. 그런 게 어딨어? 따로 술 한 번을 먹은 적이 없는데.”
장난스레 콧등에 주름을 잡은 진지유는 그를 지나쳐 걸어갔다.
“고등어랑 딱새우랑··· 아, 대방어! 광어에 참치도 맛있겠다.”
먹을 걸 줄줄 부르는 걸 보니, 또 한 보따리 싸서 회사에 가져다줄 모양이었다.
그러나··· 로드매니저 시절부터 같은 연예인과 무려 5년을 부대낀 사이다.
백하니는 매번 인상을 구겨서, 진지유는 항상 웃어서 모르겠다는 직원들과 달리, 팀장급쯤 되면 어느 정도 눈치란 게 생긴다.
“지유야, 같이 가! 너 차도 안 가져왔잖아!”
진지유를 바삐 쫓아가며, 정일준 팀장은 내심 탄식했다.
‘하나는 가짜, 다른 하나는 진짜구만.’
*
촬영도 일정도 없는 평일 아침.
부모님은 외출을 했고 박선은 모기업 재무팀과 미팅이 있다며 CVN으로 출근했다.
모처럼 밴의 뒷자리가 아닌 운전석에 탄 채, 건은 골똘히 생각한다.
‘특별 처방이 필요하겠는데.’
파티원과 원만한 사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얼 해야 하는가?
우선은 정보다.
첫째는 상대의 성격을 알고, 둘째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파악해야 한다.
대악마를 피해 화산지대로 숨어든 마지막 고룡의 일족도, 사막 깊숙한 도시의 절대자도 제각기 원하는 것이 있었다.
―유약한 필멸자여, 네가 감히 종족의 숙원을 짐작이나 하겠는가?
―선친의 원한을 갚아다오. 그렇다면 동료가 되어 마경 끝까지 따라가겠다.
―···우리의 혼과 육을 바쳐서라도.
그래서 팔자에도 없는 서브 퀘스트를 회차마다 했었다. 물론 나중에는 특성에 맞는 말 몇 마디로 구워삶아 합류시켰지만.
‘좀 귀찮았지, 특히나 초반부에는.’
목표가 같은 놈들··· 순진하고 착한 녀석들은 유혹이 쉽다.
문제는 똑똑한 놈, 알 것 다 아는 놈, 거기다 성질까지 더러운 작자들이다.
“꼭 그런 녀석들이 쓸 만하단 말이야.”
철왕국에서야 수백 번의 회귀로 경험이 쌓였다지만 지구의 생은 여전히 1회차다.
제 과거도 모르는 전직 용사가 남의 과거를 꿰고 있을 리도 만무하다.
그래서 지금, 그는 팔자에도 없는 첩보원 흉내를 내고 있었다.
-백하니랑 친해지는 방법요?
전화를 받은 최필립은 이야기를 듣더니 웃음부터 터뜨렸다.
“예. 그럴 일이 좀 있어서요.”
-이번에 같이 들어간다는 얘긴 들었어요. 근데 그걸 나한테 묻는다는 게··· 큭큭, 진짜 박건 씨다워서 어질어질하네.
한참을 낄낄대더니 나온 팁은 이러했다.
-은퇴하면 돼요.
“예?”
-백하니 걔, 연예계 종사자들만 죽어라 싫어하거든요. 그것도 끗발 세면 셀수록. 오히려 코디나 로드는 사고를 쳐도 그냥 넘어가요. 그럴 거면 왜 이 바닥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습니까.”
-아무튼 속이 배배 꼬인 애니까, 그냥 AI 로봇이구나 생각하고 연기만 해요. 나처럼 볼 때마다 말로 두들겨 팰 게 아니면.
왜 사이가 안 좋냐고 묻고 싶었지만, 어쩐지 알 것 같았기에 건은 고맙다고 하곤 끊었다.
다음 후보는 회사다.
늘 그렇듯, 홍보실에서 커피를 들이키던 공기형 팀장도 피식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드디어 건이 씨가 불가능한 퀘스트를 받으러 오셨군요. 하지만 이걸 어쩌나, 백하니는 로만 사천왕 중에서도 최종보스급······.”
“어떻게 하면 됩니까?”
“뭐야, 진심이었어요?”
건은 사 온 군것질거리를 홍보실 남직원한테 건네며 대꾸했다.
“물론입니다. 그래도 같은 소속사인데, 현장에서 팀워크는 잘 맞춰야죠.”
변휘승 때야 말이 통했지만, 이번엔 진짜 불화설이 뜰까 걱정이라는 소리는 쏙 뺐다.
공 팀장은 알 만하다는 듯 혀를 찼다.
“걱정될 만도 한데, 그냥 놔 버리는 게 편할 거예요. 드라마 하차는 안 하겠거니 생각으로.”
“어째서입니까?”
“잘해 줘도 지랄, 못해 주면 상지랄을 떠는 게 우리 백 배우라서요. 잘생긴 사람을 이상하게 싫어하기도 하고.”
“최필립 배우는 저더러 은퇴하라던데요.”
“아, 그 방법도 있죠. 근데 아직 달성할 목표가 많이 남았잖아요.”
건이 고개를 끄덕이자, 공 팀장은 한참을 고심하더니 비책을 내놓았다.
“말을 걸지 말아 봐요. 싸울 일이 없으면 저절로 친해지겠지.”
“······.”
홍보팀장이라는 양반도 별 도움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소득 없이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온 건은 연락처를 뒤지기 시작했다.
변휘승, 구신승··· ‘승’자 돌림 문제아들을 패스하니 남은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회사 내 최대의 라이벌은 즉답을 보냈다.
[진지유] : 하니 언니요? [진지유] : 저랑은 처음 회사 왔을 때부터 친했어서 ㅋㅋㅋㅋ 뭘 좋아할진 모르겠는데… [진지유] : 근데 왜요? 백하니가 오빠한테도 자기 힐 집어던졌어요? [진지유] : 혹시 그랬으면 얘기해요, 저 연장 좀 챙겨올 테니까 [진지유] : (어린이용 플라스틱 삽 사진) [진지유] : 삽지유라고 들어 보셨으려나ㅎㅎㅎ호칭이 다소 오락가락하긴 했으나, 아무튼 이쪽도 답을 모른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저만하면 진짜 아웃사이더인데.’
그럴 만도 한 게, 본부장실의 자개 명패도 집어던져 박살을 냈다지 않나.
사과의 의미로 더 비싼 명패에 스타일러까지 사 줬다곤 해도 명백한 분노조절장애다.
언젠가 박선이 해 준 말처럼, 온갖 성격 뒤틀린 인간들이 다 모인 곳이 이 바닥인 것이다.
‘그런데도 최근 재계약을 했지. 노 대표도 저 급쯤 되면 잡아 두는 건가?’
주변 사람들은 학을 떼는데, 정작 매스컴에 오르내리진 않는 것도 희한했다.
로만 홍보팀이 잘 틀어막은 탓일까. 아니면 본인이 아슬아슬한 선은 안 넘어서?
전자든 후자든, 촬영장에서 사고를 칠 인간이라면 모종의 성격적 계도가 필요하다. 멀리서 기회를 엿보는 하이에나 떼를 대비해서라도.
“촬영일이 아마······.”
시대극의 특성상 대형 세트가 완공되기까지는 시일이 걸린다. 이제 첫 촬영까지는 보름, 대본 리딩은 열흘이 조금 덜 남아 있었다.
대표실이라도 가 봐야 하나? 고민하며 밴 시동을 걸었을 때였다.
지잉― 안주머니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예, 팀장님.”
공 팀장은 자초지종 설명도 없이 대뜸 말했다.
-혹시 아직 그, 백하니 테이밍 컨텐츠 찍고 있으면 청담 센서리움으로 가 봐요. 유 실장 내쫓고 혼자 쇼핑 나갔다니까.
*
압구정동, 도산대로.
몇 번 지나가기만 했던 ‘센서리움’은 명품관이 즐비한 고급 백화점이었다.
박선은 없지만 변장엔 이골이 난 터. 트렁크에 있는 안경과 마스크, 곰 귀가 달린 털모자까지 뒤집어쓰자 완벽하게 위장됐다.
‘이름이··· 바라클라바랬나? 구신승한테 받아 놓길 잘 했네.’
과연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신기한 놈 보듯 쳐다보는 시선들을 지나 몇 층을 뒤지자, 백하니로 짐작되는 뒷모습이 금방 발견됐다.
“배짱 하난 좋네.”
이쪽은 변장이라고 할 게 머플러 한 장과 선글라스가 전부다. 화려한 숏 트렌치코트에 밤색 스웨이드 앵클부츠 차림.
누가 봐도 연예인 포스지만, 대낮의 명품관엔 다행히 사람이 별로 없다.
백하니는 주변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직진해 모 브랜드 매장으로 들어갔다.
말을 걸지 말지, 잠깐 지켜볼 생각으로 건은 기감을 끌어올렸다.
이내 백하니를 발견한 매장 직원이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 어머!”
“나예요. 잠깐 들렀어요.”
선글라스를 살짝 내렸다가 다시 쓴 백하니는 직원과 익숙하게 안부를 주고받았다.
“뭐 문제는 없죠?”
“아유, 그럼요. 연락 주셨으면 쇼퍼라도 대기시켰을 텐데, 아니면 위쪽 VVIP 라운지로······.”
“됐어요. 오랜만에 언니 얼굴도 볼 겸 온 건데, 거기 가면 귀찮기만 해요.”
“예에··· 어쩜, 근데 못 본 새 더 예뻐지셨어요, 빈말 아니고 진짜로!”
“돈지랄해서 그래요.”
“에에이, 하니 씨는 원래도 예뻤어요.”
직원은 깔깔 웃으면서 안쪽으로 백하니를 안내했다. 탑 여배우, 그것도 저 싸가지를 상대로도 제법 친근한 태도다.
‘원래 친분이 있던 사람인가?’
상황은 건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여배우들 쇼핑이 그렇게 피를 말린다던데, 쇼퍼를 부르거나 매니저를 닦달하지도 않는다.
디피된 상품들을 쭉 훑더니 몇 개를 추려 직원에게 오더를 맡긴 것이 전부였다.
“배송은 원래 보내던 데로, 이거랑 저건 이 주소로 보내 주세요. 설 선물을 못 돌려서.”
“네, 알겠습니다.”
“혹시 그 인간들이 갑질하면 얘기하고요. 올라가서 확 뒤집어 버릴 거니까.”
“아, 아니에요! 정말 잘해 주셔서··· 그나저나 이번 드라마도 응원할게요!”
그러고도 몇 차례, 근처 매장들에서 비슷한 장면이 되풀이됐다.
언제 난리를 칠지 내심 기다렸던 입장에선 머쓱한 걸 넘어 미안할 정도였다.
이거야 뭐, 괜한 사람 따라다니면서 감시하는 꼴 아닌가?
건은 성큼성큼 걸어가 막 가방 하날 들어 보는 백하니 옆에 섰다.
“백하니 씨.”
“······.”
대답 대신 끅, 하는 소리가 들렸다. 들고 있던 가방도 팔에서 쭉 미끄러진다.
잠시 후에야 백하니는 오만상을 쓰며 그의 행색을 훑어봤다.
“뭐예요, 미친 사람인가?”
“아뇨. 박건입니다.”
말과 함께 슬쩍 마스크를 내리자 백하니의 눈이 커졌다.
“그쪽이 여기 왜 있어요? 혹시 유 실장이 나 잡아오라고 시켰으면······.”
“그냥 제가 물어봤는데요. 백화점을 가셨다기에 같이 쇼핑이나 할까 해서 왔습니다.”
건은 어머니 선물용으로 산 악어가죽 새들백을 흔들어 보였다.
“···정말 웃기고 자빠지셨네요.”
“아직 제 발로 서 있습니다만.”
“됐고, 누가 보기 전에 갈 길 가세요. 지금 그딴 말장난할 기분······.”
신랄하게 쏘아붙이던 백하니가 갑자기 입을 가렸다. 조그맣게 끅 소리가 또 들렸는데, 아무래도 방금 전에 꽤 놀란 것 같았다.
그는 친절하게 추천했다.
“딸꾹질엔 얼음이랑 레몬이 좋습니다.”
백하니가 꽉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였다. 옆 브랜드를 둘러보던 여자 손님들이 둘이 있는 매장으로 들어섰다.
이어, 작지만 선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야, 저기, 저기. 백하니 아니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