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74)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74화(74/199)
역대급 태그팀 매치 (6)
* * *
“······.”
선글라스 뒤쪽으로도 백하니의 미간이 구겨지는 것은 잘 보였다.
스캔들이 문제가 아니다. 유 실장이나 다른 매니저도 없는데, 팬들 앞에서 소리라도 질렀다간 대참사가 벌어진다.
건은 백하니를 가로막듯 앞으로 나서서 마스크를 잠깐 내렸다.
“안녕하십니까.”
“···어, 어어?”
백하니 쪽을 흘끔거리던 여자 손님들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 커졌다.
“박, 바악건······!”
“예, 저 맞습니다. 성이 바악은 아니고요.”
“대박, 왜 여기 계신 거예요? 그럼 저 뒤에 여자분도 진짜 백하니예요?”
건은 흘끗 뒤쪽을 봤다. 백하니는 이 미친놈이 무슨 짓을 하는 건가, 싶은 표정으로 불안하게 눈을 굴리고 있었다.
“아마 그런 것 같네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저희 둘이 같은 작품을 들어가게 돼서······.”
발까지 동동 구르던 여자 손님들이 한목소리로 소리쳤다.
“알아요, 백정과 장군!”
“예. 그래서 게릴라 컨텐츠 중이었습니다. 적당히 들켜서 기사 띄우려고 대충 변장했는데, 여태 알아보시는 분들이 없더라고요. 백하니 씨 인지도가 생각보다 낮았나 봅니다.”
“푸흐흫, 설마요.”
“그럼요. 저희 백하니 씨도 좋아해요! 오빠만큼은 아니고··· 여자 연예인 중에서?”
“······.”
뒤에서 분노에 찬 눈빛이 느껴졌지만, 건은 뻔뻔하게 계속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SNS에 예쁘게 좀 홍보해 주시겠습니까? 또 불화설 뜨면 회사에서 쫓겨날 것 같거든요.”
“당연하죠! 저랑 얘랑 팔로워 합치면 오만 명 넘거든요? 진짜 열심히 써서 올릴게요!”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빙긋 웃은 건은 백하니를 돌아보았다.
“뭐 해요, 백 배우님?”
“갑자기 뭐 하긴 뭘······.”
“사진 좀 찍어 주세요. 손도 남으시면서.”
간신히 표정을 관리한 백하니가 그들의 사진을 찍어 줄 때, 새 불청객이 등장했다.
“뭐야, 연예인인가?”
“누가 왔나 보지··· 어? 야, 저기서 사진 찍는 사람 백하니 아냐?”
“맞잖아! 박건도 같이 있네!”
금세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먹구름이 드리워진 동료의 낯빛을 곁눈질하며, 건은 재빠르게 속삭였다.
“딱 열 분만 찍고 갑시다. 밥 살게요.”
“······.”
*
열 명이었던 사람은 스무 명으로, 잠시 후엔 서른 명까지 넘어갔다.
덕분에 두 배우는 명품관 복도 한쪽에서 때아닌 팬미팅을 벌여야 했다.
“저희가 다음 일정이 있어서, 죄송합니다. ‘백정장군’도 많이 사랑해 주시길 바랍니다.”
더 몰려들다간 끝이 없을 기세였기에 건은 적당한 선에서 자리를 마무리했다.
합기의 영향인지, 조용조용히 말했음에도 사람들은 별 불만 없이 흩어졌다.
애초에 명품관 한가운데기도 하고, 워낙 보기 어려운 톱스타들이라 본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진짜로 돌았어요?”
직원의 안내를 받아 올라간 VVIP 라운지.
소파에 몸을 던지듯 주저앉은 백하니가 치를 떨며 물었다.
“왜 그러시죠? 반응도 좋았는데요.”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러다 사람들 모여서 갇히기라도 하면? 떡 본 김에 고사 지낸다고, 얼렁뚱땅 스캔들까지 났으면 어쩌려고······.”
본인이 말하면서도 뭔가 꼬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백하니의 말이 뚝 끊겼다. 건은 궁금증을 담아 물었다.
“스캔들이요? 우리가?”
“···날 수도 있죠. 어떻게든 나랑 한 번 엮여 보려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데.”
“첫째, 일단 저는 아니고요. 둘째, 기억상실은 좀 있지만 다른 병증은 없습니다.”
“하?”
백하니가 헛웃음을 흘렸지만, 건은 아무렇지 않게 라운지를 둘러봤다.
“그나저나, 여긴 처음 와 보는데 좋군요. 자주 오는 백화점입니까?”
“안 와요. 그냥 들른 거예요.”
“아까 뭘 많이 사시던데.”
“미쳤나 봐, 계속 따라다녔어요?”
건은 쓰고 있던 털모자를 벗었다.
“미행하는 취미는 없고. 이번 오디션 때문에 이야길 좀 나누고 싶었습니다.”
“···아. 노리는 게 그거였구나?”
순간 백하니의 표정이 변했다. 원래 얼굴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익숙한 위악의 가면이 새하얗게 얼어붙으며 그 자리를 대신했다.
“왜요, 아쉬웠나 보지? 오디션까지 따라온 진지유가 떨어지고 내가 붙어서?”
“저는 송이설 역에 백하니 씨가 더 어울린다고 판단했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로 잘 맞는 건 다른 이야기겠지만요.”
“······.”
백하니는 소파에 등을 묻었다. 가느스름하게 좁혀진 눈이 이쪽을 응시한다.
평소 짓고 있는 짜증 어린 무표정과는 사뭇 다른 얼굴이다.
천천히, 붉은 입술이 조소를 담고 올라갔다.
“혹시 그쪽도 진지유 좋아해요?”
“갑자기 무슨 소립니까?”
“왜, 회사 사람들 다 걔 좋아하잖아요. 살살 웃으면서 세상 착한 척만 하고 다니니까. 본인도 헤벌레하는 중인가 해서.”
“그 소리를 요즘 자주 듣네요. 진지유 씨는 좋은 동료이자 선배입니다.”
백하니의 눈썹이 삐딱하게 내려갔다.
절대 못 믿겠다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누군가가 떠올랐다.
“거기다가, 전 저한테 잘해 주는 사람보다 잔소리하는 사람이 취향이라서요.”
백하니는 코웃음을 쳤다.
“아, 또 순수한 티 내나. 미안한데, 걔 뱃속엔 나보다 더한 게 들어 있어요.”
“압니다.”
“웃겨. 그쪽이 뭘 안다고?”
대답 대신, 건은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긴 손가락이 목폴라 위를 메스처럼 긋고 내려간다.
“다들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죠. 그리고 이 회사에서, 여길 갈랐을 때 가장 추악한 인간은 진지유 씨도 백하니 씨도 아닐 겁니다.”
“그럼 누군데요?”
“그쪽 앞에 있는 사람이지.”
당연하다는 것처럼 나온 대답에, 백하니는 움찔 말을 멈췄다.
조용히 웃은 건이 중얼거렸다.
“노 대표님이 사람을 잘못 보셔서.”
째깍, 째깍, 째깍.
백하니의 손목시계 초침이 한 바퀴를 움직이는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깨진 것은 노부인 손님이 매니저와 함께 들어오고서였다.
“여기서 쉬고 계시면 금방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원래 마시던 걸로 드릴까요?”
“응, 부탁하지요.”
다행히 저쪽은 여기 관심이 없었다. 목소리를 줄인 백하니가 표독스레 다그쳤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나도 또라이니까 알아서 조심해라, 이 따위 협박은 대표님한테나······.”
“잘할 수 있을 겁니다.”
“······?”
야생 사막여우처럼 경계심 가득하던 표정에 의문이 떠올랐다.
“여긴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있고··· 그 중 고쳐서 못 쓸 쓰레기가 많은 것도 압니다. 제가 있던 곳만큼 치열한 세상이 연예계더군요.”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글쎄요. 오늘 봐서 다행이었다?”
백하니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건은 일어섰다.
“아마 촬영 들어가면 우리가 다툴 시간도 없을 겁니다. 이제 보름쯤 남았나요?”
“···몰라요, 그런 거 안 봐서. 스케줄은 문성훈 씨가 알아서 챙겨주니까.”
자기 회사 본부장 명패는 깨부수는 주제에, 매니저 이름은 또 기억하고 있다.
“아무튼 조심하십시오. 기자에 파파라치까지 풀어서 찌를 구석만 찾는 눈치던데, 다음은 백하니 씨가 목표일지도 모릅니다.”
백하니는 가소롭다는 듯 대꾸했다.
“본인 앞가림이나 잘 하시죠? 나 백하니예요.”
“마음이 놓이는군요.”
고개를 끄덕인 건은 오른손을 내밀었다가 다시 거둬들였다.
“아직 악수할 사이는 아닌 것 같아서, 손은 더 친해진 다음으로.”
“뭐, 이 따위로 참신하게 미친 인간이······.”
“그럼 리딩 때 뵙겠습니다.”
등을 돌려 걸어가면서, 내심 경계했지만 날아오는 물건은 없었다.
‘좀 아쉽네. 강속구 투수라기에 기대했더니.’
외출의 성과는 충분했다. 백하니를 잘 아는 것 같은 직원의 태도나, 백화점 얘기가 나올 때마다 미세하게 흔들리던 동공이라든가.
짐작은 간다. 아마 가족이나 친척, 그 비슷한 뒷얘기가 엮여 있을 것이다.
더 깊이 알 필요는 없다. 섣부른 전우애를 발휘할 생각도 당연히 없었다.
다만··· 확인했을 뿐이다.
“이번 동료는 원하는 게 뭔지.”
지지 않을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어났다.
*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그 동안 조연, 단역 등 마지막 캐스팅들이 확정됐고 부여의 세트장이 착착 올라갔다.
박건은 동생이 구해 준 자료와 유튜브로 옛 조선의 검술을 훑어보며 시간을 보냈다.
배우들이 각자의 연기를 준비하는 동안, 극 밖의 전쟁도 치열하게 펼쳐졌다.
본래 ‘백정장군’과 같은 날짜에 방영 예정이었던 ‘하이페리온’은 돌연 대본 리딩과 첫 방영일을 일주일씩 앞당겼다.
[‘하이페리온’ 병서한 PD, “장고 끝의 선택···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좋은 작품 선보일 것”]오래 고민했다느니,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느니,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엄살임을 모두가 안다.
애초에 방영일을 당길 생각이었고, 최대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치사한 수를 쓴 것이다.
세트장으로 가던 차 안. 소식을 들은 전인우 PD는 대수롭지 않게 지시했다.
“됐어, 먼저 하라고 해. 어차피 궁금한 사람들은 비교하고 싶어서라도 챙겨 볼 거니까. 리딩으로 어그로 끄는 시대는 지났어.”
프로들의 시합에서 이 정도 꼼수쯤이야 긁힌 티도 안 난다.
결국 상대를 거꾸러뜨리는 것은 섬광 같은 스트레이트, 또는 묵직한 훅이다.
하루, 이틀··· 강풍기를 틀어 놓은 것처럼 정신없이 넘어가던 달력은 D-DAY에 멈췄다.
3월 2일.
‘백정과 장군’의 첫 촬영일이 밝았다.
*
충남 부여.
경성시대 저잣거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대형 세트장으로, 크고 작은 차량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미니밴, 스타크래프트 밴, 익스플로러 밴··· 연예인 차만 해도 많은데, 스탭들이 몰고 온 개인 차량들까지 더하니 주차 대란이 일었다.
“감독님, 더 들어갈 데가 없어요!”
“에라이, 그냥 대충 쑤셔 박고 키만 꽂아 놔! 어차피 오늘 촬영 다 끝나야 이 차들 빠져.”
근처 주차장을 모조리 점거하고도 스타렉스가 계속 들어온다.
세트 입구에서 난리통을 구경하던 박선이 혀를 내둘렀다.
“우와, 진짜 많네요.”
옆에 서 있는 조감독이 피식 웃었다.
“작품 몸집부터 크니까요. 저희야 여기서 짱 박고 버틴다고 해도, 이만한 대인원이 서울 안에서 몰려다니면 답도 없어요.”
“잠잘 곳도 문제겠네요.”
“그죠, 감독님은 아예 근처에 달방을 잡으셨다던데··· 좋아 죽으려고 하시더라고요.”
“어, 왜요? 원래 여행을 좋아하셨나요?”
순진하게 묻는 박선에게, 조감독이 주위를 둘러보곤 입을 가렸다.
“결혼 6년차시거든요. 자기 말론 탈출이 절실한 가장이래요.”
“아이고, 세상에······.”
저만치서 자기 이야기가 오가는 줄도 모르고, PD··· 아니, 이제 총감독을 맡은 전인우는 현장 점검에 여념이 없다.
“양 감독. 겉보기에 용마루는 다 완성된 것 같은데··· 지붕 타는 씬들도 찍을 수 있나?”
“아직 조금 위험합니다. 저게 칼라 강판 반, 소품 반이라서 실제 기와처럼 지지력이 좋지가 않거든요. 빨리 올리려다 보니까.”
“그럼 가능한 것들부터 가자고.”
‘백정장군’ 세트장 구축을 총괄한 양연태 미술감독이 경례를 붙였다.
“옙, 감독님.”
다른 쪽에서는 극의 주연들이 신기한 듯 세트장을 두리번거리며 다니고 있다.
분장에 의복까지, 이미 일본인 순사 ‘타이세이’로 변신을 마친 이동수가 연신 감탄을 발했다.
“와, 사극 촬영할 때랑은 비교가 안 되네. 민속촌보다 더 그럴듯한데요?”
같은 C&J 소속 조현아도 경성시대 분위기가 물씬 나는 거리를 신기한 눈빛으로 둘러봤다.
“그러게, 이만한 규모를 그 기간 안에 뽑을 줄이야··· 역시 돈이랑 사람이면 다 되긴 해.”
그녀 역시 연기력과 마스크 모두를 인정받는 30대 초반의 여배우다.
오늘 분량이 없는데도 첫 촬영을 구경하러 왔다는데, 조/단역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그 배우’의 연기를 보러 온 모양새다.
“근데 누나, 누굴 그렇게 찾아요?”
세트장을 두리번거리는 조현아에게, 이동수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일단 동수 넌 아니고. 박 배우 리딩장이랑 촬영장 연기가 또 다르다잖니, 그걸 못 보면 같이 작업하는 낙이 없지.”
“하긴, 리딩 때도 어마어마했죠. 감독님이 일부러 힘 좀 빼 달랬다던데.”
“근데 오늘은 늦으려나? 원래 촬영장에 엄청 일찍 도착한다고······.”
그때, 길가의 일본식 주택 지붕에서 그림자 하나가 뛰어내렸다.
“꺅!”
조현아가 짧게 비명을 올리고 이동수도 흠칫 놀라 물러섰다.
흰 두루마기에 짚신, 대나무 패랭이에 부리부리한 눈매의 검붉은 백정탈.
극 속에서 일본 헌병과 순사들을 도살하는 ‘백정탈’이 그들 앞에 서 있었다.
“박 배우님······?”
탈을 머리 위로 올린 박건은 두 배우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세트 좀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약속한 것처럼, 촬영장 입구에 거대한 스프린터 밴이 등장했다.
로만의 에이스들도 모두 모인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