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8)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8화(8/199)
욕탕 속 상어 (2)
* * *
“촬영장에?”
“응, 그래도 로드로 몇 달 뛰었으니까 도움은 될 거야. 스케줄 관리도 그렇고··· 내가 배우 매니저 되는 게 꿈이었잖아. 알바도 당일치기로만 뛰어서 바로 나올 수 있거든.”
그러더니 눈을 굴리면서 나름 어필도 덧붙였다.
“형 제대로 자리 잡을 때까진 무급으로. 콜?”
건은 잠시 고민했다.
혈육 매니저··· 거기다 무급?
기억 속, 그리고 지금까지 봐 온 동생은 싹싹하고 열정적인 녀석이다. 연예계 경험도 있으니 도와준다면 이쪽이 고마울 터.
고개를 끄덕이자 박선은 뛸 듯이 기뻐하며 질문을 퍼부었다.
“형, 그럼 배역은 어떻게 되는 거야? 은 작가님한테 대본은··· 아니지, 오디션장 얘기부터 해 주면 안 돼?”
동생에게 대답해 주면서, 건은 떠올린다.
좁고 눈부신 오디션장.
거기서 몇 시간 전 느꼈던 향수를.
‘가짜 칼, 가짜 상황, 모두 가짜였는데, 왜 그런 기분이 들었던 거지?’
무술 감독이라고 했었나.
눈앞에 있던 사내는 격투술을 익힌 듯 보이긴 했으나, 일반인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
애당초 칼질을 한다는 상황도 합을 맞춘 연기에 불과한 터. 이십 년간 지옥을 구른 용사에게는 애들 장난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큐 사인이 떨어지고 고개를 든 순간, 기이한 해방감이 몰려왔다.
‘꼭 예전 몸으로 돌아간 것처럼.’
덕분에 그 잠깐 동안 몰입해 버려서, 무술 감독이란 자를 제치고 연출진이 앉은 탁자까지 가 버리고 말았다.
최승이란 인간백정에게서 용사와 닮은 무언가를 본 것일까.
아니면 타인을 연기한다는 생경한 행위가 옛 기억을 불러온 것일까.
‘여태 해 온 게 이 짓뿐이니.’
해 보면 될 일이다. 극중 최승이 죽을 때까지··· 또는 다른 역할을 맡을 때까지.
“어렵진 않았어? 나도 다른 팀 선배한테 들은 건데, 무술 감독들이 진짜 격투가들은 오히려 부담스러워도 한다더라.”
“난 쉽던데. PD 말고 거기 있던 무술감독이 연락처도 받아갔어. 자기 스쿨에 놀러오라고.”
“역시···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구만.”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빛내던 박건이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아, 그리고 로만에서 연락 왔는데.”
“로만?”
“어. 형이랑 미팅 한 번 해 보고 싶다면서, 시간 될 때 연락 달래. 배우팀 실장님 직통 번호도 같이 줬어.”
건은 대충 끄덕였다. 마지막은 잘 끝났지만 과정이 안 좋았던 소속사다.
스카웃할 의도는 아닐 테고, 개인적인 볼일이 있거든 알아서 연락해 올 것이다.
“아무튼 형, 나만 믿어.”
“뭐가?”
“원래 배우 케어는 매니저 몫이잖아. 내가 똥밭에 굴러도 형 욕은 안 먹게 한다.”
“거기 구르면 독 올라. 인분은 먹거나 바르는 거 아냐.”
“아, 또 진지하게 받는다!”
*
홍보 자료가 뿌려졌다.
<서울의 개, 서희도 출연 확정!>
<서울의 개··· 대본 리딩 초읽기, 이번 시청률 목표는 몇 퍼센트?>
<은희욱X나종모! JNBC 수목극 접수하나>
은희욱과 나종모, 공전의 히트를 친 조합이면서 고집 세기로 악명 높은 듀오다.
시작은 9년 전 MBS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데뷔했던 은희욱의 신작 <무뢰배>.
명실상부한 흥행카드다 보니 외부 간섭도 적고, 시청자 반응은 아랑곳 않고 지들 하고 싶은 대로 하는데 시청률은 죽이게 뽑는다.
국장 입장에선 편성만 잘 놔 주면 최소 중박, 운만 따르면 대박까지 노리는 조합인 것이다.
“예, 피디님.”
평창동의 넓은 한옥저택.
가부좌를 튼 은희욱 작가가 전화를 받았다.
-작가님, 깔린 자료들은 확인하셨고?
“지금 보고 있었어요. 언론에 제대로 뿌린 건 이게 처음이죠?”
-어, MBS 쪽 월화드라마··· ‘결혼 세 번 이혼 네 번’인가? 걔들 노 저을 시기에 딱 맞춰 풀라고 했지. 이 바닥도 예전 같지가 않아서 화제성 잡으려면 얌생이를 쳐야 돼.
“삼촌이 혀 좀 차시겠네요.”
-에이, 이 정도는 선의의 경쟁이지! 못 누르면 눌리는 게 드라마판 아니겠냐.
은희욱은 앞에 세팅된 모니터 여섯 대를 흥미롭게 둘러보며 마우스를 굴렸다.
한성일보, 강상일보, 제일스포츠··· 화면마다 떠 있는 ‘서울의 개’ 기사와 댓글들이 올라간다.
“피디님.”
-말씀하십쇼, 은 작가님.
“제가 재미, 재미, 입버릇처럼 말하는데, 그렇다고 또 진짜 망하는 게 재밌을 것 같진 않거든요. 시청률 바닥은 못 쳐 봐서 모르겠지만.”
-하, 이거 참. 그렇단 얘기는······.
전화기 저편에서 들리는 나종모의 음성도 음흉해졌다.
“우리 쪽 비밀병기들도 슬슬 준비시키죠.”
*
배우는 아이돌보다 팬덤의 규모가 작다.
정확하게는 팬의 활동이 적다. 임팩트를 꾸준히 이을 장작이 구조적으로 덜하달까.
속칭 ‘배우판은 돌판 못 넘는다’는 말이 있다.
모 배우가 한순간 떴다고 해도 몇 달이면 묻히고, A급 배우들이 신작을 들어간다고 연예란이 뒤집어지진 않는다.
기껏해야 소속사가 떡밥을 풀고 팬으로 분장한 홍보팀이 커뮤니티에 퍼다 나르는 정도, 딱 그 정도 화제성이 평균인 것이다.
그런데 서울의 개는 조금 달랐다.
첫째. 메인 주인공 마대휘 역인 용준상의 소속사가 대형 기획사인 핀즈 엔터였고,
둘째. 또 한 명의 주연, 정연우로 뒤늦게 합류한 서희도가 인기 아이돌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제목 : 이번 JNBC 갤주 출연드라마
서울의 개 기다리는 사람 있어? 한동안 활동 없어서 갤락날락만 하다가 ㅋㅋㅋㅋ 슬슬 불판 올라오니까 설레기 시작하네… 작가는 은희욱 피디는 나종모래
그거 장르가 뭐래?
ㄴ하드보일드+느와르라는데 흳은 주연급
또드보일드… 또와르…
ㄴ또찰 또폭도 안정적인 맛이 있다구!
ㄴ난 걱정이야 ㅠㅠㅠㅠ 전작때 기레기들 연기력 논란 선동해서 얼마나 물고 뜯었니..
ㄴ소속사에서도 맘먹고 밀 테니까, 이번엔 진짜 여론 안 밀리게 제대로 가보자
난 기대중 ㅇㅇ 나종모에 은희욱은 식상한 재료로도 맛있게 뽑긴 함
ㄴ맞아 항상 신선한 마스크 써서 좋음 ㅋㅋㅋㅋ
ㄴ그래서 촬영은 언제 들어가는데?
*
서희도 갤러리, 팬카페, 대형 커뮤니티의 연예란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하드보일드 장르에 대한 기대감 반, 이번 작품에서도 연기력 논란으로 기자들의 먹잇감이 되면 어쩌냐는 걱정 반.
밴 뒷좌석, 스마트폰을 던져 버린 서희도는 한숨을 푹 쉬며 때가 탄 대본을 펼쳤다.
“형, 나 이번에도 까이면 어쩌지? 대표님이 또 진실의 방으로 불러서, 응? 안 갈구는 척 두 시간 꼽 주면 진짜 회사 나갈까?”
“대표님이 언제 꼽을 주셨냐, 다 너 잘 되라고 하시는 말씀이지.”
상대 배역으로 대사를 쳐 주던 매니저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게 꼽이고 잔소리지 뭐야. 우리 멤버들이 요즘 나만 보면 놀린다니까, 또 훈화말씀 들으러 교장실 끌려가냐고.”
“그래, 그래, 그 소리 듣기 싫어서 열심히 준비했잖아. 이번에 잘 하면 안티들 억까도 싹 사라질 거야.”
“형은 너무 야박해. 이래서 T들이란.”
서희도는 입을 비죽 내밀고 투덜대다가 대본 한 지점을 짚었다.
“근데 여기, 최승 역. 배우가 누구야?”
“모르겠는데? 알아보니까 오디션 본 배우들 셋 다 안 됐대.”
“아, 또 뉴페이스 발굴하셨구나.”
아이돌 시절부터 이름난 노력파인 서희도가 자기 작품 작가의 스타일을 모를 리 없다.
매니저가 오히려 걱정스러운 표정이 됐다.
“그래서 실장님도 좀 걱정하시더라. 너랑 자주 붙는 씬인데, 혹시나 이상한 놈 와서 그림 망치면 큰일이라고.”
연기는 상대 배역과의 호흡도 중요하다. 합이 잘 맞으면 시너지가 나지만, 한쪽이 엉망인 경우엔 싸잡아 폄하당할지도 모른다.
코를 긁던 서희도가 엉뚱한 소리를 했다.
“있잖아, 혹시 같이 까이면 나중에 밥차라도 쏘자. 이분도 나 때문에 욕먹을 텐데.”
“왜 욕을 먹어? 희도 너랑 한 컷에만 잡혀도 걔는 감지덕지해야지.”
“음··· 그래도 뭔가, 좀 재밌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네. 우리 최승이 형.”
“안전벨트나 매. 다음 스케줄 가야 돼.”
“형, 나 아직 도시락도 다 안 먹었어!”
*
‘서울의 개’ 대본리딩 현장에 배우들이 집결했다.
이 판의 젊은 피들, 그 중 연기파들만 고르고 모은 첫 대본리딩이다.
안면 있는 배우들은 대기실에서부터 인사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 진수 씨도 왔어?”
“은 작가님 신작이라잖아요. 매니저 형이 공고 뜬다고 하자마자 오디션 쳤죠.”
“부럽다··· 우리 소속사에선 뭐 말을 안 해 줘요, 배역들 다 차고 막판에 겨우 탔잖아. 이런 건 속도가 생명인데.”
조연들에 이어, 주연급들도 속속들이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어, 앉아요들. 그렇게 하면 진짜 뒷방 늙은이 바람 쐬러 온 기분이라니까.”
용준상의 아버지 역을 맡은 곽중일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받았다.
마지막에 합류한 중견 배우, 원로급이 안 나오는 이 드라마에서 중심을 잡아 줄 배우기도 하다.
“선배님, 오셨습니까.”
“저도 왔습니다, 선배님들!”
형사 마대휘 역의 용준상, 테러범 정연우 역할의 서희도도 곽중일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번엔 진짜 마스크들 짱짱하긴 하네··· 미청년에 미중년, 저렇게만 있어도 그림 좀 봐.”
마대휘 팀의 여형사 역을 맡은 강나나가 속닥거렸다.
두 회 만에 목이 썰려 퇴장하는 수사관 역 남배우가 말을 받았다.
“준상 씨야 워낙 유명하고, 희도 씨는 애초에 아이돌 비주얼 센터 출신이고··· 근데 마스크 하면 저쪽도 만만찮은데요?”
강나나의 시선도 옆으로 따라갔다. 체구 작은 사내가 촬영장 모든 사람들에게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인사를 다니고 있었다.
“저기, 저 매니저?”
“아뇨. 데려온 배우요.”
“아, 최승 역이라던 그 무명.”
기합이 바짝 든 매니저와 달리, 배우 쪽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한 바퀴 돌면서 인사한 다음 이름표가 붙은 의자에 앉아 손바닥만 보고 있다.
보통 촬영장에 온 무명 배우의 행동 양식은 둘 중 하나다.
눈에 들려고 스탭들에게 알랑거리거나, 잔뜩 긴장한 채 대본만 외우거나.
그런데 다리를 꼬고 앉아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꼴은······.
“무슨 일일알바 뛰러 온 느낌이네.”
“냅둬요. 보니까 대사도 없던데. 오늘 리딩, 저 사람은 한 마디도 없는데 그냥 온 거예요.”
강나나의 얼굴에도 알겠다는 표정이 스쳤다.
최승 역 오디션엔 서류부터 떨어진 남배우가 열의 넘치게 남자를 비하했다.
“뭐, 그냥 액션 원툴이겠죠. 몸 잘 쓰는 엑스트라 단역. 얼굴이랑 피지컬만 좋아서 배역 따내는 유형들 있잖아요.”
“누구요, 저요?”
뒤에서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 둘은 화들짝 놀랐다.
귀에 손을 갖다댄 서희도가 싱글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듣는 얼굴빨 섭섭해요. 나한테 달리는 악플 중에 한··· 65%는 그런 거라, 저 형도 그런 소리 들으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요.”
“아니, 서 배우님. 그런 뜻이 아니라······.”
“어, 시작인가 보다. 그럼 잘 해 봐요!”
냉큼 말을 끊은 서희도가 리딩이 시작되는 대기실로 들어갔다.
망했네요, 그러게요. 눈빛을 주고받은 두 명도 힘없이 일어나 따라갔다.
이번 드라마는 초장부터 꼬인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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