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80)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80화(80/199)
백정, 이천인 (6)
* * *
연예계의 전쟁은 국지전이다.
배우들이 극에서 맞붙는다면, 촬영장 밖에서는 회사들의 대결이 펼쳐진다.
단순하게는 소속사와 방송국이지만, 외부투자사가 꼈다면 거기 연결된 프로덕션부터 광고사, 이권과 연줄을 댄 회사들이 수십 개씩 딸려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기에 ‘하이페리온’ 같은 대작은 배우와 회사가 전부 나서서 홍보에 총력을 기울인다.
문한빈이 촬영현장 직찍을 SNS 스토리에 도배하고, 강영웅이 사흘에 한 번씩 메이킹필름 인터뷰를 뿌리는 것도 같은 의미에서다.
주연들의 인지도를 아낌없이 활용하며 라이트한 시청자들을 고정 팬층으로 이끄는 것이다.
[한빈문] 구독자 101만 명 [은서Eunseo 기Ki] 구독자 87만 명 [영웅본색] 구독자 31만 명거기다 주연배우 넷 중 무려 세 명이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실정.
상대적으로 홍보 채널이 적은 로만에 비해, 아이돌이 강세였던 DG나 한류스타 수출을 이끈 조이너스는 훨씬 노출에 유리하다.
특히 DG는 계약할 때부터 소속 아티스트가 일정 급이 될 때까지는 홍보 채널을 반 강제적으로 키우는 조항까지 있다.
사고만 안 치면 작품이든 행사든 크게 터치하지 않는, 소위 ‘방목형’인 로만과는 태생부터 방침이 다르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갑자기 백하니의 유튜브 채널이 개설됐을 때, 팬들은 술렁거렸다.
-뭐지? 가짜인가?
└소속사 공식계정 달린 거 보면 찐인데
└└백하니가 유튜브를 할 리가 ㅋㅋㅋㅋ 그냥 메이킹이나 미공개필름 올라오겠지
-하니언니.. 제발 그냥 얼굴로 나와만 줘요.. 찍기만 해 달라고 ㅠㅠㅠㅠ
└데뷔하고 유튜브 세번 폭파시킴 이번에도 그렇게될듯
└└50만쯤은 미련없이 터뜨리는 쿨하니 ㄷㄷ
-노중만이 또 닦달했나 본뎈ㅋㅋㅋ 이번엔 얼마나 가려나
과거야 어쨌든, ‘하니로그’라는 제목을 달고 올라온 영상도 담백했다.
다른 여배우들의 브이로그처럼 예쁘장한 편집이나 색 보정 없이, 본인이 찍은 셀프캠 모드의 하루 일과가 전부였다.
너무 흔들려서 자연스럽다 못해 멀미마저 나는 앵글이었으나, 워낙 대외활동이 뜸한 배우였기에 팬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심지어 다음날, 공식 인스타에 대본을 쥔 손 두 개까지 올라오며 백하니가 ‘백정장군’ 지원사격에 나섰음이 밝혀졌다.
하나는 백하니의 손이었고 다른 하나는 척 봐도 다른 여배우였는데, 손의 주인이 조현아임이 알려지고서도 커뮤니티 댓글들은 들끓었다.
-와 박건 손 폼 미쳤다
-박폼 손 건 미쳤다 ㄷㄷㄷㄷ
-로만 에이스들은 손도 예쁘네… 드디어 둘이 친해진 건가…
-님들 저거 조현아잖아요 ㅋㅋㅋㅋ 자기 인스타에도 올렸는데; 어딜 봐서 남자손임
-윗분 눈치좀…
-못 끼면 나가있어 제발
-응 역사왜곡드라마 불매할 거야~ 로만, CVN, C&J 전부 식민사관 친일충들 ㅋㅋ
그 덕분에, 코어 팬덤들이 본격적으로 참전하며 역사왜곡 논쟁이 일부 진화됐다.
하이페리온 진영으로 추정되는 언론들이 여전히 거센 비난을 퍼붓고, 2화 방영 후에는 ‘백정장군’ 규제를 주장하는 국민청원까지 올라갔지만 곧이어 여론이 뒤집혔다.
[‘백정과 장군’, 고증 논란이 무의미한 이유]로만의 공식계정과 박건의 SNS에, 충격적인 촬영장 영상이 게시된 것이다.
*
KBC, ‘하이페리온’ 제작본부.
부여에 터를 잡은 CVN과 달리, 이쪽 촬영은 메인 세트장만 무려 세 곳에서 진행된다.
그들만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드라마답게, 제작된 세트장 이외에도 촬영 중인 빌딩들의 스케일 역시 어마어마하다.
특히 극중 굴지의 재벌인 ‘현진그룹’ 남매들이 대소사를 회의하는 응접실은 가구 하나당 수억 원을 호가하는 명품들로 채워졌다.
잠시 촬영이 끊겼을 때, 이 응접실은 주연 배우들만 쉴 수 있는 휴게실로 변한다.
“···뭐야, 이거?”
스툴에 걸터앉은 문한빈이 중얼거렸다.
작감이 아닌 다른 배우들은 감히 이곳에 들락거릴 수 없지만, 예외가 있다면 그들 네 명의 코디와 매니저다.
지금도 DG에서 파견한 개인 코디는 무릎까지 꿇은 채 소파에 누운 기은서의 얼굴에 브러쉬를 펴 바르고 있었다.
“왜? 대표님한테 연락 왔어?”
화장을 고치는 와중에도 기은서는 신경 쓰지 않고 얼굴을 움직인다.
저러다가 입에라도 화장품이 들어가면? 그날 부로 직장이 날아간다. 극도로 집중한 코디의 이마에 땀방울이 돋아났다.
“아니, 새 영상이 올라와서.”
“백하니 유튜브? 거긴 다 봤잖아, 워낙 감 없는 애라 그런지 컨셉도 촌스럽게 잡았던데.”
“거기 말고 박건. SNS 켜 봐.”
“귀찮아, 그냥 오빠가 보여주면 안 돼? 나 지금 화장 고치느라 힘들어··· 아, 좀 살살 털어요!”
“죄··· 죄송합니다.”
쫑알대던 기은서가 코디를 향해 눈을 치뜨고 빽 소리친다.
여기 모인 넷 모두가 탑 스타라고는 하나, 성격은 가지각색이다. 철저히 인기도로 신분을 나누는 변동근 대표 탓에, DG의 스타들은 대체로 오만하며 허영심과 우월의식이 강하다.
그나마 아이돌 출신인 기은서와 달리, 아역배우부터 승승장구해 온 문한빈은 공개된 장소에서는 말을 아끼는 편이다.
반면 조이너스는 함현식 대표의 사업적 모토처럼, 굳이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얻을 이익들은 최대한으로 챙겨 간다.
스케줄 중인 강영웅은 없지만, 먼저 와 있던 조이너스의 여배우 안미립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몸을 일으켰다.
“내가 봐 줄게요, 은서 씨. 저 오빠가 저렇게까지 말하면 뭐가 있는 거야.”
“그래요. 나 네일 때문에 스토리 잘못 눌리면 방문자 찍힌단 말야, 그럼 바로 스캔들 뜨고 대표끼리 만나서 합의 봐야 돼.”
자의식도 저쯤 되면 과잉을 넘어 비대증 수준이지만, 기은서라는 사람을 몇 주째 봐 온 주변 배우들에겐 새삼 놀랄 꼴도 아니다.
익숙하게 스마트폰을 켜 박건의 SNS에 들어간 안미립의 눈이 커졌다.
“어, 어······?”
“언니까지 왜 그래요? 진짜 무슨, 진지유랑 침대에 있는 사진이라도 올라간 거야?”
“그게 아니라··· 촬영장 영상인데, 무슨 CG를 붙여 놨는데요? 이것 좀 봐요.”
쪼르르 달려간 안미립이 기은서의 눈앞에 스마트폰 화면을 들이댄다. 이윽고, 스캔들 아니면 관심 없다는 듯 시큰둥하던 기은서에게서도 얼빠진 목소리가 샜다.
“미친, 이 인간 원숭이야?”
스턴트맨이 찍은 것으로 보이는 영상에는, ‘백정장군’ 세트장 지붕에서 박건이 적들과 추격을 벌이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등에 황(皇) 자가 새겨진 흑의인들이 쫓아오지만, 흰 두루마기 차림의 박건은 처마와 굴뚝들을 제 집처럼 타고 넘으며 허공을 누빈다.
실로 어마어마한 균형감각과 도약력이다.
심지어 스턴트맨들도 와이어를 찼는데, 안전장치 하나 없는 맨몸으로 위험천만한 곡예를 펼치는 것이다.
씬이 끝나고, CG가 아님을 증명하듯 박건이 머리 위에 손을 젓는 것으로 영상은 끝난다.
아래쪽엔 문장 하나가 첨부돼 있다.
GOURD_GUN
점프력 이슈 xD
그때껏 아무 말 없던 문한빈이 중얼거렸다.
“신기하네. 원래 특수부대 출신들은 이 정돈 다 하나?”
“신기하긴 뭐가! 이거, 다 그··· 합성? 조작? 그런 걸 거야. 노중만 그 인간 원래 배우들 억빠 심하잖아! 그죠, 언니?”
“글쎄요? 저도 이런 쪽은 잘 몰라서······.”
현실부정에 나선 기은서가 동의를 구하자, 안미립은 휴대폰을 챙겨 슬쩍 빠진다. 이내 DG 식구들의 어지러운 대화가 이어졌다.
“와, 자기들 드라마 욕 처먹는다고 이런 식으로 커버를 치네.”
“그러게.”
“누군 못 해서 안 하는 줄 아나? 오빠도 다음번에 뭘 좀 보여줘. 여기 발코니에서 줄 하나만 감고 떨어지면 이번 주 내내 기사 뜰 거 아냐! 저딴 건 그냥 바르고도 남지!”
“그건 이미지만 깎일 것 같고.”
이런 대화가 익숙한 듯, 소속사 동료의 개소리를 흘리던 문한빈이 턱을 괴었다.
중화권은 물론 할리우드까지 진출해 준수한 성적을 낸, 자타공인 ‘아시아의 별’이 담백한 어조로 평한다.
“조만간 얼굴은 한번 봐야겠어. 그 구신승이랑 최필립보다 쓸 만 할지.”
*
‘자르마니’ 신제품 런칭 행사장.
절반은 공개고, 절반은 비공개로 진행되는 프라이빗 행사장에 별들이 모였다.
브랜드 런칭 행사는 그 급과 스타일, 브랜드의 색깔에 따라 다양한 셀럽을 섭외한다.
명품 브랜드라고 해서 무작정 행사 규모를 키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짬밥 높은 기자 및 탑급 디자이너, 배우들만 초청해 소수정예 VVIP 파티처럼 꾸미기도 한다.
저녁 8시경, 행사장에 ‘하이페리온’ 멤버들이 등장했다. 입장 전 포토월에서 환히 웃는 배우들을 보며 초청객들은 수군거렸다.
“와, 문한빈이 여길 왔네?”
“기은서에 안미립에··· 강영웅까지 왔으면 하이페리온 빅4가 다 모인 거잖아?”
“원래 문이랑 기는 DG에서 한 번에 잘 안 묶어 보내는데··· 변동근이 신경깨나 썼나 봐.”
오늘은 주최 측이 머리를 굴렸다. 상반기··· 아니, 어쩌면 올해 최고의 기대작일지 모르는 두 드라마 주연들에게 초대장을 돌린 것이다.
‘하이페리온’은 무려 넷을 보냈다. 그렇다면 ‘백정장군’은?
어둑한 조명이 내리비치는 행사장 안을, 미어캣처럼 두리번거리던 여배우가 물었다.
“저쪽이 넷이면, 백정장군 쪽은? 아까 조현아 혼자 와 있는 것 같더니.”
“박건이랑 백하니잖아. 박건은 몰라도 백하니는 이런 데 절대 안 오지, 팀으로 묶이는 거 죽기보다 싫어하는 인간인데.”
“왜, 이번에 인스타에 사진도 올렸다며. 얼굴만 비추고 갈 수도 있지.”
대꾸해 주던 다른 여배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냥 보여주기 용이고. 어··· 잠깐만, 저기. 지금 붙은 거 아냐?”
신제품들이 디피된 행사장 한가운데서, C&J의 여배우와 DG-조이너스 사단이 마주하고 있었다.
‘망했네, 이럴 것 같더라니.’
조현아는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국내 매출 1~2위를 다투는 브랜드 런칭 쇼라, 두어 명이 올 건 알았지만 넷이 다 올 줄은 몰랐다.
이 정도면 브랜드에서 대놓고 싸우라고 판을 깔아 준 것이다. 저것들은 또 신이 나서 연장을 챙겨 몰려온 거고.
그것을 증명하듯, DG의 기은서가 호들갑을 떨며 인사한다.
“어머! 안녕하세요, 선배님. 오신 줄도 모르고 있었어요.”
“···은서 씨도 오랜만이에요. 다른 분들도 여기서 뵙네요.”
“예, 안녕하십니까.”
“강영웅입니다. 3년 전에 잠깐 뵈었었죠? ‘글로리우스’ 현장에서요.”
문한빈과 기은서, 거기에 강영웅과 안미립. 개인 면면으로도 조현아보다 한 체급에서 두 체급 높은 이들인데, 심지어 상대는 넷이다.
과연, 주변을 둘러보던 기은서가 순진한 표정으로 질문한다.
“그런데 나머지 배우들은요? 오늘 여기 본부장님이 백정장군 식구들도 불렀대서 기대했더니.”
“아마 일정이 안 돼서 못 온 것······.”
“다 된 노땅만 왔네.”
악취라도 맡은 것처럼, 코를 찡그린 기은서가 소리 죽여 말한다. 조현아가 채 화를 내기도 전에 속사포 같은 멘트들이 쏟아졌다.
“진짜 아쉽다. 아, 혹시 초청이 안 갔나? 어차피 작품도 하나씩밖에 안 찍는 분들이라 바쁘진 않을 텐데, 우리 올 줄 알고 도망갔나 봐. 괜히 포토월에서 같이 사진 찍혔다가 박제되면 두고두고 비교당하니까, 푸흐흐.”
조현아의 얼굴이 결국 일그러진다.
이 바닥에서 최악의 인성으로 악명이 자자한 미친년답게, 제 편을 잔뜩 데려와 설치는 꼴에 악의가 철철 넘친다.
이미 여긴 전쟁터다. 뒤쪽에 호위처럼 늘어선 문한빈과 강영웅, 안미립도 무례한 동료를 말리기는커녕 흥미롭게 지켜보고만 있지 않나.
주변의 시선들을 확인한 기은서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선배님, 저희는 이만 가 볼게요. 조선시대 촌뜨기들 얼굴이나 구경할랬더니, 이렇게 재미도 깡다구도 없을 줄은······.”
“뭐래, 발연기 망돌 주제에.”
갑자기 끼어든 차가운 목소리에, 기은서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
본인의 출신을 트라우마처럼 생각하는 그녀 앞에서, 아무리 변동근 대표라도 저런 말을 함부로 꺼내진 못한다.
폭언을 퍼부을 수 있는 사람은 같은 급의, 그리고 똑같이 미친 여배우뿐인 것이다.
“한동안 못 봤어도 음습한 건 여전하네.”
새까만 스틸레토 힐에 붉은 미니드레스, 반들거리는 자르마니 재킷을 어깨에만 걸친 백하니는 또각또각 걸어와 기은서를 찍어누르듯 내려다봤다.
“뭘 안다고 와서 친한 척이야. 그리고 거기, 그쪽 회사 사람들은 산책 나갈 때 개한테 목줄도 안 채우고 다녀요?”
“야, 너 뚫린 입이라고······.”
눈이 돌아가려고 하는 기은서를 문한빈이 제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오랜만이네. 백하니.”
“반말 말고요, 문한빈 씨. 그쪽 같은 인간이랑 안면 튼 거 쪽팔리니까.”
기은서가 목소리라도 줄였다면, 이쪽은 아예 듣는 귀들을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공개적인 모욕에 문한빈의 눈매가 서늘해졌을 때였다.
“싸울 거면 머릿수 맞춰서 합시다. 치사하게 몰려와서 사람 괴롭히지들 말고.”
언성을 높인 것도, 소리친 것도 아니었으나 행사장의 모든 사람들이 그 말을 들었다.
이내 목소리의 주인공이 초청객들을 헤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 행사의 주최자, 자르마니 코리아의 본부장과 나란히 선 박건이다.
“본부장님 보기 껄끄러우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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